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랑하는게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조건없이 주는 사랑-그게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든 이성 혹은 동성간의 사랑이든 직장 동료나 그 밖의 수 많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든-을 하는 사람을 멋지고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받는 것은 어떤가요?
저는 가족이 많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계시며 동생도 둘이 있습니다. 친가 쪽에 고모와 작은 아버지들이 있고 사촌 언니 오빠 동생들, 조카 등등이 수십명 있고 외가는 더 많습니다. 일 년에 한 두 번 가족 모임을 하고 명절에도 꼬박 만납니다.
친구들도 있습니다. 중학교 때 부터 알고 지내온 친구들과 아직도 살갑게 연락을 합니다. 사는게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만날 때 마다 반갑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보듬고 위로하고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들입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았으며 저만 보면 엉덩이를 치켜들고 걸어오는 고양이도 두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가끔 제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혼이 나기도 하지만 다른 집처럼 나쁜 년이 내 아들 등골을 빼먹는다고 욕하지 않고 억지로 시집살이를 시키지도 않는 감사한 시어머니도 계십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못 생기지 않은 정도라 생각..) 사회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못나지 않은 외모를 가진 탓에 결혼 전에 연애를 여러 번 했습니다. 셀 때 마다 까먹고 헷갈리지만 썸타다 끝나거나 고백만 받거나 한 것들을 제외하면 아마 8~10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엔 꽤 오래 만났고, 만난 시간보다 잊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던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이름인 '메모네이드'는 친구들한테 저와 잘 어울리는 단어를 말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레모네이드'를 변형시킨 이름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레모네이드를 못 먹습니다..) 디제이맥스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친구가 제 생각이 난다며 보내줬던 노래가 디제이맥스 포터블에 수록되어 있던 '레모네이드' 였습니다. 지금은 리스펙트를 고양이 노트로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avz3aeW6f4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또 어떻게 보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살면서 사랑받는 다는 느낌을 별로 받아본 일이 없습니다. 사실 내가 사랑받는지 아닌지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진짜 사랑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눈이 먼 채로 살면서 '나는 남들처럼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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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다는게 무엇인지, 어떤 기분인지, 세상에 어떻게 빛나는지,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를 깨달은 것은 비교적 최근입니다.
예전에 피지알에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 남편은 꼬셔야겠다는 강한 생각이 드는 남자였기 때문에 저는 혼신의 힘을 다 해 남편을 꼬셨습니다.
https://pgr21.com/?b=1&n=2551
제 예상은 너무나 정확하게 적중했습니다. 지금의 제 남편은 아내 밖에 모르는 끔찍한(?) 애처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남편입니다. 결혼 전에 남편의 외모나 상황 등을 보고 결혼을 반대했던 지인들은 지금 남편을 보며 참 많이 부러워합니다.
받아본 적이 없는 호의였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잘 해 줄 때는 대부분 목적이 있었으니까요. 특히 남자들의 경우 저에게 잘 해주는건 '너와 사귀고 싶어. 너와 손잡고 싶어. 너와 키스하고 싶어. 너와 자고 싶어. 너와 결혼하고 싶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놓고 위기가 다가오면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럴 수 있냐며 소리쳤습니다. 저는 내가 잘해달라고 요구한적 있냐며 마주 싸웠습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남편이란 사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는데도 덜 잘하기는 커녕 점점 더 잘해주었습니다. 제가 육아로 힘들어하면 회사를 쉬면서 육아를 도와줬고, 꽃이란건 식물의 생식기관일 뿐이라 생각하면서도 아내가 좋아하니까 의미가 있는 거라며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선물해 주었습니다. 저에게 조금이라도 기쁜 일이 생기면 축하해주고, 슬픈 일이 생기면 아낌없이 위로해 주었습니다. 아플 땐 말할 것도 없이 잘해주었고요.(저는 몸과 마음이 자주 아픕니다.)
처음엔 그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렇게 잘 해줄까? 친정엄마한테 말하니 네가 아플 때 잘 해주는건 네가 자꾸 아프다고 하니까 서방이 귀찮아서 아프다는 말 듣기 싫어서 그러는거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프지 말아야지. 짐이 되지 말아야지. 이 사람이 잘해주는 만큼 나도 잘 해주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부채의식이 저를 점령했고, 어느 날 그게 빵 터져버렸습니다.
부부 싸움 도중에 제가 남편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냐고.
아직도 그 날 남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두배나 되는 커다란 몸을 되는 아저씨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랑하니까] 잘해주는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제가 애들(5살 2살) 돌보고 너무 힘이 들어 저녁도 못 먹고 침대에 누워 울고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이 저를 보더니 말 없이 밖에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한참이나 부엌에서 뭘 하고 있길래 나가봤더니 제가 좋아하는 김치찌게에 볶음밥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힘들텐데 내일은 이거라도 먹으라고요. 남편은 회사까지 편도 1시간 40분이 걸립니다. 퇴근하고 집까지 1시간 40분 걸려 돌아와서는 본인 저녁은 못 먹고 밤 10시까지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순간 너무 고맙고 눈물이나서 남편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웃으면서 이제 내가 잘해주는거 적응 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했습니다. 그게 적응될 날이 올까요? 날 위해서 뭔가 해주려고 하는 남편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날이 올까요? 만약 그렇게 되면 저는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다음 날 유치원 하원 버스를 기다리는데 온 세상이 반짝이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세먼지는 심했지만)
바람이 따뜻했고, 풀 냄새가 좋았고, 사람들이 다 웃는 것 처럼 보였고, 펄럭이는 광고 플랜카드나 공사중인 차들도 모두 예쁘게 보였습니다.
목이 콱 매여왔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사랑받으며 매일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 속을 살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흑 속에서 처음으로 형형색색 빛나는 세상으로 나온 기분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온전히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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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수광이가 소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11화 마지막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사람이 사랑을 주면 받을 줄 좀 알아라."
TV나 소설, 영화나 노래에선 참 쉽게도 주고 받는 사랑인데 저에게는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3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혹시 저처럼 받는만큼 줘야하고 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거나 주는 사랑을 거부하고 계시진 않는지요.
마스터충달님의 글을 보니 뭐라도 써야할 것 같아서 쓸까 말까 고민하던 마음을 꺼내 적어봅니다.
다른 분들은 부디 저처럼 멀리 돌아오지 마시고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생각보다 참, 아름답습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9-07 17:54)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