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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29 21:16:29
Name nickyo
Subject 청춘이 지난 삶에 대하여.



젊음은 너무나 순간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청춘을 예찬하였다. 나 역시 내가 지금 지닌 청춘만이 소중했고, 젊음이라는 것은 한정된 것이며 삶의 빛나는 한 순간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기적인 마음은 계속 부풀려지기만 하였다. 모두가 젊음을 아름답게 여기었다.


그런 내가 청춘이 지난 삶에 생각하게 된 것은 훈련이 끝나고 집에 와 맞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서였다.


대한민국의 1950~70년사이에 태어난 어른들은 대부분, 치열하게 생존해야했고 오로지 바쁘게 살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젊음도, 청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아름다운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들께 그것은 반짝이는 사치와도 같았으며 메마른 들녘의 보슬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즐기기에는 허락되지 못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젊음속 부딫힘과 굴곡들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울, 그러나 더 없이 충실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신들이었으리라 믿는다.


우리 부모님은 딱 그 세대였다. 전후에 태어나 빈곤을 뒤집어버린, 근성과 악바리로 계속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세대들. 현대의 대한민국을 짊어졌던 사람들. 100년동안 희망따윈 없을거라던 더글러스 맥아더의 오만한 말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위인들. 뒤집어보면 수 많은 문제를 여전히 해결치 못해 여기저기가 아프지만, 그때보다 분명히 빈곤에서 벗어나게 만든 결과를 일으킨 사람들.


혹자는 말한다, 조국의 애국론이나 자본의 채찍에 의해 탄압으로 이뤄진 피눈물같은 결과물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러나 정작 우리 부모님은 그것에 대해 억울해 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 부모님의 입장이었다면 몇 번이고 이 세상을 살지 못할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님은 조금 나아질 때마다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맞이해야만 했다. IMF도 그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단 한번도 게으르게 살 수 없었지만, 60세를 한 해 앞둔 지금에도 한참 깎여버린 연봉을 받기위해 일한다. 어머니는 이제는 이력서도 받아주지 않을 나이에 여기 저기를 찾아 그동안 살아온 성실함이란 경력 하나로 다시 일자리를 찾았다.



우리 부모님의 청춘에 대해 고민해본적은 없었다. 그들에게도 청춘이 있을거란 막연한 상상이나 영화속 장면들은 떠올랐지만 어떤 현실이었을지에 대해서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청춘을 즐기고, 누리고, 아파하며 살지만 우리 부모님세대는 어떤 청춘을 보냈을까 하고 생각하노라면 씁쓸하다. 그러나 그것을 또한 마냥 씁쓸한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없다. 그것은 일종의 오만일 터였다.


청춘이 지난 삶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쓰라린 일이었다. 나는 곰곰히 지난 대한민국의 현대사 줄기를 짚으며 아버지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까지를 추론해보려 했다. 그것은 곧 치열한 아픔이었고, 소소한 행복이었으며, 바뀌어 가는 것에 대한 희망이었고, 놓을 수 없는 끈기였다. 청춘은 지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야, 우리 부모님은 아니 모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젊음과는 상관없는 영원한 청춘이 있었다.


사실 마음이 아픈 일이다. 나는 부모님이 더 이상 월급과 생계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성실하게 사는 것에 운이 참 지지리도 따라주지 않아 계속 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슬프다. 그런데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웃는다. 청춘이 만약 변해가는 것에 대한 희망과 바뀜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그것을 견디어내는 끈기를 가지는 힘이라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오늘에 청춘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일이다. 나는 부모님의 삶의 1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젊음으로 돌아간다는 오만함을 버리기로 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가는 세계의 문제점은 너무나 많이 산재해있었다. 억울한 일도 많았다. 자본은 무섭고 처절하게 잔인한 것이었으며, 사회와 국가는 아버지 어머니가 흘린 땀과 희생만큼의 것에 적절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 부모님이 괴롭고 아픈 삶을 살았다고 오해하지 않기로 했다. 부모님의 삶은 여전히 청춘이다. 청춘은 지나지 않았다. 어른은 나이를 먹었을 뿐, 포기하지 않았다면 삶은 여전히 달려나간다. 그 조금의 변화에서 세월때문에 점점 지쳐 쳐져가는 두 분의 어깨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청춘에 기대어 변명치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청춘이 지난 삶은 없었다.
희망과 변화, 인내와 웃음을 동반하며 견디는 사람들에게
청춘은 젊음과는 상관없이 참 잘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록 젊음은 갖고 있었으나 진짜 청춘을 알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부모님의 등 뒤에서 무언가를 배워간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0-0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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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9 21:31
수정 아이콘
아버지를 이해하며 제가 어른이 된 걸 깨달을 때가 많아집니다. 군 생활은 할만하신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남들과 비교해볼 생각이 없었기에 제가 이른지 느린지 모르겠으나, 부모님의 청춘과 젊음의 시절에 대해 고민해본건 중학교쯤이였네요.
그 때 새로 온 여 선생님의 성격이 똑 저희 어머니를 닮아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 우리 어머니가 젊었을 땐 저랬을까?"하며 얼핏 생각해보게 된 이후로, 꽤 많은 세상과 시간들 속에서 그 흔적을 찾으려 노력했고
고등학생이 되고나서야 당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지요. 많은 걸 깨닫고 또 느끼며,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11/09/29 23:03
수정 아이콘
부모님 모두 31년생이시고 20대에 처절한 전쟁을 경험하셨고 저는 60년대 태어났습니다만 지난 시절을 미화하신 부분도 많습니다. 부모님도 아름다운 청춘을 보내셨고 저 역시 멋진 청춘을 보낸 경험을 갖고 살아갑니다.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힘들게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20대를 낭만도 없는 캠퍼스에서 취업스펙을 맞추기 위해 아둥바둥하면서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이 속도를 맞춰가느라 다들 어느정도 미쳐가는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답니다. 50년대 60년대 열심히만 일한다면 적어도 중산층 이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젊은 분들 힘내시고 청춘에 대한 고민은 작금의 젊은이들이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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