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유디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몇년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유디트 관련 포스트가 생각나서 들춰보다가 좀 뜬금없긴하지만 PGR에도 한번 올려보자 싶어 대폭 수정을 해서 써봤습니다.
아마도 유디트의 이야기나 그림은 한두번쯤 접해보신 분들도 꽤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서양미술사에서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해왔던 소재였던 유디트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 작품인지 모르시는 분들이나, 하나의 그림이 예술가에 따라 어떤식으로 변주되었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정보전달의 목적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제 주관적인 감상보다는 상당부분은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어 편집해서 썼습니다.
글도 있지만 그림이 많이 들어가서 스크롤의 압박이 약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혹시나 해서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해서 유디트가 서양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쯤 되는건 절대 아닙니다. 신화나 성서를 소재로한 수많은 작품들중 일부일뿐입니다. 그냥 시간 여유가 있으시면 그림과 함께 심심풀이로 보세요.
본문에서는 편의상 경어체를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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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구약성서]의
[유디트서]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기원전 2세기경 홀로페르네스를 대장으로 하는 앗시리아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베툴리아를 점령하고 근방의 예루살렘으로 진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젊고 아름다우며 신앙심이 깊던 유디트라는 여인은 남편이 죽어 상중에 있었는데, 아름답게 치장한 후 하녀를 데리고 적군의 기지로 들어갔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디트에게 반하여 저녁만찬에 초대하였고, 유디트는 그녀를 탐하던 홀로페르네스에게 술을 권하여 만취하게 한후 그가 잠든 사이 목을 쳐버렸다. 유디트는 적장의 목을 음식 바구니에 넣고 하녀와 함께 그곳을 빠져나와 그 목을 베툴리아 성벽에 매달았다. 다음날 그 장면을 본 앗시리아 군대는 서둘러 퇴각하였고 유디트는 위험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하였다. 이
[유디트서]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때 새로운 성서에서 제외하였다. 이는 그 어떤 기록에도 베툴리아나 홀로페르네스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었기에 유디트는 유대인을, 베툴리아는 여호와의 집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유디트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많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생산하였는데 , 여성화가인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와 카라바죠, 틴토레토, 클림트를 비롯한 그외 여러 남성화가들의 유디트를비교해보자.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 1652)의 유디트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612-21, Oil on canvas, 199 x 162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미술사에서의 페미니즘을 담론을 끌어낸 주인공이다. 혁신적인 바로크 화가였던 카라바조의 추종자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딸로 로마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그 친구인 아고스티노 타시에게서 그림을 배웠는데, 처음에는 카라바조의 화풍을 서정적으로 해석한 아버지의 그림과 거의 비슷했다. 23세에 이미 피렌체의 아카데미 회원이 되어 대군주의 후원을 받는 화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녀의아버지가 음영법을 그만둔 뒤에도 여전히 카라바조의 극단적인 명암법을 사용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보다 더 빛나는 색채를 사용했다. 열아홉에 타시에게 강간당한 사건은 그녀의 예술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부녀간 표절시비를 둘러싼 불화, 후원자 남성들과의 소문, 사생아의 출산 등 파란만장한 삶을살았다.
애국여걸인 유디트는 서양미술사에서 오랫동안 비중있는 소재로 무수히 다루어져왔는데, 남성화가들은그녀를 감각적이거나 혹은 성경에서 강조하는 선하고 겸손한 덕의 상징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는 남성의 성적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근육질의 에너지 넘치는 여전사는 예전의 서양미술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여성상이며,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남성을 압도한다.
“숱이 많은 머리칼과 이를 드러낸 그녀의 얼굴을 보라. 거기에는 성적 매력이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선정성을 암시하려는 어떤 몸짓도 없다. 게다가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이상화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지도않다. 그녀의 얼굴을 보라. 힘을 주어 앙다문 입술, 찌푸린 양미간, 거기에서 드러나는 곤두선 신경. 여기서 우리는 한 여성으로서 젠틸레스키의 자기 주장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몸종 아브라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다른 그림들에선 아브라가 단순한 협조자로 나타나곤 한다. 게다가 대게 아브라는 늙은 노파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에서 아브라는 같은 또래의 젊은 여인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여기서 그녀는 단순 협조자가 아니라 적극 가담자다. 두 여인은 공범인 것이다.“
:조이한&진중권,
[천천히 그림읽기] p184
-카라바죠(Caravaggio 1573∼1610)의 유디트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598, Oil on canvas, 145 x 195 cm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카라바조는 죽음과의 싸움에서 퍼득거리며 고통스럽게 외치는 홀로페르네스를 묘사함으로써 죽어가는 남자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연민은 결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여인인 유디트의 모습으로 더욱 강조된다. 그녀는 일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무기를 다루는 데는 매우 서투른 듯하며 겁먹고 찌푸린 얼굴이다. 칼을 쥔 손이 너무 굳어 목에서 칼을 빼내는 데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 있다. 카라바조는 이 같은 모습을 의도적으로 창출해 냈다.
