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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30 11:22
16만명은 동원한것과. 16만명을 상륙시킨것은 완전 다른이야기죠..
중세시대에는 원정의 경우 전투병1명당 보급병은 3명이 기본계산인지라. 수비측은 보급문제가 훨씬 압박이 적죠
24/09/30 11:47
저 시대에 동아시아서 외교적 위치로는 조선이 일본보다 훨씬 높았죠.
중화질서에서 일본은 왕따취급이었는지라.. 그래서 더 유럽과의 교류에 열려있기도 했고요.
24/09/30 11:28
보통 N만 대군에서... 실제 전투 병력은 1/3 ~1/5 봐야 한다던데
[식량 운송 / 말 관리 / 행정병 등등 비전투 요원도 전부 참전 인원으로 카운트해서] 수군/해군은 어떻게 카운트 하는지 궁금하네요 흐흐 수군이나 해군도 비전투요원이 많았을까요?
24/09/30 12:58
예, 말씀하신거처럼 의자왕이 당과의 외교에 소홀했던 여러가지 이유중 하나가 고구려랑 싸우기도 힘들어하는 당이 바다를 건너 백제까지 오겠어? 그리고 만약 온다고 해도 얼마나 동원할 수 있겠어? 라는 나름 상식적인 판단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진짜 말도 안되는 13만 폭탄드랍이 바다를 건너 수도를 향해 떨어졌으니...
24/09/30 13:16
만약 그 당시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유럽이나 오스만 제국 등 중동 해안에 일본군 16만 명이 드랍됐다면, 저 나라들도 막기 힘들었을까요?
말도 안되는 얘기긴 하지만 임진왜란 얘기 나올 때마다 궁금하긴 합니다. 크크
24/09/30 13:20
임진왜란의 일본군 규모는 그냥 [서류상]의 편제일뿐입니다. 실제 부산에 상륙 후 북진한 병력은 초기 1군 고니시 2만, 2군 가토 2만, 3군 구로다 1만 정도입니다. 그것도 서로 협력하는 모양이 아니라 서로 견제 하는 상태였(?)습니다.
즉 초기 부산 - 서울까지의 공적은 정말 고니시와 가토 둘의 경쟁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 몇달에 거쳐서 후속군대가 도착을 하긴 했지만..
24/09/30 14:48
저도 맨날 일본군 20만인데 어케 막냐? 라는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20만이라는 숫자가 한번에 싸우는 게 아닌데... 라고 하고 싶긴 했습니다.
24/09/30 14:44
일본 전국시대 병력이 무지막지하게 많았다고 봐야죠. 사무라이들의 나라였으니. 그리고 대한해협 건너는 건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경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죠. 고려말 쳐들어온 왜구들 규모도 어마어마 했었고, 수도인 개경을 위협할 정도였으니까요. 명나라 해안을 초토화시킨 왜구들인데 대마도에서 뻔히 보이는 부산 상륙은 식은 죽 먹기였다고 봐야죠.
24/09/30 15:22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한 일본 열도가, 갑자기 지중해 가운데(시칠리아-튀니지-크레타 사이)로 드랍되서 시작되는 1585년 대역물이 맛보고 싶어지는군요.
24/09/30 18:40
고대에는 연안을 따라 배가 이동했다고 들었는데 당 13만 수군은 서해 건너 백제로 직행한 걸까요.. 북쪽 땅은 아직 고구려 영토였으니
24/09/30 18:46
시대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한데, 황해 가로지르는 원양항해도 가능하긴 했다고 하더군요. 발해도 동해 가로질러서 일본과 외교했고(많이 침몰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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