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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0 11:05
멀리갈것도 없이 교과서만 보셔도 됩니다.
무소유 욕망과 거리가 멀죠 감정의 안식을 찾기위해 종교를 찾는건 잘한 일이지만 세속적 욕망과 부귀영화, 입신양명은 부단한 절차탁마 끊기지 않는의지 사기던 뭐던 등쳐먹고 , 밟고 이기겠다는 굳건한 마음가짐 없이 안됩니다. (그런게 자동장착되어있는 재능이라던가)
20/10/30 11:46
불교를 비롯한 고등종교의 많은 내용들이 인간의 욕심을 제어하는 방향으로 가르침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론 인간의 욕심이 사실 인류를 지금의 생활수준으로 끌어 올린 것이기도 하죠. 인간의 욕심은 그 욕심이 자신이나 타인을 괴롭게하고 해치는 수준이 아니라면,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활수준 같은 것 처럼 말이죠. 그래서 그 욕심과 욕망을 어떻게 사용할까는 우리 개개인에게 달린 문제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 마인드 컨트롤하는 방법을 불교의 가르침이 효과적이셨다 느끼신 것 같으니, 그렇게 사용하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20/10/30 11:57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같아요.
이게 불교의 사상과 직접적인 연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법륜 강의라던가 보면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부담을 줘라 이런 강의도 있던데 이런점도 자기개발에서 중요한 내용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20/10/30 15:26
불교는 욕심을 버리는 수행입니다. 욕망을 추구하는 세상과 거꾸로 간다고해서 역류도라고 합니다.
이런 불교의 특성 때문에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초창기 불교의 이런 무소유적 특성 때문에 교단에 기부하며 도움을 주고 있는 재력가(재가신자)들로부터 불만을 샀습니다. 실질적으로 기부는 자기들이 하는데도 많이 가진게 왠지 죄인 것 같고 욕심을 내려놓으라 하니 세속에서 돈벌며 수행하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졌던 것이죠. 이런 수요자(?) 때문에 교리가 세속적으로 타협하고 변화되었는데 그게 대승불교의 시초가 됩니다. 대승불교 경전 중 유마경을 보면 아예 부잣집 재력가인 유마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부처님 제자들을 설전으로 혼내고 다닙니다. 그간의 불교가 개인의 해탈을 추구한다며 중생의 아픔을 외면했다는 것인데, 중생의 아픔이란 대체로 가난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보시를 강조하고 개인의 해탈도 중요하지만 다같이 행복해지자는 중생구제가 방편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하게 떠오릅니다. 재력가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돈을 열심히 버는 이유는 내 욕심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함이다라는 매력적인 사상적 근거를 갖게 되었고 사찰에서는 그런 재력가들의 기부를 계속 받을 수 있었던 윈윈전략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불교의 본질이 내려놓음과 무소유라 하더라도 자기계발과 모순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인류최고의 자기계발서는 불교가르침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수행이라는 직접적인 자기계발 가르침과 오랜 시간동안 실질적이고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한 것이 불교가르침입니다. 내려놓음은 진인사대천명과 일맥상통하고 무소유는 자기 분수 이상을 탐하지 않는 걸로 받아들여도 됩니다. 또한 불교적 목표 설정을,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한 해탈로 나아가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완전 무소유냐 합리적 소유냐를 선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부처님 생존 당시에도 재가신자와 출가자의 구분이 있었던 점을 보면 부처님께서도 상황에 따른 융통성있는 가르침을 펼치신 걸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어떤 행위를 판단할 때 의도를 중요시합니다. 의도치 않게 실수로 생명을 해치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일부러 했다면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세속적 목표가 있다면 처음 목표설정도 선한 목적으로, 중간 과정도 선한 과정으로, 끝맺음도 선함으로 한다면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0/30 17:41
무언갈 추구한다는건 결핍(괴로움)이 있어서 추구하는거라고 생각되는데
그걸로부터 해탈한다면 아무것도 추구할수 없지 않나요? 인간이 무언갈 추구하지 않는다면 기술의 발전도 없고 의식주의 풍요로움 또한 없을텐데 그걸 불교가 받아들인다는게 의문이 듭니다. -- 불교도 무언갈 추구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피할 수 있는 고통으로부터 피하는 걸 추구합니다. 그 고통은 갈망/애착으로 인한 고통입니다. 모든 욕망이 갈망/애착은 아닙니다. 불교는 희로애락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감정적 초연함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희로애락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죠. 의식주의 풍요로움의 기준은 상대적입니다. 가능한 한 적은 것으로 몸이 편안하고 건강할 수 있고 마음이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풍요로운 것입니다. 더더더를 원하게 되면 갈망/애착이 되고 고통을 낳습니다.
20/10/31 01:14
비슷한 궁금함이 있었는데 법륜스님이 쓰신 책중에 "행복" 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쓰인 원불교에 대한 설명을 읽고 이해에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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