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코넬 대학교는 학생들의 높은 자살률로 명성이 자자하다.1) 그러나 실제로 코넬 대학의 자살률은 전국 평균의 절반 이하이다.2) 명성은 실제 통계, 즉 코넬 대학교의 실제 자살 빈도와 아무 관련이 없다. 실제 자살률은 높지 않지만, 대신에 코넬 대학교에는 빙하작용이 만들어낸 깊은 협곡이 존재한다. 코넬 대학교는 이 협곡의 양쪽을 연결하는 멋진 다리들을 가지고 있다. 놀랄 것도 없이 대부분의 자살은 이 다리들에서 발생한다. 그럴 때면 구조단이 협곡에서 시신을 인양하기 위해 다리 통행을 차단한다. 여기에 시신 인양 작업을 보도하는 텔레비전의 생생한 현장 중계도 더해진다. 실제 자살 빈도는 높지 않지만, 개별 사건의 생생함은 다른 자살 사건보다 훨씬 강렬하다. 통계적 사실과 다른 악명의 정체는 바로 이 요란한 생생함이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일어날 사고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걱정할까? 이를 조사한 연구가 있다.3) 부모들은 확률이 1/600,000에 불과한 유괴사건을 가장 걱정했다. 반면에 이보다 가능성이 수십 배 이상 높은 자동차 사고에 대해서는 훨씬 덜 걱정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수영장에 빠져 익사할 확률이 훨씬 높았지만, 이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자동차 사고나 익사 사고는 대중매체에서 별로 주목받지 않는다. 하지만 유괴사건이라면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다. 부모들이 아주 낮은 확률의 유괴사건을 더 걱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훨씬 생생하기 때문이다.
과학 작가 댄 가드너는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시나리오에 취약하다."라고 말하였다. 이 무시무시한 시나리오의 힘을 사회심리학자와 인지심리학자들은 [생생함 효과(vividness effect)]4)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보가 생생할수록(vivid), 도식적일수록(highly graphic), 극적일수록(dramatic) 더 잘 인식하고 더 신뢰한다.]5) 이유는 정보가 생생할수록 쉽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황을 판단할 때 기억으로부터 관련된 정보를 인출해낸다. 이때 접근하기 용이한 사실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이 접근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정보의 생생함이다. 즉, 인간은 생생한 정보일수록 판단의 근거로 삼으려 한다. 따라서 통계 수치로 전달되는 실제 자살률이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수영장 익사 사고를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에 대중매체에서 생생한 정보를 전달하는 다리 위 자살이나 유괴 사건은 심각하게 인식한다.1) 인간은 생생한 정보일수록 더 신뢰한다. 비록 그 정보가 올바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생생함 효과로 바라보기
지난 대선 이후로 세대 간 갈등은 계속 심해지고 있다. 인터넷 곳곳에서 무조건 1번만 찍는, 흔히 콘크리트 층이라 불리는, 어르신들에 대한 성토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 와중에 부모님과 정치적 견해차를 좁히고자 노력했던 이야기를 보았다. (外) 지금처럼 갈등이 깊어지는 시기에 필요한 자세이고, 개인적으로 존경할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정부를 지지하는 이유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나 젊은 세대에 대한 반감에서 발로했다는 말은, 한 명의 젊은이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그럼에도 마냥 포용과 이해를 발휘할 수는 없어 보였다. 안타깝게도 현실에는 여당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어르신들이 존재한다. 이성과 논리가 없는데 마냥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시민이 여당을 지지하는 이유]
무논리와 당당함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나마 정당 지지는 이해할 여지가 있다. 여당이라고 마냥 틀린 것만은 아니기도 하고, 지지 정당의 선택은 취향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문재인이 빨갱이라는 소리. IMF가 게으른 국민 탓이라는 소리. 5.18이 북괴의 선동에 이은 폭동이라는 소리. 이런 헛소리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들은 취향의 영역이 아니다. 객관적 증거가 있어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몰지각한 판단을 계속하고 있다. 비이성적인 수준을 넘어 사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루머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럴 때면 흔히 나오는 것이 바로 국개론이다. 국민이 어리석고 나쁘다는 말이다. 국민이 멍청하니 헛소리와 선동에 넘어간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그 수준에 맞는 고통을 겪고 있다 말한다. 자조와 선민의식이 뒤섞인 혐오성 발언이다. 국개론으로는 아무런 해답을 구할 수 없다. 그저 발언하는 순간 마음의 위안을 얻을 뿐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국개론이 진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국민이 무식하고 어리석지 않다면, 사실을 무시하고 헛소리를 믿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정말 사람이 그 정도로 어리석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이다) 더구나 헛소리를 믿는 사람 중에는 고등 교육을 받은 전문직이나 엘리트 계층도 존재한다. 단순히 그들이 어리석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식과 합리성을 방해하는 어떤 존재가 의심되는 순간이다.
