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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8/20 21:51:15
Name 신불해
Subject 원말명초 이야기 (2) 황제 시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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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2년 11월. 초겨울의 찬바람이 불던 양향(良鄉). 



48세의 엘 테무르(燕鐵木兒)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인내심을 가지며 애쓰며 노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나이도 해가 바뀌면 곧 50세를 바라보게 된다. 평균 연령이 낮던 그 시대엔 결코 적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이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사나이로 군림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었다 해도, 대다수 많은 사람들은 감히 엘 테무르의 앞에 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어했을 터다. 꼭 엘 테무르가 조정의 우승상이자 태사(太師)라는 막대한 직책에 있어서만은 아니다. 일찍이 그는 칼을 들고 전장을 누비며, 반대파를 물리치고 문종 황제를 직접 즉위 시킨 무골이었다. 홍교(紅橋) 북방에서 펼쳐진 싸움에서, 적장 아락 테무르(阿剌帖木兒)가 내찌른 창을 그 자리에서 피하고 반격하여 오히려 공격한 적을 부상시킨 일은 이 시점에선 전설에 가까운 일화였다. (1)



 엘 테무르…. 전장에선 적병을 몸소 베었던 호걸이자, 조정에선 위치가 승상에 이른 인물. 황제마저도 장난감 처럼 다루는 존재. 천순제(天順帝)를 폐하고 문종을 황위에 올린 사람이 바로 그다. 그것이 바로 엘 테무르라는 남자였다.



 군주를 폐위하고 옹립하는 권신. 



 그리고 어쩌면, 군주를 ‘죽이고’ 살리는 권신. 



 물론 드러내놓고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공공연히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지난날 명종이 죽게 되고 문종 황제가 즉위한 것은, 분명 엘 테무르가 황제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이 일의 전말을 이렇다. 지난날 무종(武宗) 카이산 황제에게는 쿠살라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 따라서 본래라면 무종 사후 쿠살라가 황제가 됨이 옳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날’ 이 왔을 때 쿠살라의 나이가 너무 어렸던 것이다. 



 때문에 무종의 동생이던 인종(仁宗)이 먼저 즉위하고, 대신 태자로는 인종의 아들이 아닌 쿠살라를 삼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다. 즉 형의 동생이 먼저 즉위하고, 동생은 그 형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 대신 태자로 삼는다.



 하지만 인종은 비열하게도 약속을 어겼다. 



 그는 형의 아들 대신 자신의 아들을 기어코 태자로 삼았고, 본래라면 황제가 되어야 했을 쿠살라는 멀리 운남(雲南)으로 유배나 다름없이 쫓겨나야 했다. 분함을 참지 못한 쿠살라는 운남에 갇혀 목줄이 잡히는 대신 저 멀리 알타이 산맥 너머로 도주하여 힘을 길렀다.



 엘 테무르는 이를 명분으로 삼아 반란을 일으켰다. 선황의 약조를 어긴 저들이 심히 괘씸하지 않은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무종 폐하의 아드님을 본래 자신의 것이어야 했을 황위에 앉혀드려야 옳다. 감정적으로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반정은 공감을 받았다. 그리고 엘 테무르는 군사를 이끌며 눈부신 공훈을 세워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고, 단숨에 새 정권의 중추에 닿았다. 그가 만든 정권이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있다. 반란을 일으킬 당시, 엘 테무르가 ‘황제로 만들어 주겠다’ 며 큰소리를 쳤던 대상인 쿠살라는 너무나 머나먼 곳에 있었다. 돌아오길 기다리다간 한참이 걸릴 테고, 그렇다고 마땅한 황위 계승자를 오래 비워둔다면 반란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급한 대로 쿠살라의 이복동생을 황제로 삼았으니, 바로 그가 문종 황제였다.



 물론 문종 역시 적법한 황위 계승자는 아니다. 한참 내전이 펼쳐지는 와중, 공연한 의심을 받지는 말아야 했기에 문종은 “잠시만 이 자리를 맡아 두겠다. 형님이 돌아오면 곧바로 이를 돌려주겠다.” 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전쟁은 이제 끝났고, 내부는 평정되었으며, 상황은 달라졌다.



 머나먼 중앙아시아에서 이복 형 쿠살라가 돌아오자 문종은 일단 약속대로 황위를 양위하긴 했다. 쿠살라는 곧 황제로 즉위하였으니, 그가 바로 원나라의 제 9대 황제 명종이었다. 