그러나 무기에 서툰 여인은 유혹으로 한 남자를 살해할 수 있었다. 이는 화가가 여인을 젊고 아름답게 묘사한 데서 알 수 있다. 홀로페르네스는 그 같은 여인의 모습에 유혹되어 결국 화를 입었다.
카라바조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그 옆에 주름이 가득한 늙은 하녀를 그렸다.
젠틸레스키의 그림은 그와 달리 매우 힘있고 독립적인 여인상을 그렸다.
그녀가 그린 유디트는 더 이상 젊고 유혹적이며 연약해보이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작심하고 힘있게, 그러나 단숨에 해지운다. 그녀는 칼 다루는 법도 아는 듯 , 매우 빠른 동작으로 일을 해치운다. 그 옆에서 유디트를 돕는 젊은 하녀는 홀로페르네스의 얼굴과 마주하고 있다. 홀로페르네스는 주먹을 쳐들어 저항하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세 주인공의 얼굴은 삼각형을 이루는데, 그들의 여섯 팔이 그 삼각형 안에서 서로 교차하고 있다. 그들은 힘을 다해 싸우지만 결국 여인의 능력이 남자의 저항을 물리쳤다. 이러한 힘이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빠져 있다. 남자를 폭행자로서가 아니라 유혹의 제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 수잔나 파르취,
[당신의 미술관2]에서 편집
-틴토레토의(TINTORETTO1518-1594)유디트
Judith and Holofernes
1550, Oil on canvas, 188 x 251 cm
Museo del Prado, Madrid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틴토레토가 그린 그림에서의 도저히 살인을 할 수 없을 듯 우아한 공주와 얼마나 다른가.
옷차림 또한 대조적이다. 남자의 목을 베기도 전에 자신의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질 것 같은 공주와 달리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여주인공의 용맹스런 행위가 돋보이는 절제된 옷차림을 하고 있다.
: 최영미,
[화가의 우연한 시선]에서 편집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의 유디트
Judith I
1901, oil on canvas, 84x42 cm
Österreichische Galerie, Vienna.
Udith II
1909, oil on canvas, 178x46 cm
Galleria d'Arte Moderna, Venice
빈 분리파의 창시자이며 당대의 그 어떤 예술가보다 예민한 눈으로 여성의 존재를, 또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여성성의 존재를 보았던 클림트의 붓끝에서 유디트는 몽롱한 요부로 되살아 났다. 클림트는 이 이야기의 다른 어떤 측면보다도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호릴 수 있었다는 데 주목했다. 남자를 호리는 여자. 그것은 클림트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적 과제였다.
유디트1과 유디트 2를 보면, 모두 주인공의 눈동자가 풀려있다. 그리고 앞가슴도 공통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다.
온몸으로 자신의 에로티시즘을 발산하는 여인. 게다가 그녀의 손에 들린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적의 것이라기 보다는 연인의 머리 같다. 그 머리를 잡고 있는 손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고, 그 손으로 부터 일종의 끈끈한 애정마저 흘러나와 화면 전반에 기괴한 분위기를 더한다. 그러니까 마치 사체애 환자처럼 유디트는 죽은 적장의 머리를 애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남자를 죽음으로 이끄는 요부는 교미 후 수놈을 잡아먹는 사마귀의 이미지와 쉽게 오버랩 된다. 수놈은 자신이 희생제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알면서도 생식본능에 이끌려 암놈에게 다가갈 수 밖에 없다. 그 같은 숙명의 주재자로서 암놈은 그 당위와 정당성을 자신의 어머니됨으로부터 찾는다.
클림트의 그림의 특징인 요부로부터의 어머니의 모습을 엿보게 되는 부분이다.
이같은 측면 외에, 클림트의 그림이 나온 시기와 맞물리는 현대사회의 변동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해보자. 자유주의적 에고의 흔들림을 '이성=남성'이라는 개념의 흔들림이란 면에서 보면 바야흐로 여성이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남성과 대등한 인격적 존재로 인정받기 시작한 현실의 이미지가 클림트의 그림에는 자연스럽게 부각되어 있다.
