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3/01/15 23:48:21
Name The xian
Subject [기타] 의식의 틈새
지금은 좀 활약이 덜하지만, 작년에 NBA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제레미 린'이지요. 그는 그 전에 등장했던 동양인 NBA 선수와는 여러 면에서 색다르고, 또한 남다른 활약을 보이며 인기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프로의 세계는 냉엄합니다. 잘 하면 찬사를 받고 화제의 중심에 서지만 못 하게 되거나 더 이상 신선함을 잃어버리면 곧바로 차가워지기도 하지요. 제레미 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작년 2월 18일, 뉴올리언즈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패하자 그 날 9개의 턴오버를 저지른 제레미 린의 플레이가 패배의 원인이라는 비판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그 중에는 제레미 린을 '갑옷의 틈새'('상대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약점'을 의미하는 관용어구)라고 비유한 ESPN의 기사도 있었고 이 기사는 모바일 웹사이트 헤드라인에도 떴습니다.

그러나 ESPN이 그 기사의 제목 등에 사용한 '갑옷의 틈새'라는 말에 사용된 단어 하나에 정말로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Chink라는 단어가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 단어는 틈이나 틈새 등의 말로 주로 쓰이고 'Chink in the Armor'라는 관용어구로도 쓰이지요. 그러나 이 단어의 다른 뜻 중에는 아주 나쁜 뜻 하나가 있는데, 바로 동양인(정확히는 중국인)의 눈매를 '찢어진 눈'이라는 식으로 비하하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단어가 제레미 린을 비판하는 기사에 쓰였으니 인종차별 이슈에 대단히 민감한 미국에서는 당연히 이 문제로 크게 시끄러워졌고, 더욱이 그 헤드라인을 ESPN의 앵커가 그대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되자 시청자들은 더욱 격분했습니다.

ESPN은 35분만에 기사를 내리며 공식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공식 사과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적절한 교육을 실시할 것이며 편집과정의 재검토와 철저한 자체 검열을 통해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재발 방지 약속도 했습니다. 수석 부사장조차 트위터에서 그런 헤드라인은 변호할 여지가 없다고 했고 뒤이어 모든 ESPN 직원의 이름으로 웹 사이트에 공식 사과문이 내걸렸습니다. 하지만 팬들의 분노와 항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제의 단어를 쓴 편집자'는 해고되었고, 그 '헤드라인을 그대로 읽은 앵커'는 30일 정직에 처해졌습니다. 정직 당한 앵커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추가로 자신으로 인해 화가 난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한다고 썼습니다.


오늘 터진 일을 보노라니 이 일이 생각났습니다. 과거 조작사건이 터졌을 때 블랙삭스 스캔들이 생각난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엄연히 이번 발언은 방송법을 위반한 발언이며 방송의 기본을 망각한 행동입니다. 진작에 터지고 몇 사람 정도 목이 날아갔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망각의 틈새를 이용해 지각 없는 온게임넷과, 지각 없는 e스포츠인들이 비슷한 일을 잊을만하면 되풀이하다가 이번에 아주 제대로 터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번 일을 처음 공개 기사로 낸 것이 PGR에 링크가 걸려 있고 e스포츠 전문 언론을 자처하는 익숙한 곳들이 아니라 오히려 보통은 일반 게임사이트로만 알고 있는 곳인 '인벤'이라는 점이 저를 한 번 더 서글프게 합니다. 물론 인벤도 e스포츠를 취재하는 언론사입니다만, 소위 기성 e스포츠 언론은 이런 때에 뭐하는 것인지......

e스포츠의 전설이고, 업적이 많은 사람이고, 유명하고 뭐고, 그런 것들을 논하기 이전에 제대로 된 사람들이 e스포츠계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글과 덧글을 통해 거론되었던 정모씨와 홍모씨, 김모씨, 임모씨, 장모씨를 포함해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허튼소리를 공식 석상에서 내뱉을 정도로 근본도 없는 사람들이 e스포츠에 나 누구요 하고 서 있다면, 그들의 의식의 틈새를 타고 어떤 지각없는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e스포츠가 조작과 지적재산권 문제 이후로 퇴조세에 들어선 요즈음에, 이런 사고를 보게 되어 참으로 서글픕니다.

