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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13/01/18 11:14:09 |
Name |
par333k |
Subject |
여고생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1 |
2005년쯤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2학년때였나.
고등학교 2학년은 참 애매하면서도, 청춘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조금 늦은 것 같고, 무언가를 안하기에는 시간이 아쉬운. 어른은 아니고, 입시전쟁에 들어설 각오도 덜하지만 더 이상 소년도 아닌 멜랑꼴리함. 내 고교생활 2학년은 약간 그런식이었다. 음악도 하고싶고, 친구들과 축구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른인 척 쿨해지는 시기.
그 애를 만난건 고2때였다.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아니, 소녀라고 보기에는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줄이지 않은 치마의 단아함과 흰색 블라우스의 교복. 앳된 얼굴과 다 커버린 맵시가 더 매력적이었던 아이. 만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그 애는 방과 후 음악실에서 노래연습을 하고 있었고, 나는 판치기를 한 벌로 음악실 앞 청소를 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학교는 남녀의 건물이 나뉘어있었지만 몇 가지는 공용으로 썼었는데, 그게 바로 음악실과 강당, 도서관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연습에 한창인 그 아이의 노래실력은 솔직히 엄청 웃겼다. 특히 고음부에서 찢어지는 목소리에 빵 터질 뻔 했지만 겨우 웃음을 참아가며 복도를 청소했다. 그 애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 존재를 몰랐지만, 난 음악실 안도 청소해야했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실문을 열었다. 그 어색함은 이루 말할수가없다. 클라이막스에서 얼굴을 잔뜩 찡그린채 목청을 높이는 아이와, 생전 처음보는 한 남학생의 등장. 그 애는 입이 벌어진 채로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제가 청소당번이어서요' 라고 말하고 성큼성큼 빗자루를 들고 들어갔다.
"어..언제부터.."
그 애는 그러고는 대답도 듣기전에 인사도 하지않고 낼름 도망가 버렸다. 사실 놀란것은 나였다. 그렇게 노래를 못하는 애가 생각보다 예..예쁘다.... 굉장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고 2, 무언가 시작하기엔 늦은 듯 하지만 설레임이 조금 덜 수줍어지는 그런 나이. 나는 그 애의 단발머리 옆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볼이 또 보고싶었다.
기회는 우연찮게도 금방 찾아왔는데, 그건 정말 예상치도 못한 곳이었다. 나는 그 당시 밴드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새롭게 여 후배 보컬 하나를 구했다고 하였다. 나는 밴드에는 소속되어있지 않았지만 으레 보컬이 빠지면 땜빵연습을 도와주는 친구였기에 다음에 합주실에 한번 놀러가겠노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당연히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합주실에서 본 아이는 그때 그 단발머리 소녀였다.
"아!!!!!!!!!"
손가락으로 대뜸 그녀를 가리키며 어안이 벙벙해진 나였지만, 그녀는 날 못알아보는 듯 했다. 꾸벅 인사를 하기에 어...어..네. 하고 얼떨떨한 인사를 받았다. 보컬..보컬이라며 왜 쟤가 여기...???
친구들은 날 앉혀두고, 그 여자애와 함께 몇 곡을 연습할건데 내게 좀 봐달라고 했다. 당시 나는 딱히 노래를 잘하거나 그런건 아니었지만 친구들의 단점만큼은 기가막히게 딱딱 찝어내곤해서, 친구들이 종종 그렇게 부탁을 하고는 했다. 평소라면 흔쾌히 형님이 또 코치해줘야겠냐며 거들먹거렸겠지만.. 으아.. 그때는 합주실 입구에서 합주실까지 내려가는 길이 굉장히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다시 만난것도 너무 좋고, 긴장도 되는데 '어떻게 쟤가 틀린걸 지적하라는거야..'
그날은 대체로 자우림의 노래를 커버했다. 여자애들이 커버하기에 난이도가 크게 높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래도 그 애에게는 좀 힘든게 사실이었다. 속으로 '대체 어떤 정신나간게 쟤를 보컬로 쓰려고 데려온걸까'싶었지만, 취미밴드니까 뭐.. 예쁘니까 뭐.. 하면서 그 애가 열심히 노래하는걸 가만 지켜봤다. 다 듣고나서 그래도 지적할건 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떼려던 찰나 그 아이는 '처음 뵙는 선배가 있으셔서 너무 긴장했어요......'하고 수줍게 얼굴을 가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는데 아..너무 예뻤다. 도저히 지적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괜시리 드럼을 치는 친구에게 '넌 박자가 그게 뭐냐'고 핀잔을 주고 다시 한번 가자고 했다.
내가 첫 연습때 그 신입 여 후배에게 한 말은 결국 안녕, 잘가. 그리고 '괜찮네' 였다. 그 애를 바래다 주고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함께가던 베이스 친구는 내 엉덩이를 퍽 차며, '홀렸냐 새끼야' 라며 웃었다. 나는 아니라고는 했지만, 어..음. 그래. 솔직히 너무 잘보이고 싶은 맘이 가득했다. 다음 연습은 언제냐고 물었더니 베이스를 맡는 친구가 실실 웃으며 '기타치는 친구가 데려온 여자애니까 걔한테 물어봐, 야~ 이거 친구끼리 의상하는거 아니냐?'라며 놀려대었다. 끝까지 아니라며, 걔 완전 얼굴 애같고 별로라고 투덜대긴했지만 맘 한구석에서는 다음에 볼 날이 기다려지기만 한, 그런 날이었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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