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올라오신단다.
거지처럼 입고 다니지 말라는 엄마 말이 떠올라 옷장을 뒤져 A급으로 골라 꺼내 입었다.
옷을 차려 입고 거울을 바라본다.
‘괜찮은데?’
하지만 늘 엄마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명절때마다 타박을 들었는데…오늘은 추접스럽게 좀 입고 다니지 마라 라는 말 안 들었으면 좋겠다.
용산역에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엄마가 나왔다. 날 보자 환하게 웃으신다. 다행이다. 오늘은 거지 행색이 아닌가 보다. 달려가 엄마를 안았다.
사실 스킨쉽이 어색한 우리 가족이지만 얼마전부터는 내가 이렇게 하고 있다. 별일 없으면 일년에 두번 보는 엄마인데…오래오래 사신다 하더라도 일년에 두번꼴로 만나는 사이라면 이렇게 안아보는것도 얼마 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엄마의 볼일은 예상외로 엄청 빨리 끝났다.
2시에 목표지점에 도착해서 2시 10분에 끝났다.
“엄마.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까? 내가 맛있는거 쏠게”
“응. 그래”
“그럼 엄마 내려가기 편하게 용산역 가서 먹으까?”
“응. 그래”
엄마는 흔쾌히 좋다 하신다.
용산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바깥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다.
날씨 좋다.
엄마를 바라보니 한손은 손잡이를 한 팔은 내 팔을 잡고 서 계셨다.
엄마가 이 멀리까지 오셨는데 꼴랑 밥 한번 먹고 내려가라고?
거기다 역 근처는 뜨내기 장사라서 맛도 없잖아.
몇번을 자문하다 보니 용산역은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엄마 경복궁 가봤어?”
“가봤지.”
“진쫘? 난 안가봤는데”
“여태껏 서울 살면서 뭐했냐? 쉬는날 여자친구랑 좋은데 다니고 그래”
‘엄마. 내가 서울 살면서 논줄 알어? 안그래도 엊그제 lol 골드 달았어. 다행히 시즌 끝나기 전에 달아서 승리의 시비르도 받게 됐네.’
라고 말할순 없었다.
‘어머니. 못난 아들내미는 서울 살면서 경복궁도 못 가보고 여자 친구도 없사옵니다.’
엄마랑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경복궁에 도착 하였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많이들 나들이 나와 있었다.
경복궁에 들어가기전에 배를 든든히 하고 구경하자고 말했다.
엄마는 여전히 흔쾌히 좋다 하신다.
경복궁 입구에 가지 포졸들이 경복궁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경복궁에 와보진 못했지만 어디서 줏어들은건 있어서 엄마에게 아는척 했다
“엄마.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인형 아니고 사람이네”
가만 바라보던 엄마가 웃으며 말한다.
“사람 아니여. 어찌 사람이 이리 가만 있는데.”
“아녀. 진짜 사람 맞어.”
주위 사람들이 포졸에게 팔짱 끼고 사진찍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도 포졸은 미동도 없다. 엄마는 다시금 확신한다.
“사람 아니여. 인형이여. 인형”
이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눈이 시렸는지 포졸이 눈을 한번 깜빡였다.
엄마가 ‘엄마야’ 하면서 나에게 폴짝 뛴다.
하하. 엄마가 엄마를 찾는다. 신기한 경험이다.
경복궁 근처면 근사한 한정식집이 있을줄 알았는데 내가 못찾은건지 그런집은 보이질 않았다. 다른집 자식들은 미리 맛집이다 뭐다 해서 찾아 모셔가는데…난 발품 팔아 돌아 다닌다.
“엄마 다리 아프지 않아?”
“아니. 아들이랑 이렇게 다니니까 너무 좋은데”
엄마가 좋단다. 나도 좋다.
엄마가 좋다 하지만 점심때도 훌쩍 지났고 해서 더 이상 돌아다닐수는 없었다. 근처에 고깃집이 보이길래
“엄마. 고기에 소주 한잔 하까?”
“응. 그래.”
엄마는 또 좋다 하신다.
