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을 할까 생각했지만 글을 모두 끝내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미루었습니다.
부끄러운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다이어트 수기에서는 볼 수없는 처절한 고민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립니다. 으헣헣...
시작할게요. 에너지업 파워업 핫~식스!
서른살, 사업실패와 지인의 자살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불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당시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고 주변 사람들 모두가 크게 놀라고 많이 걱정해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가까스로 다시 일어나 재기했지만 무언가 가슴 속 무거운 것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교통사고랑 비슷해요. 사고 당시에는 어디가 아픈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고통이 시작되죠.
저 역시 수습과 재기가 끝난 후 조금 살만해지니 후폭풍이 오더라구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아졌습니다.
식욕도 뚝 떨어졌고 매사에 의욕이 없었어요. 하루종일 온몸에 뭐가 묻은듯 불쾌한 기분이었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불쾌했던 건.
제가 이 기분을 처음 느껴본 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제가 처음 살이 찌기 시작했던 그 때, 약 10년 전에도 느꼈던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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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저는 힘든 일을 많이 겪었어요.
연애도 그렇구요..
뭐 또... 가정사도 있었구요. 군대도 그렇고... 다 밝히긴 여러모로 어렵네요. 이해해주셔요.
아무튼 당시 저는 위와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 결국 달라지겠다, 지금까지의 나와 이별하겠다. 하는 결정을 했었습니다.
제 현실도 싫었고 제 자신도 싫었었나봐요.
그리고 나름 노력도 많이 했어요. 크크.. 지금 생각해보면 애잔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러네요.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밤에
샤워를 마치고 거울에 낀 김을 닦아냈는데 거울 안에 왠 뚱보가 있더군요.
제가 알고 있던 저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뚱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구요.
자기혐오? 자기파괴 뭐 이런 거였을까요? 어쨌건 중2병이겠죠. 공들여 조립한 레고를 부수는 쾌감과 비슷할 겁니다.
전 그 모습을 받아들였습니다. 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기분이었어요.
이후 전 식욕과 성욕에 몰두하는 시절을 보냈고 그 결과는 지난 글에 나타난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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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직감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내가 또다시 나와 이별하고 싶어하는 구나.
결국 200kg를 넘어서게 되는 걸까? -_-;;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의 나와 이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직접적으로 얘기해서, 살을 빼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생각이 굉장히 오래 갔습니다. 두 달가까이요.
다행히 이런 식으로 질문이 구체화되자 찝찝했던 기분은 사라졌어요.
그러나 결정을 내리는 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전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전 제 몸과 그 생활에 큰 불만이 없었어요.
보기만해도 위압감이 드는 폭풍간지! 엄청난 존재감! 세상에 흔치않은 충격적 비주얼!
이걸 포기하라고? 게다가 이게 얼마짜리 살인데??
난 싫다!
살 빼라는 권유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요. 심지어 초면인 사람들도 그런 조언?을 했었습니다.
그때마다 당당하게 저는 말했어요. 싫어요! 이걸 왜 빼요! 너나 잘하세요!
전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정도 몸무게는 제법 많은 정체기를 거쳐 완성이 됩니다.
바꿔 말하면 정체기때마다 체중감량을 시도할 법한 기회인거죠.
그때마다 저는 싫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결정을 내렸구요.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LG트윈스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이번엔 다르다! 하는 뚜렷한 직감이 생겼습니다.
마음 한 켠에서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구요.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표현을 이해하실 수 있을 거에요.
흐름이 뭔가 이상하다...
스타2 보시는 분들은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어? 경기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몇 달 째 답도 안나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게 짜증나서 그만
그래 그럼 운동이라도 해보자 대신 안되면 바로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주상복합에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헬스장이 있었어요. 한달에 만원이요. 싸죠?
제 집보다 작았구요 -_-;; 러닝머신이 다섯 대 정도, 아령이 열 개 정도, 그리고 헬스기구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덜덜이도 있구요.
당연히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제가 그걸 끊었습니다.
그 땐 몰랐죠. 홧김에 내린 이 결정이 견고하던 댐 한복판에 미세한 기스를 냈습니다.
첫 날 러닝머신에 올라 10분 걷고 내려왔습니다. 속도는 5.
아! 이거 안된다. gg! 살 안빼. 아니 못 빼. 이짓을 왜 해?
그날 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두들 박장대소 하더군요. 저도 웃었구요.
친구가 하는 말, '야 그래도 30분은 해봐야지!' '알았어 해볼게. 이러다가 나 몸짱되는 거 아냐?'
다음 날 30분에 도전했습니다. 20분 정도 걸었더니 땀이 쏟아져서 멈추고 좀 쉬었습니다.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죠.
