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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06 00:34
제갈량과 조조가 제대로 맞붙은 적이 없을거에요
적벽대전은 전략자체는 주유가세운거고 제갈량은 손유동맹을 맺게 한것이 주고 유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조를 일대일로 이긴 한중공방전은 법정의 작품이라..... 제갈량은 뒤에서 내정하고있었죠
13/07/06 00:39
근데 조조는 후달리는 전력으로 원소한테 개기다 못 해 잡아먹었죠.
애매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둘 사이에 이렇다한 전투를 보여준 적은 없는데 이뤄놓은건 확실히 조조가 많고...
13/07/06 01:05
위도 그 후달리는 전력으로 원소를 찜쪄먹은 관도대전이있어서..
사실 삼국지는 관도대전 이후로 위나라 >= 나머지 모든 나라.. 가 뒤집힌 적이 없죠..
13/07/06 00:48
관도 이후 오와 촉은 삼국 당시는 변방이고 물자도 풍부하지 않고 뭐 알짜는 조조가 다 먹어 놓은 상황이니 관도에서 결정됐다고 하니까요.
지금 시대는 오가 알짜를 많이 갖고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조조가 굳이 남하할 이유도 없고 뭐 그렇죠.
13/07/06 00:51
사마씨가 승자긴한데 그 사마씨의 진도 위를 그대로 가져다 먹은거니까요.
진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조조가 관도에서 승리한 덕이고요. 그러니 관도에서 결정됐다고 하는 거죠. 관도에서 원소가 승리했으면 삼국지의 승자는 원소 혹은 원소의 나라를 그대로 먹은 누군가가 됐겠죠.
13/07/30 19:51
사마씨의 진(서진)은 3대만에 국가를 말아먹고 다시 난세가 온건 함은정?
(사마염 - 사마충 - 사마치) 물론 서진에 이어서 강남에 자리잡은 동진도 막장력에는 서진 못지 않은것 또한 함은정? 그런 동진에게 쳐발려서(비수대전) 중국 통일 바로 직전에 물먹은 인물이 있다는 것 또또한 함은정?
13/07/06 00:52
관도대전 이후에도 원씨 일가의 세력이 조조보다 강했습니다.
그런데 지들끼리 치고박는 내분끝에 조조에게 각개격파 당하고 남좋은 일만 시켜준거죠. 원소의 아들들이 조금만 똑똑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지 몰라요.
13/07/06 00:58
삼국지의 승자가 누구냐는 300플도 갈 거 같은데요 크크
개인적으론 조조가 가장 근접했고 조조, 유비가 다 죽은 이후에는 별로 재미도없고해서 그냥 속편하게 조조로 생각합니다. 크크
13/07/06 01:11
그러니까 제말은 그 조직의 우두머리 로서는 조조가 최고고
그 우두머리를 보좌하고 조직을 흥하게 만드는데는 제갈량이 최고다 뭐 이런 뜻이였습니다. 꼭 전투에서뿐 만이 아니라요.
13/07/06 00:54
조조는 군사로서는 좀 별로... 욱해서 말아먹으려다가 옆에서 말려서 정신차린적이 얼마나 많은데요... 물론 주위사람 말 들을 귀가 열린것만 해도 높게 사줄만 하지만..
13/07/06 01:00
근데 급 궁금한건데 조조가 조운을 생포하려고 한게 정말 뛰어난 무술실력 때문인가요?
아님 당시 상황이 있었는데 그게 어찌되다보니 조운의 실력에 감탄한 조조가 생포하라고 한것처럼 보여진건가요..
13/07/06 01:08
정사에선 그냥 조운이 적진을 뛰어들어가 감부인과 유선을 구해서 신나게 도망갔던 것 외엔 특별한 기록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근데 적진이 조조군 최정예 기병 호표기...;;
13/07/06 01:12
조조죠. 황제를 옹립하고, 나라를 세운다는거 자체가 비교불가라고 생각합니다. 조조는 無에서 나라의 기틀을 만든 사람인데요.
연의에서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책략이 많이 나오지만 허구인 경우도 많고, 실제로 사마의 뿐만 아니라 조진, 장합 등에게 당하면서 사실상 모든 북벌에 실패했습니다. 반면 조조는 군웅할거의 중심인 화북지방에서 주위 수많은 군주들을 물리치고 결국에 원소까지 제패했죠. 조조는 주위에 좋은 참모가 많았다고 하는데, 그 참모들을 이용하는 것도 용인술, 즉 능력이죠. 제갈량이 이엄, 마속에게 통수당하고 사후 위연과 장완,비위가 세력 싸움을 했다고 볼 때 용인술이 뛰어나다고 보기 힘듭니다. 본문은 군사관련이었지만, 범위를 더 넓게 봤을 때, 중국교과서를 보면 삼국시대 역사기술과 거의 같은 분량으로 건안문학과 구현령이 나옵니다. 흥미위주에 삼국지 연의에서는 자세히 안다루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위나라 조조시대의 문학과 인재선발제도는 매우 큰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되죠.