과거에는 일부에 불과했던 이 요부들, 혹은 마녀들은 종교적 사회적으로 철저히 통제할 수 있었다. 그같은 통제를 통해 바람직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여성들이 요부다. 그들 모두를 재판할 재판소나 그들 모두를 가둘 감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히 남성은 일대일로 여성을 상대해야 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바로 요부의 손에 남자의 잘린 머리가 들려있는 상황이다.
클림트의 그림은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의 힘, 그 잠재력에 대한 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 이주헌,
[클림트,에로티시즘의 횃불로 밝힌 시대정신]에서 편집
“카라바조와 젠틸레스키는 성서에 나오는 사건, 즉 유디트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클림트는 사건이 아니라 유디트의 상태에 주목했고, 그것이 심리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그 상태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그가 매료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그 여자 유디트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유디트를 역사와 종교적 해석에서 자유롭게 했음을 뜻한다. 그렇지만 유디트에게서 그녀의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신과 민족을 빼앗으면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
성서의 이야기만으로도 유디트는 그 존재 자체가 스캔들감이다.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능동적이고 독자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여 남성 중의 남성이라 할 수 있는 강한 장군을 정복하고 죽인 여자. 이런 유디트의 전복성을 클림트는 성적인 의미로만 한정짓고 단순화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쾌락만을 위해 남자의 목 혹은 그 목이 상징하고 있는 성기를 자르는 가학적인 이미지뿐이다. 19c말, 대다수 예술가들을 미치게 만들었던 팜므파탈로 새롭게 태어난 유디트는 분명 클림트가 생각하는 ‘여성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 신성림,
[클림트, 황금빛 유혹] p38~39
“그녀는 남자의 목을 손에 든 순간에도 후회나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는다. 아니 그녀의 몽롱한 눈은 도리어 자신을 잊을 정도로 강한 쾌감을 거리낌없이 표출하고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펄펄 끓는 피에 데일 것 같은 여인. 단 한번의 눈길로도 보는 이를 중독시킬 것 같다.”
: 신성림,
[클림트, 황금빛 유혹] p39
-살로메
유디트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세례 요한의 목을 잘리게 만든 장본인인 살로메와 많이들 혼동되어왔다. 대표적으로 클림트의 유디트는 1905년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예술가동맹2차 전시회에서
[살로메]라는 제목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살로메는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중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설명하는 부분에 등장하는데 원래 이름이 밝혀져 있지는 않았으나 유대의 역사학자 요제프스의
[유대 고사기(古事記)]에서 살로메라 적고 있다.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았는데 세례자 요한이 이를 비난해왔고, 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살로메는 요한을 제거하려는 어머니 헤로디아의 사주대로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추었고 살로메의 춤을 보기위해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준다고 약속한 헤롯왕은 살로메의 요청대로 요한의 목을 베고야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일화는 매우 흥미를 끌어 많은 회화가 탄생했고, O.와일드의 시(詩), R.슈트라우스의 오페라(1905) 등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다.
: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85853 에서 참조
한쪽은 더없이 숭고한 애국 여성. 다른 한쪽은 타락한 팜므파탈의 대명사. 극단의 양쪽에 서있는 두 캐릭터가 혼동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 예술가들에 의해 성적 매력이 추가된 유디트는 왜 살로메와 혼동되어야 하는지, 여성의 숭고함은 성적 매력과 공존할 수 없는지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따로 토론해 볼만한 주제일듯 싶다.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포장된 여성의 이미지와 여성의 주체적 시선으로 직시하는 여성의 이미지의 차이는 젠틸레스키의 그림과 지금까지 살펴본 남성 화가들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어느정도 답이 나오리라 생각된다.
Aubrey Vincent BEARDSLEY
오스카 와일드
[살로메] 삽화
Franz von Stuck
Salomé,
1906, oil on canvas, Lenbachhaus, Munich.
BERRUGUETE, Alonso
Salome
1512-16, Oil on wood, 88 x 71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그 외 여러 남성화가들의 유디트
BOTTICELLI, Sandro
The Return of Judith to Bethulia
c. 1472, Oil on panel, 31 x 24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봄],
[비너스의 탄생],
[수태고지]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인 산트로 보티첼리의 그림이다.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Judith and Holofernes
c. 1509, Fresco, 570 x 970 cm
Cappella Sistina, Vatican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화이다.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장식할 그림을 그리라는 명령을 받고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천장에 천지창조를 중심으로 한 그림을 그렸다. 천장의 수평면은 9등분 되었는데 제단 쪽에서부터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전개했다. 미켈란젤로는 입구에 있는
[술취한 노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9개의 장면을 8개월 후에 완성했다. 1910년부터 9개의 그림 주변을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7명, 이방의 예언자인 무녀 5명, 그리고 8개의 삼각 부분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선조들, 그리고 천장 사각의 모서리에는 이스라엘을 구한 성인을 그렸다. 유디트는 이스라엘을 구한 성인중 한사람으로 그려졌다.
