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영어 교육은 사실상 근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약 100여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널리 알려진 영어 학습서들을 찬찬히 살펴 보자.
일본인이 쓴 '오노게이의 영문법' 이란 책을 많이 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주로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때 출판된 영어 교재를 가져다가 보거나, 서양 선교사들이 가져 온 교재 등으로 학습하였을 것으로 추측하나, 자료가 거의 없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쓰지 못 하겠다.
6.25 동란 이후 드디어 본격적인 영어 학습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당시에 유행했던 책으로는 영국인 메들리가 쓴 '삼위일체(이 책은 70년대까지 위세를 누린다)' 를 들 수가 있다. 크지 않은 판형에 독해, 문법, 작문 등 다양한 요소를 수록하고 있던 책이었다. 또한 이에 맞섰던 유진 전 서울대 교수의 '영어 구문론' 이 있다. 이 책은 대단히 특이하게도 Kellogg 수형도를 사용하여 영어학의 한 과정인 syntax(통사론)을 도입하였는데,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인기를 끌었다(사실 택도 없는 짓이다. 통사론은 언어의 심층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고안된 학문으로, 언어학자 외에는 별 쓸모가 없다). 또한 이 책은 20세기의 권위있는 사전학/영어학자였던 C. T. Onions 가 제시한 '문장의 5형식론' 을 한국 영어 교육계에 널리 알린 책이기도 하다(사실 도입은 일본 책들에 의해서였겠지만).
우리는 이 시대에서 주목할만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1959년, 6.25 동란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그 때, 월남민 출신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편입하여 졸업한 한 청년이 자신의 출판사를 세운다. 그의 이름은 '민영빈' 이었고, 그 출판사 이름은 '시사영어사'였다. 민영빈은 한국 최초의 영자신문사였던 'Korea Republic(현재 발간되고 있는 Korea Herald 의 전신이다)' 의 논설주간을 맡기도 한, 젊은 엘리트였다(자세한 이야기는 밑에서 하기로 하자).
1960년대 최고의 인기 학습서는 역시 故 안현필 선생의 책들이었다. 안현필은 일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도중, 영어 원서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처음부터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는 국내에 귀국하면서 자신이 일본에서 배웠던 엉터리 영어를 기초로 하여 '영어 기초 확립' 등의 학습서를 써 내고, 이 책들은 순식간에 초대형 베스트 셀러가 된다. 안현필은 당시 명문고등학교였던 경기고, 서울사대부고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서울대 등에 강사로 출강하며 자신이 직접 세운 'EMI' 학원에서 수많은 수강생들을 끌어들임으로써 1960년대 한국 최고의 갑부가 된다(당시에는 정주영의 현대, 이병철의 삼성 등 재벌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이전이었다). 안현필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90년대에서 다시 하겠다.
그 때 안현필 선생의 그늘 밑에서 서서히 성장하고 있던 책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후에 전설로 남게 될 '성문 종합 영어'였다.
60년대에 이어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던 안현필 선생의 저서와 더불어 혜전 송성문의 '정통 종합 영어' 가 영어 학습서계의 핵으로 떠오른다. 1976년에는 이름이 '성문 종합 영어'로 바뀌고, 표지도 그 전통적인 파란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1977년에 '성문 기본 영어' 가 발간되면서 '성문 종합, 핵심, 기본'의 트로이카 체제는 안현필 선생의 책들과 함께 70년대를 장악한다.
또한 60년대, 70년대는 전국적인 고교 비평준화 시절로서, 당시 명문고였던 경기고, 경복고, 서울고 등에 재학 중이던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일본 학습서를 구해다 보는 것이 인기였는데, 이에 발맞추어 인기를 끌었던 책이 지금도 나오는 '영문해석연습 1200제' 이다. 일본 대학 입시에서 우수한 문제들을 도쿄대 교수가 해설해 놓은 것을 한국인 이광용(?) 씨가 얻어다가 한국에서 발간한 책이다(이 이광용인가 하는 사람은 현재 전형적인 3류 대중 소설도 쓰고 있다...).
그리고 1971년, 위에서 언급했던 시사영어사에서는 미국 Macmillan 에서 개발한 회화 교재 'English 900' 시리즈의 판권을 따와 국내에서 팔기 시작, 그야말로 엄청난 대 히트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 시리즈는 90년대까지 한국에서 약 1000 만여권이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사영어사는 속속 많은 책들을 히트시키며 한국을 대표하는 영어 전문 출판사로 자리잡으며 학원 등에도 손을 대개 된다(참고 : 시사영어사의 상호 앞에 붙어 있는 'YBM' 이란 글자는, 창업자 민영빈의 이니셜이다).
