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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11/01 17:06:33
Name 칼리
Subject [유머] 김태형의 저주는 약과다. 제대로 된 저주는 바로 이것이다!(스크롤 압박)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황들의 축복과 저주입니다. 읽어보니 웃기군요.^^

* 이 글은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도서출판 두루마리, 02-2277-8087)에 들어 있는 글로서, 영국과 호주에서 발간된 「Papal Blessings and Curses」라는 소책자를 스위스의 구영재 선교사님께서 번역한 것을 허락을 받아 실은 것이다.

1990년 이탈리아에서는 월드컵 세계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특별히 카톨릭 국가인 아일랜드 팀을 축복하고 다음날의 경기에서 승리할 것을 기원하였다. 그러나 교황의 축복은 오히려 아일랜드 팀에게 패배를 안겨다 주었다.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세계제패를 꿈꾸며 결승에 진출했던 이탈리아 팀 역시 바티칸에서 로마 교황으로부터 특별축복을 받고 출전했으나 역시 패배의 잔을 마셔야만 했다. 이탈리아의 신문들은 로마 교황의 축복에 대해 의심했으며, 로마 카톨릭교의 주간지 [카톨릭 위클리](Catholic Weekly, 1990년 7월 25일자) 조차도 로마 교황의 축복의 효력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글을 실었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1588년 스페인 함대에 일어난 일을 잘 알고 있다.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스페인의 필립 2세는 영국을 정복하여 로마 교황에게 되돌려 주려고 금과 군인과 로마 교황의 축복을 가득 실은 [아르마다] 함대를 출항시켰다. 그러나 로마 교황의 축복은 그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음이 곧 드러나게 되었다. 그들이 믿던 하나님은 그들을 쳐서 흩어 버리시고 그들 대부분을 산채로 수장시켜 버렸다. 역사는 로마 교황의 축복이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것들에 대한 수많은 예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작은 책자를 통해 독자는 로마 교황의 축복과 저주가 어떻게 일관성 있는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제 보게 될 것이다.


로마 교황의 축복

1) 로마 교황 비오 9세(1846-78)는 시실리아의 왕에게 "황금 장미"(역자 주: 로마 교황이 축복한 황금 장미는 특별한 명예의 상징이며, 순금으로 제작되어 로마 카톨릭 국가의 원수, 교회, 도시 등에 기증되었다. 이 황금장미의 실물은 프랑스 파리의 끌리니 박물관 Mus?e de Paris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면 대영백과사전의 "Golden Rose"란을 참조하기 바란다)를 보냈다. 그런데 이 왕은 그 축복을 받은지 일년이 채 못되어 왕좌에서 쫓겨났다.

2) 역시 같은 로마 교황 비오 9세가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축복했을 때, 황제는 일년이 못되어 베네치아를 잃었고, 사도와에서 참패를 당했다.

3) 로마 교황 비오 9세는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황금장미를 보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녀는 왕좌에서 쫓겨나 망명 중에 죽었다.

4) 로마 교황 비오 9세는 프랑스의 유제니 왕후(나폴레옹 3세의 부인)에게 황금장미를 보냈다. 일년이 채 못되어 왕과 왕비는 권좌에서 쫓겨났고, 둘 다 망명 중에 죽었다. 그들의 외아들이었던 왕자는 아프리카에서 줄루족에 의해 살해되었다.

5)브라질의 왕후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3일 후 왕후의 다리가 부러졌으며, 왕과 왕비는 권좌에서 쫓겨났고 귀양 중에 죽었다.

6) 브라질의 왕위 상속자였던 공주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곧 기형아를 출산했으며 망명 중에 죽었다.

7) 로마 교황은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황제를 축복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곧 권좌에서 쫓겨났으며, 국민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8) 로마 교황은 역시 그 황제의 미망인을 축복하였으나 그녀는 불치의 정신병에 걸려 망명 중에 죽었다.

9) 1890년 로마 교황은 수녀들을 가득 싣고 남아프리카를 향해 떠나는 증기선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이 배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실종되었다.

10) 로마 교황은 몬테비데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호화 여객선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이 배는 이틀 후 침몰하고 말았다.

11) 로마 교황은 프랑스의 로마 카톨릭교도였던 불랑제(George Boulanger, 1837-91) 장군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채 2주가 못되어 그는 추방되었고, 그후 자신의 정부(情婦)의 무덤 앞에서 자살하였다.