GIORGIONE
Judith
c. 1504, Oil on canvas, trasferred from panel, 144 x 66,5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전원의 합주]로 유명한 르네상스 최성기의 베네치아파 화가 조르지오네의 그림이다.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발로 밟고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ALLORI, Cristofano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1613, Oil on canvas, 139 x 116 cm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크리스토파노 알로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의 부인과 어머니를 유디트와 하녀의 모델로 하였고,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라고 한다.
RUBENS, Pieter Pauwel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c. 1616, Oil on canvas, 120 x 111 cm
Herzog Ulrich Anton-Museum, Braunschweig
신화와 성서에서 많은 모티브를 취했던 루벤스가 유디트같은 다이나믹한 소재를 놓쳤을리 없다.
TIZIANO Vecellio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c. 1515,Oil on canvas, 89,5 x 73 cm
Galleria Doria-Pamphili, Rome
베네치아파 화가의 정점에 올라섰으며 바로크 초기의 전환점을 이루었던 티치아노의 작품이다. 이 작품도 살로메와 혼동되고 있다.
DONATELLO
Judith and Holofernes
1455-60, Bronze, height: 236 cm
Palazzo Vecchio, Florence
르네상스 초기의 대표적 조각가인 도나텔로의 작품.
MASSYS, Jan
Judith
Oil on panel, 115 x 80,5 cm
Koninklijk Museum voor Schone Kunsten, Antwerp
PIAZZETTA, Giovanni Battista
Judith and Holofernes
c. 1745, Oil on canvas, 197 x 186 cm
Scuola Grande dei Carmini, Venice
바로크적인 강한 명암 표현에서 경쾌한 장식적 표현으로 전환하였던 이탈리아의 화가 피아체타(1682~1754)의 작품.
Franz von Stuck (1863-1928)
Judith and Holofernes
Oil on canvas, 1926, Private collection
BAGLIONE, Giovanni
Judith and the Head of Holofernes
1608, Oil on canvas, Galleria Borghese, Rome
VALENTIN DE BOULOGNE
Judith and Holofernes
c. 1626, Oil on canvas, 106 x 141 cm
National Museum of Fine Arts, La Valletta
MANTEGNA, Andrea
Judith and Holofernes
1495, Egg-tempera on wood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FURINI, Francesco
Judith and Holofernes
1636,Oil on canvas, 116 x 151 cm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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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억압의 상징, 당시 주변국들을 힘으로 짓누르던 앗시리아의 대장, 그야말로 테스토스테론이 넘쳐흐르는 홀로페르네스.
굴종을 강요당하는 약소국 이스라엘에서도 순종과 정조를 미덕으로 알던 연약한 여인.
누가 보아도 상대가 안되는 게임입니다.
이 대결의 주인공을 아름답고 연약한 여성이 매혹적인 몸으로 남성을 꾀어내는 이미지가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당당히 승리를 얻어낸 새로운 유디트로 탄생시킨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마치 닭을 잡기 위해 목을 쳐내듯 팔을 걷어붙이고 강단있게 칼을 사용하는 모습이나 적장과 맏붙어 싸워도 이길것 같은 우람하고 억세보이기까지 하는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행동하는 여성, 투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도서들중
[당신의 미술관]이나
[화가의 우연한 시선]이나
[천천히 그림읽기]는 유디트나 젠틸레스키 때문이 아니고 서양미술에 처음 관심갖던 시기에 편하게 볼 수 있겠다 싶어 구입한 것인데 수잔나 파르취나 최영미, 조이한 씨등 작가들이 우연히도 여성이어서 그런지 젠틸레스키의 미술사적 업적이나 위치등에 상관없이 모두들 젠틸레스키와 유디트를 설명하는것이 이채로왔습니다.
클림트에 관한 책에서도 남성평론가인 이주헌씨는 유디트를 설명하면서 젠틸레스키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여성인 신성림씨는 역시나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와 카라바조의 어설픈 유디트, 팜므파탈의 이미지인 클림트의 유디트를 비교하고 넘어가더군요.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그것을 표현하는 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