쉬면서 둘러보니 사람도 없고 적적한 게 마음에 들더군요. 그 때 저 멀리 제가 아는 몇 안되는 헬스기구가 보였습니다.
윗몸일으키기 하는 그거요.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한 번도 못했어요!!!!!!!!!!!!!!!!!!!!!!!
거북이를 뒤집어놔도 발버둥치다가 한번은 할텐데 저는 한 번도 못했어요!!!
이거 쓰면서도 웃기네요. 나중에는 막 소리를 지르면서 시도했는데도 못했어요.
헬스장에 왜 거울이 있는지 아세요? 전 모릅니다. 대체 왜 있을까요?
거울 속에서 왠 고질라가 너무나 얇아보이는 판 위에서 괴성을 지르며 신음하다 옆으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아니 왜 비싼 돈주고 사파리를 가나 싶더라구요.
그리고
다음날 배에 알 배겨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을 땐 세상을 저주했지요.
이런 저의 혹독한 다이어트 도전기는 금방 소문이 났습니다. 셋째 날 저는 매우 많은 카톡을 받았어요.
'헬스했다며?'
'말도 마 어제는 복근운동도 했어 반 번씩 세 번.'
'깔깔깔깔'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 날 저녁 거의 1년 만에 만나는 사람과 식사약속이 있었는데 그사람이 저를 보고 깜짝 놀라더라구요.
살 많이 빠졌다구요. 그래서 저는 웃으며 '헬스한지 3일 됐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헬스 때문에 살이 빠진 건 아니네?' 하더라구요. '저 살 빠졌어요?' 하고 물었더니
'얼굴이 헬쓱한데? 한 10키로는 빠진 것 같아'
'그럼 많이 먹읍시다. 다시 찌워야죠 하하하'
저녁을 먹고 2차로 치킨도 먹고 술도 먹고 3차로 족발도 먹고 트림을 보폭에 맞춰 꺼억 꺼억 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중
'진짜 살이 빠졌나' 싶어서 곧장 집으로 안가고 헬스장 먼저 들렀습니다. 초고도비만자의 집에는 전신거울이 없어요.
거울을 보는데 살이 빠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야 항상 보던 얼굴, 보던 몸 그대로죠.
잠시 후 전 지난 10년간 했던 모든 행위 중에서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행위를 합니다.
지금도 잘 이해가 안가요. 대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 짓을 했지 싶습니다.
달착륙이요?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죠.
저는 체중계에 올라갔어요.
[공격대장][리듬파워근성]: 체중계!!!!!!!!!!!!! 피해욧!!!!!!!!!!!!!!!!! 구석으로!!!!!!!!!!!!!!!!!!!!!!!!!!
리듬파워근성이 죽었습니다.
146입니다.
외투를 벗고 다시 재니 146이더군요.
주머니에서 핸드폰이랑 담배를 꺼내고 다시 재니 146.
그 상태에서 외투만 입었더니 146.
고장이구나.
10킬로 짜리 아령을 재봤더니 10.
이상한데?
내가 올라가니 146.
고장이군.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해서 한 120정도일 줄 알았는데 146이었네요.
충격받은 건 아니었어요. 체중계에 표시되는 범위 안으로 나왔다는 건 내심 기쁘기도 했고.. .다만 그냥 좀...... 실망했죠.
분명 저는 요즘 마음도 뒤숭숭하고 식욕도 많이 줄었는데... 이거보단 적게 나올 줄 알았나봐요.
아무도 없는 헬스장에서 한참동안 앉아있었네요. 천천히 술이 깨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약간 화가 나기도 했어요.
최근 내가 겪고 있는 이상한 기분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사업 실패와 지인을 떠나보낸 충격에 단순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뭐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겪는 기분을 굳이 10년 전 살이 찌기 시작했던 때와 연결짓는 건 말도 안되는 억지다.
또한 그 시절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의도적으로 과거를 조작하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굳이 변할 필요가 없다. 일이나 열심히 해서 돈이나 더 벌자.
요즘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늙긴 늙었나 보다.
정신차려, 혼자서 무슨 궁상 떨고 있는 거야.
그 때, 댐 한복판에 생겼던 미세한 기스가 균열이 되었습니다.
나 변하고 싶은데?
그 생각이 들자 할 말이 없더군요. 생각해보니 제가 무슨 성정체성을 깨닫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다잡고자 했었다니 정말 저 때는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무리도 아니죠. 저는 몇 달째 갈팡질팡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날 밤, 샤워를 마치고 김 서린 거울을 닦는데 왠 도살자(1막 보스)가 있더군요.
지겹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에게 조금 놀랐구요.
