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8/03/02 02:34:28
Name 자몽쥬스
Subject 우울의 역사 (수정됨)
내 우울의 시작은 아마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맞는 것 같다. 살을 빼고 싶었지만 그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병은 아닌데, 그 땐 웃으면서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 조퇴를 하고 혼자 병원에 가서 진료실 앞에 앉아 내 순서와 나를 데리러 올 아빠를 기다리는 건 많이 슬펐다. 살이 갑자기 너무 많이 빠져 교복을 줄일 시간도 없어 급식실 배식 순서를 기다리며 줄줄 흘러내리는 교복 치마를 접어올리던 내 허리춤을 껴안고 친구가 눈물을 보일 때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울고 싶었다. 조퇴 횟수는 점점 늘어났고 그 중 일부는 진짜 병원에 가기 위해서였지만 그보다 더 많이는 학교에 있기가 싫어서였다. 성적은 좋았지만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정작 하고 싶었던 것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할 수 없게 된 상태에서 차선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공부였다. 부모님이 딱히 성적에 대해 예민한 편은 아니셨지만 그래도 1등 성적표를 가져갔을 때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 계속 보고 싶었던 것도 같다.
현관문 열쇠를 안 가지고 온 날에는 갈 데가 없어서 딸기우유맛 츄파춥스 몇 개를 사 후드점퍼 주머니에 쑤셔넣은 채로 동네 놀이터에 가서 그네를 타거나 아파트 옥상에 올라 건물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노래를 듣곤 했는데, 그때 나를 잠식했던 감정의 정체가 이제 와 생각해보면 우울이었다. 가슴을 아무리 부풀려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심장을 누군가 꽉 움켜쥐어 19층 아래로 냅다 던져버리는 기분. 담배를 처음 피워본 때도 그 때였다. 교복만 아니었다면 지하철 역 구멍가게에서는 누구에게나 담배를 팔았으니까. 냄새도 역겨웠고 맛도 없었지만 꾸역꾸역 필터 끝까지 피웠던 건 아주 많은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걸 보니 이걸 피우면 좀 편해지나 싶어서였다. 만 열일곱의 시간은 무기력하고 아주 느리게 흘러갔으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만둘 용기가 없었고 엇나가고 싶었지만 내게 기대하는 모든 이들을 대놓고 배신할 만큼 못돼처먹지도 못했기 때문에 나의 우울에 기인한 방황은 서툴렀고 애매했다. 담배 한 갑과 라이터만 들어있는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가도 나는 학교에서 제일 공부를 잘했으니까, 선도부장 선생님의 등교길 가방검사는 늘 프리 패스. 폭탄을 가방에 넣고 선생님과 눈인사를 하며 등교할 때 느끼는 2-3분짜리 짜릿함과 해가 아직 중천일 때 홀로 친구들이 남아있는 학교를 뒤로 한 채 어슬렁어슬렁 교문을 나서며 느꼈던 5분짜리 해방감은 사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상태를 친구나 부모님 혹은 또 다른 누구에게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선택지가 있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마음이 하루가 다르게 정신을 옥죄어와 모든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날과 독서실에 간다고 집을 나와 가방만 올려두고는 벤치나 놀이터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갔으며, 그 모든 날 모든 시간과 정확히 반비례로 모의고사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나는 인생 최초로 맞이한 낯선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지 해답을 찾지 못한 채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등급의 성적표와 함께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대학의 신입생이 되었다.

스무 살의 나는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나서야 드디어 나의 고3시절을 망친 주범의 이름이 우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와타나베처럼 누군가를 잃어 본 적도 없었으면서, 왜 나는 우울해진 걸까. 아팠던 게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사건이었나, 심지어 지금은 병도 다 나아 더 이상 약을 먹지도 않는데. 여전히 답은 찾지 못한 채로, 나는 우울함을 즐기는 법을 알아 버렸다.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굳게 믿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위태로운 분위기에 취했고, “사연있어 보이는 여자”에게 끌려 나의 사연을 듣고 불행을 나눠 가지길 원했던 자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요즘 말로 하면 “관심병자”. 그렇게 나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사람은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고, 많이 울었고 또 집착하고 떠나보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체를 몰랐던 답답함은 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어 버렸고, 그때의 나는 내 우울이 너무 소중해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보려 하지 않았다. 너무 좋아해 업으로 삼고 싶었던 글쓰기마저도 우울함이 극에 달해 있을 때는 마치 어딘가에 이미 쓰여져 저장되어 있는 파일을 불러오듯 손끝을 타고 술술 흘러나왔으니, 그 시절의 내게 우울은 이미 병이 아닌 나의 일부. 나의 Ego였다.

