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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2 23:17
1. 너무 많네요.
2. 부모, 형제. 3. 그런건 내가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 no. 4-2. 신은 믿는다만, 신이 날 도와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2번이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직 죽지는 않고 살고 있다만요.
12/08/12 23:27
3. 용서안단다고 죽을 수는 없자나요
나를 때린다고 나아지는것도 아니고 성숙한 의지, 간절한 동기부여 말고는 나를 바꿀만한게 없으니까 용서를 안할 수 없는 존재지만 용서한다고 깨닫고 변화해서 실천하지도 용서 안한다고 반성하고 뉘우치고 실천하기도 힘든거 같습니다. 4.자책이건 반성이건 뉘우침이건 깨달음이건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던, 어떤 알을 들이대더라도 변화하고 실천하긴 어렵다고 보니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덜 반복하겠지, 같은 실수라도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겠지. 조금이라도 아주 작은 차이라도 생기긴 하겠죠. 그럼 됐다고 봅니다.
12/08/13 00:01
죄책감을 갖게 된다는 것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따라서 죄책감은 내가 줄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는 장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죄책감을 줄여 용서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타인의 경우를 대입해 보는 경우가 아니라 비슷한 상황을 자기가 이겨냈을 경우 정도 겠고요. 나도 타인을 용서할 수 있고 따라서 나 스스로도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기 자신의 의지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신 취지는 그것이 아니겠지만 글에 녹아있는 마인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자신을 옹호할 수 있는 논리로 작용한다는 부분에서 전 좀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12/08/13 00:12
의견 감사드립니다.
잘난듯이 뭔가를 던져보고 싶었던게 아니라, 제 자신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동안에 정리된 생각을 혹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남겨보았습니다. 이 글이 어떠한 상황의 타개책의 왕도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 지셨다면 다 제 글솜씨가 모자란 탓입니다. 그럴 의도가 없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12/08/13 00:37
자책감은 최후의 자기방어기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지만 뭔가가 잘못되어 있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결국엔 내 잘못으로 이 모든 부조리한 현실이 닥쳤다고 생각하는게 가장 에너지 소모가 덜한 심리적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죠. 남에게서 현실이 부조리한 이유를 찾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내 탓이 되어버리면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현실을 설명해 낼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내탓이라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최면이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아가려는 사람 마음의 방어기제인 셈입니다.
용서라는 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그 잘못의 피해 대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용서는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대상에게 가서 용서를 빌어야지 잘못을 한 당사자인 자기 자신에게 자기 자신이 용서를 빈다는 것은 모순이죠. 즉,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는 건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잘못한 것 때문에 자책감을 가진다면 그 누군가에게 가서 용서를 빌어야죠. 자기 자신이 용서를 못한다는 건 자만입니다. 가해자는 용서를 할 자격이 없죠. 그리고 만약 자기 자신이 세운 기준에 자기 자신이 부합하지 못해서 용서 하지 못하는 거라면 그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됩니다. 대부분 종교적, 도덕적 기준에 의해 자책감에 시달릴 확률이 높습니다만.... 그 기준이 그렇게 고귀한지는 뭐, 잘 모르겠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볼 때 결국 자기자신을 용서한다는 건 모순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는 건 자기가 잘못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거나,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기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만큼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린다면 상담 치료를 권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도덕 의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심한 자책감은 일종의 심리적 자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자해와 심리적 자해는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건 용서가 필요한게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죠. 본인이 적극적으로 상담에 응할 의지만 있다면 좋은 경과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12/08/13 03:53
얼마 전 저도 여기에 제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었거든요.
올해 들어 나 자신을 용서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용서하게 되었음에도 비틀어진 것들이 복구되지 않았을 때, 그 상실의 화살을 꺾는 것 역시 못지않게 어렵습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을 더이상 내 가슴으로 쏘지않게 되었을 때, 결국 다른 사람을 겨누게 되더군요.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타인을 용서하는 일보다 아주 조금 더 쉽더군요. 자살충동을 누르는 것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누르는 게 더 어려웠고, 아직도 그렇습니다. 자신이란 단어의 모호성에 속지않으려구요. 결국은 내가 잘못한 사람, 혹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를 용서하길 바라거나, 거꾸로는 그들이 나에게 와서 용서를 구하길 바라는 마음일거라 생각합니다. 저처럼, 정신치료를 받으세요. 자기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용서해야한다는 강박은 활시위를 더 팽팽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하자면, 저나 글쓴 분처럼 자책감에 긴 시간 큰 고통을 받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어요. 사람을 죽인 게 아닌 이상. 모두들 너무도 자기 자신을 쉽게 용서합니다. 역겨울 정도로. 정말, 뻔뻔함에 구역질이 나고 스스로에게 칼질하던 내가 한심해보일 정도로. 인간에겐 스스로를 용서하는 방법보다, 스스로를 문책하고 벌 주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작성자 분께서는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시란 걸 잘 알지만, 누군가가 신의 말을 빌어 스스로를 쉽게 용서해버릴까봐 두렵네요.