 다만 명종은 황제로 즉위했다곤 해도 북방의 카라코룸만 들렸을 뿐이지, 아직 제국의 중심인 대도(大都)에는 도착하지도 못했다. 먼 길을 걸어온 명종 쿠살라와 그를 모시러 온 엘 테무르가 옹구차투(王忽察都)라는 곳에 이르렀을 무렵, 이제는 황제 자리에서 내려온 이복동생인 문종도 명종을 만나러 왔다. 동생을 만나 기분이 좋아진 명종은 친족과 대신들을 모두 모아 크게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4일 뒤 명종 쿠살라는 죽었다. (2)



 황제가 사망하자 대신들은 서둘러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려 했다. 참 기묘한 우연으로, 마침 멀리 갈 것도 없이 여기 옹구차투에 황제의 동생이 와 있는 것이다. 엘 테무르를 비롯한 대신들의 추대로 한번 자리에서 내려갔던 문종은 재차 즉위, 아니 복위하게 된다.



 원사(元史)의 엘 테무르 열전이나 명종 본기 등에서는 직접적으로 명종이 ‘시해 당했다’ 고 언급하진 않는다. 하지만 꼭 땅은 땅이고 하늘은 하늘이라고 알려줘야만 아는 게 아닌 법이니, 정황을 보면 굳이 논란도 불 필요해 보인다. 엘 테무르가 이 일에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하며, 가장 큰 수혜자인 문종도 의심스럽 긴 마찬가지다. 훗날의 일이지만, 결국 원나라 황실은 문종이 명종을 독살했다 여겨 문종에 대한 존호, 칭호를 모두 없에버리기에 이른다.



 복위한 문종은 엘 테무르의 ‘공덕’ 을 기리기 위해 죽은 사람도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인 그의 공덕 비를 세웠다. 수차례나 포상을 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란다고 여겨 따로 조서를 내리기도 했다. 조서에서는,



 “엘 테무르의 공헌은 만고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놀랍다.” (3) 



 며 호들갑스럽게 추켜세워주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문종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문종은 이제 고작 서른 살의 나이였을 뿐이다. 젊은 나이에 죽게 되면서 어떤 심정적인 변화라도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쩄든 그는 태자 엘 테구스와 황후 부타시리, 엘 테무르를 불러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



 “지난날 옹구차두에서의 일은 짐에게 있어서 평생의 큰 실수다. 일찍이 짐이 이를 생각해 보았는데 늘 후회가 막급이었다. 엘 테구스는 비록 짐의 아들이며 짐이 총애하지만, 지금의 대위(大位)는 분명 명종의 대위다. 너희들이 짐을 아끼는 것처럼, 마땅히 명종의 아들 토곤 테무르를 소환하여 등극시켜라” (4)



 ‘실수’ 이며 ‘후회’ 라는 것은, 역시 명종의 죽음에 문종도 연류가 되어 있음을 실토하는 바가 된다. 계속 이 일이 마음에 걸렸던 문종은 황위를 죽은 형의 자식들에게 돌려주려고 마음을 먹고 세상을 떠났지만, 이렇게 되자 당황스러웠던 것은 엘 테무르였다.



 직접적으로 나온 말이 없다고 해도, 최소한의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엘 테무르를 명종 살해범으로 의심할 것이다. 명종의 아들이 황제가 된다면, 과연 군주시해범인 자신을 가만히 둘까?



 하물며 토곤 테무르라니!



 토곤 테무르……토곤 테무르! 죽은 명종 쿠살라의 큰 아들이며, 수도에서는 머나먼 광서(廣西)의 계림(桂林)에 머물고 있었던 인물. 북방에 제국의 무게추를 둔 원나라에 있어 계림은 변방 중의 변방이다. 하지만 그전은 더했다. 아예 바다를 건너 고려의 대청도(大靑島)에 1년간 유배되어 있던 것이 토곤 테무르였다. 문종 정권과 엘 테무르에게 쿠살라의 장남이란 성가시기 짝이 없는 존재였으니,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명종 쿠살라가 죽었을 때 토곤 테무르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 이후로도 몇 년 동안 유배나 다름없이 떠돌아다녔으니, 실제로 토곤 테무르를 엘 테무르가 곁에서 지켜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엘 테무르의 마음 한 구석에선 늘 껄끄러운 존재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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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원나라의 황제가 되는 인물이 유년시절을 보낸, 현재 우리나라의 국경 지역인 대청도.





 멀리 대청도에 머물고 있던 토곤 테무르를 굳이 다시 불러들인 이유도 그 껄끄러움 탓이다. 안 보이는 곳에 처 박아둔건 좋았지만, 뒤이어 고려가 토곤 테무르와 손잡고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는 헛소문이었다. 아마 조금만 차분하게 조사했으면 그 진상은 금세 밝혀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 테무르는 곧바로 토곤 테무르를 대청도에서 소환하는 한편 당시 고려의 왕이었던 충혜왕(忠惠王)의 경우는 아예 손을 써 폐위 시켜 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술수를 부릴지도 모른다 싶으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일까? 차라리 감시할 수 있는 곳에 두고 숨통을 조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여겼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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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



 기실 고려의 충혜왕으로 말하자면 반역 따윈 생각도 안 하고 그저 먹고 놀고 마시며 주색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을 뿐이다. 원나라의 사자가 당도하던 그 무렵에도 충혜왕과 그 측근들은 한참 사냥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자가 당도하여,



 “지시를 전달하자 왕과 좌우 신하들이 모두 넋을 잃었다” (5)



 라고 사서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광경이다. 한참 질펀하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폐위 시킨다는 선고를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당혹스러웠을 표정들을 생각해보면 조금 재미있긴 하다. 결국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원나라로 되돌아갔다.



