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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4 16:27
자객한테 습격 안 당했으면 북진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나요?
북진하려다가 막힌 걸로 알고 있는데... 진등이 끝까지 잘 막아낸다면 모르겠지만 손책이 집요하게 파고 들면 결국 뚫리고 조조는 양방으로 두드려 맞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19/04/14 16:29
손책이 쌓은 업보 중 하나가 그를 빨리 죽인거뿐이지 그 건 하나 무마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런 업보에 의한 자객이나 암살을 다 배제하는 말도 안되는 if를 들이댄다해도 그 호족들 득실거리는 강동지방을 잘 꿰어나가는건 성미상 불가능이고 그걸 중앙집권으로 만들 패왕인지는 보여준게 적어서 패스
19/04/14 16:31
1번이겠죠.
위나 촉이 중앙집권구도고 그에 비해 오가 봉건적인 성격이 강했던 건 단순히 위촉에 비해 오의 호족들의 힘이 세서가 아닙니다. 위촉에도 호족과 이민족은 많았지만 그걸 누를 수 있는 군사력과 관리할 수 있는 행정력이 발달했던 거죠. 남북조 이후 동진이 체제를 정비하고 북벌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손씨의 집권을 통한 강남발달도 한 원인이지만 그보다는 북쪽에서 전란을 피해온 식자층들이 그대로 관료체계에 흡수되어서라고 보고요. 손씨는 그런 덕을 못봤죠. 조정의 핵심이 된 인물층들도 고씨나 육씨 같은 지역 호족들 중 손씨와 가까운 명문가들 위주였고... 손책 대에서는 주유 장소 외에는 그런 기반 자체가 없어서 손권때보다 더 열악했고요. 아마 말씀하신 그 내부정비에 너무 오래 시간을 끌다가 다시 암살당하거나, 혹은 조조가 화북 통일하고 남하할 때까지 내부정비에 시간을 들였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지. 뭐, 기적적으로 내부정비에 성공하고 북벌에 나섰더라도 기병을 확보하지 못한 당시의 남쪽 세력이 북쪽 세력과의 힘싸움에서 이기기는 힘들었다고 봅니다만.
19/04/14 16:44
손책은 일찍 죽어서 과대평가된 케이스입니다. 군벌로써 할거할 기량은 있으나 그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원인도 결국 본인의 난폭한 성품과 작은 그릇 때문이니까요. 소패왕 신화도 좀 민망한게 손책이 상대한 적들은 강동의 중소세력들이었지 아버지 손견처럼 중앙세력을 상대로 정면대결을 벌인 적은 없었죠. 전 무조건 1번입니다. 군주로서의 기량은 말년이 좀 어지러웠지만 기반을 굳혀내고 수성에 성공한 동생 손권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19/04/14 17:11
근데 손책이라고 장강 건너서 조조랑 맞짱은 어림 없었을 듯. 기반도 제대로 없는데 강 건너면 서폿없는 베인마냥 죽여야죠.
조조는 뭐 그러려니 해도, 유표도 공융이나 도겸처럼 호구는 아니니까. 제리도 황조 하나 죽이고 뭐 딱히 한 건 없죠.
19/04/14 18:00
아깝게 단명한 무장이 공이 부족하면 힘을 칭송하고, 아깝게 단명한 문관이 공이 부족하면 미래예지를 시키는 법이죠.
그냥 공적으로 따지면 됩니다.
19/04/14 19:24
2번. 손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오나라가 내부정비에 시간을 소모한것은 맞죠.
손책이 살았다면 최소한 형주공략은 시도해서 어느정도 성과는 냈을거라고 생각함. 당시 조조도 화북이랑 투닥거리는 시기라 관여도 못하고 최소 형주반을 먹고 버티기 했으면 조조도 손책과 협상을 하던지 동맹을 동맹을 하던지 했을듯
19/04/14 20:38
당시 손가 세력으로는 조조든 유표든 도모하기 어려웠던 건 맞죠. 국력 차이가 너무 나니까요.
오히려 손책이 오래 살았으면 적벽에서 조조가 이겼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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