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2/04/28 01:08:15
Name 항즐이
Subject [경기감상+게이머열전]그를 위해서 쓰여지는 드라마
우리는 수많은 유망주와 기대주들이 승천하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거두어 간다. 오늘도 몇 년 전에 가슴에 새겨 두었던 몇 명의 눈부신 얼굴들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유망주라는 어중간한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그들이 필요한 것은 생명선을 짓누르는 단점의 극복과 주인공으로서의 자리잡기가 아닐까 싶다.

마우스 오브 조로라는 별호, 그 이름 전에도 이미 ChRh라는 외호는 평범한 군상들을 벗어난 존재였다. 빼어난 쾌검과 화려한 변초 그리고 준수한 외모로 인해 그는 이미 유망주라는 이름을 벗은게 아닌가 하는 세간의 평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승부 이외의 것에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승부가 잦아들면서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자신이 랜덤을 버리고 테란을 선택했다는 말을 꺼냈다.

그의 변화에 관해서 내가 가졌던 첫 번째 관심은 그의 재능이 "안정적인 종족" 테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발현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테란 대 테란 경기, 1.08이후 혼란 속의 테란전 속에서 그의 눈부신 손속은 최고의 공격력이 되었고, 프로토스로 테란을 이기는 것 보다 더욱 자신있다는 그의 테란전의 능력은 손쉽게 상대의 GG와 나의 동의를 얻어냈다.

하지만, 여전히 얕게는 발목을 붙잡고 깊게는 그의 숨통을 옥죄고 있던 저그라는 이름은 극복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는 늘 그 이름을 뒤통수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머물러야 했다. 그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은 저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경기 외에는 남길 말이 없던 승부사는 그렇게 시간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그는 자신의 자리를 위한 걸음을 시작했다. 작년 KPGA대회들에서 그는 저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테란이었다. 결국에는 절정의 저그들에게 승리를 번번히 내어주고 말았지만, 그는 어느 새 낙승의 상대에서 껄끄러운 느낌이 남는 이름으로 바뀌어갔고, 스스로는 저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옅어져 가는 시기였다.

기회는 이때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집에서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마침내 게임보다 스노보드가 편하게 여겨져 버린 그. 무디어진 스스로의 칼에 낙담하며 탈출구를 찾고 싶었다고 회상하는 그 시기에 그를 찾아온 것은 풍납전략전술 연구소의 초대장이었다. 우주방어 유병준, 정석테란 김정민은 그를 최고의 동료로 인정했고, 동시에 그 역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무디어진 날을 다시 세웠다.

그는 이 시기를 일컬어 자신의 삶이 바뀐 시기라고 늘 회상한다. 집에서 너무 게임이 안되어 경기마다 메모도 해 보고, 잠자리에 들며 이제는 게임을 할 수 없는 걸까 하고 침울한 생각에 빠져 있어야 했던 시기. 그런 와중에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연습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은 테란인 그에게 쉬지 않고 서른 게임을 넘게 연습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저그에게 쓰러뜨려야 할 이름으로 남을 최고의 테란은 아마도 임요환, 김정민, 이윤열(무순)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1%와 2%의 승리를 착실히 마지막으로 이어가는 김정민의 빈틈없는 운영은 오랫동안 많은 테란 유저들의 귀감이 되어왔고, 드디어 타인의 무공을 보며 배움에 기뻐하는 것을 즐기는 최인규의 눈 앞에 이르러 일종의 감동이 되었다.

얼마가 지나지 않은 시간 후에 그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게임벅스 2차 대회의 우승. 이태우, 조성봉, 황성욱 선수를 차례로 꺾은 그. 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연이어 찾아온 온게임넷 예선의 통과. 이정진, 이창훈 선수를 꺾으며 그는 저그가 두렵지 않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리고. 여전히 무관의 제왕(크레지오 대회는 종족별 최강전인 까닭에 자유 토너먼트 및 대회에서는 여전히 무관의 제왕. Itv 랭킹전 역시 이벤트 성 대회로 보고 제외한 결과)인 그에게 KPGA대회와 네이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중요한 기회였다.

KPGA Losers에서 만난 성학승 선수와의 대결. 임요환, 김정민 등 최고의 테란 유저들을 잠재우며 작년 KPGA 위너즈 챔피언쉽을 거머쥐었던 성학승이라는 산을 그는 넘었다. 그리고 다가온 강도경이라는 벽.