 사실 이 충혜왕이라는 인물은 정치적으론 친 엘 테무르 파라고 할 수 있었다. 충혜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머물고 있었을 때 어떠한 경위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두 사람은 꽤 왕래가 잦았고, 서로 같이 사냥을 하거나 잔치에 초대하던 사이였다. 그런 ‘아군’ 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력마저 토곤 테무르에 엮인 ‘의혹’ 이 있자 단칼에 쳐 내버린 것이다. 엘 테무르에게 토곤 테무르의 존재란 그러했다.



 당연히 엘 테무르는 토곤 테무르의 즉위를 결사반대했다. 죽은 문종의 황태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황자(皇子) 엘 테구스가 있지 않은가? 황제의 아들을 세우면 될 것인데 어째서 꼭 토곤 테무르여야 하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엘 테무르의 주장을 가장 반대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엘 테구스의 어머니 즉 문종의 황후였던 부타시리였다. 아니, 멀쩡한 친아들 대신 다른 자식을 황제로 세우려 하다니? 



 부타시리 황후가 이런 결정을 내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엘 테무르의 권력이 너무나 커져, 이대로 가다간 황실이 전부 그의 손에 집어삼켜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죽은 문종도 사실은 엘 테무르의 꼭두각시 신세였다. 자신의 어린 아들마저 그런 상태로 내몰기는 싫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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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 이렌친발





 엘 테무르와 황후는 결국 중간 지점에서 합의를 봤다. 명종의 아들을 황제로 세우자. 다만 토곤 테무르는 안된다. 


 마침 수도에는 토곤 테무르의 동생인 여섯 살짜리 어린애 이렌친발(懿璘質班)이 있었다. 너무 나이가 어려 명종의 아들이라 해도 토곤 테무르 정도의 박해는 받지 않았고, 오히려 죽은 문종도 곁에 두고 귀여워했던 아이였다. 일단 두 사람은 이렌친발을 황제로 삼기로 결정하고, 부타시리 황후는 문종의 유서를 조작해서 고쳤다. (6)



 엘 테무르 입장에서는 겨우 한숨 돌렸다 싶었을 테다. 이렌친발은 고작 6살이니, 나중에 나이가 들어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 설친다고 해도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다. 그 사이에 이런저런 손을 쓰면 충분히 대응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말이다. 실로 운명이란 이렇게 얄궃은 것이다. 영종(寧宗)으로 즉위한 이렌친발은, 고작 두 달도 안되어 죽어버렸다!



 죽은 문종의 시체에서 온기가 아직 식기도 전에, 제국은 또 다른 황제의 시체를 치우고 새로운 군주를 옹립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엘 테무르는 다시 필사적으로 엘 테구스를 차기 황제로 추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타시리 황후는 자기 아들을 군주로 삼는 일에 반대했다.



 “보위는 대단히 중요한 자리인데, 내 아들은 아직 어릴 뿐이다. 명종 황제의 큰 아들 토곤 테무르는 나이가 13살이고 광서에 있으니, 마땅히 그를 황제로 세워야 옳다.” (7)



 대신 황제로 삼고 싶어도 당사자가 하지 않겠다는데 달리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결국 엘 테무르는 어쩔 수 없이 토곤 테무르를 황제로 삼는 일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토곤 테무르의 아버지 명종은 저 먼 북방의 길에서 객사했다. 이복 동생의 어머니이자 황후였던 바부샤(八不沙) 역시 그 시점에선 꼬투리를 잡혀 죽임을 당한 뒤였다. 자신이 죽여 없앤 황제의 아들을, 이제 자신의 손으로 옹립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기묘한 운명이었다.



 그런 저런 일을 떠올리며 복잡할 생각에 잠겨 있었을 엘 테무르의 눈에, 다가오는 하나의 행렬이 보였다. 저 멀리 변방에서 이제 당도한 것이다,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될 몸이.



 황제 영접을 대표하여 기다리고 있던 엘 테무르는 도착한 새로운 황제를 맞이했다.



 엘 테무르에게 그 만남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일 테지만, 토곤 테무르에게도 그 순간은 잊히지 않을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배 다른 어머니를 죽게 만들고, 자신을 외국으로 추방하고, 평생을 변방에서 떠돌게 만든 인물. 그리고 어쩌면, 자신마저 죽일지도 모르는 사람. 