들어가서 삼겹살과 소주를 시키니 엄마가 목도 타고 하니 맥주에 말아 먹자고 하신다. 레이스는 시작됐다. 지금까지는 가을날씨에 취해 걸어다녔지만 이제부터는 달려야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엄마랑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하니 시간이 잘도 간다.
수풀속의 메추리는 사냥개가 나오게 하고 마음속의 말은 술이 나오게 한다더니…
엄마랑 술잔 기울이며 마음속 이야기를 한다. 너무 기분이 좋다.
“술은 좋은 사람하고 먹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아”
“아들이랑 먹은께 좋지?”
“응. 좋다.”
라고 말하시며 웃는 엄마.
웃으면 어쩔 수 없지 뭐. 술잔을 마주치며 또 한잔을 한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고짓집을 나와 경복궁으로 향한다. 문을 닫았는지 포졸들도 안보이고 묻도 닫혀 있다.
“에이. 엄마 경복궁 문 닫았나 보다.”
“그럼 다음에 보지”
“응. 다음에 또 놀러오세… 엄마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그렇게 경복궁은 포졸과 화장실만 구경하고 말았다.
용산역에 도착해서 표를 끊을려는데 다음차가 20분 남았단다.
20분이면 헤어지기 너무 아쉬운 시간이다. 더군다나 술까지 먹은터라…안되겠다. 2차 가야 한다.
그 다음차는 1시간 뒤에 있다는데 좌석이 없단다. 오케이 잘됐다.
그 다음차는 2시간 뒤에 있단다. 2차가서 한잔 하기에 적합한 시간이다.
“엄마. 차가 2시간 뒤에나 있다네”
라는 내 말에 내심 좋아하신듯 보인다.
“어쩔수 없네. 2차나 가세”
“응. 그래”
여전히 좋다 하신다.
어디 들어갈까 돌아다니고 있는데 옷을 파는데가 보인다.
엄마가 관심을 보이길래 한번 입어 보라고 권하였다.
엄마가 점퍼를 꺼내 입어보고 거울을 보고 옷맵시를 살펴본다.
“엄마. 엄청 이쁘네”
“그래?”
“응. 엄마. 그거 사. 내가 사줄게”
엄마도 맘에 들었는지 그 옷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내가 계산하겠다고 하는것을 엄마가 한사코 말리더니 기어코 본인이 계산한다.
에이. 내가 사주고 싶었는데…아들이 돈을 못버니깐 엄마 맘이 편치 않았나 보다.
2차 가서 또 한잔을 한다 .이번 안주는 탕수육이다. 근데 맛이 영 별로다.
엄마가 탕수육 맛을 한번 보더니
“역 근처는 뜨내기들 장사라 별로 맛이 안 좋아”
라고 말하신다.
역 근처는 뜨내기들 장사여서 영 별로여 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엄마한테 들었던 말이었나 보다.
또 한번 술이 넘어간다. 쓴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쭉쭉 들어간다.
“엄마. 그렇게 술 먹고 집에 갈 수 있것어?”
“난 니가 더 걱정된다.”
“난 걱정허들 말어. 연어가 강물 거슬러 올라가서 즈그집 찾는것보다 내가 더 잘찾아가니께는”
“술 적당히 먹어. 너무 먹고 돌아다니지 말고”
“아따. 엄마랑 먹은께 이리 먹지.”
기차 시간이 다가왔다. 엄마를 기차칸으로 안내해 드렸다.
이별을 포옹을 하고 아까 화장실 간다하고 atm기계에서 뽑았던 돈을 엄마에게 쥐어준다.
엄마가 아니 됐다고 하면서 다시 건네준다. 아니다. 이거 엄마꺼다. 해도 다시 돌아온다. 아따 사람들 다 쳐다본다 하면서 주머니에 훅 넣어드리자 그제서야 알았다 하신다. 기차 밖으로 나와 엄마를 보며 손을 빠빠이 흔든다.
엄마가 돈 안받았으면 진짜 서운할뻔했다. 고향갔다 올라오면서 엄마가 싸준 반찬 무겁다고 한두개 빼 놀라치면 엄마가 왜 그렇게 서운한 표정을 지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기차가 떠나간다. 엄마도 떠나간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3-18 18:20)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