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투박한 목재 건물로 가득차있는 마을에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싶어 고개를 둘러보면, 한곳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이곳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생각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갔고, 마침 그들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그러게 말이야. 마을 녀석은 아닌 것 같은데.”
생긴 것은 전형적인 유럽계통의 외국인 느낌이지만, 이들은 전부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말이 통하기는 하는 모양이니,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물어보기로 정했다.
“실례지만 여기가 어디죠?”
단순히 위치를 묻는 질문.
하지만 내 질문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가득찼다.
“말을 했어!”
“뭐? 말을 했다고?”
“말을 하다니, 어떻게 그럴수가!”
“이 녀석, 천재인가!”
“······?”
그 태도가 당황스러워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 그들 중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말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말을 하는게 대단한겁니까?”
“말을 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 누구라도 그렇게 인정할거야.”
“아, 예······.”
굉장히 희한한 광경이다.
이 사람들도 평범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내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그렇게나 놀라운 것인가 싶었다.
말을 건네왔던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그래서 자네 이름이 뭔가?”
“저는 김석태라고 합니다.”
이름을 묻는 남자의 질문에 대답하니,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가득찼다.
“이 녀석, 자기 이름을 알아!”
“거짓말 마! 어떻게 자기 이름을 알아?”
“여간내기가 아니군!”
“······?”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나 볼 법한 어이없는 상황.
넋을 잃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으면, 질문을 해왔던 남자가 내 손을 붙잡았다.
“자기 이름까지 알다니, 정말 대단하군!”
“······.”
“그냥 보낼 수는 없지. 가기전에 한 끼 대접하겠네. 따라오게나.”
뭐라고 이야기하기도 전에 남자의 강한 완력이 나를 이끌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남자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색이 바랜 목재들로 가득차있는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면, 유달리 커다란 크기의 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남자의 집인 것일까.
남자는 당당하게 나를 데리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어머, 외부인이네요?”
세련된 분위기의 실내.
그곳에는 남자와 닮은 소녀 하나가 있었다.
그녀는 요리를 하던 것인지, 손에 식칼을 들고 있었다.
“소개하지. 내 딸이네.”
“안녕하세요. 김석태라고 합니다.”
“세상에, 말을 하다니! 거기다 이름까지!”
“놀랍지? 하하, 나도 보고 놀랐단다.”
아까 보았던 마을 사람들과 똑같은 반응이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풍경에,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말을 하고 이름을 아는게 그렇게 신기한가요?”
“그럼요! 너무 신기한걸요.”
“대체 왜 신기한거죠?”
“말을 할 줄 아는 검은머리는 이미 다 잡아먹고 없는 줄 알았거든요!”
소녀의 말을 들은 나는 그녀가 들고 있던 칼에 시선을 돌렸다.
3초 남짓.
들었던 말을 통해 상황을 판단하기에는 충분한 시간.
나는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이럴수가! 도망까지 가는군!”
“도망가는건 처음봐요!”
열린 문 틈새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