12)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셔만(W, T. Sherman) 장군의 부인은 로마 교황으로부터 황금장미를 받은 직후에 죽고 말았다.

13) 윈드호스트(Ludwig Windhorst, 1871년에 결성된 독일 로마 카톨릭 중앙당의 지도자) 박사는 로마 교황이 수여하는 그리스도 훈장(Order of Christ))을 받은 뒤 채 일년이 못되어 죽었다.

14) 1895년 다마스커스의 대주교는 빗토리아(Vittoria)에서 스페인의 군대와 함대에 로마교황의 축복을 기원하였다. 그 결과 스페인은 두 개의 함대와 두 개의 군단을 잃었다.

15) 1897년 로마 교황의 사절단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대자선 바자회를 축복하였다. 그러나 5분이 채 못되어 바자회는 불길에 휩싸였고, 오스트리아 황후의 자매를 비롯해서 거의 150명의 상류인사들이 사망하였다.

16) 가련한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황후(시시)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황금장미를 받았다. 그 후 황후는 스위스의 제네바 호수가에서 살해되었고, 그의 아들은 자살을 했으며, 왕위계승자였던 그녀의 조카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에서 암살 당해 세계 제1차대전이 일어났다. 그 후 오스트리아는 더 이상 제국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17) 로마 교황을 방문한 영국의 국와 에드워드 7세는 교황 자신의 서명이 들어있는 레오 13세의 사진을 기념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바로 영국군이 소말리아에서 역전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왕의 건강은 악화일로로 치달아 죽을 때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18) 로마 교황은 영국 국왕의 특사였던 덴비(Denbigh)경을 축복하였다. 바로 그 날 남아프리카의 영국군은 참패를 당했고, 미투엔(Mithuen)경은 중상을 입었다. 영국의회의 로마 교황 신봉주의자들은 이 뉴스를 듣고 기뻐했다.

19) 1923년 바텐베르크(Battenberg)의 에나(Ena) 공주는 결혼식 날 로마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나흘이 채 못되어 그녀는 로마 카톨릭 무정부주의자들의 습격을 받아 13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당하는 와중에서 겨우 도망 쳐 목숨을 건졌으나 그녀의 결혼 예복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1931년 5월, 그녀와 남편(알폰소 13세 왕)은 왕좌에서 쫓겨나 스페인으로부터 탈출하였다.

20) 1906년 로마 교황은 로마 카톨릭교로 개종한 세르비아의 나탈리(Natalie) 여왕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망명 중에 죽었으며, 그녀의 외아들은 왕위에 올랐다가 살해되었다.

21) 오를레앙(Orleans)가에 속한 포르투갈의 한 왕비는 로마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왕이었던 남편과 장남은 마차를 타고 가다가 왕비 옆에서 살해되었고, 목숨을 건진 왕비는 살아남은 다른 한 아들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 후 포르투갈은 공화국이 되었다.

22) 권세가 극에 달했던 독일의 황제는 1908년 로마 교황을 방문하고 그의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1918년에 왕위를 잃었고 망명 중에 죽었으며, 독일은 패망하여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23) 1914년 영국의 재산가였던 다이어 에드워드(Dya Edwards)는 로마 교황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 뒤 1916년에 그는 로마를 방문하고 로마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4일 후에 그는 죽었다.

24) 1926년 로마 교황은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왕비에게 황금장미를 보냈다. 1934년 왕 알베르 1세는 등반사고로 죽었고, 그들의 며느리였으며 왕비가 되기 위해 로마 카톨릭교로 개종한 스웨덴 출신의 아스트리드 왕비 또한 스위스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아스트리드 왕비는 레오폴드 왕과 차를 타고 호숫가를 달려가다가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나무 들이받고 담까지 뛰어넘어 호수로 뛰어드는 바람에 차문 밖으로 튕겨나가 물 속에 떨어지고 얼마 안 되어 왕의 팔 안에서 사망.(왕은 멀쩡했나?-_-)



25) 1928년 로마 교황은 비행선 이탈리아를 축복하고 북극점에 놓을 십자가도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비행선은 추락하여 두 동강이가 되었고, 승무원의 절반은 실종되었다. 노빌(Nobile) 장군은 부상을 입었고, 그 후 사건조사 위원회로부터 심한 견책을 받았다. 이 사건은 그 당시 최악의 사건이었다.