온게임넷이 ESPN을 롤모델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그 동안 그런 행동을 방치해 온 그들이라 별다른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과연 그들이 어떤 사과를 하고 어떤 징계를 내릴지 두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 The xian -

P.S. 덧글로 언급한 말입니다만. 본문 수정 전에 인벤 측에서 e스포츠를 취재하고 있음에도 e스포츠 언론이 아니라는 식으로 서술되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는 사실과 다르게 서술된 것이며,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수정되었으며 거듭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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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ipipi
13/01/15 23:51
수정 아이콘
이미 적절한 선례가 있었군요. 이점을 온게임넷이 확실히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왕의심복
13/01/15 23:5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역차별은 인종차별과 동일한 범주의 혐오범죄라 생각합니다.

The Xian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지지를 보냅니다.
사티레브
13/01/15 23:52
수정 아이콘
또 그 누군가를 얼굴마담으로 세워 사과하게 하고
그렇게 넘어갔더니 일 저지른 사람들은 다 그자리에 시간이 되면 더 높게 올라가고
그랬던 곳인데 대기업마인드까지 생겨버렸죠

김태형씨가 블리자드를 까면서 말했던 대기업마인드, 사실은 자아비판이었죠
누군가는 그들을 인간 이하의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이번은 인간다울지 기대가 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ps 제레미린은 이제는 충분히 부활! 했다고도 할수 있을건 같아요 흐흐
The xian
13/01/16 00:21
수정 아이콘
마이클 조던 활약하던 때만큼 NBA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제레미 린이 요즘은 꽤 좋아진 듯 하더군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13/01/15 23:54
수정 아이콘
마재윤이나 김태형이나,
이 업계를 모독했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로 느껴집니다.
13/01/15 23:54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니 저런 일도 있었죠.

한국사회는 여러 모로 [차별]에 대해 너무 무감각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장어의심장
13/01/15 23:54
수정 아이콘
만약 저대로 한다면 전 온게임넷에 대해 다시 무한한 애정을 쏟아줄겁니다.

저대로요

99PKO보고 욕먹어가면서 온게임넷과 MBC게임 을 사랑했던 팬을 지워버리지 않기를..
탑갱좀요
13/01/15 23:57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 온게임넷이 지역드립을 방송에 내보낸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번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염려됩니다. 윗선에서 묵인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되요.
밀가리
13/01/15 23:58
수정 아이콘
아프리카 모 선수 개인방송에서 중국인을 보고 짱깨짱깨거리니 같이하던 로코도코 선수가 정색을 하죠. 인종차별하면 안된다고..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암튼 온게임넷도 대한민국 언론입니다. 언론의 최소한의 소양은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13/01/15 23:59
수정 아이콘
이런 일을 계속해서 보고, 심지어 몇 년이 지났는데 또다시 반복되는걸 보니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첫째로 온게임넷에게 화가 나지만, 둘째로는 일반 팬들조차 곧바로 이야기를 하면서 비판하는 와중에 e스포츠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사이트 대부분이 일절의 말 한마디 없이 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온게임넷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하다 못해 경기 결과는 적으면서 팬들보다 잘못된 점을 먼저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 한 마디 없는 모습이란 예전부터 실망했지만, 이번 사건을 보니 더더욱 한심하네요.(아 인벤이 그나마 올린건 알고 있지만, 인벤을 e스포츠 언론이라 생각을 안 했군요. 이 부분은 정정합니다. 정확히 말해서 인벤과 지금이나마 올렸을지 모를 곳을 제외한 나머지 언론들은 언급한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온게임넷도 도대체 일처리가 얼마나 형편없으면 몇년이 지나도 제자리 걸음일까요? 이도 저도 아닌 핑계나 되면서 잘못 없는 해설이나 캐스터 분들이 사과문이나 올리고 넘어갈 생각인가요? 아니면 그냥 무시할건가요?