자려고 누웠을 땐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살 빼고 말고 하는 문제를 나는 왜 머리로만 결정하려 할까. 어쩌면 몸이 결정한 것일 수도 있는데...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밤새 뒤척이며 생각했어요.
전 그냥 단순히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그 고통을 극복하고 싶었고
마음 한구석에 있는 짐을 덜고 싶었습니다.
다시 평소처럼 홀가분하게 살고 싶었어요. 먹고 마시고 즐기고 웃기고 웃으며
그런데 갑자기 살을 빼겠다는 결정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이고 있네요? 뜬금없이... 고려는 커녕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는 일인데...
반대로도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현재를 강제로 만족하고 더 좋아지고자 하는 시도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건 아닐까.
10년동안 이렇게 살았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 10년을 재밌는 기억으로 두려면 지금 돌아가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살을 뺀다는 게 무슨 암수술하는 것도 아니고 빠지면 좋은 거고 안빠지면 마는 건데 왜이리 생각이 많아?
아주 깊은 밤, 아주 간단명료하게 결론이 났습니다.
"몸이 이미 결정했다."
잠은 자지 못했지만 정신은 매우 또렷해졌습니다. 전 결정했어요. 새벽즈음에는 아주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졌습니다.
1. 나 뺀다 살을.
2. 최대한 빠르게.
3. 아무도 모르게.
4월의 마지막 밤, 2012년, 디아블로3 출시 보름 전이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읽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후 6시에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마치네요. 몇 번 썼다가 지웠어요. 너무 개인적인 그것도 속깊은 이야기가 많아서요.
그냥 살빼는 이야기나 쓸까 하다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내가 왜 살을 빼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무슨 다이어트 결심하는데 이렇게 주구장창 길게 설명하고 고민을 많이해? 별의 별 것을 다 끌어오네!'
그러게 말입니다. 대신
이렇게 오래동안 고민하고 결정한 사람이 다이어트를 어떻게 하는지...
비만의 나름 극한까지 갔던 사람이 정 반대의 방향으로 결정을 했을 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음 편에서 보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아, 제가 살을 빼게 된 계기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에 대해 저는 오랜동안 꾸준히 생각해왔는데도 간단히 정리하지 못하겠어요.
그냥... 현실도피성 탈출구라고 생각하고 몰두한 것이라 하는 것도 맞구요.
구질구질한 옛 기억을 꺼내들어서 허세부리고 싶어하는 중2병인 것도 맞구요.
몸과 무의식의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한 것도 맞아요. '더이상은 안되겠으니 살을 빼라'고 명령한 것일 수도 있죠.
멀쩡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날 자신을 뒤돌아보고 더 나아지고자 결심했다. 이것도 맞구요.
10년간 봐오던 도살자같은 외모가 이제 지겨워졌다. 이것도 맞습니다.
뱃살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체위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당연히 맞죠!
잘 생각해보면 저에겐 제가 왜 살을 뺐느냐만큼 왜 살이 쪘느냐도 중요한 문제였어요.
두 경우 모두 정신적인 문제였고 현재를 극복 혹은 탈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죠. 두 경우 모두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운이 좋았어요.
흔한 다이어트 계기인 건강이나 미용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살이 빠지는 와중에 깨닫게 되었죠.
최대한 간략하게 쓰려고 했는데 글재주가 형편없어서 힘들었습니다.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최대한 빼고 살 쫙쫙 빼는 패기 넘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이 이야기를 짚지 않으면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좀 봐주세요.
다만 저 위의 생각들은 당시에 제가 했던 생각들을 최대한 정확하게 옮겼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시기의 기억이 정확한 이유는 제가 2012년 2월부터 2012년 9월 17일까지 일기.. 까지는 아니고 간단한 기록을 했거든요.
제 머리를 괴롭혔던 생각들은 대부분 적어놓은 그대로에요.
제 원드라이브(윈도우폰 클라우드)의 원노트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남에게 보여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많이 오글거립니다. -_-;;
전 제가 체중감량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사업 실패한 뒤 재기하는 이야기를 쓰게 될 줄 알았습니다. -_-;;
정리하면 지인의 자살이 2012년 1월 초, 체중감량 결정이 2012년 5월 1일 새벽입니다. 146kg (결정까지 무려 4달)
다음 편 예고하자면 7월 10일 105kg가 되었구요. 이후로는 완만하게 줄여갔습니다. 요요는 없었습니다.
사진도 체중별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올렸던 사진보다 좀 더 뚱뚱해보이는 사진을 찾았습니다. 140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제 키는 살빼기 전 178, 현재 180입니다.
헉헉 잘자요. 내일 또 봐요. 근데 아마 내일부터 좀 바빠서 목요일에나 쓸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7-08 18:05)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