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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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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12 22:29
최동원 선수 현역시절에는, 어린시절 삼성 팬이었는지라 좋아하기 힘들었지만,
그 기량에 대해서야 뭐.... 시간이 지나서 이 선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야구 선수로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써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2/09/12 22:34
뭐, 기량에 대해서는 두말이 필요없죠.
한국시리즈 일정이 9일인데 4경기 완투에 1경기 구원등판에 4승. 10일동안 40이닝을 던진거면, 도대체 공은 몇개를 던질걸까요? -_-)?
12/09/12 23:03
한창 민주화 투쟁이 벌어지던 80년대, 후반 훈련하러 가던 도중에 경찰과 대치중이었던 시위대에 참가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kbs에서 방영된 최동원 스페셜에서 들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선수로써도 그렇지만 인간적으로도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모두를 대변하기 위해 선수협회를 만들려고 노력했었고 그 대가는 가혹했죠. 그래서 선수협회 관련해서 벌어지는 삽질들을 볼때마다 참....
12/09/12 22:37
시간이라는게 참으로 무정하게 잘간다는게 벌써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린거군요...
그떄 비고를 듣고 개인적으로 많이 슬퍼하고 그 이후 여러채널에서 최동원이라는 사람의 삶을 되새기는 다큐들을 보면서 최동원을 잊어버리기 싫어서 아둥바둥거렸었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사나이 최동원 잊지않겠습니다
12/09/12 22:46
어디서 그런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 최동원 감독님의 전성기 기량은 프로 때가 아니라, 아마 때였다고 .. 특히나 대학 떄는 연투를 밥먹듯이 하는데 또 나와서 연투를 했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롯데팬으로써 이 글을 다시 보니 가슴 한켠이 찡해지네요 ..
12/09/1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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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한국시리즈는 세계의 어느 나라의 야구역사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기록이며, 또 당시의 에이스 투수의 운명이 어땠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혹사의 역사이기도 하다. ------------------------------------------------------------------------------------- 그 유명한 이나오 사마.. 이나오 가즈히사가 일본 시리즈에서 4승 2패를 기록하며 우승을 했죠... 그리고 84년 한국시리즈의 안타까운 조연들.... 3승을 한 김일융 (의외로 삼성의 3승이 한 투수가 기록 한 건지 모르는 사람이 많더군요)과 한국시리즈에 약한... 김시진 ㅠ
12/09/12 23:12
난카이의 스기우라도 일본시리즈 4승을 홀로 이뤄냈죠.
메이저리그도 찾아보면 엇비슷한게 있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투구수 관리라는게 도입된지가 야구역사에 비춰봤을때는 짧은편이죠.
12/09/12 23:31
아? 있었군요.
그 시절 투수들은 그냥 몸관리고 뭐고 모르고, 그저 절대복종으로 던진게 아닌가...싶네요.... 김일융의 3승은 묻혀버리고 말았죠....
12/09/12 23:46
절대 복종보다는 에이스의 자존심이죠
아마 세경우 모두 공통점이 상대팀보다 전력이 낮다라는 평가속에 치뤄진 시합들이고, 다만 불세출의 에이스가 그 약팀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고생하면 이길 수 있다. 이런 마인드가 굉장했죠. 최동원도 그랬었고, 스기우라도 난카이의 첫 우승이 걸린터라 이악물고 했을테고... 다만 이나오의 경우는 본인의 의지도 강했지만, 감독인 미하라가 요미우리에 앙금이 많아 이나오를 부려먹은 느낌이 없지않아 있네요.
12/09/12 22:49
"그 때 감독님이 그러더라고, 동원아 우짜노...여까지 왔는데...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알겠심더. 마 한 번 해보입시더]"
- 스포츠 2.0 인터뷰 中 이선희, 장효조와 더불어 프로야구가 5년만 더 빨리 탄생했더라면 어땟을까? 의 떡밥의 주인공이시기도 합니다. 본인도 그렇고 주위 반응도 리즈시절이 고등학교 + 대학교 시절이었다고 했으니. 그리고 한국시리즈 4승과 더불어 정말 쩌는 기록이 하나 더있습니다. 81년 실업야구 코리아시리즈 6차전까지 모조리 등판, 1차전 9이닝 3실점 완투 [패] 2차전 7이닝 무실점 (2회부터 구원 등판) [패](이미 1회에 롯데가 5실점한 상황이라 패전은 아니었습니다.) 3차전 6이닝 3실점 (5회부터 구원 등판) [무] 4차전 7이닝 3실점(희대의 기록인 1경기 1승 1세이브를 기록) [승] 5차전 3이닝 무실점(7회 구원 등판)[승](구원등판) 6차전 9이닝 4실점 완투.[승] 코리아시리즈 6경기중 6경기 등판 42 1/3이닝 2승 1패. 특히 4차전땐 선발 7이닝 -> 8회초 1루수로 보직 변경 -> 8회말 2사 만루에서 구원등판 이라는 말도 안되는 모습도 보여줬고. 이때 상대팀이던 육군 경리단의 에이스는 바로 김시진이었죠. 또 1981년 롯데 자이언츠의 324이닝중 206이닝을 최동원이 소화했던 강철체력을 자랑했구요. 살아계실때 롯데에서 배려를 해줬다면 좋았을텐데 돌아가시고 나서 등에 떠밀려 영구결번이라니 그게 참 아쉽습니다.(실제로 롯데 유니폼을 벗고 사직구장 마운드에 올라선게 딱 1번 있었습니다. 2009년 7월 4일 송승준이 2경기 연속 완봉승을 거뒀던 날인데 그때 시구자였죠. 하지만 롯데가 초대한게 아니라 스폰서였던 마구마구에서 초대해서 시구했었다는게 함정. 본인은 롯데를 용서했지만 롯데는 그러지 않았죠. 그게 정말 화가 나는 부분입니다.)