1970년대 말, 미국의 시험 평가 기관인 ETS(Educational Testing System)에서 학문 영어를 측정하기 위해 개발한 토플(TOEFL) 시험에 국내에서도 치러지게 되며, 만점자가 아직 없었던 당시, 미국 유학 준비생이었던 우리 나라의 조화유 씨(현재 영어 학습서 저술가로 널리 알려진)가 작문, 어휘 부분에서 세계 최고 득점을 기록한 적이 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영어 학습서들이 다양하지기 시작한 시대이다. 안현필의 교재들은 점점 인기가 사그라들고, 무소불위의 성문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때였다.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조광무역, 삼성전자 등에서 일하던 이찬승이 1978년에 냈던 영어 교재가 반응이 좋자, 회사를 그만두고 시사 영어 학원에서 인기 강사로 이름을 날리게 되고, '60단계 미국어 히어링 시리즈'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그는 능률 영어사를 창업한다.
또한 학원 강사 출신의 故 장재진 선생이 성문을 적당히 베껴서 만든 '맨투맨' 시리즈를 내 놓으면서 성문과 함께 80년대 중고등학생 영어 참고서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한다(장재진 선생은 90년대 중반 사망한다. 현재 맨투맨을 출판하고 있는 사람은 그의 아들인 장명환 씨이다). 맨투맨은 당시 성문을 위협하는 인기를 얻으며 성문과 법적 분쟁을 유발하기도 했으며, '맨투맨 - 해법수학' 라인은 '성문 - 수학의 정석' 라인에 대항하는, 소위 비주류 학생들의 선택이기도 했다.
이장돌 선생의 '마이더스' 시리즈도 상당한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이장돌은 이 인기를 바탕으로, 지금도 널리 팔리고 있는 '리더스 뱅크' 시리즈를 내 놓는다.
'빨간 영어'로 유명한, 정치근 선생의 '기본 영어' 시리즈도 나름대로 잘 팔리던 시절이었다.
토플 시험이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서울대 김인숙 교수와 단국대 이봉삼 교수가 저술한 '아카데미 토플' 과 미국 Bejamin N. Cardozo High School 의 교사였던 Harold Levine 이 저술한 'Vocabulary 22000'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다. 또한 '아카데미 토플' 에 맞서는 '이재옥 토플' 도 역시 높은 판매고를 자랑하던 교재였다.
지금은 넥서스에서 판권을 따서 내고 있지만, 고려원이 자랑하는 베스트 셀러였던 김영로 선생의 '영어 순해' 시리즈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직독직해' 라는 말을 널리 퍼뜨린 책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했던 조화유 씨도 생활 영어 시리즈로 큰 인기를 누린다.
특히 시사영어사는 80년대에 'Michigan Action English' 등의 외국 유명 교재를 수입해서 대박을 터뜨리고, 꾸준히 새로운 학습서들을 내놓음으로, 굴지의 대형 기업으로 성장한다(민영빈의 놀라운 경영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리고 시사영어사는 ETS와 계약하여 자신들의 주 히트 상품이 될 토익(TOEIC) 시험을 국내에 도입한다.
영어 학습서의 춘추 전국 시대가 도래한 때이다. 출판 기술이 발달하고, 영어 교육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다양한 영어 학습서들이 쏟아지고 Oxford University Press, Longman 등의 외국 출판사 교재들도 속속들이 수입된다.
능률 영어사, 성문, 맨투맨 등이 전통적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특히 능률 영어사는 80년대에 출간되었던 '능률 Vocabulary', '리딩 튜터' 등이 인기를 이어가면서 대형 출판사로 성장한다(이찬승은 '능률 수학사' 를 설립하고 수학 책도 내놓았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이익훈, 민병철, 곽영일, 오성식 등이 인기 강사로 떠오르고, 많은 돈을 벌면서 속속 자신들의 어학원을 세운다. 특히 곽영일과 오성식은 90년대 초중반 큰 인기를 끈 '팝송 영어'의 주도자였으며, 인기 어학 강사 출신의 박정이 '박정 어학원'을 세우며 토플 시험의 중심지로 주목받게 된다.
