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환경 조사서 그리고 노무현
중학교 1학년 시절, 당시만 해도 학기 초가 되면 으레 나눠주던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하던 때였다. 미술을 가르쳐주시던 온화한 담임선생님이 나눠주신 종이를 또박 또박 채워나가던 나의 연필은 문득 ‘집안 환경(경제적 계층)’ 란에서 멈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똑똑했던 건지, 고지식했던 건지, 그 순간 나는 경제적 계층란은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 이 세 종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시 아버지가 작은 사업을 하시다 실패하신 후 실업자 신세가 되시고 어머니가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시던 우리 집은 변호사, 의사 등의 계층을 가리키는 중산층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기입란 위에 연필을 댄 채로 한참을 머뭇거리던 나는 가정환경 조사서는 솔직하게 써야한다는 선생님의 당부를 다시금 떠올리며 고민 끝에 '하류층'이라고 공란에 기입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개인 면담을 하면서 선생님으로부터 "니가 이렇게 여기에 하류층이라고 쓰면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니.." 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중간', '보통'이라는 단어를 썼던 모양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집은 그리 가난하지 않았다. 집에 돈이 없어 소풍을 못가는 일도 없었고,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던 경우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우리 집은 절대 가난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주변 친구들과의 비교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외로움, 혹은 상대적인 소외감마저 떨쳐내진 못했다. 어쩌면 그 시절의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가난'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사소하지만 외로운 그늘 속에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학용품이나 수업 준비물 등의 꼭 필요한 물건 외에 부모님께 돈을 타 쓰는 것이 죄송스러웠던 시절, 제법 돈이 많이 드는 비싼 과학상자나 비싼 미술재료 등이 필요한 날이면 그전날 하굣길부터 마음이 무겁곤 했던 기억.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봄소풍 때 찍은 2천원짜리 단체사진이 교실 칠판 오른 쪽 녹색 알림판 위에 걸리면 그 밑으로 반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곤 했는데 이런 걸 사는 것 자체가 사치에 불과하다고 여긴 내가 국민학교, 중학교 내내 소풍사진을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기억.
친구들에게 내가 싸온 도시락 반찬을 내보이는 것이 싫고, 같이 먹으면 왠지 친구들이 싸온 좋은 반찬을 뺏어 먹는 것 같은 기분에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해서, 친구들로부터 엉뚱한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혼자 점심밥을 먹었던 기억.
이런 것들이 학창 시절 내 주위를 맴돌던 가난에 대한 사소한 기억들이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나보다 훨씬 더 어렵게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고, 나는 단지 넉넉한 주변 친구들에 비해 조금 덜 풍족하고 조금 덜 넉넉했을 뿐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 사소한 것들이 왜 그렇게 창피하고 속상했는지, 그리고 부모님이 왜 그렇게 야속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중에 커서 내가 돈을 많이 벌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지금의 이 속상함과 서러움을 잊지 않고 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어린 마음에도 여러번 다짐하곤 했다. 이렇듯 오히려 학창 시절 내가 경험했던 '부족함'의 기억 혹은 '덜 넉넉함'의 기억이 내게는 커다란 재산이자 마음의 장작이 되어준 것. 어쩌면 내가 자라면서 느껴온 이런 외로움과 속상함의 감정을 또 다른 누군가는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전, 연말을 맞아 내가 다니는 직장과 거래중인 용역업체들과 신년도 계약 협상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신년도 예산이 2014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어 용역업체들과의 적절한 협상이 중요한 시점이었고 결국 업체들과의 재계약 금액을 동결시키거나 최소 인상폭으로 낮추는 것이 내게 맡겨진 중요한 임무였던 것. 그렇게 견적서들을 받아 검토하다보니 화장실청소용역 위탁업체의 견적서가 좀 이상했다. 견적금액이 올해에 비해 아주 소폭 상승한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업체 이윤은 살짝 늘어난 데 비해 업체에서 고용한 화장실청소 노동자 분의 인건비는 오히려 삭감된 것. 원래 우리 직장에서 청소하시던 분이 올 겨울에 그만 두시면서, 업체에서 최근 새로운 분을 뽑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용역업체가 혹시 소위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갑질'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업체 계약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고 계약 담당자는 어물어물거리더니 이내 사장을 바꿔주었다.
