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말명초에 나복인(羅復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강서(江西) 길수(吉水) 출신인 그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했고, 학문에 능했다고 한다.
마침 원나라 말의 혼란기에 들고 일어난 무리 중에 하나인 진우량은 그런 나복인의 명성을 듣고 편수(編修)로 삼았다. 책을 수집하고 수정하며, 앞으로 국가에서 편찬할 '국사' 이를테면 원사, 명사, 금사 같은 책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는 게 편수라는 직책이다. 과거 중국 왕조에서 이 사업에 대해 보였던 지대한 관심을 생각하면, 그런 직책을 맡았을 나복인의 학식은 여러모로 인정받았다 할 수 있겠다.
그런 나복인은 훗날 주원장에게 투항 해 중서자의(中書諮議)가 되었다. 그리고 진우량이 사망한 뒤, 남은 진씨의 세력을 아들 진리가 이끌고 있자 진리에게 가서 항복을 권해 그를 투항시키는 공을 세우기도 한다. 명나라가 개국된 이후엔 예전처럼 편수직을 맡았고, 머나면 운남에 다녀오기도 했다.
신하들에게 엄하기로 악명 높았던 주원장이지만 나복인은 꽤 황제의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복인의 평소 성격 자체가 강직한데다 또 좀 미련할 정도로 순수하고 수수했기에, 어렸을때부터 못볼 꼴을 많이 보고 자란 주원장에게 그런 나복인의 꾸밈없는 성격은 꽤 좋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홍무제는 평소 나복인을 직책이나 이름 대신 노실라(老實羅)라고 불렀다. '늙고 성실한 나씨' 라는 뜻으로, 황제 나름대로의 친근함의 표시였던 셈이다.
하루는 나복인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였다. 때마침 한가하기도 하여, 나복인은 집을 좀 꾸미야겠다고 생각했다. 별로 멋을 부리자는 생각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으면 도무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집이 낡고 허름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복인은 그 직책이나 황제의 신임에 걸맞지 않게 평소 생활이 너무나도 검소해서, 그 집조차도 수도의 구석지, 그 중에서도 바로 집 뒤에 성곽이 있는 완전히 구석지 중의 구석지에 있었다. 그나마 있는 집의 벽도 갈라지고 벌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특별히 그런 건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검소한 것을 둘째치고 좀 보기 안 좋기도 해서 나복인은 일단 낡아서 허름해진 벽에 칠이라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검소한 나복인은 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까지 지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노비는 커녕 일개 시종 한명도 없었다. 그저 늙은 '노실라' 와 그만큼치나 나이 든 아내 두 명이서 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명나라 전역에서 명성이 자자한 학자이자, 황제가 총애하는 지식인인 그는 직접 노구를 이끌고 벽칠을 했다. 그저 벽칠하는 일 뿐만 아니라 평소 생활하는 방식도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일단 조정에 나서면 파릇파릇한 젊은 편수 후배들이 선배님 하며 따를 나복인이 헌옷 입고 허허 하며 벽칠을 하던 차였다.
한참 벽칠을 하던 나복인은, 누군가 자기의 허름한 집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자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런 성곽 구석지에 따로 누가 온다는 말인가? 늙어서 가물가물한 눈을 깜빡이며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 본 나복인은 이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타난 사람은, 바로 홍무제였다!
홍무제는 나복인의 집을 들리면서 따로 한번 '행차' 한다는 언질 같은걸 준 적이 없었다. 그냥 조정에서 일을 보다가 시간이 나자 '노실라' 가 평소에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간단하게 한번 들렸던 것이다. 때문에 나복인으로서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자. 집에서 청소하다가 초인종이 눌러지길래 "예~" 하고 방문을 열었더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경호원 딱 두 명만 데리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 하물며 홍무제의 평소 성정은 유명한 편이다.