강도경 선수는 늘 자신감 있는 선수였고, 여러번 그에게 쓴 잔을 마시며 GG를 선사했던 최인규로서는 더욱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하지만, 마음을 쉽게 흩트리지 않는 그의 장점은 십분 발휘되었고, 마침내 KPGA의 4강고지를 가장 부담스러웠던 강도경을 상대로한 2:0의 승리를 통해 올라선다. 결국, 4위에 머물고 만 대회였지만, 그에게는 저그에 대한 자신감과 안정적인 성적을 거둔 대회라는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온게임넷 2002년 첫 시즌. 동료인 김정민과 같은 조가 되었다는 부담감 보다도, 같은 조에 저그가 두 명이라는, 그리고 1번 시드 홍진호 선수가 자신을 지목했다는 부담이 더욱 그를 짓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를 위한 드라마는 준비되었다. 저그에게 쉽게 내어주고 만 1패, 동료에게 거둔 힘겨운 1승. 자신을 지목한 1번 시드, 현존하는 최고의 저그 유저와 8강 진출을 놓고 같은 입장에서 만난 일전. 게다가 2002년을 연 이후 온게임넷은 저가 테란을 상대로 11연승의 쾌조를 보이고 있는 상황.

홍진호라는 이름, 그리고 아직은 신뢰하기에 부족한 최인규의 테란. 저그의 11연승. 홍진호의 김정민을 상대로한 승리와 최인규의 안형모를 상대로한 패배. 1년 6개월만의 온게임넷으로의 귀환. 그를 기다려온 팬들. 홍진호라는 이름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던 그 순간. 그는 주인공의 자리에 불쑥 들어가 드라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상대의 잘못 없이도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의 플레이에 테란의 승리를 목말라한 수많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홍진호라는 이름을 안타까워 한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질시를 보내야 했다.

그는 자신을 증명하는 최고의 장소를 구했던 것 같다. 홍진호라는 이름은 그만큼 대단했다. 그 한번의 승리가 모든 곳을 들끓게 하고, 섣불리 그를 결승전의 명단에 예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를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증명된 자신을 지키고, 무관의 제왕, 독고구검의 외호를 벗는 일만이 남았다. 승부사, 이제 그는 비무대회장의 제일석(第一席)에 앉기를 원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항즐이
02/04/28 01:09
수정 아이콘
최인규대 홍진호의 경기를 벌써 4번이나 보았네요. 앞으로 두고두고 보아야 할 명경기가 또 하나 늘어난 셈입니다.
최인규, 그의 가능성이 증명되는 것을 지켜볼수 있다는게 기쁩니다.
[귀여운청년]
어찌됐던 이제는 최인규 선수보고 저그에게 약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 최인규 선수 베슬 엄청 잘 쓰더군여+_+
항즐이님... 이거 인규동에 옮겨가도 되겠죠... chrh팬으로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타를 알게되면서부터 최인규선수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지요....
그로나 계속 꺽이면서 부침이 심하던 최프로를 보면서 많이 안스러워했는데 이제는 진정한 최강자로로 탈바꿈하는걸 보게되니 왜이리 기쁠까요...?
마우스 오브 조로 !! 최선수의 카리스마를 계속 기대합니다. 화 이 팅!!!!!!!
최프로...G피플에서 겜큐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ㅠㅜ 고고 ChRh
02/04/28 11:53
수정 아이콘
금요일 퇴근 후 컴을 켰더니 벌써 1 경기는 끝났고 2경기 시작하고 있어서 못 보았었는데... 게시판에 최인규선수가 이겼다는 글이 올라 와 있더군요. 명경기였다고 게시판에 평판이 자자해서 어제 토욜 오후 퇴근하자 말자 VOD로 보았지요.
최인규선수 정말 잘하더군요. 지노선수도 못한 게 아니던데... 최선수의 오래 전 경기 모습을 본적이 없고 최근의 경기만 몇 번 본 정도여서 솔직히 이번에 지노 선수를 이기기 힘들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어, 경지에 도달한 느낌을 받았다면 문외한의 경솔한 발언일까요? ^^
테란 팬들은 새로운 영웅을 만났군요. ^^;;
이상하게 테란 게이머들은 외모가 출중한 게이머가 많군요. 황제, 귀족, 그리고 소태양이라고 하는 이윤열선수. 아, 이윤열선수는 뭐, ^^ ... ^^ 총명하고 맑은 눈빛이, 참 좋더군요.
최인규선수 축하하구요, 계속 좋은 경기로 결승까지 진출했으면 합니다.
환경운동가 최인규선수 화. 이. 팅. ^^vV
ㅋㅋㅋ
이번리그 최인규vs강도경이 결승에 붙는거
보고 싶다 약2년간 라이벌의 대결 쩝
날아라병아리
이번 네이트배! 저그들의 틈바구니에서 꼭 살아남으셔서 새로운 마우스 오브 조로로 태어나시길 바랍니다.^^
음. 궁금한게 있는데요. 정민님 이제 네이트배 탈락이면..다음 대회때는 못나가는건가.. -_-? 챌린지리그땜에 햇갈리네요.
암튼. TheMarine 홧팅! 인규님 홧팅! G.O팀 홧팅!