그러던 중 생생함 효과를 알게 되었다. 사람의 판단 능력을 흐리게 하는 심리효과이다. 생생함 효과로 인해 오류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심지어 나조차도 생생함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 그래픽카드를 구매하려는 충달군이 있다. 충달군은 지갑이 빈약한 관계로 성능과 가격을 저울질하며 최고 가성비의 제품을 찾으려 노력했다. 지난 1주일간 수많은 모델을 비교하고, 다양한 벤치마크 결과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충달군은 N 모델을 선택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친구의 말을 듣게 된다. "아 그거 나도 지난달에 샀었는데, 발열도 높고 툭하면 뻗더라고." 결국 충달군은 N 모델 구매를 포기하고 A 모델을 샀다. 충달군은 수많은 통계적, 실험적 데이터가 있었음에도 친구의 말 한마디를 더 신뢰하였다. (심지어 친구의 파워 사양이나 오버클럭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왜냐하면, 친구의 발언이 더 생생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정보의 신뢰도는 얼마나 탄탄한 근거를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생생함 효과를 고려한다면, 정보가 얼마나 생생하냐에 따라 신뢰도가 결정된다. (이 외에도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심리효과가 여럿 존재한다. 널리 알려진 것으로 '확증 편향', '인지 부조화'등이 있다) 개인의 성실한 증언보다 더 생생하거나 강력한 것은 없다.1) 문재인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보다도 지인의 "문재인 빨갱이라더라."는 발언이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신뢰하는 지인의 생생한 증언과 실재하는 가짜 증거 몇 개만 갖춰지면 아무리 허무맹랑한 소리라도 진실처럼 속여넘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 유명한 구권화폐 사기사건을 생각해보자. 생생한 증언과 눈앞의 구권 몇 장이면 천하의 사기꾼 장영자도 속을 수밖에 없다. (外)
박원순이 빨갱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 문재인 금괴 200톤 보유설을 진심으로 믿는 이유. 어느 날 내 후배가 나를 찾아와 일베출처 자료를 들이대며 광주 폭동설을 주장했던 이유. 사람들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유. 물론 그 이유를 한 가지로 단정할 순 없겠지만, 분명 생생함 효과는 이런 코미디 같은 비극이 발생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은 사실보다 생생함을 좇는다. 이는 그 사람이 멍청하거나 무식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냥 사람이라는 생물이 그렇게 타고난 것이다. 국개론이라든지, 국민이 개돼지라든지, 이런 말을 하기보다 심리학이라는 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상황을 올바르게 바라보기 시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생함 효과 물리치기
그렇다면 생생함 효과로 인해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쉽게도 그들에게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인 대응이 아니다. 똑똑한 척한다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다행히도 생생함 효과에 대항하는 대안적 방법이 있다. 그것은 생생함에 생생함으로 맞서는 것이다. 제 꾀에 스스로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 방식을 꾸준히 실천해온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어메이징 랜디(Amazing Randi)다.