제가 읽었던 한 서적의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한 번 속으면 네가 잘못한거다, 두 번 속으면 내가 잘못한거다, 세 번 속으면 우리 모두 잘못한거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미 두 번은 속았네요.(그것도 두 번은 직접 봤네요.) 세 번은 속을 일은 없을겁니다. 사과문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나니와 선수의 사과문처럼 진정성과 책임감이 느껴지고, 정말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 같은 강력한 처벌이 없는 이상에야, 온게임넷을 볼 일은 최소한 저에겐 없을겁니다.
어강됴리
13/01/16 00:01
수정 아이콘
그런데 인벤도 정식으로 E스포츠 뉴스 취재하고 있으며 그에 바탕으로 쓰여지는 기사의 퀄리티도 아주 높습니다.

e스포츠 언론이 아니라 게임사이트 인벤


인벤이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 기반하고 있고 주력서비스도 그쪽이지만 엄연히 취재와 기사작성을 하고 있는곳인데요
위의 설명은 수정 바랍니다.


e스포츠 인벤
http://esports.inven.co.kr/
13/01/16 00:04
수정 아이콘
인벤을 잘 이용하지 않아서 e스포츠 언론으로써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인벤에 사과드리고 싶네요.

다만 먼저 말했듯이 인벤 같이 그나마 이야기를 꺼낸 곳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 잘 알려진 e스포츠 언론이라는 곳이(PGR21에서도 떡하니 바로가기 링크가 걸린 곳들이 말이죠.) 묵묵부답인건 용서가 안 됩니다.
The xian
13/01/16 00:05
수정 아이콘
해당 내용 반영하여 본문 수정하였습니다. 본의아니게 인벤 측에서 e스포츠를 취재하고 있는 것을 잠시 망각한 형국이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더불어 PGR 운영진 분들께서 e스포츠 인벤도 링크에 추가하여 주셨으면 좋겠군요.
kimbilly
13/01/16 08:54
수정 아이콘
링크에 추가 했습니다.
The xian
13/01/16 10:4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스타카토
13/01/16 00:02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하늘연데보라
13/01/16 00:15
수정 아이콘
제레미린 관련건은 기억속에서 잊고 있던 사건이었는데,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네요!
정말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관대함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역시나 늘 한결같이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감자튀김
13/01/16 00:24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13/01/16 01:05
수정 아이콘
그동안 몇 번이나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방송국의 내부 게이트키핑 정비가 전무했다는게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고 봅니다.
지금 온게임넷이 봐야할 곳은 축구계라고 생각합니다. 차별과 뗄 수 없는 곳이요.

단순히 직접 관계자인 PD 이하 책임자들을 처벌하는데 끝내서는 안됩니다.
이번 사태를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기본적인 제작 및 게이트키핑 시스템 정비는 물론이고,
판 구성원들에게도 해당 행위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징벌위원회도 필요합니다.
전혀 극단적이지 않은 예로, 스투판의 장민철이나 롤판의 아주부 같은 경우 저런 지거리를 계속한다면 단호하게 대회 출전정지를 내리는거죠.
소급적용은 불가한다고 쳐도, 스포츠맨쉽은 둘째치고 프로의식도 없는걸 스스로 보여주는 이들에겐 돈도 없다는걸 보여줘야 합니다.
민트가디건
13/01/16 01:1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의견도 마찬가지입니다.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일단 주워담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겠죠
피지알은 매일같이 오지만 다른 곳은 안들어 가본 저는 오늘 비하단어에 대해서 처음 안 단어들이 많네요

개인적으로는 고의성의 유무를 떠나서 철저한 확인 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온게임넷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도 아닌 반복된 이런 말도안되는 실수를 한 것 자체가 방송사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아예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바라고자 하는 것은 문제를 만들어낸 그들이 고의가 정말로 없었다면
사과하고 다시 용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들은 자신들에게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판 역시도 받아들여야할 책임이 생겼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것입니다.
Practice
13/01/16 01:11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이미 나와 있었네요.
엄마를부탁해
13/01/16 02:48
수정 아이콘
저런쪽으로는 확실히 철저하네요.
우리도 차별적인 발언들에 대해서 조금 더 예민해 졌으면 합니다.

당장 왜그러냐 'Chink in the Armor' 라는 말 자체가 관용구라서 쓴 것일 뿐인데 오히려 네가 피해의식 있는거 아니냐?
보다는 적어도 내가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사과한다
수준 정도만 되어도 좋겠네요.
13/01/16 03:31
수정 아이콘
멋진 글이네요. 항상 좋은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Cool Gray
13/01/16 12:0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소는 이미 잃은 셈이니,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좀 고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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