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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7/24 22:30:04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나치독일의 저항과 종말: 1944-45
아래 변변치 않은 글을 좋게 봐주신 분들께서 2탄을 요청하셔서, 
예전에 썼던 글을 한 번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재미있는 글이었음 좋겠네요 :) 

참고로 아래 글의 내용은 아래 책에 기반해서 쓴 것입니다. 

51Dfk6jvWTL._SX327_BO1,204,203,200_.jpg
원제: The End: Defiance and Destruction of Hitler's Germany, 1944-1945

나치독일사의 전문가인 이언 커쇼가 집필한 책입니다.

본 저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왜 독일은 그토록 끝까지 끈질기게 저항했는가? 프랑스가 해방되고 동부전선이 무너졌을 때 이미 독일의 패배는 기정사실이 되었음에도 독일은 도대체 왜 그렇게 맹렬히 그리고 무모하게 저항했던 것인가?

실제로 독일군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것은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벌어졌던 1942년-1943년이 아니라, 전쟁의 막바지였던 1944-1945년에 발생했다고 합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더욱 명확합니다.
독일군사상자.JPG

독일은 전쟁이 끝을 향해 갈수록, 그리고 패전이 점점 불가피해질수록 더욱 격렬하고 무모하게 저항을 했고, 이는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1918년에는 연합군이 독일땅에 진군하기도 전에 독일시민들은 지쳐있었고, 군부는 전쟁이 무모하다고 판단했고, 정부는 결국 항복했습니다. 이런 전례를 통해 비추어봤을 때 1944-1945년 동안 독일군, 독일시민, 그리고 독일 정치인들의 결사항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광기>였습니다.

이언 커쇼는 본 책을 통해 이 <광기>의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히틀러의 광기, 독일군부의 미련하리만치 수동적인 태도, 그리고 독일 일반인들이 겪었던 참극을 방대한 사료, 연구, 그리고 회고록과 증언, 그리고 정부문서 등을 통해 밝히면서 동시에 엄청난 비극 드라마를 그려내듯이 매우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원인으로 커쇼는 다음을 짚고 있습니다

1.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시도
Tom-Cruise-Valkyrie.jpg
1944년, 독일의 패배는 시간문제였고, 독일군 장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로부터 독일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장교들 사이에 어느 정도 퍼지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 암살에 실패하면서, 점점 약해지고 있었던 히틀러의 권위는 다시 급상승하게 됩니다.

전쟁 중에 독일군 장교가 최고 지도자를 암살할 생각을 하다니!

게다가 슈타우펜베르크는 귀족출신이어서, 평등주의적 생각(물론 독일인들 사이에서의 평등)을 갖고 있던 독일인들의 분노를 부추기기에 더욱 좋았습니다.

여하튼 이 사건은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골수 원칙주의자인 독일군 장교들도 이에 경악했습니다. 총통의 무탈함을 기원하는 수만건의 편지가, 그리고 수만 명의 기도가 있었고 이는 오히려 히틀러가 독일을 더욱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최고 지도자에 대한 암살실패는 그렇지 않아도 억압적이던 체제를 더욱 억압적이게 만들었고, 정권에 반기를 드는 그 어떠한 행동도, 심지어 생각도 처벌의 대상이 되도록 했습니다. 평시에는 상상도할 수 없었던 국민에 대한 전방위적인 통제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그 누구도 이제 감히 총통에 반기를 들지 못했고, 나름 개념 군인이라고 평가받았던 독일군 장군들 중에그 누구도 히틀러의 비이성적인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억압과 검열, 그리고 통제는 당시 독일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습니다.

바로 두 번째 이유 때문이죠.

2. 1918년, 배후의 중상에 대한 신화

독일인들 뇌리에 깊숙히 박혀있었던 한 가지 신화가 있었다면 바로 배후의 중상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독일인들은 1918년 독일이 패배한 이유는, 독일군이 못나서, 또는 독일이 약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배신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아주 강렬했고, 애초에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슈타우펜베르크의 암살시도는 이와 같은 믿음에 더욱 강력한 '신화성'을 부여하면서, 독일인들로 하여금 총통을 결사옹위해야 한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1918년은 결코 반복되서는 안 된다! 전쟁 막바지까지 독일인들을 결속시켰던 이 믿음은 퇴각, 항복 등을 절대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총통에게 직접적으로 반기를 드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3. 진격하는 소련군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한편 동부 전선이 무너지면서, 독일인들은 자기들이 소련에서 자기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그대로 되돌려 받았습니다. 드디어 독일 땅에 입성한 분노에 휩쌓인 소련군은 무차별적인 약탈과 학살, 그리고 강간을 저질렀고 이는 반대로 독일군으로 하여금 더더욱 전의에 불타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쯤이면 독일 정규군뿐만 아니라 징집가능한(심지어 징집대상이 될 수 없었던) 모든 연령대의 남성은 <국민돌격대Volkssturm>로 편성되어 정말 치열하게 저항합니다. 