26) 무솔리니가 아비시니아(Abyssinia - 이디오피아의 옛 이름)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 땅을 약탈했을 때, 로마 교황은 이탈리아 국민을 "위대하고 선량한 국민"이라고 축복하였으나 뭇솔리니와 그의 정부(情婦)는 살해되어 거꾸로 매달려 군중에게 공개되었다.

27) 1961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로마 교황청의 요청대로 검은 색 의상을 입고 로마 교황을 방문하였다. 그 이후로 해가 지는 일이 없었던 대영제국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으며, [로마협약]에 의한 유럽공동시장에 가입함으로써 그 주체성을 잃고 경제적으로 로마에 예속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또 영국 왕실 왕족들이 로마 교황과 잦은 접촉을 함으로써 자신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정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28) 1963년 3월 7일, 소련의 흐루시쵸프(Krushchev) 수상은 로마 교황과 직접 접견하지는 않았지만, 바티칸-소련간의 관계개선을 증진시키기 위해 딸과 사위인 아주벨(Adzubel)을 로마에 보내어 로마 교황을 접견케 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년 반이 지난 후 1964년 10월 16일, 그는 권좌에서 밀려나 당서기장직을 사임하였으며, 그 이후로 그는 정계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29)1963년 7월 2일,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고 축복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월남파병 병력을 증강시킴으로써 미국을 월남전에 깊이 개입시켰다. 그리고 1963년 11월 12일에 그는 암살당하고 말았다.

30) 1964년 로마 교황은 황금장미를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 보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 영토 내, 특히 "거룩한 장소"로 불리는 곳에서는 끊임없는 소요가 잇달아 일어났다.

31) 1964년 5월 12일, 요르단의 후세인 왕은 로마 교황을 접견했다. 일년 후 1965년 6월 5일, 요르단 군은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에게 대패하였고 많은 영토를 잃게 되었다.

32) 1964년 10월 12일,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은 그 권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로마 교황을 접견하고 평범한 신도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1967년 2월에 축출당하고 말았다.

33) 호주의 노동당 당수인 아더 콜웰은 로마 교황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곧이어 그의 정치 생활은 끝이 나고 말았고, 결국 정치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34) 1965년 10월 5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뉴욕 시를 방문해서 유엔총회에서 연설하였다. 죤슨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로마 교황을 방문하였고, 미국을 위해 뜻깊은 방문이라며 환영하였다. 대통령은 자신의 부인과 딸을 로마 교황에게 소개하였다. 그 후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에 자주 참석하였다. 1968년 4월 1일, 그는 차기 선거에 나서지 않을 것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은퇴하였으며, 일년 후 사망하였다. 그가 임기를 치른 3년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때였다. 50만 명 이상의 미군이 월남에 파병되었으나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대학가에서는 반전데모가 한창이었고 흑인 폭동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해외에서의 미국의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다.

35) 1966년 4월 24일, 그리스의 콘스탄틴 왕과 앤 마리 왕비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일년 후 1967년 4월 21일, 일단의 육군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콘스탄틴 왕을 폐위시켰다. 같은 해 12월 12일 친왕파가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하자 왕과 그 가족은 그리스로부터 탈출했다.

36) 1967년 2월 5일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과 동시에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68년 6월 6일 그는 암살되고 말았다.

37) 1967년 6월 1일, 프랑스의 드골 장군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전쟁 주축국이 항복한 후 형성된 평화위원회에 바티칸 대표를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는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로마 교황과 화해하기 위해 로마 교황을 접견했다. 그러나 1969년 8월 24일, 드골 대통령은 헌법개정안이 부결된 후 사임하고 말았다.

38) 1967년 5월 12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를 방문하여 그 당시 수상이었던 살리자 박사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일년 후인 1968년 9월 8일에 살리자 수상은 중풍에 걸려 사임하고, 캐타노 박사가 새 수상이 되었다.

39) 1969년 7월 31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아프리카의 우간다를 방문하여 자신을 초청한 밀톤 오보테 대통령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고 우간다 국민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1971년 1월, 오보테 대통령은 이디 아민이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하야했고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 후 8년 동안 우간다 국민은 이디 아민의 폭정에 시달렸다. 1975년 9월 10일, 이디 아민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79년 4월 12일, 인접한 탄자니아에서 온 해방군은 이디 아민의 군대를 격파하였고, 이디 아민 대통령은 해외로 탈출하였다.

