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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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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26 21:39
중고로 책 팔 때 대부분 주인이나 점원이 책 제대로돼있는지 꼼꼼히 검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편지같은거 있으면 빼서 돌려줄텐데요. 크크
15/11/26 21:53
자기계발서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평소 제가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고 있어서 책을 저주하는 것까지는 충분히 납득하고 공감하는데
그것이 '당신의 오후를 망치는 것'과는 왜 연결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쯧쯔...... 여친과 똑같네요. 심약한 사람 같으니라구.
15/11/26 22:1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그 유명한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로 시작하는 행운의편지 떠올리고 쓰게 된 거라서요 크크크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15/11/26 22:44
아 크크 픽션인줄몰랐네요
그렇다면 마지막에 '고요함을 망치기를 빌며'가 아니라 '고요함을 망치는 내 용렬함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정도는 어떨는지요 크 주제넘은 오지랖죄송합니다
15/11/26 21:55
사람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위해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요즘 책을 안 읽고 있어서 뜨끔하고 있고 우리 나라가 책을 거의 안 읽는 나라라지만, 책이 있고 사람이 그에 맞춰서 자라는 건 아니니까요.
자기계발서니 인문학 열풍이니 해 봤자 자기가 진심으로 재밌어서 읽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책이 금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한들 몇 달은커녕 몇 주 가면 다 까먹는 시간낭비일 뿐이란 생각을 종종 하는데, 글과는 묘하게 대척점에서 연결되는 것 같네요.
15/11/26 22:15
이치죠 호타루님 댓글에 동의합니다. 책에 아무리 금과같은 내용이 있어도 본인이 실천하지 않거나 혹은 실천이 어려우면 별 쓸모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자기계발서의 좋은점을 찾자면 '잘 사는 방법'을 환기시켜주거나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해주는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15/11/26 22:04
재미있네요. 소재나 장면 하나에 꽂혀 무작정 덤볐다가 용두사미되는 글들보단, 이렇게 집중된 단문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15/11/26 22:20
제가 중고서점에서 구입했던 '마지막 강의'란 책 끝 쪽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주인공의 환경을 부러워하던 책의 전 주인분이 쓰쎴던 메모가 생각나네요 기분이 참 오묘하더라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5/11/26 23:29
엄청나게 몰입해서 읽다가 편지의 마지막 줄을 보고 엄청나게 소름이 끼쳤는데 픽션이었네요 어쩌면 그 누군가가 오후를 망치지 않아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글이 흡입력이 아주 높아요 잘 읽었습니다
15/11/26 23:38
저도 최근에 친구 추천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괜찮은거 같습니다. 안내글을 써볼까 했는데 홍보글 비슷하게 될까봐 주저하게 되네요.
최근 브런치가 SNS에서 많이 노출되는것 같아서 조만간 이용자수가 많이 늘지 않을까 기대(?)중입니다 크크
15/11/26 23:57
아 정말 강렬한 글이네요 사실인줄 알고 소름돋았는데 크크
사실이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그러니 뒷이야기도 알려주세요!! 크크크
15/11/27 01:53
비장한 각오로 편지를 쓴 남성이 편지를 봉하기 전 봉투 속에 넣었던 장미꽃잎은 그가 그녀에게 미처 건네지 못한 마지막 선물이었을까요?
지금보다 덜 불행해지기 위해 꽃잎과 책을 떠나보내며 '그녀없이 행복하게 사는 법'을 꿈꾸었을까요?
15/11/27 02:28
왜 나는 글에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가 ㅠㅠ 누가 난독증좀 해결해주세요...
여자가 죽었고 그 남친이 저주를 퍼붓는 편지를 그 여자가 읽었던 책에 꽂아놨는데 그 책 제목이 '행복하게 사는법' 이군요. 여기까지 제가 이해한 내용인데... 뭘 어떻게 이해해야 제대로 읽은건가요? 어렵네요 ㅠㅠ
15/11/27 06:03
그냥 스토리로 풀어서 말하면 그게 끝입니다.