 증오해야 하는가? 두려워해야 하는가? 



 황제의 행차라면 마차를 타고 올 만도 하건만, 강건함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 소년 토곤 테무르는 말을 타고 있었다. 황제가 직접 말을 몰고 있으니 신하 된 자로서도 마차 따위에 몸을 싣고 있을 순 없었다. 영접을 끝낸 엘 테무르 본인도 말에 올라타 황제를 수행했다. 황제의 바로 옆에서 말을 몬 사람이 엘 테무르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서로의 말채찍이 닿을 만치 가까운 위치에서 나란히 말 머리를 대고 걸어가며, 엘 테무르는 절차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이렇게 급하게 모신 것은 국가가 다사다난 해서 그런 것입니다. 때문에 부득이 특별히 명을 받은 사신을 보내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가서 마땅히 추대하여 올리겠습니다.”



 하지만 엘 테무르의 말을 듣고도, 토곤 테무르는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엘 테무르는 그런 소년을 보며 의구심을 품었다. (8)



 이 어린 것이 겁에 질려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그것을 숨기느라 그러는 것인가? 노회한 엘 테무르라고 해도 관심법을 쓰는 게 아닌 이상 상대의 복심(腹心)을 전부 알아낼 방도는 없었다. 알 수 없는 만큼, 더 불안해진다. 다만, 두 사람 모두 하나만은 분명하게 깨달았으리라.



 ‘나는, 역시 이 녀석이 싫다.’



 서로의 마음을 속여가며, 두 사람은 황도로 말을 몰았다.

 






(1) 원사(元史) 권 138
(2) 원사 등에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으나, 당대에는 그가 엘 테무르가 올린 독주를 마시고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 윤지표묘지명(尹之彪墓誌銘)
(3) 원사 권 138
(4) 경신외사(庚申外史) 상권 (卷上). 경신외사는 야사에 가까우니 걸러들어야 할 필요성은 있다. 다만 다른 정황을 보면 이 일화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원사 후비전 부타사리 황후편에서 '황후가 유서를 고쳤다' 라는 언급이 의미심장 하다.
(5) 고려사 충혜왕 2년 1332년
(6) 원사 후비전 문종 부타시리 황후
(7) 위와 같다.
(8) 원사 권 38 순제본기 中 “(인사를 올려도) 황제는 나이가 어려 엘 테무르를 보고서도 두려워 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니, 이에 엘 테무르는 의아심을 품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11-22 11:38)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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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테트
17/08/20 22:01
수정 아이콘
글 재밌게 읽고 갑니다~
17/08/20 22:05
수정 아이콘
좀 싼티나는 표현이지만
지리구요~ 오지구요~
취하면서 봅니다
류지나
17/08/20 22:08
수정 아이콘
진짜 흥미진진하네요...
루크레티아
17/08/20 22:11
수정 아이콘
이야 여기서 원사를..
도도갓
17/08/20 23:20
수정 아이콘
유료 연재 사이트에서 납치해 갈 것 같은 퀄리티네요 크크크 재밌습니다.
17/08/21 00:04
수정 아이콘
몽고전통 말자상속이 왕위계승체계 혼란스럽게 만들었죠
스웨이드
17/08/21 00:34
수정 아이콘
막죽어나가네요 ㅡ.ㅡ
몽키.D.루피
17/08/21 03:48
수정 아이콘
엄청난 연재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17/08/21 09:02
수정 아이콘
결재할테니 미리보기 같은거 없나요?ㅠㅠㅠ
17/08/21 09:55
수정 아이콘
결제할테니 미리보기 좀 제발 !
능그리
17/08/21 10:45
수정 아이콘
고증이 철저한 대하드라마 느낌이네요.
17/08/21 11:25
수정 아이콘
하 재밌습니다
말다했죠
17/08/21 12:57
수정 아이콘
충혜왕을 물러나게 하다니 참군벌 엘 테무르님 잊지 않겠습니다
17/08/21 13:5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티케이
17/08/21 14:24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17/08/21 16:59
수정 아이콘
이야 재밌네요 크크 그 와중에 충혜왕 어리둥절
칼라미티
17/08/21 18:56
수정 아이콘
늘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aurelius
17/08/21 22:03
수정 아이콘
역시 믿고 보는 신불해님 글입니다 :)
17/08/22 11:37
수정 아이콘
저는 원말명초를 여말선초라고 착각했네요.
왜 중국 얘기만 나오나 했네요. ^^;;

이번 연재 끝나면 여말선초도 연재해주세요~
17/08/23 12:45
수정 아이콘
꿀잼
김칫국얼리드링커
17/08/29 01:32
수정 아이콘
너무 잘봤습니다 ! 사랑해요
17/08/29 07:30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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