12/08/13 07:04
스스로를 문책하는 방법이나 용서하는 방법이나 사실 그다지 다른게 아닌것 같아요.
정말 자기자신을 용서하는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만약 쉽게 용서했다는 뻔뻔함에 구역질나고 내가 한심해보인다면.. 그것은 진심으로 용서한게 아닙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기 너무 힘겨워서 진실을 보지않고 도망친것일뿐이죠.
12/08/13 10:01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 한가지 덧붙히자면요.....
반대로... 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원래부터 신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신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종교인들 중에서도... 자신이 그렇게 의지하고 충성하고 봉사했는데 자신의 환경과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나빠지기만 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지요. 직업 종교인들 조차도 말이지요. 때로는 신과의 화해나, 신을 용서하는 것도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오히려 자신을 용서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울 때도 있구요...
12/08/13 09:55
제가 요즈음 생각하고 있는 주제와 잘 맞아 떨어져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네요.
용서는 한번에 끝나는게 아니라 진행형이죠. 면책이나 사면과는 다릅니다. 누군가를 용서할 때도,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면해주는 것은 사실 쉽습니다. 말 한마디면 끝나거든요. 하지만, 그 감정의 앙금은 끝까지 지워나가야 하죠. 마치 금연자들이 담배를 끊는게 아니라, 평생 흡연을 참는 것 처럼... 자신에 대한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 대해 받아들이고, 자신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평생 지워나가는 겁니다. 어쩌면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냥 덮어주고, 덧칠해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전의 잘못된 자신이 되어서 자신에게 사과하는게 먼저라고 봅니다. 나에게 사과하고 나면 나를 용서하는 것이 한결 쉬워집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게 쉽지가 않아요. 요즈음 제 나름대로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신학자 니부어의 '평온의 기도'의 첫 구절을 소개할께요. 신이시어,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용납하는 '평온'과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키는 '용기'와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나에게 허락하여 주소서.
12/08/23 10:34
나 자신에 대한 용서가 필요할 지금 조금은 더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12/08/23 17:57
어려운 질문이십니다.
저는 자기애 라는건 굉장히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에 이유나 근거가 딱히 필요한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부모님을 사랑합니다만 여기에 대해서 딱히 사랑하는 이유를 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나를 낳아주셔서 사랑한다." 는 논리로 이 부모님께 대한 감정을 설명하는건 (적어도 저에게는) 와닿지가 않습니다. 물론 항상 부모님과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것처럼, 자기혐오에 빠질 때도 있고 오히려 자기혐오에 빠져있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습니다만, 이 모든걸 떠나서 근본적으로 보자면, (저는) 저 자신을 당연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글의 동기는 "내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으로, 나 자신을 한번 바라봐 보는건 어떨까. 나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만큼은 너무나 가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을 "내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랑"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한번 되돌아보는건 어떨까 하는것이지요. 나는 내 가족, 애인등을 이따만큼이나 사랑하고 잘해주고 싶은데, 과연 나에게도 그래왔는가. 만일 그렇지 않아왔다 하면 "아 좀 더 나 자신에게 잘 해줘야겠군"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나는 나 자신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가? 해야 되는가? 라는 식으로의 전개는 저는 어렵습니다. 왜냐면 그냥 저 자신이니까요.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그냥 저 자신을 사랑합니다. 물론 너무나 자주 이 사실을 잊고 홀대합니다만 말이지요. 심지어 이런 부끄러운 글을 pgr에 남길 정도로요. 반면 "자기 자신에게 사랑을 배푸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쁘게 꾸미고, 맛있는걸 먹이고, 아프지 않게 보살펴 주고, 재밌는거 많이 보여주고 알려주면 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 하고픈것과 마찬가지로요. 아, 혹시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존감을 늘리는 부분에 대한 거라면, 이는 아예 다른 얘기가 될꺼라 생각합니다. 어쨋든 부끄러운 답변이었습니다. 여과하여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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