90년대 중반, 한국 영어 학습계를 강타한 책이 등장했으니 '두 번만 읽으면 끝나는' 시리즈였다. 이 시리즈의 저자인 배진용은 미국 Brighan Young University 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국내 기업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영어 회화 삼국지' 등의 책을 냈으나,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번만 읽으면 끝나는 영문법' 이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속속 '두 번만 읽으면 끝나는 영문 독해', '두 번만 읽으면 끝나는 영단어' 등을 내 놓았고, '~~번만 읽으면 끝나는~~' 라는 류의 제목을 많은 책들이 사용하게 된다.
1999년에는 조경학 박사 출신의 정찬용이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를 내 놓는데, 이 책은 순식간에 수백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일본에도 수출되고, 그야말로 '영절하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다.
그는 이 책에서 '나는 토익이 1급이다(토익에는 급수가 없으며, ETS 에서 정한 'A급' 등이 있긴 하나, 어디까지나 토익은 점수를 내는 시험일 뿐이다)' 류의 씨도 안 먹힐 소리를 하며 마치 엄청난 영어 학습법을 개발한 것처럼 떠들며 '영어 일기, 정찬용에게 물어봐라', '토플 백신' 등의 책을 계속 내 놓았으나, 영절하 열기가 식으면서 그의 저서들도 금방 인기가 사그라들고 말았다.
2002년에는 '영문 독해 절대로 하지 마라' 라는 책을 냈으나, 아무도 그 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현재 그는 한양대 조경학과 겸임 교수로 있으면서 다음 영절하 카페에서 높은 상담료를 받으며 여전히 어설픈 영어 실력은 감춘 채 영어 상담을 해 주고 있다(그는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서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으나, 그의 과거사는 여기서 들추지 않기로 하겠다. 물론 부정적인 면에서 잘 알려졌었다는 얘기다).
또한 90년대는 '토익의 시대' 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들 말로는 '비영리 기관' 이라면서도 전세계에서 수험료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미국의 'ETS' 와 영어보다는 경영에 더 뛰어났던 민영빈의 시사영어사가 제대로 눈이 맞은 이 시험은 90년대 한국을 강타한다. 사실 이 시험은 원래 일본에서 ETS에 의뢰해 만든 시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 후반부터는 오히려 한국 수험자가 일본 수험자를 앞지르기 시작한다(전세계 토익 수험자의 대부분이 한국인과 일본인이다. 전세계 공인 시험은 무슨....).
특히 시사 영어사의 엄청난 홍보와 맞물려, 기업들이 마음에 안 드는 직원 짜르기 용으로 토익을 속속들이 도입하면서 그야말로 토익은 황금기를 구사하게 된다.
시사영어사는 음반 사업 등 다각도로 경영을 확장하지만, 97년말 외환 위기 사태 때 회사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뼈를 깎는 구조 조정으로 겨우 살아남는다.
90년대에 성장한 출판사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넥서스'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지극히 평범한 영어 교재들을 출판하던 회사에 불과했던 넥서스는, 90년대 후반부터 특유의 매끈한 표지 디자인과, 외국의 유명 교재들을 번역해서 선보이며 대형 출판사로 성장하고, 건강, 음악 등의 실용 서적까지 출판하게 된다.
영어 학습서 얘기는 아니지만, 90년대에서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이, 위에서 언급했던 안현필 선생의 '삼위일체 건강법' 신드롬이다. 안현필 선생이 위독한 병을 생식 등으로 치료한 것을 계기로 주창하기 시작한 이 건강법은 90년대 중반 한국일보에 연재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안현필 선생은 다시 건강법 서적 저자로 밀리언 셀러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현미' 열풍이 바로 안현필 선생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150살 이상 장수를 자신한다던 그는 1999년, 결국 작고한다.
90년대의 학습서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끌어가고 있고, 더욱 더 새로운 교재들이 등장하고 있다.
사실 1990년대와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별로 쓸 말도 없다(계속 키보드 치느라 팔도 아프고).
한 가지 말해 두고 싶은 것은, 혜전 송성문이 자신이 성문 시리즈를 팔아서 수집해 온 귀한 문화재들을 기증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제 시대부터 시작된 영어 교육의 역사를 학습서를 통해 알아보았다. 우리 나라 영어 학습서는 결국 일본 책으로부터 시작해 대다수가 성문의 사생아들이고,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의 영어 실력은 별로 나아진 바가 없다.
21세기에는 좀 더 혁신적인 체제를 갖춘 학습서가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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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에 쓰여진거라
메가스터디를 필두로한 수능영어나
저기서 해커스, 영단기등의 토익영어
또는 공무원영어 까지 추가되면 완벽하지만
누가 안써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