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9/01/09 18:09:09
Name 피터피터
Subject (09)어제의 MSL의 조지명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메세지...
조지명식은 일종의 영화제와 같은 성격을 가집니다. 영화제 자체로 영화의 본질적인 내용을 업그레이드 시킬수는 없지만, 대신 영화인들의 교류를 통해 미래의 영화에 영감을 불어넣고 더 폭넓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해본다면, 조지명식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요즘 MSL의 조지명식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재미도 물론 큰 몫을 하겠지만, 무엇보다 선수들간의 스토리 즉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스타판에서 올드들이 한꺼번에 퇴장하면서 스타크래프트는 경기의 질은 높아졌지만, 대신 선수들의 스토리는 많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과거 선수들의 매치가 빅매치가 되는 이유는 실력과 실력의 충돌도 물론 큰 요소로 작용했지만, 그들만의 스토리가 가지는 흥미가 더 큰 요소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당장 내일 T1의 임요환과 공군의 홍진호가 경기를 하게 된다면 이 경기는 얼마만큼의 관심을 끌어모을까요? 그리고 그 관심은 그들의 실력에 의해 형성되는걸까요? 아니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성에 의해 형성이 되는 걸까요?

MSL의 조지명식은 갈등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회자들이 계속 6룡, 6룡하면서 지금의 강자들을 도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중에 용자 한명이 튀어나와 적절한 수위에서 까는 멘트를 날려주면 다시 사회자들이 달려들어서 하나의 스토리 라인을 형성해 버립니다. 자! 어제의 조지명식이 없었다면 박문기 vs 송병구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하지만 이제 박문기 vs 6룡은 하나의 스토리가 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만약 박문기가 6룡 중 2-3명만 쓰러뜨리게 된다면, 기존의 플토전 강자 박성준보다 더 호응을 받고 분위기가 업될 떡밥이 어제 조지명식을 통해 투하가 된 것입니다.

엄재경 해설위원은 어느프로에선가 나와서 조지명식은 그저 애피타이저일 뿐이므로, 조지명식만 너무 따로 놓고 호불호를 따지는 것은 리그전체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라는 논조의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스틸드래프트 방식의 장점이 드러나면서 저는 엄재경 해설위원의 조지명식에 대한 해석법이 너무 과거에 얽매여 있는 생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엄재경 해설 위원은 스타에서 스토리가 빠지면 이 스타판이라는 것이 얼마나 밍밍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잘 아실겁니다. 그러므로 엄재경 해설 스스로 선수들의 포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선수들이 치고 나오는 이 스타판에서 엄재경 해설 혼자의 힘으로 이 모든 선수들을 포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 분명합니다.

조지명식은 스타의 선수와 선수들이 만나는 장이며, 선수와 팬들이 만나는 장이고, 팬과 팬들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의 갈등은 잘만 이용하면 꺼져가는 스타의 생명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원천입니다. 지금의 스타판에서 부족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스토리입니다. MSL의 조지명식은 그런 스타판에 인위적으로 스토리를 쏟아붇고 있습니다. 선수들간에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유발시킵니다. 박태민과 마재윤의 갈등, 마재윤과 이성은 그리고 진영수의 신경전, 이제동과 이성은의 PSP 동맹, 그리고 이어지는 4인갈등의 증폭... 박문기와 6룡의 대립 등, 이 모든 것은 1회성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선수들의 노력에 의해 이것은 얼마든지 더 큰 스토리라인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고 그런것들이 스타의 게임성에 조금은 문외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스타판으로 진입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스틸드래프트는 선수들이 서로 서로 엮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았습니다. 이윤열이 자신의 지명권을 가지고 신상문과 박문기선수를 이어준 것을 계기로 박문기선수는 일약 '문기신'이 되었고, 6룡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한 선수를 공격할 수 있는 연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김창희는 어느새 '버그'를 넘어선 '박쥐' '안될놈'이라는 앞으로의 활용 가능한 악역의 이미지가 많아졌고 (스타가 드라마라면 주인공을 받쳐줄 악역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프로레슬링을 봐도 무관심보다는 지탄받는 악역이 주가를 올리기가 쉽습니다.) 팬들은 서로 서로의 이익과 손해에따라 순간 순간 호응과 비판을 쏟아내며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어대고 있습니다.

스틸드래프트는 조지명식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그 순간까지 끝없이 서로를 자극하고 자기와 성향이 맞지 않는 선수들끼리의 갈등을 더욱 부풀릴 수 있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토리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끌려 사람들은 그들의 매치에 더욱 열광하게 됩니다. 스타를 그냥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만 이해하고 바라보는 매니아적인 사람들은 사람보다 경기, 경기 중에서도 밸런스에 열을 올리며 그곳에 집중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E-Sport는 단순히 전략 시뮬레이션이 아닌 엔터테인먼트라는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요소가 라이트 유저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구요.