12/09/12 23:32
와우..... 4차전 -_-) 실제로 기록 자체가 저렇게 남아있는건가요?
그럼 그 잠깐 1루에 있을때 나온 투수는 지금으로 따지면 홀드군요 -_-) 승 : 최동원, 홀드 : ---, 세이브 : 최동원 (응?) 그리고, 최동원 감독님이, 꼭 고향팀 감독 해보시고 싶다고 하셨었는데.... 저는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12/09/12 23:34
원래 저 글을 쓸 당시에는, 영구결번도 되어있지 않았고,
많은 장례 절차도 한화측에서 했던 터라서.... 마지막 영정사진 밑의 글귀를. 최동원이라는 그 큰 이름에, 끝내 고향팀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의 영정에 이 글을 올린다. / 이렇게 마무리 했었는데.... 이렇게 적었어도 사실 무방했을 듯 싶군요.
12/09/13 00:37
사족입니다만 승리투수는 세이브투수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이 그때는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라면 1승 1세이브르 한 경기에 올리는 건 불가능합니다만... (세이브 규정 중에 승리투수가 아닐 것이라는 조건이 있죠.) 여하간 (대학 2부리그 야구 같은 곳에서는 의외로 종종 보입니다만) 실업야구 KS에서 저 기록은 정말 대단한 거죠.
12/09/12 23:29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롯데팬은 아니지만 부산 사나이의 상징 최동원 형님은 늘 마음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나저나 프야매는 최동원 형님 카드 실명으로 돌려줄 생각 없을까요. 동생 계정으로 하는 부산경남 지역올스타에 신완수 카드는 볼 때마다 갈아버리고 싶습니다. 언제 최동원으로 돌아올지 몰라서 육성하고는 있는데..
12/09/13 01:18
어릴때 아빠따라 사직구장 가서 최동원이 나오는 날이면 그냥 소름과 함께 온몸에 전율이 쭈르르르르르
야간 경기때 1루관중석에서 보는 최동원의 공은 다른 투수들이 던지면 흰줄로 포수미트까지 공이 갔는데 최동원이 던지면 그게 점처럼 뚝뚝 끊어지면서 포수미트에 퍽! 하고 꽂히는걸 보면서 환호했던 그시절... 최동원이 삼성 간날 저녁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때는 선수협이니 뭐니 하는 영문도 모르고 대체 왜 그랬을까 하고 몇날몇일을 궁금해하기만 했는데... 동원이 형님. 하늘에서 편히 쉬고 계시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살아계실때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보내버린 것을...
12/09/28 11:03
나란 사람을 모르는 사람중에 가장 좋아했던 두분중 한분이시죠. 돌아가셨을때 울기도 많이 했는데..다른 의미겠지만
ACE게시판에 딱 어울리는 분이죠
12/09/28 14:22
환화에서 류현진을 데려간 후 김인식감독은 류현진을 불펜에서 굴릴;;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킬인식이라 불릴만큼 선수를 1~2년 짜내서 성적을 내는데는 능력있는? 감독이지요. 그걸 최동원코치가 류현진은 무조건 선발로 써야 한다고 결사적으로 반대했다고 하죠. 원래 로스터에서도 감독은 뺄 생각이었는데 최동원투코가 강력히 주장해서 넣었다고 합니다. 다른 기록도 그렇지만 통산K/BB 가 2.43 이라는 점이 멋진 선수라 생각하구요. 최동원선수가 한화투코로 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류현진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12/09/28 23:31
예전에 갈마 게시판에 가서 최동원 선수 전성기 시절은 어땠습니까? 하고 질문을 던졌더니 이런 댓글이 기억납니다.
당시에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이야기 했던 노피어(NO FEAR)의 원조라고... 최동원 스페셜 보고 왜 그런말을 했는지 이해를 하겠더라구요... 그리고 송승준 삼연속 완봉의 시작이 바로 SK전에서 1대0으로 이김으로써 시작됐는데 당시 최동원 경기감독관이 파란색 롯데 유니폼 입고 시구를 했는데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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