ib_vs_img2.jpg

동부 전선 현장의 군인을 제외한 많은 독일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련군이 독일땅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만 생각했고, 이들은 자기들의 재산, 여인, 그리고 어린이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괴벨스는 소련의 만행을 아주 솜씨있게 각색 및 과장해서 선전수단으로 사용하였고, 이는 지극히 악화되고 있었던 전황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의 전의를 불태우는 데 훌륭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물론 독일인 모두가 괴벨스의 선전을 믿지는 않았지만, 동부에서 도망쳐온 수많은 피난민들의 증언은 서부에 위치해있던 마을과 도시들의 주민들까지 동요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4. 히틀러에 대한 맹신

1944년 말기까지 여전히 많은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진심으로 추종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히틀러에 대해 비판적인 인물들도 있었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히틀러만이 독일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히틀러가 육성한 독일 청년들... 히틀러유겐트는 이러한 믿음의 선봉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년간의 전우활동과 세뇌에 익숙해져, 히틀러가 없는 독일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독일영화 <몰락Untergang>에서 볼 수 있는 베를린 전투 장면이 인상적이죠. 어린 히틀러유겐트 남녀는 소련의 진격을 결국 막지 못하고 "히틀러 만세"(Heil Hitler!)를 외치면서 자살합니다. 

untergang hitlers jugen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러한 광기로 편성된 부대가 <베르볼프Werwolf>, 즉 늑대인간 부대입니다. 이들은 게릴라 활동으로 전개하는 빨치산의 개념으로 편성되었고, 물론 수는 많지 않았고, 전혀 효과적이지도 않았지만, 이들의 광기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5. 히틀러 자신의 광기

히틀러는 낭만주의적 성향은 전쟁 막판까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전쟁 막바지에 이르자 그는 더이상 정치를 하는 Statesman이 아니라 하나의 비장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아티스트였습니다. 그의 머리속에 항복은 전혀 선택지에 없었고 오직 승리 아니면 죽음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승리하지 못하면, 그 자신 뿐만 아니라 독일전체를 자신과 함께 파멸시키고자 했습니다.

승리하지 못하는 독일인에게 미래는 없었고, 오직 죽음만 있을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945년, 패전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적에게 독일의 재산과 산업을 물려주느니 독일의 모든 인프라 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물론 다행히 그 명령은 일부밖에 수행되지 않았습니다.

1944-45년 동안 전쟁을 하루 빨리 종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정책결정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럴 기회가 그에게는 수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의지 하나로 불필요하게 전쟁을 연장시키고 수많은 독일인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가 남긴 독일은 완전히 폐허가 된 곳이었으며, 성한 도시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수백만의 사망자, 수백만의 불구자, 수백만의 난민, 그리고 고아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모든 땅이 파괴되고 독일의 모든 땅이 점령되었습니다. 1918년과는 달리 독일인들은 이 때 비로소 패전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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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군
17/07/24 22:40
수정 아이콘
오우... 의도하신 바는 아니겠지만 왠지 이거 이용하기 좋은 소재 같은데요.
홈런볼
17/07/24 23:11
수정 아이콘
글을 보고만 있어도 그 당시 독일인들이 받았을 '광기'가 느껴져 슬프네요.
히틀러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란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남은 부분이라도 보전했어야 하는데 내가 죽으면 독일의 미래도 없다는 생각에 다같이 죽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더 참혹한 말로를 맞게 되지 않았나 싶네요.
근데 그렇게 망가지고도 70여년이 지난 지금 유럽의 최강국으로 다시 우뚝 선 것 보면 독일은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 소련과 전쟁을 벌이지 않고 유럽의 최강국으로 남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어차피 소련이나 미국과 한 판 붙는 3차대전이 벌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면 그렇게 독일이 패망한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요.
하심군
17/07/24 23:16
수정 아이콘
그 부분에대해서는 독일과 일본이 같은 마인드라고 보는데 본인들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들이 운이 좋았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환상을 실제로 굳히기 위해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거죠. 심지어 '어차피 이 상태로 지면 자신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 뭘 해도 상관없어' 라는 생각도 있던 걸 보면 아주 조금이지만 이 사람들을 동정하게 되더라고요. 어쩌면 조선이 아주 운이 좋았다면 밟았을 법한 길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세종머앟괴꺼솟
17/07/25 12:16
수정 아이콘
1차대전 이전에 독일만 그대로였어도.. 카이저니뮤ㅠ
17/07/24 23:12
수정 아이콘
4, 5 관련으론 괴벨스에 대한 유명한 책인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의 후반부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그 명석하던 괴벨스가 완전 미친 놈이 되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85491)
한들바람
17/07/25 00:40
수정 아이콘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망고스푼
17/07/25 02:04
수정 아이콘
유익하게 잘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7/07/25 03:15
수정 아이콘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정권이었네요.
테이스터
17/07/25 08:43
수정 아이콘
배후의 중상에 대한 신화 다르게 말하면 정신승리법이지요
강가딘
17/07/25 10:47
수정 아이콘
이래서 선동 선전을 통한 세뇌가 참 무섭죠
당장 윗쪽동네를 봐도 그렇고
낭만없는 마법사
17/07/25 21:49
수정 아이콘
정말로 잘 보고 갑니다. 전체주의와 극우주의 국가주의 군국주의 극좌적인 공산당 독재 이 모든 게 다 끔찍한 인류의 유산입니다. 부디 22세기엔 이 끔찍한 것들로부터 인류가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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