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올린 글인데, 왠지 아까워서 pgr에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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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이야기는 나의 흑역사이기도 하고 관련자들에게 미안한 추억이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에나 할 수 있는 나쁜 짓으로 기록해둔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가서 4학년 시작하자마자 전학을 갔다. 그래서인지, 보통 전학을 가면 반의 끝번호로 배정이 되는데 나는 남자 중 끝번호인 24번
(이는 매우 정확한 기억이다)으로 배정이 되었다. 내 생각에 그때 난 전학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환경을 바꾼다는게 나에게 너무나 두려운 일인데 그땐 용감했었나보다.
다행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같은 반 친구가 7명이나 되어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 떠나고 나 혼자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연락이 안되거나 안하는 친구들이지만, 그때는 너무 친하고 매일 같이 노는 그런 사이였다. 그땐 보습학원이란 것도 없었고, 누군가의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장기를 두거나, 놀이터에서 축구나 야구를 하거나 불꽃놀이를 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어쨌든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여 1학기 학급 임원 선거를 하는데, 나는 누가 어떤 성격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크게 의견을 가지고 투표를 하지는 못했다. 당시 학급 임원은 반장1, 부반장2, 회장1, 부회장2 로 구성되었고, 반장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남자아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부반장과 부회장은 남/여 각각 한명씩으로 되었는데, 이 남녀 부반장이 사태의 핵심이다.
우리반은 1학기에 유독 남녀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학생 비주류와 여학생 주류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여학생 주류는 임원들이 중심이 된 그룹이었는데, 남학생들은 우리가 상당히 차별받는다고 느꼈다. 가령 떠는사람 명단을 적을 때 여자에겐 관대하고 남자에겐 가혹하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느낌이고 그 당시엔 그런걸 객관적으로 판단할 그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실제로 그랬는지 단지 느낌인지 진실을 알 수 없다.) 문제는 남학생 주류들은 여학생 주류들과 대체로 잘 어울렸고 인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크게 반목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이해관계가 없는 남학생 비주류들은 크게 불만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1학기가 끝나고, 이제 2학기가 되었다. 아까 내가 24번이었다는 것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했는데,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내가 전학을 가고 1주일도 안되어서 남학생 중 한 명이 내가 전에 다녔던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래서 남학생이 23명이 되었고, 여학생은 17명이었다. 새로운 임원을 선출해야 했는데 1학기에 반장을 하면 2학기에 반장 선거에 나갈 수 없었다. 남녀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유로 이 선거는 마치 2012년 대선처럼 1:1 성대결로 전개되었고, 남학생측에서 내세운 카드는 1학기 남자 부반장(이하 A)이었고, 여학생측에서 내세운 카드는 1학기 여자 부반장(이하 B)이었다. 사실 A는 여학생들과의 관계가 그런대로 원만했던 남학생 주류였기 때문에 비주류측에서 볼 때 탐탁치 않은 면이 있지만 그래도 비주류에서는 후보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흠.. 이게 바로 "비판적 지지"인가?)
이번 대선이 세대투표 양상으로 전개되었듯이, 우리의 2학기 반장 선거는 철저한 성투표 양상으로 전개될 듯 했다. 따라서 23:17으로 성비에서 앞선 남학생측이 승리할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0:20 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남학생측에서 내부표 단속에 실패했던 것이다. 결국 재투표로 갔지만 결선투표도 아닌 1:1 재투표이니 결과가 달라질 리가 없어 마찬가지로 20:20이 되었다. 세번째 재투표를 했는데 역시 20:20의 팽팽한 결과가 나왔다.
이때 선생님이 잠시 휴식을 선언했고, 나는 어떤 귀신같은 감각을 발휘하여 이탈자 3명을 색출하고 그들의 자백(?)과 다음 재투표에서의 협조 약속을 이끌어내는데에 성공했다.
