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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04 02:33
본문의 제 학창시절에는 분홍 소세지부침과 비엔나 소세지가 부의 상징이었다죠.
글 쓰다보니 저도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더군요.
15/01/03 16:54
그렇게 자라면서 '눈치가 빠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 말들은 바꿔 말하면 '지나치게 눈치를 본다' 또는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민감하다'라는 말과도 상통할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지나치게 눈치가 빠르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이 화를 잘 내지 못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부분...공감되네요!
15/01/03 17:05
국민학교 1학년때 도시락을 쌌었던가요? 기억 완전 가물가물하고.
밥에만 얹혀있는 후라이에 얽힌 어린 애들의 고도의 시샘이 곁들여있는거 같기도 하고요. 정말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 나는 왜 당당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사는가 어떻게 보면 부모님께서 교육을 잘 시키신건지 아닌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제 팔자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건 절대 안 바뀌더라구요.
15/01/03 17:13
저는 오프라인에서의 제가 착한아이 컴플렉스에 걸려있다고 생각하는데, 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제 눈빛, 표정만으로 제 맘 속의 불만 등이 드러나버리는 편이라고 하니 이도저도 아니네요 크크. 차라리 착한아이로라도 온전히 포지셔닝이 가능하면 좋으련만..
15/01/03 17:20
철없고 어린 초딩 시절에 아무런 악의 없이 뱉는 친구들의 무심한 말들이, 당시엔 큰 속상함이 없었더라도, 지금 돌이켜보면 상처로 남아 있더군요.
내가 그렇게 상처받았듯이 누군가도 나의 선의나 무심한 말들로 상처받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15/01/03 18:14
제가 국민학교 1학년이었을 때는 반장, 부반장 다 뽑았습니다. 게다가 줄반장도..
도시락은 저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3학년부터 가지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2학년까지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었던 것으로..
15/01/04 02:29
본문의 헤프닝이 국민학교 1학년 때라는 걸 제가 확실히 기억하는 이유는 선생님 때문입니다.
저 일이 있었을 때 절 다독여준 담임 선생님이 국민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었거든요. 그래서 1학년 때 있었던 일인 걸 확실히 기억하고 있구요. 그 당시 경기도 시골마을의 분교를 다녔는데 어쨌든 당시 도시락을 싸가서 학교에서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 물론 반장, 부반장도 당연히 뽑았구요.
15/01/03 18:37
아직도 제 주식은 조금은 식은 밥에 계란 하나 까넣고 참기름 간장에 비벼먹는 날계란 비빔밥입니다
여기에 신김치랑 맛있는 지도표 성경김이면 흐흐 아 주제가 이게 아닌데... 국민학교 1학년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게 대견하기도 하지만 왠지 안스럽네요 흐규흐규
15/01/04 00:57
잘 읽었습니다. 정말 글이 찰지네요. 슥슥 읽히도록..정말 부럽습니다.
화내는 연습을 저만 해본것이 아니라는 게 반갑네요. 항상 화낼줄몰라 참다가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때 화를 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는 부분에서 빵터졌습니다. 저도 매번 그랬거든요. 많은 연습의 결과 이제는 화낼 타이밍을 아주 조금 알고 화를 내 보기도 합니다. 하하. 연습하면 안되는건 없나봐요! 글을읽는 저 또한 급식에 관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초등학교에서는 급식차를 반으로 끌고와서 먹었는데..남았다고 해서 더 먹은 오렌지를 두고 다른 친구가 자기꺼라고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굉장히 난감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릴땐 음식에 민감해서 그런가? 좋은기억보다 이런기억이 많은것 같기도하고 그렇네요. 자주자주 글써주세요!
15/01/04 11:10
추천 + 스크랩 하였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도시락을 챙겨다녔는데.. 그때가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필력이 훌륭하십니다. 자주 좋은 글 써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15/01/04 14:34
엄청나게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홀린듯이 잀었습니다. 성격이 저랑 많이 비슷하실 것 같아요..그런데 나는 왜 글을 이렇게 못쓰지..흑흑
15/02/16 16:42
매일 계란후라이 도시락 싸감 --> 부잣집
계란후라이 보고 가난하다고 놀림받음 --> 부자동네 부자동네에 어설픈 부자가 살다가 놀림받은 얘기네요. 좀 가난한 동네 사셨으면 왕취급 받으셨을텐데. 아쉽네요.
15/02/16 19:01
죄송합니다만, 읍내에 나가려면 몇시간씩 버스를 기다리고, 어릴 적부터 논농사와 밭일을 직접 돕고 한학년에 고작 열다섯명이 채 되지 않던 깡시골마을의 분교에서 자랐습니다. 그시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결코 부자동네는 아니었죠. 오히려 그시절 도시에 가보니 제가 살던 시골에서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소세지부침'이 그냥저냥 평범한 반찬이더군요.
제가 살았던 시골마을과 분교를 직접 보셨다면 결코 이렇게 쉽게 타인의 유년기를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지 않으셨을텐데. 아쉽네요.
15/02/17 00:44
아니 여러분 지금 영원님의 글빨에 속아넘어가고 계신겁니다.
중요한 건 계란후라이가 아니잖아요. 소세지 반찬을 무려 몇 개씩이나 준 여자아이와 영원님이 세운 플래그는 어떻게 되는겁니까!!!
15/02/17 04:44
계란 후라이에 밥 비벼 먹는 걸 정말 좋아하는 입장으로
계란 후라이엔 간장이 아니라 고추장 이라고 참 오랫동안 주장 해왔었는데 언젠가 질게에서 16:4 정도로 털리고 간장이 대세였다는 걸 알게 된 기억이 납니다.
15/02/19 02:48
공감돼요. 저는 천성이 소심한 편이기도 했지만, 부모님에게 고의적/무의식적 압박을 받았던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때까지는 가족을 포함해 주변사람들에게 화를 낸다는 건 상상도 못했고 참고사는 게 당연한줄 알았는데, 어느순간부터 착한아이 역할을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중학교때부터 고딩때까진 부모와 싸웠고, 성인이 되고나선 모든 사람들로 투쟁 대상을 확대해나갔습니다. 남들이 보기좋은 나, 남들이 편한 내가 아니라 내가 좋은 나, 내가 편한 나, 본성대로 살기 위해서요. 나대로 살려고 나름대로 끊임없이 노력해왔지만, 본성대로 산다는 건 정말 힘듭니다. 수업비 냈다고 생각하고 씁쓸함을 삼켰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특히 부모와 비슷한 성격인, 비슷한 형태로 저를 통제하려는 사람은 특히나 더 힘들어요. 무의식이라는 게 너무 무서운 게, 분명 상대가 잘못한 일인데도 꼼짝 못하겠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부모와 닮은 면이 있더라고요. 야무져보인다는 평을 자주 듣는 편인데 부모와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걸 보고 (보기랑 다르게)허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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