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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10/06/29 14:51:30 |
Name |
헥스밤 |
Subject |
(10)편의점 초딩 |
휴학한 대학원생에게도 방학은 오는가, 라는 자못 진지한 질문과는 별개로 어쨌건 방학이 시작되었고 나는 방학의 초입을 즐기기로 결정했다. 방학의 초입이 넘어가면 '복학 준비'라는 명분과 함께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조교로 참여하게 될 것이 자명하니. 하여 방학의 초입을 즐기는 방법으로 나는 피씨방을 택했다. 여러 선택권-방학을 맞은 친구들과 본격 방학맞이 홀덤 토너먼트를 연다. 만화방에 간다. 토렌트를 떠돈다. 사우스파크를 본다. 등등-중에 하필 피씨방인 이유는, 집 근처에 상당히 쾌적한 피씨방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려 음료수가 무한리필이고, 전 자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열심히 관리한다. wasd가 지워진 키보드라거나 한쪽만 들리는 극좌파/극우파용 헤드셋, 분명히 드론을 클릭했는데 해처리가 찍히는 어이없는 감도의 마우스, 뒤로 확 젖혀지는 수면용 의자, 시끄러운 초딩과 전방수류탄! 등이 없는 쾌적한 피씨방이다. 아바를 열시간 동안 해도 한번 다운되지 않은 컴퓨터는 처음이다.
피씨방에 가는 길에 배가 고프다는 걸 느꼈다. 어제 밤에도 폭풍처럼 마셨고, 몇 가지 인과적 과정을 걸친 이후에 아침에 폭풍처럼 쌌다. 뭘 먹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한솥도시락에 갔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역시 뭐랄까 피씨방에는 컵라면이지, 라는 생각으로 피씨방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기로 결심한다. 좋아, 내친 김에 삼각김밥도 하나 먹어주겠어. 오늘 나의 컨셉은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한 청년백수다. 라고 읊조리며.
역시 컵라면은 싼게 제맛이라는 생각으로 계란라면과 건면세대를 건너뛰고 왕뚜껑을 고른다. 싸고 양많은게 최고다. 가 아니고 오늘의 컨셉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컨셉에 충실하기 위해 부담없는 참치마요네즈를 고른다. 아, 절대 평소의 나는 이런 격떨어지는 취향의 소유자가 아니다. 단지 오늘의 컨셉일 뿐이다. 그 오늘이 오늘 하루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게 아쉽지만. 아무튼 그렇게 사고 돈을 내고 컵라면에 물을 받으려 편의점 구석에 공히 존재하는 컵라면석으로 나는 향한다.
그곳에는 초딩이 있었다.
신조어의 발음들에 기묘할 정도의 비능숙함을 보이는 지도교수의 발음을 차용하자면, 쳐우딩. 정도가 될까. 아무튼 그곳에 초딩이 있었다. 그곳에는 한 초딩이 능숙하지 않은 젓가락질과 능숙한 혀놀림으로 왕뚜껑을 먹고 있었다. 한 손에는 삼각김밥을 들고. 그는 그렇게 컵라면석을 홀로 완전히 점거하고 있었다. 아아, 주택가의 편의점이란! 좁다. 좁다. 좁다! 나는 그의 자리를 침범할 수가 없었다. 하다 못해 학교 정문쪽으로 나갔더라면 편의점은 좀 더 컸을 것이고 그렇다면 컵라면석도 좀 더 넓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초딩 옆에서 능숙한 젓가락질과 능숙하지 않은 혀놀림으로 함께 왕뚜껑을 먹었을 터인데. 아쉽게도 여기는 수많은 옆문 중 하나를 타고 나와 수많은 지류를 거쳐 있는 나의 좁은 자취방이 있는 주택가. 편의점은 세계처럼 좁았다.
잠시 고민했다. 사이드백을 맨 채로. 평범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셔츠와 남색 반바지를 입고, 자못 예리해뵈는 뿔테안경을 쓴. 그러나 약간은 뚱뚱한, 초등학교 4-5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초딩 뒤에서(그에게 6학년의 기품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이 편의점은 컵라면석과 분리된 토토석이 있었다. 음, 저기서 먹으면 알바가 뭐라고 하려나. 별 상관 없다. 만일 알바가 뭐라고 그런다면 나는 완력으로 알바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알바는 약해보였으니. 그렇게 컵라면에 물을 붓는 대신 이런저런 쓸데없는 관찰과 감상을 하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니
왜
대낮에
초딩이
주택가의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고있지?
어딘가 서글픈 일이다. 편의점에서 홀로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는다. 즉, 1. 그는 급하게 밥을 먹어야 하거나, 2. 돈이 없거나, 3,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 물론 1,2,3모두에 해당되는 내가 그를 서글퍼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아니, 굳이 이유가 있다면 하나 정도 있기는 할 것 같다. 나는 대학원생 사회과학도(그것도 휴학한!), 군인과 농어민과 외계인 이하에 존재하는 그런 존재이지만 나의 존재는 명확한 (그리고 잘못된) 선택에 기반한다. 그런데 그는 초딩이다.
비록 내가 1,2,3 모두에 해당되는 대학원생일지라도, 나는 1,2,3중 하나라도, 혹은 그게 아니라 단지 취향의 문제로 홀로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고 있는 초등학생을 안타까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서글픈 세상이 있나. 초등학생이, 애가, 꼬마가, 초딩이, 바빠야 하거나, 돈이 없거나, 밥을 챙겨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최근에 일어난 청소년의 강력범죄들이 머리 속을 주르륵 흝고 지나간다. 초등학생이 혼자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쳐묵해야 되는 세상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아, 슬프도다. 진지하게 슬프고 우울했다. 도시란 세상이란 환경이란 잔인한 곳이다. 초딩조차 홀로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어야 하는 그런 곳이다.
슬픔과 별개로 나는 피씨방에 가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라면을 먹었다. 어느 드라마에선가, 이런 대사가 있었다. 눈물이 아래로 흘러도 밥숫갈은 올라간다고. 세상과 환경이 증오스럽지만 그건 그거고 라면은 라면이다. 나는 컵라면석 맞은편 토토석에서 마음에도 없는 토토 잡지를 훌러덩 넘겨보며 라면을 삼키고 있었고, 그 초딩은 초딩대로 라면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등으로 서로의 외로움과 대화했다. 그리고 그는 홀연 라면을 다 먹고 떠나갔다.
도시란 잔인한 곳이다. 나는 슬픔을 잊은 채 보다 편한 자리에서 라면을 먹기 위해서 먹던 컵라면을 들고 초딩이 있던 컵라면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부터 알바가 토토석에서 라면을 먹는 나를 자꾸 흘겨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랄까, 떠난 사람의 자리를 숨죽이고 이어가는 것 그것이 도시의 문법이다. 이런건 아닌데 아무튼. 초딩이 떠난 자리는 초딩답지 않게 비교적 깔끔했다. 예의를 아는 녀석이구나. 대견하기는. 눈빛으로 그를 칭찬하기 위해 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오래였다. 그리고 나는 컵라면의 각종 부산물들을 컵라면석 아래 있는 휴지통에 버리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이런 미친 X발 X같은 초딩X끼가 라면 쳐먹고 국물 버렸으면 국물통 뚜껑 닫아놔야지
아 X발 내가 이나이에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 먹는것도 설월라카는데
라면빨다가 눈앞 10센치 거리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대면해야겠냐? 뒤질래?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1-2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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