스물 둘의 가을, 3학년 2학기였고, 졸업까지는 1년이 남았는데 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토익 점수도 없었고, 전공은 너무나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막연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학계를 던지고 집 근처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격증 공부를 했지만 전공과목에서 한두 문제 차이 과락으로 떨어졌다. 결과 발표가 나니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일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혼자 짧은 여행을 다녀온 뒤 집안에 틀어박혔다. 부모님은 내게 그 어떤 질책이나 걱정의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게 포기인지 믿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족간의 대화는 많은 편이었지만 한 번도 최근 나의 감정 상태에 대해 말한 적은 없었다. 나는 매일 알람 없이 아홉 시나 열 시쯤 일어나 사람은 없고 아빠가 뒤적거린 조간신문 냄새와 엄마가 발을 동동거리며 끓여 놓고 간 된장찌개 냄새만이 가득 찬 집에서 혼자 늦은 아침을 먹고, 멍하니 앉아 음악방송을 보다가 낮잠을 자고, 그러다 비가 오면 미친년처럼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비를 맞고 들어오곤 했다. 엄마가 차를 놓고 간 날에는 그 차를 끌고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제는 우울한 감정이 뭔지 잘 정의할 수 있었고, 나는 매일이 우울한 상태였다. 자주 쓸데없는 생각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지만 어차피 내일도 모레도 일정이 없는 내게 잠은 언제든 잘 수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 이렇게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정말 막 살고 있었고 굳이 열심히 잘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며 자주 스스로 초래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지만 남겨질 사람들이 받을 충격과 슬픔이 걱정되어 일을 저지르지도 못하던 그 때, 그 일이 나를 찾아왔다.

우리 집은 6층이었다.
그 날도 내 방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려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화단에 떨어져 있는 내가 보였다. 자유분방한 모양으로 팔다리를 접거나 편 채로 누워 있는 나. 손에 들고 있던 담배와 라이터를 창밖으로 떨어트리긴 했지만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잘못 봤다고 생각했으니까. 어제도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어쨌거나 새로 담배를 사러 나가야 했기 때문에 씻으려고 화장실 불을 켜자 이번엔 화장실 욕조 안에 둥둥 떠 있는 내가 보였다. 이쯤 되면 이건 굉장히 실감나는 꿈인가 싶었지만, 애써 욕조 쪽은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세수를 마쳤다.
대충 옷을 걸쳐 입고 슈퍼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다시 산 뒤 아파트 놀이터로 가서 늘 앉는 자리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며 정신을 차리려던 중, 놀이터 정자에 목을 맨 내가 내뿜은 연기 사이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보이자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했었고 죽는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었지만 시각적으로 실체화된 “죽은 나”를 보게 되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이 현상의 원인이 뭘지 정말 내가 미쳐버린 게 아닌지 그날 밤을 새워 고민했고, 다음 날 다시 창문 아래에 전날과 비슷한 모습으로 떨어져 있는 나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아. 이건 내가 혼자 머리 터지게 고민해서 나올 답은 아닌 모양이구나 싶었다. 친구이자 나 자신이었던 우울이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무서웠던 걸 보면 사실 정말 죽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나는 바로 가장 가까운 정신과로 달려갔다.
생각보다 정신과에는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약도 하지 않은 초진환자였던 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리며 두꺼운 책 같은 설문지를 다 쓰고 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점심시간을 넘긴 오후, 진료실 벽면을 가득 채운 창으로 흘러 들어오던 나른한 햇살과 그 햇살 사이로 춤을 추듯 공기 중을 유영하던 먼지들. 창문을 등지고 앉은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던 선생님. 아주 많이 울었고, 한참 동안 말 없이 내가 울음을 멈추길 기다려 주셨던 선생님은 정확한 나의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다음 번 상담에는 부모님이 같이 오셨으면 좋겠고, 여기에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 주셨다. 진료를 마치고 한 무더기의 약을 받아든 채로 집에 와서, 퉁퉁 부은 눈으로 처방전에 찍힌 KCD분류번호를 검색하자 “주요우울장애”와 “강박장애”라는 글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병명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를 구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힘이 셌고, 전날 밤을 새서인지 약 기운 탓인지 아니면 나를 잠식해 오던 두려움의 일부를 햇살이 좋았던 그 진료실에 두고 온 때문인지 그날 나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달게 잘 잤다.