(난 사실 이 3명이 누군지 지금도 이름을 정확히 기억한다. 어떤 과정으로 알아냈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아마 평소에 미적지근했던 녀석들이 있었다고 분명..크크) 이제 다시 3차 재투표가 실시되면 승리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담임 선생님께서 왠 교칙 같은걸 찾아보시더니
[이런 경우에 생일이 더 빠른 사람이 반장이 된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생일이 더 빠른 사람은 여학생측의 대표 B였다.
(주의 - 사실 이 지점의 기억이 지금 정확하지가 않다. 생일이 늦은 사람이 반장이 되는 교칙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공직선거법에 동점일 경우 연장자가 당선자가 되는 법은 있다. 중요한건 어쨌든 생일 때문에 B가 반장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는 임원을 할 정도의 거물이라면 생일잔치를 꼭 했기 때문에 우리가 A와 B의 생일을 대강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얘기를 하시자마자 패배했음을 알았다.) 나를 비롯한 남학생측은 망연자실하고 억울했지만 선거 결과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이렇게 논란속에 시작된 2학기가 평온할 리 없었다. 교실 곳곳에 갈등과 불신의 씨앗이 싹텄고, 그 때 우린 너무 어렸기에, 아무리 반장이라고 해도 B를 비롯한 여학생 주류 역시 넓은 마음으로 우리를 품어줄 성숙함이 없는게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니깐, 실제 여학생측에서 우리를 차별했다 할지라도 고작 4학년인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급기야 남학생 비주류측은 B의 이름을 따서 "OOO 반대파"라는 외곽 조직을 결성했다. 나 역시 그 조직의 핵심 멤버였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조직은 2학기 내내 대대적인 대여 투쟁활동을 벌였다. 우리는 진심으로 분노했고, 1학기때는 그런대로 여학생들과 어울렸던 남학생 주류들조차 여학생들과 겉으로는 어느정도 거리를 둘 정도였다. 주로 기억나는 활동은 미술 같은 만들기 시간에 방해하기, 여학생 집 앞에 방구탄 테러하기, 만화 주제가 등을 개사하여 B를 비난하는 노래 부르기 등이었다.
(이건 뭐 "Do you hear the people sing"도 아니고 크크) 심지어 컴퓨터조차 흔하지 않던 그 시대에, 우리파의 한 친구는 그 노래의 가사를 프린트까지 해서 아이들과 돌려보는 열심을 내기까지 했다. 나중에 이 종이가 선생님께 발각되기도 했는데 별로 혼내지 않으신것을 봐서 이미 우리의 갈등은 선생님의 선에서 감당이 안되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반의 이런 갈등을 애초에 제지하지 못한 교사의 책무도 무시할 수는 없을것이다.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이런 류의 반 내 편가르기에 대해서 진솔한 대화와 더불어 엄중조치를 했었고, 꽤 효과가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4학년 때 나의 최악의 행동 중 하나가 바로 B의 생일잔치 초대장을 공개적으로 찢어버렸던 것이다. 이건 진짜 인간이 해선 안될 그런 일이었다. 이게 2학기때 벌어진 일인지, 1학기때 벌어진 일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미안하게도 나중에 어느정도 정상적인 이성이라는 것이 생겼던 시절에는 그 아이와 연락이 닿을 길이 없어서 사과하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연이 닿으면 꼭 사과를 하고 싶다. 그 일을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1997년의 해 ㅡ아... IMF로 인해 특별히 추웠던 이 겨울ㅡ 는 자연스레 저물고 우리는 5학년이 되어야 했다. 그러면서 이 조직도 자연스럽게 해체되었고, 나는 B와는 이후 같은 반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함께 투쟁하며 생사를 같이했던 가장 친했던 친구 두 명이 차례로 전학을 갔다. 그렇게 우리의 4학년의 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시절을 이렇게 자세히 기억하는 친구들이 지금도 있을까. 지겹지 않으라고 재미있게 썼고, 그땐 우리도 나름대로 동지의 정을 나누느라 재미가 있었지만, 반에서 패를 갈라 비난을 하고 반목을 일삼은 것이 잘 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지만 비록 흑역사일지언정, 기억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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