40) 1970년 9월 29일, 닉슨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방문하고 월남전으로부터 모든 미군을 철수시킬 계획을 말하였다. 이 때 그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냉대를 받고 축복도 받지 못하였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은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였다. 불행하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은 미국 헌법이 바티칸의 공식 대표부를 두는 것을 인정하 않으므로 자신의 개인적인 특사를 바티칸에 보내어 로마 교황청과 타협하였다. 1972년 12월 21일, 닉슨 대통령의 딸 패트리샤와 사위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74년 8월 24일,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터 사건에 연루되어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41) 1970년 10월 10일 이디오피아의 하이레 셀라시에 황제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1972-73년에 걸쳐 이디오피아는 심한 기근과 가뭄에 시달렸다. 1974년 8월, 그는 쿠데타에 의해 폐위 당하고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1975년 8월 27일,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

42) 1970년 11월 30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폭풍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돌아보고 난민들을 동정하였다. 그러나 1971년 3월, 내전이 일어나 일년 이상 계속되었고, 수십만의 사람이 죽고 수백만이 난민이 되었다. 1972년 4월, 로마 교황의 방문을 허락하였던 칸(Khan) 대통령은 인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하야했다.

43) 1970년 12월,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호주를 방문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위대한 호주 위에 함께 하기를, 또 평화와 번영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호주를 축복하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매우 기뻐하며 국가 위에 큰 축복이 임하기를 기대하였으나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1973년 4월 27일, 위트램 수상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고 몇 달 후 국민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호주 역사상 최초로 바티칸과의 외교 관계를 열었다. 그후 많은 노동쟁의가 일어났으며, 절제 없는 임금인상 요구, 경제불황, 17%에 이르는 높은 인플레이션, 심각한 실업률 등은 1982년이 되도록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74년 12월 15일, 다윈 시는 무서운 폭풍우에 의해 초토화되었고, 1975년 12월 13일 호주 노동당은 선거에서 대패를 당했다. 프레이져가 수상이 되었고 다시 한 번 노동당이 참패하면서 위트램은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44) 1972년 10월 5일, 영국의 히드 수상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1973년 12월 17일,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경제적, 산업적 위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1974년 3월 4일, 보수당이 패배하고 히드 수상은 사임하였다. 1975년 2월, 마가렛 대처가 당수가 되고 히드는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45) 1972년 11월 14일, 망명 중이던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이었던 페론은 새 대통령으로 부임하기 전에 로마 교황을 먼저 접견하였다. 그러나 1974년 7월 2일, 그는 일년간의 공직생활 후 심장마비로 서거하였다.

46) 1973년 4월 9일, 월남의 티우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75년 7월 24일, 월남군은 월맹군과 베트콩에 의해 완전히 축출되어 티우는 해외로 탈출하였다.

47) 1975년 6월 4일, 포드 대통령 부부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1976년 11월 4일, 포드 대통령은 선거에서 패배하고 지미 카터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48) 1977년 7월 4일, 호주 수상 프레이져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프레이져 수상에게 재앙이 내리는 대신에 1978년 8월 6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가 죽었다. 새로 선출된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도 급작스럽게 죽었다. 그러나 프레이져 수상에게 올 재앙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인플레이션 대응책은 큰 실패로 돌아갔고 호주는 최대의 실업률로 인해 크게 곤경을 당했다.

49) 1978년 2월 14일,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81년 10월 7일 그는 암살 당했다.

50) 1979년 11월,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터키를 방문하며 디머렐 수상의 영접을 받았다. 1980년 9월 12일, 디머렐 수상은 이브렌 장군이 이끄는 터키 군부의 무혈 쿠데타에 의해 하야하고 말았다.

51) 1979년 10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국을 방문하자 교황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을 뿐 아니라 백악관에까지 초청하였고, 의회 연설까지도 하게 했다. 연이어 카터 대통령은 1980년 6월 23일 개인적으로 바티칸을 방문하였다. 1980년 12월 선거에서 그는 레이건에게 압도적인 대패를 당했다. 로마 교황의 두 번에 걸친 축복도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52) 1981년 2월, 오히라 수상은 일본을 방문한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환영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12일 그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53) 1981년 2월,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필리핀 군도를 방문하녀 관습대로 땅에 입을 맞추고 필리핀을 축복하였다. 그 이후 이 나라는 태풍의 피해로 인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상실하였다. 마닐라의 대주교인 신 추기경은 필리핀의 경제가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The Age, 1981년 1월 2일자). 마르코스 대통령은 굴욕스럽게 쫓겨났고, 새 대통령이었던 아키노는 인기를 잃었다. 재앙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이다.

