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동안 공항 터미널 안에서만 산 남자
얼마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명배우 톰행크스가 손잡아 만든 새 영화 '터미널(The Terminal)'이 미국에서 개봉했었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또한 이 영화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미국의 JFK 공항에 도착한 한 남자가 자신의 국가가 쿠테타가 일어나 유령국가의
국민이 되는 바람에 공항에 억류돼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 내용.
이 영화 속 이야기처럼 실제로 한 남자가 16년 동안을 한 발짝도 나가지 안은 체 공항 터미널 안에서 살았다면 이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말이나 대수롭지 않은 농담처럼 여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분명한 사실. 영화 '터미널'도 이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허구 같은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은 16년째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살고 있는 이란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 그는 '앨프레드경'이라 불리우며 16년째 공항 안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16년이라는 세월동안 공항안에서 지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그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주는 서류인 난민카드와 여권을 분실했기 때문이다. 종이에 불과한 서류 때문에 그는 10년 이상을 공항에 갇혀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민여권을 발급 받은 후 조국 이란을 떠난 그는 유럽 여러 나라에 망명을 요청한 끝에 벨기에 정부에서 난민 신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영국을 향하던 중 UN이 인정해주는 난민카드와 여권을 분실했고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가 없었기 때문에 입국이 거부된 그는 영국과 벨기에 프랑스를 왔다 갔다 하다 결국 자포자기하여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 눌러앉게 된 것이다.
메르한은 공항 터미널의 벤치를 집 삼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됐고 시간이 흘러 그에 대한 소문이 여기 저기에 전해지면서 그는 드골 공항의 명물이 되었다. 프랑스 방송사에서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으며 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메르한은 1999년 언론과 인권변호사의 도움으로 난민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발급 받아 세계 어디든지 갈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메르한은 과연 어느 나라의 국적을 택했을까?
메르한의 결정은 정말 놀라웠다. 메르한은 어느 국가도 택하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지내던것과 마찬가지로 공항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서류에 기재된 이름이 이란인 이름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라는 이름이 아닌 '앨프레드'라는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왜 자신의 국가도 이름도 아닌 사람의 서류에 서명해야 하냐는 이유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에 메르한은 쇼크를 받아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였다고 한다. 10년이 넘게 간절하게 기다렸던 소망이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와 종이 한 장에 이름만 적으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메르한은 정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영화 '터미널'을 제작한 드림웍스가 그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대가로 메르한에게 25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소문이 있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메르한은 노숙자 생활을 청산하고 공항을 벗어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공항안에서 노숙 자 생활을 하고 있다. 공항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 살수 없는 사람이 돼버린 메르한. 그는 지금도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 붉은 벤치 위에서 한가로이 '타임지'를 읽고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