그렇다면, 조지명식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법을 가지고 있는 MSL, OSL 중 어느것이 시대정신을 더 잘 반영하고 있는지는 확연하다고 느껴지고, 온게임넷도 무언가를 분명히 하기는 해야할 것이라고 저는 판단해봅니다. MSL이 지금의 조지명식을 가지기까지 그리고 온게임넷의 스타리그의 명성을 따라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는지를 생각해본다면, 1인자의 자리란 그냥 안주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지킬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전통은 형식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통하는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닌가 한번 생각해봅니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9-12 03:27)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모모리
09/01/09 18:14
수정 아이콘
멋진 글입니다.
09/01/09 18:15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09/01/09 18:20
수정 아이콘
마지막 문장이 멋지네요.

온겜 입장에서 '이거 뭔가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 라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도 같군요.
원더걸스
09/01/09 18:23
수정 아이콘
엠겜은 엄옹처럼 포장(?)을 잘 하지 못했는데.. 조지명식을 계기로 뭔가 스토리를 짜는데 한결 수월해 진 느낌;;

온겜은 뭐.. 일단 8강대진만 성립되면.. 엄옹께서 알아서 적절~~하게.. 포장해주시니... 크크

온겜도 조지명식에서 분위기좀 살렸으면 좋겠네요...
머신테란 윤얄
09/01/09 18:24
수정 아이콘
멋진 글입니다.(2)
09/01/09 18:25
수정 아이콘
저도 생방을 보진 못했지만,
올드만 스토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느껴버렸습니다.

MSL 조지명식 완전 호감입니다.
더불어 박문기 선수도...^^
09/01/09 18:25
수정 아이콘
장문은 잘 읽지 않는데 순식간에 읽어내렸네요.
공감합니다. 추천 한 방 날리고 갑니다~
Art Brut
09/01/09 18:26
수정 아이콘
추게로
Champagne Supernova
09/01/09 18:27
수정 아이콘
추게로(2)
얼음날개
09/01/09 18:27
수정 아이콘
어제 조지명식은 정말 재미있었지요.
갑시다가요
09/01/09 18:42
수정 아이콘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정말 멋지게 해주시네요! 문장력이 부족해 역시 보충해주시는 분이 나올꺼라 믿었는데 추천입니다~
온게임넷 제작진은 어제 많은 고민했을 겁니다. 이거 정말 뭔가 조치가 필요하겠다... 하고요. 하지만 어떤변화를 줄지...
기대해봅니다.
리콜한방
09/01/09 18:59
수정 아이콘
정말 오랜만에 겜게글을 첨부터 끝까지 읽었네요. 좋은글 감사하고 추천드립니다.
제가 하고 싶은말들이 고대로 여기 게시물에 들어가있네요.

새로운 인물이, 그야말로 하룻밤에 스타가 되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앞으로 다른 선수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것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09/01/09 19:1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헌데 굳이 비교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글 쓴분의 선의의 의도는 충분히 느껴지지만
뭔가 오해의 소지도 있을 수 있고 여러가지 요소를 대상을 바꿔서 투영했을시
온겜도 혁신이 없었던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트렌드를 이끄는 역할도 많이 했구요.

여튼 어제 조지명식은 정말 대박이었어요.
윗분 말씀대로 온겜에서 깊은 고뇌에 빠질 것 같습니다.
킹이바
09/01/09 19:22
수정 아이콘
근데.. 스타리그나 MSL관계자분들도 피지알 자주 오시나요? ;;
스타리그 스탭들께서 이 글 좀 보셨으면.. ^ ^ 추게로~
아레스
09/01/09 19:28
수정 아이콘
저도 엄재경해설에 대해 그런생각을 했었는데..
요즘 온게임넷은 흐름에 뒤쳐진다는 느낌을 계속 주고있습니다..
과감하게 엄재경-김도형 라인에 변화를 주는것이 어떨지하는 생각까지하게되니 말입니다..
라울리스타
09/01/09 19:50
수정 아이콘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글로 이렇게 써주셨군요. 추천합니다.

곰TV MSL S2의 진영수, 강구열, 김창희, 임동혁 선수의 조.

당시만해도 진영수 선수는 그저 뜨기 시작하는 신예 테란 중 하나였으며, 나머지 3명은 첫 메이저무대 진출이었습니다. 스틸 드래프트의 조지명식이 없었다면, 저 4명이 뜨거운 관심을 갖기는 힘들었겠죠.