받아온 약은 2주치였고 나는 하루 세 번 시간을 맞춰 꼬박꼬박 약을 잘 먹었으며 그 날 이후 “죽은 나”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내 안에서 벌어졌던 3차대전급 전쟁의 긴 역사를 하나도 모르는 부모님께 차마 내가 정신과에 갔었고, 거기서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눈치만 보는 날이 흘러갔다. 가져온 약이 딱 네 봉지 남아 있던 날, 아빠는 회식으로 늦고 엄마랑 나 단 둘이 먹는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엄마에게 약을 보여 주었다.
엄마, 나 얼마 전에 정신과에 갔었어. 이런 약을 먹고 있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부모님이 한번 오셨으면 좋겠대.
이 말을 하면서 울지 않는 게 목표였는데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로 정해져 있던 것처럼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왜 울고 싶지 않았을까. 가장 소중한 사람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때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위치에 있는 당신들의 큰 딸이 정신과에 다닌다는 오점을 만들었다는 게 너무 미안해서. 사실 엉망으로 살고 있다는 게 뻔히 보였을 텐데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준 당신들에게 이런 모습밖에 보일 수 없어서. 뭐 그런 복합적인 생각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엄마는 한참 약을 내려다보시더니 말없이 나를 안아주고는, 다음 날 퇴근하고 나서 나와 함께 병원을 갔다.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내 손을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은 작고, 말랐지만 아주 따뜻했다. 그 날의 면담은 나보다는 주로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쪽이었고, 나는 엄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키우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해 들었다. 30여분의 긴 면담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마음에 선명히 남은 문장들이 있다.
저는 우리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 하나만을 원합니다.
우리 아이를 믿습니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다시 엄마 또는 아빠에게 “우울”의 상세한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 부모님은 나의 감정상태에 대한 내용을 입에 올리지 않으셨고 나 또한 먼저 지금 어떻다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집안에 감도는 공기는 늘 훈훈했고,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다. 한 번도 빠트리지 않은 약 덕분인지 아니면 지지적인 가족 분위기 때문인지(전공을 바꾸고 나서 배운 내용 중, 상당수의 정신과 질환은 “지지적 정신치료”가 치료법이었다), 아마 둘 다였겠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 뚜렷한 목표 없이 살던 나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혼자 해결하기 힘든 감정은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면 생각보다 쉽게 풀어나갈 수 있고, 그 대상으로 좋은 친구나 화목한 가정이 있다면 아주 좋을 것이며 다행히 나에게는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전문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사가 되고 싶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지금껏 죽지 않고 사느라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간절한 소원이었다. 평생 이렇게 노력해본 적 있었나 싶었을 만큼 절실히 공부했고, 다음 해 의대에 합격했으며, 현재 전공은 처음 꿈꿨던 정신과는 아니지만 의사로서, 우울이 비집고 들어오려 해도 도저히 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직도 우울함이 시작된 정확한 이유를 모르지만 이제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우울함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우울은 평소엔 나도 모르는 내 안 깊숙한 곳 어딘가에 잘 처박혀 있다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튀어올라오곤 한다. 처음 나타난 보호자에게 갑자기 쌍욕을 먹었을 때이기도 하고, 발표가 내일인데 PPT를 반의 반도 못 만들었을 때이기도 하며, 오랜만의 오프에 병원 밖으로 나오면서 폐로 스미는 찬 공기와 청명한 하늘을 만났을 때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타이밍에도 우울은 나타난다.
다만 이전과 다르게, 나는 이제 우울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내 감정의 일부임을 인정하되 나와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우울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위험하다 느낀다면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되 그 사람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이용하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불쑥 떠오른 우울의 손을 빌려 좋은(스스로 만족하는) 글을 써내고는 감정을 다시 잘 갈무리해 넣는 법도 안다. 내 마음 속의 3차대전은 무기한 휴전 중이며, 죽을 때까지 다시 시작되지 않을 것을 믿는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을 당신에게, 지금까지 버텨 줘서, 고달픈 인생 죽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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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02 02:48
수정 아이콘
언제나 자몽쥬스님 글은 좋네요.
18/03/02 02: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좋은 얘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몽쥬스님도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듣는 곡 중에 하나가 옥상달빛의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인데 마침 이런 글이 올라오니 여러모로 감정이입이 되네요.
허클베리핀
18/03/02 03:19
수정 아이콘
마지막 문장에 미약하게나마 힘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8/03/02 03:54
수정 아이콘
괜찮아요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TheLasid
18/03/02 04:21
수정 아이콘
자몽쥬스님,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분들을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문과드래곤
18/03/02 05:57
수정 아이콘
감사한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작별의온도
18/03/02 06:05
수정 아이콘
최근 슬럼프로 헤매는 중인데 정신이 살짝 드는 글이네요. 좋은 어머님을 두셨어요.