본명은 제임스 랜디(James Randi)로 과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술사였다. 그러던 중 1962년 자신의 눈앞에서 초자연적 현상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1,000달러의 현상금을 걸면서 초능력자 사냥꾼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1970년대 염력의 슈퍼스타였던 유리 겔러의 속임수를 폭로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현상금은 100만 달러까지 올랐지만, 현재까지 아무도 상금을 받아간 사람이 없다. 그는 흔히 알려진 초능력자들이 실은 마술 트릭을 사용한 것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6)
랜디는 가짜 초능력을 밝혀내는 것 이외에도 ESP나 바이오리듬 같은 사이비 과학을 타파하는 일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생생함 효과를 물리치는 그의 진가가 발휘된다. (생생함 효과에 대한 이 대처방안은 <심리학의 오해>에서 제시한 것이다. 책에서는 ESP나 바이오리듬 같은 사이비 과학이 개별 증언서를 근거로 하여 생생함 효과를 악용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점을 밝힌다) 랜디는 바이오리듬을 신뢰하는 한 여성에게 2개월간 일기를 기록한 후 바이오리듬과 비교해보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2개월 후 여성에게 바이오리듬 도표가 보내졌다. 여성은 바이오리듬과 자신의 일기가 90%이상 일치한다며 바이오리듬의 중요성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 바이오리듬 도표는 여성의 것이 아니라 랜디의 것이었다.1) (이와 관련한 심리효과를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한다) 랜디의 방식은 사기나 사이비 과학을 논리적으로 논파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이와 비슷한 대응을 우리나라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문재인 의원 부산 사무소에서 인질사건이 벌어졌다. 일부 언론은 이 사건에 관하여 문재인 의원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를 반박하는 표창원 소장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문재인 의원의 잘못이라는 주장이 어떤 논리적 오류를 가졌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한 면도칼 습격사건을 언급했다. 상대의 문제 제기에 같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표창원 소장의 반박] 이런 게 미러링이지
사실 이러한 방식은 대안적 방법일 뿐이다. 생생함 효과를 물리치는 근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각 개인이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대중이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힘써야 한다. 해답은 명백하다. 그리고 동시에 탁상공론이다. 평생교육은커녕 노인 복지 수준이 뒤에서 2등인 국가에 기대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비논리적인 공세를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열심히 반박하고 똑똑한 척한다는 소리나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때로는 미러링처럼 전략적 방법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공세에 공세로 맞설 줄 알아야 한다.
생생함 효과 활용하기
생생함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올바른 지식 사회 건설을 위해 생생함 효과는 타파해야 하겠지만, 반대로 이 현상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그와 관련한 실험이 있다. 맥케이브와 카스텔은 참가자들에게 과학 실험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때 한쪽에는 그래프를 포함하고 다른 쪽에는 뇌 영상을 포함하였다. 참가자들은 그래프를 포함할 때보다 뇌 영상을 포함하고 있을 때 그 결과를 더 신뢰하였다.8) 자료의 신빙성이나 유용함보다 생생함이 더 신뢰를 얻은 셈이다.
이러한 결과를 우리 생활에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PPT를 만든다면 그래프나 통계자료를 정리하는 노력만큼 생생한 사진 한 장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진의 생생함이 더 높은 신뢰도와 전달력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미 이러한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보도가 생생할수록 사회에 일으키는 반향은 크다. 똑같이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말하더라도 그래프를 제시하는 것보다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노인 빈곤 문제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9)10)]
사람들은 어떤 뉴스에 더 관심을 가질까?
많은 관심을 구하는 것이 과연 나쁜 걸까?
사람들이 언론기사의 생생한 정도에 따라 상이하게 반응하는 대표적 사례로 베트남전쟁 관련 보도가 있다. 전쟁이 지지부진해지고 미군의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가게 되자, 당시 언론은 그 주에 전사한 미군 병사의 숫자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매주 그 숫자는 200명에서 300명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대중은 점차 그러한 보도에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어느 날 한 주요 주간지가 여러 쪽에 걸쳐서 지난주에 전사한 미군 병사들의 개별 사진을 게재하였다. 그러자 전쟁이 초래하고 있는 희생에 반대하는 원성이 들끓게 되었다.
