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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8 21:30
가마쿠라 막부 시대부터 이미 일본의 미곡 생산량이 한반도 전체의 생산력을 능가했습니다.게다가 이때는 아직 동북부의 개척이 완전하지 않던 시기였고 훗카이도는 아예 자기땅도 아니었죠.
19/04/08 21:39
가마쿠라 막부 시작 때까지는 아니겠지만 전국시대의 혼란기 바로 전에 넘어갔다고 봅니다.
전국시대의 후유증 때문이겠지만 이것도 안정화되는 시기에는 다시 전체 국력에서는 조선이 밀리기 시작했을 것이고요.. 다만 전체 국력이 일본>조선이더라도 일본을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낮게 보았던 이유는 하나로 뭉친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 드넓은 중국대륙에서도 고구려가 활개를 쳤던 시기를 보면 통일 왕조가 아닌 시기랑 잘 겹치는 걸 보면 한 지역에서의 통일 왕조의 유무는 국력의 분산이라는 측면에서 주변국에서는 상당히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19/04/08 22:06
그냥 귀동냥으로 듣기로는 고구려의 전성기와 조선 전반기의 태종~성종에 이르는 시기를 제외하면 우리 역사로 포함되는 세력이 일본보다 앞선 적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참고로 역알못임.
19/04/08 22:23
그렇다면 임나일본부설이 허황된 소리가 아니라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일본의 거점 세력이 있었다는것도 어느정도 신빙성 있는 주장인걸까요?
19/04/08 22:37
그 쪽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듣기로는 임나일본부설 자체는 이미 학계에서 증거만으로 논파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일본의 거점세력이 있었다기보다는 한반도의 일부 세력이 일본과 오랜 관계를 맺고 지배층의 인적인 교류가 있었다 이 정도로 들었습니다.
19/04/08 23:14
그건 아닙니다 삼국시대만해도 삼국보다 기술력이 딸려서 백제가 일본에게 원군요청할때 무기랑 갑옷은 백제에서 줄테니까 사람만 보내라고 할정도 였는데요.
그리고 당시 일본 국토 개발도 다 안되서 지금 일본 땅이 다 그때 일본땅이던 시기도 아니고 정치도 소국으로 나뉘어서 분열되 있던 시기라서
19/04/08 22:37
국력이란게 문화적 역량으로 말할 것인가, 농업 생산력이나 인구 같은 사회경제적 지표인가, 전투능력인가 등 여러 기준에 따라 설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19/04/08 22:44
단순 농업생산력만 따지면 가마쿠라 막부때 이모작이 도입되면서 역전되었습니다.
근데 농업생산력만 따지는거면 베트남은 한반도보다 선진국이 아니였던떄가 없었....
19/04/08 22:55
농업생산량 = 국력 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것이 몽골이나 청나라 보면...
게다가 일본은 중앙집권이 완벽하지 않았기에...제대로 앞선건 히데요시 이후라고 봅니다.
19/04/09 00:59
이거에 대해서도 의문스러운게 실제 먹을수 있는 식량이 훨씬 풍족하다면 중세사회의 특성상 빠른 인구증가로 나타나야하는데 실제로는 조선이 에도막부 시절보다 인구증가율에서 우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근현대 이전에는 잉여 식량이 인구증가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말이죠.
19/04/09 08:33
후자의 경우 조선개국후 극초기정도아니면 말이 안되는게 그냥 국가는 저세율로 돈 없어서 골골, 민초들은 중간에서 수탈당해서 골골..뭐 이렇죠.
처음 저세율로 간건 유교적 농본이념때문일수 있으나 그걸 관리못한건 그냥 행정능력 부족이라고 봐야.
19/04/09 09:29
조선은 어차피 상품경제가 빈약해서 아무리 수탈해봤자 쓸데가 없습니다.
이사벨라 버드 여사 여행기 이런것 봐도 조선은 양반 상놈 가릴것 없이 밥을 엄청나게 먹어댄다고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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