13/07/06 01:42
이엄은 유비가 싸지른 똥이고(제갈량 다음가는 탁고대신으로 만들어 놓은걸 제갈량이 함부로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실수한건 마속 하나, 이후 장완-비의의 승상 라인은 다른 나라에 절대 꿀리지 않습니다.
조조 역시 한두명 정도의 인선 실수는 있었습니다. 또한 정계 인맥을 가지고 있었기에 과거제도라는 관리 등용제도가 없던 당시로서는 인재를 얻기 수월한 입장에 있기도 했지요.
13/07/06 02:02
제갈량의 북벌 실패를 거론할거면 조조도 적벽대전과 한중공방전을 거론해야 하고(제갈량은 불리한 입장이었지만, 조조는 오히려 우세한 세력이었죠)
용인술을 얘기하자면 조조는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는 순욱에게 자살을 강요한 껀수도 있고, 장송을 괜히 무시했다가 촉을 유비에게 넘겨주는 실책도 저질렀죠. 사후에 통수 맞은걸 얘기하자면 사마씨가 위나라를 꿀꺽한게 훨씬 더 크고요.
13/07/06 01:39
조조는 군사계가 아니라 군주계로 분류되어야죠. 조조의 행보를 보면 순욱을 비롯한 주변 참모진의 의견을 바탕으로 행동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도대전도 조조는 물러서려고 했었고, 서주 대학살을 비롯해서 연주 빈집털이 등 실책도 많이 저질렀죠.(이 때 순욱과 정욱의 신속하고 정화한 대처가 없었다면 조조는 여포에 멸망당한 듣보 군주로 끝나버렸을 겁니다.) 적벽대전 역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진군을 강행한 결과 크게 패배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있는 인재를 잘 부릴줄 알았기에 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잡은 것이고요. 때문에 군사 타입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위나라에서 제갈량과 비견될 위치의 인물은 조조가 자신의 장자방이라 이야기한 순욱이 되어야 할겁니다. 이 둘의 능력은 우열을 가리기 어렵죠.
13/07/06 03:08
질문자가 작성하신 것처럼 군사로써의 재능만 평가한다고 하고
제갈량 조조 둘만으로 경쟁시킨다면 삼국지 연의에서라면 제갈량 >> (넘사벽) >> 조조이구요. 그게 아니면 조조 >>>>제갈량 으로 생각합니다.
13/07/06 03:33
한중과 적벽이라는 오점이 있어도 그나마 군재는 조조가 당대 최고였다 생각합니다. 제갈량은 내치가로서의 면모가 더 두드러졌고 이외에 관우든 장비든 누굴 떠올려도 군재가 조조만큼 탁월하다할 급이 없네요. 초한시대의 항우나 한신같은 급은 삼국시대에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조조만이 그나마 이룬 성과 (물론 휘하의 장수와 모사들의 협력이 있었지만)를 봐서 삼국시대 최강자인 거지요.
그리고 이런 삼국지 관련담엔 연의와 역사를 혼동하기 쉬워서 그걸 유의해야 합니다. 연의로 치면 뭐 제갈승상 짱짱맨..아니 하늘이 짱짱맨이죠. 모든 천하대사는 하늘이 결정하니
13/07/06 06:23
제갈량은 군사전략가보다는 탁월한 정치가였죠. 제갈량은 실제로 자신이 군대를 지휘한건 유비가 서거하고 난 이후 북벌때가 처음이고요.
조조도 개인능력도 매우 뛰어났고 인재도 풍부했죠. 군사전략에는 순유와 곽가가 있었고 후방물자공급은 순욱과 정욱이 있었고 가후가 정치에 뛰어났고요. 많은 분들이 순욱이 전방 순유가 후방에서 보필한줄 아는데 실상은 반대였죠.
13/07/06 21:56
동탁이 무장은 여포, 책사는 조조를 쓰려고 했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군사입니다.
적벽전 까지는 넘버원 이죠 이후에는 나이가 들어서 인지 군사적재능은 쇠퇴하지만 군주로서 재능과 문인으로서 재능을 더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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