요슈아
18/03/02 06:2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정신과는 이상하거나 무서운곳이 아닙니다...절대로요.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인생에 페널티가 붙게 된다죠....보험이라던가. 인사평가라던가.
하지만 어느 사람에게나 꼭 필요합니다.
제가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등등 해서 정신과를 몇번 드나들어서 하는 말씀은 아니지만요.
여러분들. 그냥 마음의 병을 치료하면 되는 곳이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정신과-라는 곳의 편견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 나름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1인입니다.
정신과에 갔다 = 정신이 이상하다 = 미X놈이다 라는 것이 슬프게도 일반적인 인식인 이 사회에서.
이런 편견 다 집어치우고 조금만 더 정신과 라는 곳을 내과에 왕복하듯 편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러면 몇몇 슬픈 일들이 조금은 줄어들었을까- 하면서 말이죠. 얼마 전에도 일어났고. 과거에도 몇 번,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일어났을 많은 비극들이...
messmaster
18/03/02 07:00
수정 아이콘
죽음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전 삶이 전혀 고달프지 않습니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가진 많은 가치가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불가항적인 죽음과 사투하는 우리네 인생은 매일 매일이 고결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심지어 평소 나태해 지지 말라며 매번 스트레스까지 처방해 줍니다.
채찍질까지 시켜주는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합니까. 가끔 처방이 지나쳐 우울증이라 부르는 단계로 발전하긴 합니다만 쟈몽쥬스님처럼 극복할수 있습니다.
저도 공황장애로 인한 공황발작을 찰나의 마음가짐으로 극복 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게다가 죽음의 최전방에서 사투하는 의사라는 현대판 성기사나 다름없는 고결하신 분을 본인 스스로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제가 먼저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신동엽
18/03/02 07:51
수정 아이콘
우스갯소리로 뉴욕에서는 정신과 의사도 정신과에 다닌다는 말이 있더군요.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저도 우울감에 자취방에서 2달 정도를 안 나온 적이 있었고 제 처방도 공부였습니다.

잘 봤습니다.
잉크부스
18/03/02 08:02
수정 아이콘
PGR의 맛
YORDLE ONE
18/03/02 09:1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09:32
수정 아이콘
항상 달아주시는 댓글이 큰 힘이 돼요. 늘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09:33
수정 아이콘
저도 그 땐 디어클라우드를 많이 들었어요. ^^
같이 힘냈으면 좋겠어요.
자몽쥬스
18/03/02 09:34
수정 아이콘
미약하게나마 힘을 드릴 수 있었다니 제가 더 감사해요.
저격수
18/03/02 09:37
수정 아이콘
여러 번 보게 되네요.
하심군
18/03/02 09:44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성인이 되어서 정신과를 갔었는데 너무 기계적으로 대해주셔서(일단약처방하시고 다음에 오실때 심리검사할께요) 그다음부터 안간 기억이 있네요. 이게 맞는데 제가 민감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가정의학과 같은곳이라도 갈까봐 싶습니다.
사악군
18/03/02 09:4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ㅡ
-안군-
18/03/02 10:31
수정 아이콘
저 역시, 제 안에 있는 우울의 정체를 자각했을 때의 공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몽님의 글을 보니, 그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한편으로는 참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잘 견뎌줘서, 살아줘서...
스스로를 다독여 줘야 할 것 같아요. 자몽님의 글들에선 따스한 체온이 느껴져서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왜 살이 빠지지 않고 살이 쪘을까요. 그거 하나는 여전히 불만입니다. ㅠㅠ)
잉여로운생활
18/03/02 10:3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요즘 죽음을 생각하다 SSRI 덕분에 겨우 숨만 쉬던 저에게 힘이되는 글이었어요. 고달픈 인생 죽지않고 버텨나가면서 살아볼게요.
구름과자
18/03/02 10:33
수정 아이콘
마지막 구절은 꼭 누군가에게 듣고싶은 말이었네요. 저도 제 우울에 잡아 먹히지 않고 치열하게 살겠습니다. 좋은 글, 좋은 위로 감사합니다.
현직백수
18/03/02 10:35
수정 아이콘
글쓴이님뿐 아니라 모두가 행복했으면좋겠습니다..
케로니
18/03/02 10:45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지금 저에게 해 주는 말 처럼 들리네요.
자몽쥬스
18/03/02 10:57
수정 아이콘
괜찮고 또 앞으로도 괜찮을 예정이죠 우린!
