제가 요즘 신는 신발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산지 6개월 정도 된 아이보리색 스웨이드 운동화.
다른 하나는 산 지 열흘 정도 된 아이보리색 어글리 슈즈.
어제 아침에 아버지께서, "운동화가 더러운데 빨아 놓을까?" 라고 하시더랍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는데도 부득이 빨자고 하시길래...
빨아도 내가 빨아야지 그걸 왜 아버지가 빠냐고 했습니다.
[어글리슈즈야 새거니 세탁의 대상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리고 스웨이드라 어차피 빨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출근하는데 따라나오셔서는.... 어글리슈즈를 가리키며 "그럼 얘 신발 끈이라도 빨까?"
라고 하시더랍니다.
은퇴하시고 뭔가 점점 어깨가 좁아지시는 아버지가 안쓰러우면서도,
평생 안해보신 부엌데기가 되어가는 모습이 맘이 안 좋고 속상도하여,
저도 모르게
"아 그냥 두라고! 아빠 그런 거 하지말라고!"
큰 소리를 내고 스웨이드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근무하다, 퇴근 했을 때에는 이미 부모님 두 분 모두 주무시고 계시더군요.
...
...
오늘 아침 출근하려고 어글리슈즈를 신고 보니, 아버지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신발끈이 풀어헤쳐져 있고, (아버지는 저보다 발등이 높습니다)
눈길을 걸으셨는지, 밟으셨는지 신발끈 끄트머리만 새카매져 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신발끈 끝의 플라스틱 마감처리가 깨져 있더군요.
아버지가 제 신발이 좋아보이셨는지, 몰래 신고다니시다가 더럽히시고는...
빨지도 못하고
[왜 빨았냐고 물어볼 테니까]
신발끈만 빨지도 못하고
[왜 풀었냐고 물어볼 테니까]
아들한테 말도 안하고 신었다고 혼날까봐 "신발 빨아줄까?" 만 물어보고 계셨던 겁니다 크크크
점심시간에 아버지 신발을 한 켤레 사왔습니다.
어제 아침의 어색함이 남아 있을 때, 던져드리고 부끄러워 하는 아버지를 보렵니다.
p.s. 아버지 신발 많으십니다. 작년 말에 그리스 가신다고 운동화 한 켤 사다드렸습니다.
p.s.2 아버지는 제 아이템들을 좋아하십니다. 제 뉴에라 모자의 스티커를 떼셨길래 왜 떼셨냐고 한 적 있는데, 후에 아버지 사진첩에서 그 모자를 쓰고 등산가셨던 사진이 있더군요 크크
p.s.3 아버지는 제 아이템들을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가져가서 안주십니다. 제 긴양말은 다 가져가셔서... 올겨울을 페이크삭스로 나고있습니다.
p.s.4 아버지가 나이드시더니 화려한 걸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x키 빡! 에어 빡! 화려함 빡! 들어간 맥스95로 샀습니다 크크 (위의 사진 모델)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7-31 12:56)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