하지만 플롯으로 구성하여 극적으로 느껴지도록 단편소설로 재배치를 한 거죠. 글 솜씨와 함께
15/11/27 10:09
중고책방에서 요즘 절판된 추리소설을 한 권 구한 적이 있는데
얼핏 책을 휘휘 넘겨보니 뭐 지저분한 것도 없고 끼워진 것도 없길래 샀었습니다. (사무실이 부산 중고책방골목이랑 가까워서 퇴근길에 가끔 들립니다) 집에 와서 한참 잘 읽고 있는데 대략 최종적으로 범인이 3명 중 하나로 압축되어 갈 때쯤 자그맣게 샤프?연필? 아무튼 꽤 고퀄로(그러니까 인쇄된 활자체와 정말 비슷하게) 써 있더군요. 휘휘 넘겨서 놓쳤는데... 'A는 범인 아님, 마지막까지 제일 유력하게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 B가 심어놓은 증거 xxx로 알리바이가 어그러졌기 때문임, 이는 사실 A가 C의 다른 범죄를 숨기기 위해 자신의 알리바이를 거짓으로 말했기 때문인데, 이것을 B가 알아채고...' 아 정말 아 진짜 아 ㅠㅠ
15/11/28 01:33
감상 남깁니다. 열심히 읽었다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글의 도입부는 빨간색, 남성적인 필체, 붓글씨, 장미꽃잎이라는 시각적 심상을 제공합니다. 여기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여성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운 빨강이라는 원색과 그 형태를 이루는 남성적 필체가 서로 부딪힙니다. "남성적인 필체"라는 직접적 서술을 딛고 가면 붓글씨라는 부분에서 독자는 자연스레 전통적이고 고루한 남성성을 다시 접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여성적이라 일컬어지는 장미를 맞닥트립니다. 여기서 남성성과 여성성은 조화를 이루지 않습니다. 각 이미지가 고유의 성적 특성을 소유한 채 거칠게 결합되어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양성적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성의 본질이 여성성을 덧입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글자에서 성별을 읽어낼 수 있는 본질은 색깔보다는 필체라 할 수 있고, 편지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글자이며 장미는 이를 치장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이야기의 본론은 편지를 통해 반전 효과를 끌어냅니다. 메시지는 다정한 격려나 애틋한 사연 대신 독자가 기대할 리 없는 "죽음"의 내용으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시체 라는 단어는 죽음의 심상을 강화하고 그 죽음을 저주의 수단으로 연결합니다. 저주한다는 편지 속 화자의 의지는 도입부에 등장했던 빨간 글씨와 마른 장미의 이미지와 결합해 보다 선명해집니다. 여기서 배치된 "고요한 오후"라는 심상은 생生의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 단어로 편지의 발신자는 수신자를 뒤늦게 이완시키고, 시간마저도 예측하는 조종하는 부분으로 전지적이고 지배적인 존재의 위상을 갖추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죽음이라는 파괴적 이미지와 편지 속 화자가 가진 강렬한 원한은 수사적 용법이나 사연이 덧붙어서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배치된 평화로운 심상과 충돌하며 비로서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러한 작법에서, 사랑하는 그녀의 죽음을 설명하며 활시위를 당기고, 저주의 마음을 담으며 화살을 날리면, 고요한 오후라는 과녘이 꿰뚫리는 일련의 과정을 연상됩니다. 누군가에게 저주를 받는 과정에서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우연이 불운으로 이어졌을 뿐입니다. 때문에 독자는 화자의 불쾌함을 픽션이란 경계로 쉽사리 유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저 편지의 독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기대감이 생깁니다. 나 역시도 누군가의 진한 감정을 우연으로나마 접촉하고 싶다. 액자 구조가 주는 거리감은 발신자의 원한서린 편지를 어떤 초대장처럼 느끼게 합니다. 중고서점과 마른 장미잎의 시간의 흔적, 평온해서 불안한 오후의 시간대에는 어떤 매혹이 숨겨져 있어서 독자가 선명한 위험을 자초하게끔 하는거죠. 3. 발신인은 한 서린 내용을 풀어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한의 방향이 왜 하필 우연한 독자여야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책을 읽다가 연인이 자살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직접적인 목표는 작가여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저 발신인은 이미 작가를 처치한 후에 저 편지를 남겨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증오의 전염과정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빨간색 볼펜으로 꼼꼼히 글자를 옮기고, 마른 장미까지 붙여놓는 행위는 독자를 위한 전시적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풀리지 않은 증오를 실현하는 과정으로서는 지나칠 만큼 번거롭죠. 이 장식 행위는 발신인, 혹은 소설의 작가 자신의 미의식을 돋보이게 하는만큼 감정의 진정성을 바래게 만듭니다. 편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순이 더 뚜렷해집니다. 저 편지는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고 있으나 동시에 정작 "책을 읽게 하는" 목표 수행에는 실패하고 있죠. 여기서 책은 단순히 하나의 매개체가 되고, 편지는 소개장인 동시에 경고장이 됩니다. 그 결과 발신인의 증오는 "너가 이 책을 읽기 전에, 혹은 읽다가 내 편지를 받고 불쾌해졌으면 좋겠어" 에 그칩니다. 그 책이 발신인의 증오가 담겨있는 핵심적 사물인데도 이를 단순히 배달도구 정도로 이용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원한을 온전히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원한을 잉태했던 책의 실체를 접하는 것이 필수적일텐데요. 보편적으로 인간은 어떤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이를 무차별적으로 발산합니다. 그래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고, 서비스 정신으로 웃어주는 직원에게 흔들리고, 뭔가 두려울 때 갑자기 타인을 향해 돌아보며 자신을 불렀냐고 긴장하며 묻죠. 