김대기님 온겜넷 게시판 아이디 haruka. 어쩌다가...-_-;;
항즐이
02/04/30 17:59
수정 아이콘
Haruka_ 님 -_- 같은 질문이 너무 자주 올라오네요. 찾아보시면 좋겠죠? -_-;;
챌린지 리그의 각조 1,2위 12명과 스타리그 4강을 제외한 12명이 모여서 24명을 이루고 그 중에서 12명을 뽑아 전 시즌 스타리그 4강 4명 시드와 함께 다음 시즌 16강을 구성하게 됩니다.
여기는..
난리났네!
오병중
02/05/02 15:37
수정 아이콘
최인규 선수가 네이트배 전까지 온게임넷 리그에서 많은 고배를 마시고 괴로워했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진정한 옥석은 자신을 지켜주는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빛을 발할수 있었듯이 그를 지켜주는 팬들이 있었기에 화려한 컴백과 멋진 경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아직 감탄하기에는 이르겠죠. 그는 아직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화이팅과 건승이 함께하시길 팬으로서 바랍니다.
궁금한이
근데 혹시여~ [GsP]welcome 이란 아뒤가 누군지 아세여? 히히
하하..^^;;
항즐님. 암튼 감사해염. ㅠ.ㅠ
02/05/05 22:44
수정 아이콘
근데.. 이번에 결승에서 최인규 선수와 강도경 선수가 다시 만나면..
그거 또 하나요..?? 라이벌 리벤지에서 했던.. 오프닝 회상 있잖아요..
목소리 대역 써서 하는거.. 그거 하면 재미있을 텐디..
강도경 선수의 사투리 목소리 재연.. 짱이었숨돠.. 흐흐..
항즐이
02/05/05 23:11
수정 아이콘
하하하하 만약 그거하면 정말 대박이겠군요 +_+
02/05/12 10:07
수정 아이콘
최강 최인규(의미 불명 ... 모가 최강일까나...) 화이링 ~~
좋아하는 두 선수 .. 김정민, 최인규 선수가 같은 소속이 되서 더 기분 좋다는 ..(내전은 슬프지만....)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506 [15] 꽃으로도 때리지 않겠습니다 [18] 나래를펼쳐라!!1765 22/05/12 1765
3505 러브젤 면도 후기 [47] speechless3266 22/05/12 3266
3504 우리에게는 화형식이 필요하다. 그것도 매우 성대한 [33] 12년째도피중3968 22/05/12 3968
3503 [15] 어느 여자아이의 인형놀이 [19] 파프리카너마저3334 22/05/12 3334
3502 나는 어떻게 문도피구를 우승하였나? [77] 임영웅3101 22/05/10 3101
3501 음식.jpg [42] 이러다가는다죽어2572 22/05/10 2572
3500 [테크 히스토리] 전세계 콘센트 하나로 통일 좀 해줘라 / 전기 플러그 역사 [43] Fig.12638 22/05/09 2638
3499 [15] 아빠 차가 최고에요! [18] 두동동3254 22/05/08 3254
3498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365] 여왕의심복3450 22/05/06 3450
3497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그 맛.. [62] 원장1830 22/05/04 1830
3496 [15] 장좌 불와 [32] 일신1596 22/05/03 1596
3495 퇴사를 했습니다 [29] reefer madness2162 22/05/02 2162
3494 집에서 먹는 별거없는 홈술.JPG [23] insane6765 22/04/30 6765
3493 인간 세상은 어떻게해서 지금의 모습이 됐을까 - 3권의 책을 감상하며 [15] 아빠는외계인3797 22/04/29 3797
3492 [테크 히스토리] 인터넷, 위성으로 하는 거 아닌가요? / 해저 케이블의 역사 [32] Fig.12794 22/04/25 2794
3491 소수의 규칙을 증명..하고 싶어!!! [64] 라덱3813 22/04/25 3813
3490 웹소설을 써봅시다! [55] kartagra4132 22/04/25 4132
3489 믿을 수 없는 이야기 [7] 초모완2561 22/04/24 2561
3488 어느 육군 상사의 귀환 [54] 일신2854 22/04/22 2854
3487 (스크롤 압박 주의) 이효리 헌정사 (부제 : 어쩌다보니 '서울 체크인' 감상평 쓰다가...) [76] 마음속의빛2182 22/04/19 2182
3486 [테크 히스토리] 커피 부심이 있는 이탈리아인 아내를 두면 생기는 일 / 캡슐커피의 역사 [38] Fig.11858 22/04/18 1858
3485 『창조하는 뇌』창조가 막연한 사람들을 위한 동기부여 [12] 라울리스타1784 22/04/17 1784
3484 코로나19 음압 병동 간호사의 소소한 이야기 [68] 청보랏빛 영혼 s2237 22/04/16 223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