54) 1980년 5월 9일,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나의 아크라를 방문하녀 리만 대통령의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1982년에 로링스는 군사혁명을 일으켜 리만 대통령의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그 정권을 축출했다. 리만 대통령은 해외탈출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었다.

55) 1980년 6월 2일,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랑스를 방문하여 지스까르 데스땡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원수 급의 예우를 받고 개인적인 면담을 가졌다. 그러나 일년이 채 못된 1981년 1월 5일,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 당수인 미테랑에게 패배 당했다.

56) 1980년 7월 1일, 로마 교황은 10일 간에 걸쳐 브라질을 방문했다. 그로부터 2년후인 1982년에 브라질의 정부 관리들은 900억불의 외채를 지고 있음을 시인하였고, 1983년에는 지난 5년 동안의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브라질 일부지역을 휩쓸었고 브라질은 경제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57) 1981년 11월 11일, 인디라 간디 인도 수상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84년 11월 그녀는 시크교도인 자신의 경호원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58) 1982년 2월, 로마 교황은 나이지리아를 방문하여 세가리 대통령의 영접을 받았다. 그 뒤 세가리 대통령은 바하리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군에 의해 축출 당했고, 3년 후인 1985년에 바하리 대통령도 다고냐라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군에 의해 축출 당했다.

59) 1982년 6월, 로마 교황은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여 야외 미사에서 갈티리 장군을 비롯한 군 수뇌 장성들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4일 후 아르헨티나 군은 포크랜드 섬의 스탤리 항에서 영국 군에게 항복하고, 갈티리 장군은 사임하였다. 1983년 10월에는 아르헨티나 공군의 고위장성 두 명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공군 사령관 플레시 장군이었다. 갈티에 장군은 12년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60) 영국은 사상 초유로 로마 교황이 영국을 방문하겠다는 호의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1982년 5월로 예정된 로마 교황의 영국 방문을 몇 주 앞두고 영국은 국민의 95%가 로마 카톨릭교도국인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에 휘말려들었다.

61) 1982년 9월, 모나코의 그레이스 켈리 왕비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이 사고가 있기 약 2년 전 왕과 왕비는 로마에서 선전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62) 1984년 5월,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푸아 뉴기니아를 방문하여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뉴브리튼 섬의 물루웨이 화산이 분출하여 섬 주민들이 급히 대피하였고 1985년에는 집단강간, 살인, 강도 등의 폭력사건이 온 섬에 만연하였다. 1986년에 지도자였던 소매어는 윙티에 의해 축출되었다.

63) 1984년 5월, 로마 교황은 구아달카날과 호니아라를 방문하여 솔로몬 군도를 축복하였고, 아울러 인근 피지와 바노트 섬에서 온 방문자들도 축복하였다. 그런데 1985년 1월에 에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과 니켈이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이 연달아 섬들을 강타하였다. 특히 피지와 바노트에 있는 가옥과 농장은 큰 피해를 입었다. 1986년 3월,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이 솔로몬 군도를 강타하여 그 지역을 황폐케 만들었고, 섬주민의 절반은 집을 잃었고, 이 태풍은 계속해서 시카이나, 말라이타, 구아달카날, 산 크리스토벨 섬들을 강타하였다.

64) 1985년 8월 13일, 로마 교황은 아프리카의 카메룬 국의 보멘다 시를 방문하고 근처에서 야외 미사를 가졌다. 그로부터 1년 후 화산호(湖)인 니요스 호수에서 독가스가 분출되어 보멘다 시의 외각지대의 촌락들에서만 2천 명이 사망하였고, 짐승과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다.