발신인은 자신의 원한이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수신자를 가리지 않을 정도의 욕망이라면 메시지 자체의 깊이를 헤아려주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책을 읽다가 내 연인이 죽었다, 타인이 그 상실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책을 읽어야하죠. 그러나 발신인은 소통의 대상을 고르는 방식에서는 절실한 소통의 욕구를 보이면서도, 정작 소통의 방식에서는 방만해집니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호기심을 원천차단시켜버리는 것이죠. 발신인의 원한은 본래 담았어야 할 공포를 작위적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편지의 구구절절한 사연, 편지의 화려한 스타일이 핵심인 감정 자체를 오히려 얄팍하게 만들어버리는 거죠. 그리고 죽은 애인에 대한 비통한 감정은 "평온한 오후를 망쳐놓는 정도"로 끝이 나고 맙니다. 자신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 상처를 입히려는 사람이 기껏해야 타인에게 생채기를 내는 정도로 그치는 건 어딘지 소박해보이기도 합니다. 4. 이야기는 역설로 결론을 짓습니다.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든 책의 제목은 행복하게 사는 법입니다. 그러나 역설의 가능성이 책에서 멈춰버린 듯 해서 아쉬움도 남습니다. 편지의 수신인이 발신인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은 액자 구조 내부에서 정해진 기승전결을 따라가는 인상이 강합니다. 여기서 수신인은 발신인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발신인이 전하려는 불쾌감에 휩쌓여있다가도, 수신인이 이 부정적인 감정을 호기심이라는 욕망으로 치환하고 책 자체로 빠져드는 거죠. 이를 풀어보면 마지막 직전까지 이 이야기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이의 원한이 핵심이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다다르면 그 핵심이던 부분이 수단으로 변모하고 수신인은 나레이터에서 이야기 속의 주체로서 각성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으 찜찜해, 그런데, 왜 죽은 거지?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라고 끝냈다면 어떘을까요. 죽음과 원한 자체에서 끝맺기보다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읽을려는 인간의 욕망이 훨씬 무섭고 본능적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중고 서점에서 책을 샀다>는 이야기는 픽션을 접한 인간이, 논픽션을 접하는 과정의 충격을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제시하는 것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픽션을 접한 인간이, 논픽션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가, 그 마저도 픽션의 재료로서 활용하는 다층적 구조의 적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다가 저런 편지를 접했다면, 과연 그 독자는 그 불길함에 독서를 중지할까? 라는 의문이 생기거든요. 저는 아무리 봐도 누군가의 원한이 그토록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훨씬 더 무심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아닐까요. 알지 못하는 이의 죽음과 애수, 한 같은 것들은 호기심이란 괴물에게 태연하게 잡아먹히고 말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걸렸던 부분입니다. 글씨체와 어울리게, 어울리지 않게 - 화자가 지나치게 개입한 것 같습니다. 두 문장이 연속적으로 "편지에는" - 이라고 시작하기 때문에 중첩되는 느낌을 줍니다. 이 책은 제가 몹시도 사랑하던 여자가 좋아하던 책입니다 - 비슷한 느낌의 동사가 연달아 붙어서 주어가 두개처럼 보입니다. 당신의 오후가 망쳐지기를 빌며 - ~하기를 빌며 라는 표현은 번역체의 느낌이 납니다. 책장 깊숙이 던져놓고는 - 책장이 뭔가를 깊이 던져놓을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가 있을까요. 책장에 뭔가를 넣는 행위는 정확성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던진다"는 동사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제구력의 소유자가 책장에 책을 던져서 쏙!! 하고 꽂히는 느낌이 드네요. 두 번 다시 꺼내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 두 번 다시 꺼내볼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꺼내보지 않았다 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이중부정이 아닐련지요. 편지라는 수단은 일회성이 짙고 유실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 발신인이 너무 멋만 낸건 아닌가 싶었는데, 책에 글을 직접 남기는 방식을 취했다면 중고서점에서 팔리지 않았겠지요. 일단 책을 중고서점에 넘기고, 나중에 혼자 와서 책을 들춰보다가 거기에 살짝 편지를 끼워넣었다고 혼자 납득했습니다. 그런데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면서 편지를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낮을 것 같습니다. 중고서점이라면 더더욱 꼼꼼하게 책의 질을 따져보지 않았을까요.
15/11/28 02:24
본문 글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王天君님의 감상, 교정 역시 대단합니다. 만약 제 글에 이런 교정을 받으면 정말 감사했을 듯 합니다.
15/11/28 11:05
와 정성어린 감상글 정말 대단합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제가 쓴 글을 '해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걸렸던 부분을 짚어주신것도 고맙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특히 마음에 와 닿은건 "책을 읽다가 저런 편지를 접했다면, 과연 그 독자는 그 불길함에 독서를 중지할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댓글 기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16/03/10 00:06
'지하철에서'를 읽고 이름 검색으로 쭉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저 책을 중고상에게 넘긴 연유는 뭘까요.. 저 같으면 증오심에 불태울 듯 한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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