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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7/12/13 13:44:32 |
Name |
설탕가루인형 |
Subject |
[단편] 프로토스 공국(公國) 이야기 |
황량한 대지, 멀리서 보면 빨간 점 하나가 황갈색 대지에 좌표를 찍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거친 대지를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미워할 수 없는 악당, 로키와 같다고 했다.
때로는 폭풍같이 몰아치는 악천후에 치가 떨리지만, 곧잘 살랑이는 봄바람같은 기후가 돌아오는 기후 때문이리라.
얼마나 지났을까, 푸른 점 하나가 빨간 점의 좌표에 수렴해간다.
이미 해는 지고 주위는 어둑어둑해진 무렵이었다.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 꼴이 그게 뭔가"
푸른 점이 클로즈업 된다.
사람이다. 그가 붉은 점에게 말을 하고 있다.
빨간 점 역시 사람이다. 아니, 사람의 몰골을 하고 있는 시체에 가까웠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도 못할 만큼 심하게 피투성이가 된 존재는
희미하게 웃고 있다.
푸른 점이 말은 거칠게 하고 있지만, 실은 자신을 구하러 온 존재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저는...잘난 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순리대로 사는 것 뿐입니다."
"끝까지 잘난 척이군. 그래, 언제까지 누워서 하늘만 감상할 텐가?"
-쿨럭-
붉은 점의 입에서 피가 토해진다. 웃음으로 인한 건지, 기침으로 인한 건지 모르겠다,
그가 붉은 점으로 보이는 것은 그의 옷과 대지를 적시고 있는 진홍색의 피 때문이다.
"저를 도와주시러 오신 분이 끝까지 그렇게 계실겁니까?"
"내가 자네를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왜지?"
"당신은 저에게 빚진 것이 있으니까요."
"후, 여전히 마음에 안드는 녀석이군."
스산한 바람이 로키의 대지를 스쳐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자, 두 존재의 모습이 명확하게 보인다.
붉은 점은, 프로토스 공국(公國)의 현재 공왕(公王), 비수였다.
푸른 점은, 프로토스 역사상 최초로 전제군주가 되었던, 비수 이전의 공왕, 아니 법왕(法王), 날라였다.
보통 4명의 공작이 돌아가면서 공왕이 되어 통치를 하던 프로토스 공국의 체제에 불만을 가지던 것이 바로 날라였다.
그는 그의 강력한 지도력을 통해 프로토스를 테란제국이나 저그연합과 같이 1인 통치하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뛰어난 전략으로 법왕의 자리에 오르며 그것을 실현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깨뜨린 것이 바로 그의 가장 믿음직한 청년 백작, 비수였다.
비수는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서만 프로토스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저그연합의 수장, 세비어와의 성전(聖戰)을 앞둔 날라의 부대를 기습, 법왕제를 폐지시키고 공왕제를 부활시킨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더구나 다른 3명의 공왕의 자리에 날라를 다시 앉히는 대담성을 발휘했다.
우려 반 기대 반이었던 세비어와의 일전은 비수의 완승으로 끝났고, 새로운 공왕, 비수의 전공은 눈부실 정도였다.
그의 주장대로, 비수는 저그연합과의 결전에서, 또다른 공작인 스토크는 테란제국와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공국 역사상 최고의 부흥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지금, 테란 제국의 이름 없는 청년 장수에게 비수가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공국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건가?"
"물론입니다. 당신은 물론 최고입니다. 저는 당신을 보면서 자라왔습니다"
"우리 둘 사이에 쓸데없는 대화가 필요할까?"
"여전하시군요. 하지만 당신이 쓰러질 때에, 우리는 너무나 무력했습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비수는 날라가 세비어에게 쓰러지고 난 후에 겪었던 고통들이 스쳐갔고,
날라는 자신의 부재시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회상했기 때문이었다.
"자네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쩔 텐가?"
"그 때는, 공작과 함께 축배를 들고 싶군요."
"상대는 파괴신일세"
"그 전에, 스토크 공작을 넘어야겠지요"
날라는 느닷없이 몸을 낮춘다.
"업히게"
"수하는 아무도 데리고 오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자네를 구하러 온다고 하면 어떤 수하가 따라오겠나?"
"그것도 그렇군요"
둘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비수는 조용히 날라의 등에 몸을 맡긴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고원에 붉은 점과 푸른 점은 하나가 되어 좌표를 이동시킨다.
"그러나 명심하게"
얼마나 걸어왔을까, 날라는 문득 입을 열었다.
"그 후에 자네는 분명 후회할 걸세. 내가 자네를 쓰러뜨릴테니까"
"영광입니다. 그렇게 프로토스가 발전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잘난척이군"
중간에 몇 번 저그의 기습이 있었지만, 날라의 강력한 사이킥 에너지는
그들의 존재를 무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저 멀리 프로토스 공국의 영토가 보인다.
어느 덧 달이 지고, 새로운 태양이 이글이글 떠오르고 있었다.
저 태양은 누구의 편일까.
날라일까? 아니면 비수일까? 그것도 아니면 어디선가 싸우고 있을 스토크의 편일까.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2-1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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