나는 그에게 매년 최저임금은 오르는데 어떻게 인건비가 하락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따져물었다. 당황한 듯한 사장은 확인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은 후 잠시 후 다시 연락을 해왔다. 그의 말인즉슨 원래 일하던 기존 청소아주머니의 임금이 비교적 높았다는 것. 그래서 근로기준법의 범위 내에서 새로 채용한 분의 임금을 적절하게 조정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그의 설명이 거짓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업체 입장에서도 거래처와의 재계약을 따내기 위해 합법적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낮은 폭의 견적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을 터. 이러한 위탁업체의 입장을 외면한 채 문제의 책임을 업체의 탓만으로 떠넘기는 것은 이 또한 또 하나의 '갑의 횡포이자 변명'일 수 있다. 결국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란 점을 잘 안다. 그리하여 사장은 내게, 우리뿐만 아닌 다른 거래처들에도 동일한 금액으로 청소용역 견적을 제시했으며 법적으로도 아무런 하자가 없는 채용이니 그냥 계약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난 얘기했다.
"사실 우리 기관도 지금, 차년도 예산부족으로 2015년 예산 운용이 빠듯한 실정이라 용역업체에서 견적금액을 낮게 제시해주는 건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청소아주머니의 인건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른 거래처들이 낮은 견적금액에 반색을 하든 말든 우리는 관심 없다. 이 임금이 근로기준법에 위배되지 않더라도, 어쨌든 그분의 인건비는 최소한 올해 인건비 이상으로는 확보해드리는 게 맞다고 본다. 비록 우리가 직접 계약하고 채용한 분은 아니지만 적어도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분인 만큼 그분의 최소한의 복지는 신경써야할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 인상분은 우리 부서 예산을 삭감해서라도 마련할 테니 견적을 다시 수정해 달라."
자신의 설명을 듣고 내가 그냥 대충 넘어갈 것으로 예상했던 사장은 의외라는 듯이 "그렇게 해주면 우리들 입장에서도 고맙다."며 반색하고는 다시 견적을 넣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물론 그래봤자 고작 한 달에 몇만원, 1년에 몇십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차액이지만 이것이 내 위치에서, 그리고 내 업무 한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재량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소한 일을 겪을 때마다 5공 청문회 시절, 초선의원 노무현의 말이 떠오른다. 대기업 회장을 소환해 생방송으로 청문하는 과정에서 새파랗게 날선 분노를 머금은 국회의원 노무현은 이렇게 일갈했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부에는 5년 동안에 34억 5천만원이라는 돈을 널름널름 갖다 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벌어줄려고 일하다가 죽었던 이 노동자에 대해서 4천만원 주느냐, 8천만원 주느냐를 가지고 그렇게 싸워야 합니까?! 그것이 인도적입니까, 그것이 기업이 할 일입니까? 답변하십시오."]
물론 내 주변에는 절대 권력을 가진 군부도, 대기업 재벌도 없다. 비슷비슷한 서민들끼리 아웅다웅 서로 엉켜 사는 이 사회, 우리네 일상. 하지만 소위 '갑질'이라는 게 절대 권력을 가진 자에게만이, 또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는 자에게만이 주어지는 고유권한은 아닐 것이다. 난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직장 업무추진비니, 부서 운영비니 하는 돈은 몇백만원씩 팍팍 계상하고 확보하면서 우리 직장에서 일하시는 청소아주머니 인건비는 몇 만원 더 주니, 마니하면서 용역 업체랑 싸워야 하나? 그것이 인도적이고, 그것이 공무원이 할 일인가?"
나는 이러한 물음에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견적 총액은 동결할 생각이니 그 한도 내에서 인건비를 인상하고 업체 이윤을 깎으라. 그렇지 않으면 재계약이 어렵다"며 '또 다른 갑질'을 자행했다면 그 어린 시절 가정환경 조사서를 쓰던 나, 가난이 주는 외로움 속에서도 이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다짐했던 학창시절의 어린 그 녀석이 지금의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매 순간 부끄럽지 않게 살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라도 부끄럽지 않고 싶다. 어린 시절 나와 했던 약속 정도는 스스로 지키면서 살아야 서른 넘게 나이 먹은 보람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 시절 어린 내게, 꼭 한 번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니가 이렇게 여기에 하류층이라고 썼더라도 우리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시지 않게, 그렇게 내가 열심히 살테니..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지마."
어쨌든 그렇게 업체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어린 시절 가정환경 조사서를 쓰며 머뭇거리던 어린 내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서, 그리고 그 앞에서 빙긋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02-16 12:49)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