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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17:17
여진족에 대하여 흔히 잘못 알려진 사실은 이들을 순수한 유목민족으로 보는 것인데 실제 여진족은 이동하면서 목축을 한 유목민족도 아니고 목축과 수렵채집만 한 것이 아니라 농업[8]과 어업을 겸업했고 심지어 해적질로도 악명을 떨쳤다. 애초에 이들의 주된 거주지가 초원이 아닌 삼림지대였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로서의 유목민족과는 삶의 양식이 꽤나 다른 민족이었다. 동북아 역사 관련한 교양서적 상당수에서도 여진족이나 만주족을 반농반렵 민족이라고 소개한 바에서 알 수 있듯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동하와 후손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유목 제국으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진족의 군사 시스템이 균형적이고 전투력이 강했던 것도 이러한 생활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수렵채집 등의 생활 덕분에 실제로 유목민족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족의 특기인 투창, 기마술과 궁술에도 능했고 만주의 산지와 숲에서 생활하다 보니 당연히 보행 능력도 좋아서 보병 전력도 강했다. 실제로 여진족의 후손인 만주족은 명나라군이 대기병 보병 전술을 사용하면 말에서 내려 보병으로 전환해 대기병 전술을 파훼하는 등 유목민과는 달리 전술적으로 유연했다. 어업에도 종사한 덕에 유목민족처럼 수상전에도 약하지 않았다. 즉 유목민족+바이킹 등의 해적+남만족+서융족의 장점이 조합된 집단이었다. 그래서 여진족은 유일하게 두 번[9]이자 마지막으로 중원을 장악한 소수민족이기도 했다.
24/08/02 17:20
반농반목 여진족
훈족의 후예를 주장하는 헝가리 촉나라에 저항하던 이민족과 함께 싸웠던 한족 관료 맹획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있는 이스라엘 입니다.
24/08/02 19:43
여기 좀 자세한 내용을 설명한 글도 읽어보세요. https://blog.naver.com/shanghaicrab/222548109974
맹획=이민족이란 내용은 연의의 각색일 뿐 실제로는 현지의 한족 사대부였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24/08/02 17:23
1283년 헝가리 아르파드 왕실에서 편찬한 역사책 《게스타 훙가로룸》(Gesta Hungarorum)에 따르면 훈족과 마자르족은 같은 뿌리였다고 한다. 흑해 주변에 살던 한 부족장에게 후노르와 머고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냥을 하던 도중 신비한 사슴을 발견하곤 추적했다. 추격 끝에 사슴은 사라지고 방어에 용이하며 목축에 적합한 옥토에 다다른 그들은 그곳에 정착했다. 6년 후, 형제는 벨라르족을 약탈한 데 이어 이란계 알란족의 왕 둘란의 두 딸을 납치한 후 각각 결혼했다. 이후 후노르의 후손은 훈족, 머고르의 후손은 마자르족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해당 이야기는 사실상 설화로, 훈족은 튀르크계 흉노족과 이란계 스키타이족의 혼혈민족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당시 마자르족이 위치한 지역이 훈족의 지배를 받았던 곳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훈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극소수나마 피도 섞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내부에서 마자르족이라고 부르는건 알았는데 훈족이랑 명확히 이어지는건 아니군요 훈가리도 아니네요 그럼
24/08/03 06:05
만주지방은 의외로 농사가 잘되는 지역이라더군요. 물론 평균기온은 낮지만, 여름에는 온도가 40도까지 오르는데다 물이 풍부하다고합니다.
장마에 의존해서 쌀농사 짓던 조선이 흉년으로 허덕일때 만주 여진족들은 쌀농사 잘만 지었다고 할정도로요.
24/08/02 17:45
유목민족 후예로 보면 헝가리보다는 불가리아가 진짜 유목민족 후예에 가깝다고 듣긴 했네요
실재 불가리아 건국신화도 아닌 진짜 건국역사가 아시아에서 건너온 투르크계열 유목민족이 당시 발칸반도를 떠돌다 비잔티제국의 현불가리아 영토로 뚫고들어가 뺏았고 그냥 눌러앉으며 세운거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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