같은 사례는 21세기에도 반복되었다. 2004년, 이라크전쟁 발발 1주년이 되었을 때 미국 뉴스 프로그램 나이트라인(Nightline, ABC)이 그동안 사망한 700명이 넘는 병사들의 이름과 사진을 방영했다. 이것은 나이트라인이 9.11테러 1주년인 2002년 9월 11일에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을 방영하였을 때 사용한 것과 동일한 형식이었다. 그 결과 나이트라인 진행자 테드 코펠은 전쟁에 적대적이라며 전쟁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와 함께 고소당하기도 했다.11) 이전에 전사자의 수가 보도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대중이 어떤 의미에서 그 숫자를 "처리하지" 않았다. 숫자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대가를 계산하지 않고 있었다. 전사자들의 사진을 보았을 때야 비로소 그 대가를 실제로 의식하게 된 것이다.1)
나는 좋은 언론이란 사실만을 공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언론은 사실을 공정하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JTBC 뉴스룸'의 한 코너인 '팩트체크'를 좋은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팩트체크는 어떤 사안에 관하여 사실 여부를 꼼꼼히 분석하여 옳고 그름을 가려주는 코너이다.12) 사실 여부를 파헤치다 보니 방송에는 통계 수치나 그래프가 많이 등장한다. (객관적 근거란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팩트체크는 그러한 자료를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를 추적하는 과정까지 설명한다. 왜 그러한 통계 수치와 그래프가 필요한 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 자료로부터 결과만 보여주는 여타 보도와는 다른 부분이다. 이 과정을 함께하는 동안 숫자와 그래프는 생생함을 얻는다. 덕분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실과 공정함에 생생함까지 갖춘 이 코너가 앞으로도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팩트체크 - 청년실업률 최저치라는데…왜 체감이 안 될까?]
통계 수치의 의미와 허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프의 의미가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팩트체크 - 정부가 실현했다는 '반값등록금' 정말일까?]
인상 깊었던 팩트체크 기사였다. 생생함도 좋지만, 공정함이 더 빛나던 기사였다.
물론 생생함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 생생함 이전에 사실과 공정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위에 생생함이 더해져야만 좋은 언론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대부분의 언론은 생생함으로 공정함을 왜곡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세월호 사고에 관한 원성이 높아지자 일부 언론이 여론을 어떻게 호도하였는지를. 그들은 보상금이라는 생생한 숫자를 내세웠다. 여론은 분열됐고, 자식 팔아 돈벌이 한다는 악의적 발언이 쏟아졌다. 이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언론은 공정하지 못한 주장에 생생함을 더하여 사실을 왜곡한다. 또는 의도적으로 생생함을 누락하여 사실을 축소하기도 한다. 생생함을 악용하여 진실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이런 언론이야말로 황색 언론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생생함 효과에 대해 인식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마치며...
세대 간 갈등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이 글은 내 방식으로 어르신들을 이해하려는 고민의 결과이다. 나는 어르신들이 어리석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들도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올바른 정보라 하더라도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이제는 얼마나 올바른 소리를 하는 가보다 얼마나 생생한 소리를 하는 가에 관심을 가질 때이다. 그저 사실만 전달한다고 그 정보가 상대에게 각인되는 게 아니다. 비록 언론은 편향되었고, 올바른 소리 하기도 힘든 시절이지만, 단순히 올바른 소리를 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올바름 너머의 생생함에 주목해야 한다.