갑자기 집에 나타난 황제를 보고 나복인은 혼비백산 했다. 애당초 집에 황제가 온다고 알았으면 혼자서 느긋하게 벽칠이나 하고 있었겠는가? 예복이고 뭐고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로 당황하던 나복인은 일단 황제를 계속 바깥에 서 있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낡아빠지고 허름한 집 바닥에 황제보고 앉으라고 할 수도 없었던 일 아닌가? 나복인은 황급히 아내를 불렀다.
"여보시오, 부인! 부인! 어서 폐하가 앉으실 의자하나 가져오시오!"
"의자요? 무슨 의자요?"
"아, 글쎄 아무거나!"
황급한 나복인의 재촉에 아내는 대충 나무로 만든 걸상을 가져왔다. 달리 다른 의자도 없었기에 나복인은 황제에게 여기에 앉으라고 권했다.(急呼其妻抱杌以坐帝) 곽자흥 밑에서 십부장으로 싸우던 시절 이후로 몇십년만에 이런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본 주원장은, 나복인의 집 구석 구석을 황망한 눈으로 살펴보다, 이렇게 한탄했다. 해당 일화를 전하는 명사(明史)에서는 당시 홍무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어진 선비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산다는 말이냐(賢士豈宜居此)?"
빈민 출신 주원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했을 정도이니 나복인도 여간한 사람이 아니었던 셈이다. 황제는 화통하게도 그 자리에서 즉시 성 밖의 크나큰 집을 나복인에게 하사했다. 거절하는 것도 무엄하기에 나복인은 이를 받았다. 결국 나복인은 자기 집에서 쉬면서 벽칠하다가 뜬금없이 저택을 하사받게 받게 된 셈이다.
기실 홍무제는 괴벽이 있어 종종 이런 식으로 신하들의 '실상' 을 알아보기 위한 행동을 자주 하였다. 이를테면 유사 전제(錢宰)라는 사람은 조회가 끝나 "오늘 하루도 겨우 끝났구나" 하는 직장인 기분으로 퇴근하며 '새벽 알리는 북소리 들으며 옷 입고 조회에서 알현을 해도, 매번 늦는다고 꾸중만 먹는구나. 언제쯤 되야 은퇴하고 정원에서 유유자적 살까' 하는 자조적인 시를 기분껏 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조회에 나서보니, 뜬금없이 주원장이 전제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四鼓咚咚起著衣,午門朝見尚嫌遲,何時得遂田園樂,睡到人間飯熟時 이라고 했던가? 그대가 어제 지은 시는 제법 운치가 있어 괜찮았다. 그런데 짐은 그대가 늦었다고 혼낸적은 없지 않느냐. 그러니 두번째 문단의 '싫어했다' 는 글자를 '걱정했다' 로 바꾸면 어떤가?" 라고 하는게 아닌가! 전제가 혼이 빠져서 사죄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출처 葉盛,《水東日記摘抄》)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하루는 명성 높은 대학자 송렴이 집에서 친지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조회에 참석하자, 황제가 어제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다.
"친지와 술을 마셨습니다."
"그렇소? 어떤 술을 마셨는지 궁금하오."
"이러저러한 술을 마셨습니다."
"허허, 그거 좋은 술이지. 헌데 술만 마시면 그렇지 않소? 안주는 어땠는가?"
"안주로는 이러이러한 것을 먹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홍무제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과연 그렇소! 경은 짐을 속이지 않는구려!(誠然,卿不朕欺)"
즉 홍무제는 첩자를 파견해서 송렴이 집에서 쉬며 누굴 만나고 무슨 술을 마시고 무슨 안주를 먹었는지까지 모조리 감시한 것이다! 심지어 이 일화는 무슨 일개 개인의 문집에서 나오는 "이러이러한 썰이 있다." 는 식의 이야기도 아닌, 명사 송렴 전에 실린 이야기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 실린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실 홍무제가 최소한의 채비로 난데없이 나복인의 집에 불시에 들렸던 것도, 그런 이유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복인은 홍무제의 상상을 뛰어넘었던 지라, 한번 감시하러 온 황제를 오히려 허탈하게 만들었던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