자몽쥬스
18/03/02 11:00
수정 아이콘
살려준다기보다는 그분들이야말로 살아나 주시는 거죠.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없습니다.
자몽쥬스
18/03/02 11:00
수정 아이콘
저도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11:01
수정 아이콘
음 저희 엄마는 옛날에도 지금도 좀 짱이시긴 해요.^^
슬럼프, 때가 되면 빠져나와지는 것, 그 때가 너무 멀지 않았길 기도할게요!
자몽쥬스
18/03/02 11:10
수정 아이콘
예전보다는 문턱이 많이 낮아진 편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여전히 다른 진료과에 비해 그 문턱을 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죠. 그 문턱을 넘기만 했어도 많은 것이 달라졌을지 모를,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주변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저도 그 점이 늘 아쉬워요.
자몽쥬스
18/03/02 11:11
수정 아이콘
너무 멋진 삶의 자세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슬레이어스박
18/03/02 11:29
수정 아이콘
존경스럽네요.
저는 참 쉽고 편하게만 살아왔는데, 우리 애는 저보다 세상에 더 이로운 사람이 되면 좋을거 같아요.
18/03/02 11:45
수정 아이콘
대학시절 우울증이 극심했을 때, 엄마 아빠한테 나 상담센터에 다니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게 두렵고 힘겨웠었던 그 때가 저도 새록새록 생각이 나네요. 지금은 무척이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 그때 우울증이 오게 했던 원인과 긴밀한 작업을 새로 시작하려고 하다 보니 요즘 좀 힘겨웠지만, 이 글을 보니 다시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해피베리
18/03/02 12:1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글에 저도 위안을 받네요 항상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날이 훨씬 더 많기를...
18/03/02 12:16
수정 아이콘
디어클라우드의 <사라지지 말아요>도 많은 힘이 됐었죠.
같이 힘내죠!
자몽쥬스
18/03/02 13:05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13:06
수정 아이콘
더 열심히 할게요.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13:06
수정 아이콘
저도 감사해요.
자몽쥬스
18/03/02 13:07
수정 아이콘
아이구 그럴만한 글이 아닌데;;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13:07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13:08
수정 아이콘
그럼요 우린 모두 엄청 기특하게 잘 살고 있는거니까요!
살은 저도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 빠졌고 정작 우울증이 아주 심할 때는 빠지지 않았다는....
자몽쥬스
18/03/02 13:09
수정 아이콘
SSRI는 좋은 약이에요. 곧 좋아지실거라고 확신합니다. 살아주셔서 감사해요.
18/03/02 13:10
수정 아이콘
우울을 안고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힘이 되실 것 같아요.
자몽쥬스
18/03/02 13:10
수정 아이콘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저도 다행이었어요. 늘 응원할게요!
cafferain
18/03/02 14:41
수정 아이콘
"혼자 해결하기 힘든 감정은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면 생각보다 쉽게 풀어나갈 수 있고, 그 대상으로 좋은 친구나 화목한 가정이 있다면 아주 좋을 것이며 다행히 나에게는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전문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남겨주신 글 중에 가장 맘에 드는 문구입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이 문구가 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14:58
수정 아이콘
맞아요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자몽쥬스
18/03/02 14:59
수정 아이콘
혼자가 아니에요!
자몽쥬스
18/03/02 15:01
수정 아이콘
대단히 열심히 살고 있지 않아요 저도. 그치만 뭐가되었든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잘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지냅니다. 자녀분께서는 분명히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밝히는 등불같은 사람이 될 거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15:02
수정 아이콘
저도 그 말 꺼내는 게 참 힘들었는데 부모님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시더라구요. ^^
잘 지내신다니 다행이고, 앞으로도 잘 지내실 거라고 믿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15:03
수정 아이콘
훨씬 훨씬 아주아주 많이 있을 거에요 분명히!
자몽쥬스
18/03/02 15:03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몽쥬스
18/03/02 15:05
수정 아이콘
하하 그러나 저는 정신과 의사가 되지 못했죠...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q2w3e4r!
18/03/02 20:47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감정적으로 공감가는 글이네요
주파수
18/03/03 22:07
수정 아이콘
문장력이 대단하십니다. 이사 25번, 인간관계는 항상 초기화되는 환경에서 지독한 염세주의로 중고딩시절을 보낸 기억에 많은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18/03/03 22:40
수정 아이콘
우울은 겸험해보지못했는데.. 이글을보니 알것같습니다
나중에 우울해지면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살려야한다
18/05/08 05:58
수정 아이콘
생각나서 다시 읽고 가요.
PT del Sol
18/07/17 14:1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18/07/22 22:4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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