굉장히 자세하고 정성들인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일단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음.. 저도 본문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생생함을 물리치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이 교육, 계몽, 계도 등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각종 사회 문제들을 파고들고 꼬집는 대다수의 글들이 취하는 마무리가 곧 '인식의 개선', '교육' 등인데요
일단 인간이 '생생함'에 취약한 존재라고 이미, 상당히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심리학 이론이 있고, 그 무수한 누적 증거들이 있죠. 여기에 대해 '계도'라는 방법이 정말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검증들이 충분히 누적되어 있어야 하고 그것이 효과를 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죠. 세계 최강 국가라는 미국도 트럼프 사례를 보면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종의 '체념'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본문에서도 말씀하셨듯 제가 생각하는 가장 그나마 현명한 '생생함'에 대한 대처법은 곧 '생생함'으로 맞서는 겁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면, 그걸 근본적으로 뒤집을 방법이 없다면 그걸 효과적으로 이용할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 또 한 가지 생각해보면 사실 '생생함'이라는 단어는 정말 많은 표현형(?)들로 변주되고 있죠. 이미지 메이킹, 감성팔이, 구체성, '와닿음', 'self-relevant', 포지셔닝, 브랜드 마케팅 등등.. 모두 사실 본질적으로는 본문의 그 '생생함'의 다른 말들이죠.
제가 보기에 중요한 또 하나의 지점은 '생생함' 그 자체에 주목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생생함이 어떻게 다양한 용어로 변용되고 있고, 그로 인해 어떤 정치성(?)을 획득하고 있는가를 주시하는 것입니다. 즉 어떨 때 생생함이 곧 '게티즈버그 연설'이 되는지, 혹은 어떨 때 '감성팔이'가 되어 매도되는지 그 과정을 봐야한다는 거죠.
잠시 곁길로 새서 한가지 보충하자면요.
본문에서 [도식적일수록(highly graphic)] 이라고 하셨는데요, 원문에서 "도표"의 의미로 쓰인건지 아니면 highly realistic 정도로 쓰인건지는 원문을 봐야 알것 같고요. 제 생각에는 후자의 의미로 쓰인듯 하네요. (체크요망)
후자의 의미라면요 이단어는 "원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정도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피가 흥건한 범죄현장을 뉴스 영상에서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을 graphic하다고 합니다.
실제 용례는 이런식이죠:
WARNING the following photographs include graphic imagery.
이 단어를 한국어로는 어떻게 옮겨야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시는 분들 도움 요망입니다.
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그런데 구글에서 "highly graphic" 문구로 검색해보면 첫페이지의 모든 검색 결과가 제가말한 두번째 의미, 즉, 피가 흥건하거나, gory, 끔찍한, 선정적인 등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는데요.
본문에서도 미디어의 선정성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되기 때문에 그래프,그림 보다는 gory, 끔찍 정도의 의미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유추해 봅니다.
그 부분은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그치만 맥케이브와 카스텔의 실험이나 위키백과의 뒤이은 설명을 보면 제가 말씀드린 것도 딱히 틀리진 않을겁니다.
With the use of media technology, graphic images can be used to portray an event. While this makes the process of receiving news easier and more enjoyable, it can also blow a situation out of proportion.
글 잘 읽었습니다.
본문 글에 제 글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몇 마디 남기려다가 댓글 보다는 따로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요...
암튼 "생생함'이 주는 '효과'에 대해선 동의하고, 전략적으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머니와 대화할 때 (제가 충달님이 말씀하신 "생생함"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고 한 건 아니지만) 때때로
그런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아이폰과 맥북의 초대박에도 응용된거죠. 잡스와 애플사는 그 점을 아주 잘 파고들었고요.
기능이나 성능에 대해 깊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 봐라! 죽이지? 하나 더 있어!(One more thing!)" 이게 전부일 뿐인데, 다들 빠져들었죠.
타 업체에서 열심히 클럭이 어쩌느니, 메모리가 어쩌느니, 디스플레이가 어쩌느니, 가성비가 어쩌느니... 하고 있는 동안에,
잡스는 특유의 폴라티를 입고 무대에 올라, 아이폰(맥북)을 집어들고 딱 한 마디 합니다. "어때? 끝내주지?" 거기서 게임이 끝나죠.
사람들은 애플의 신제품을 사려 줄을 서고... 한참을 당한 후에서야, 다른 회사들도 슬슬 벤치마킹을 하기 시작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