또한 무려 32강인데다가, 원데잇 듀얼 방식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하부리그' 취급 당할수도 있는 경기들을, '조 지명식 - 스토리'이란 양념을 첨가함으로써 '메이저 대회' 로 색칠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최근 무관심속에서 치러지는 바투 스타리그의 36강을 생각하면, 온게임넷 쪽에서도 조지명식에 대한 재고가 필수적이라 봅니다.
09/01/09 19:52
수정 아이콘
싸이월드 동영상 가면 박문기선수 msl 조지명식 동영상 떳어요
09/01/09 20:18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 봤습니다.
핫타이크
09/01/09 20:52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 같아요~ 읽는데 한번의 막힘없이 쭈욱~ 읽어내렸네요.
추게로~!
09/01/09 20:58
수정 아이콘
인디님// 본인 동영상에 본인이 베플 이죠
Vonnegut
09/01/09 22:07
수정 아이콘
공감가는 좋은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VerseMan
09/01/09 23:00
수정 아이콘
글진짜 잘쓰시네요 매우 공감합니다

어제같은 조지명식은 스틸드레프트 방식에서만 나올수있죠
09/01/09 23:41
수정 아이콘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네요. 좋은글 잘 봤습니다.!
Ihateoov
09/01/10 00:05
수정 아이콘
정말.. 이렇게 가슴에 확 와닿는 글은 김연우님의 글을 빼고 처음인듯..
09/01/10 00:50
수정 아이콘
와~~정말 제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겨 놓으신듯하네요..
공감가는 좋은 글입니다.. ^^
王天君
09/01/10 00:59
수정 아이콘
와. 너무 잘 쓰셨네요. 영화제라는 부분에서 완전 공감했습니다!!!
그렇지요. 조지명식은 스토리를 재생산하는 동시에 게임무대의 권위를 올려주고, 팬들에게는 여러 즐길거리를 선사하는 하나의 축제인 셈이죠.
끄덕끄덕 하면서 추천 꾸욱!!
So..So..
09/01/10 12:15
수정 아이콘
추게로(3)
폭주유모차
09/01/10 18:47
수정 아이콘
그냥 아무말없이 추게로.....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444 도서리뷰 -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46] 雲庭 꿈꾸는구보1809 22/02/19 1809
3443 (번역) 악마나 신을 법적으로 고소할 수 없는 이유 [5] Farce1616 22/02/19 1616
3442 F/A-18C를 만들어 봅시다. [13] 한국화약주식회사1496 22/02/17 1496
3441 해외직구대행 1년차 잡설 [33] 이러다가는다죽어1753 22/02/14 1753
3440 [슬램덩크 이야기]내 마음속 최고의 디펜서 허태환!! [73] BK_Zju1512 22/02/13 1512
3439 관심사 연표를 공유합니다(문학, 영화, 철학, 음악, 미술, 건축 등) [23] Fig.11816 22/02/10 1816
3438 [잡담] 과학상자 3호 [25] 언뜻 유재석1695 22/02/08 1695
3437 술 먹고나서 쓰는 잡설 [35] 푸끆이1581 22/02/06 1581
3436 배철수의 음악캠프 30주년 특별기획 - 배캠이 사랑한 음악 100(1) [18] 김치찌개1422 22/02/05 1422
3435 [성경이야기]모세의 죽음과 다음 지도자 [11] BK_Zju1127 22/01/17 1127
3434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작은 라팔을 만들어 봅니다 [28] 한국화약주식회사2247 22/02/04 2247
3433 어떻게 국내의 해양플랜트 업계는 망했는가? [30] antidote2458 22/02/04 2458
3432 [테크 히스토리] 22kg → 1kg 다이어트 성공기 / 노트북의 역사 [22] Fig.11977 22/02/04 1977
3431 기계공학과는 어쩌다 취업이 어려워졌는가? - 14학번 기계공학도의 관점에서 [68] 새강이2207 22/02/04 2207
3430 [성경이야기]솔직히 이집트 사람 입장에서 억울하지 않나? [25] BK_Zju7819 21/01/05 7819
3429 [스포]누가 좀 시원하게 까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우리 학교는 [53] ipa3451 22/02/02 3451
3428 남산에서 바라본 사계절 [38] 及時雨1949 22/02/01 1949
3427 글 잘 쓰는 법 [24] 구텐베르크3049 22/01/28 3049
3426 [끄적끄적] 3살 아이는 티라노를 좋아한다. [35] 구준표보다홍준표2799 22/01/28 2799
3425 [성경이야기]지도자 훈련을 받는 요셉 [9] BK_Zju4108 20/12/22 4108
3424 [역사] 붕어빵 꼬리에 팥이 있어야할까? / 붕어빵의 역사 [30] Fig.11904 22/01/17 1904
3423 2년 간의 방송대 졸업 분투기 및 약간의 가이드 [32] Dr. ShuRA2058 22/01/16 2058
3422 상나라의 인신공양을 알아봅시다 [44] 식별2310 22/01/16 231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