65) 1986년 11월 22일, 로마 교황은 랭 수상이 이끄는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1989년 8월, 랭 수상은 더 이상 정치적 압력을 견디다 못해 사임하였다. 비록 그가 속한 당이 1987년 8월 선거에서 이겼지만 그에 대한 개인적인 추문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66) 1986년 11월 25일, 뉴질랜드 야당 당수였던 하워드는 의회에서 로마 교황을 환영하였다. 그의 환영 연설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로마) 교황께서는 이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기독교인으로서 이곳을 방문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대한 교회의 가장 추앙 받는 지도자로서 환영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최고 멤버로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워드는 1988년 총선에서 패배를 했고 결국 자유당 당수직에서 밀려났다.

67) 1986년 11월 26일, 제프 케?은 비록 자신이 로마 카톨릭교도가 아닐지라도 플레밍톤 경마장에서 로마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가할 것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로마 교황을 만났다. 그러나 1989년 케?은 빅토리아에서 있었던 선거에서 패배했고 6개월 후에 자유당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68) 1986년 11월 26일, 뉴사우스 웨일즈의 수상인 언스워스는 시드니에서 로마 교황을 영접하였다. 그러나 호주 노동당은 1988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언스워스는 실각하였다.

69) 1986년 12월 1일, 호주의 재벌 알란 본드는 퍼트에서 로마 교황을 영접하여 무릎을 꿇고 교황의 반지에 입을 맞춘 후 개별적으로 교황과 면담을 가졌다. 그 후 그는 사업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호주의 방송 심의위원회는 본드가 방송면허를 소유할 자격이 없다고 판결하였고, 그는 재정적으로 큰 위기를 맞게되었다.

70) 1987년 로마 교황이 미국을 떠난 지 한 달이 채 못되어 월 가(Wall Street)의 주가가 폭락함으로 인해 온 세계는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을 맞았고, 미국은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준 축복에 깔려 휘청거렸다.


로마 교황의 저주

아마도 지난 1700년 동안 로마 교황 혹은 로마 교황청의 축복을 받고 망한 사람들을 세어 본다면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두 번이나 로마 교황의 축복을 받은 한국, 그가 떠난 후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역대 로마 교황들은 거의 로마를 떠나지 않고 죽었으나, "슈퍼스타", "날으는 교황"의 별명이 붙은 이 교황은 지구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축복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재난이 생겼으며, 이 사실은 온 세상에 임할 재앙을 우리들에게 예고해주고 있다. 로마 교황의 축복이 재앙을 동반한다면, 그의 저주는 응당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


1) 로마 교황 비오 9세는 이탈리아의 해방자였던 빅토르 에마누엘 왕을 저주하였다. 또 이탈리아를 자유국으로 만들고 로마를 그 수도로 선포한 이탈리아 정부를 저주하였다. 로마 교황의 저주로 인해 이탈리아는 세계 열강의 하나가 되었지만, 이디오피아를 정복하러 떠나던 이탈리아 군을 로마 교황이 축복한 후부터 이탈리아 제국은 다시 붕괴하기 시작했다.

2) 가리발디는 그의 모든 애국적인 노력 때문에 로마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특히 시실리 왕국을 전복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가리발디는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었고, 그를 기념하는 기념물들이 여기 저기에 세워졌다.

3) 비스마르크와 프러시아이 왕이 제수이트(일명 예수회) 사제들을 추방했을 때, 로마 교황은 프러시아를 저주했다. 그러나 로마 교황의 저주는 축복이 되어 프러시아는 세계 열강의 하나가 되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격파하였고, 어느 날 그 지도자가 로마 교황과의 친교 관계를 맺는 불운이 오기까지는 수년간 서유럽에서 최강의 제국으로 군림하였다.

4)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내린 로마 교황의 저주는 영국에 큰 축복이 되었다. 반대로 아일랜드에 내려진 로마 교황의 축복은 아일랜드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


무시무시하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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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는버럭
06/11/01 17:13
수정 아이콘
잘은 모르지만, 교황이 있던 역사는 꽤나 긴것으로 기억합니다.
로마 제국 시대 아우구스티누스가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지정한 이후 맞나요?
(정확한 기억이 안나서)
어쨌든 그렇게 긴 시간이니 단순히 저주가 이정도만 있다는건
오히려 좋게도 해석될수 있겠네요. 흠.
06/11/01 17:16
수정 아이콘
황금장미를 주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저리 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불과 길어봤자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저런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건 저주의 힘이 엄청났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봅니다. 최근으로 올수록 저주로서 인정받을만한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저주로 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게 없는 사건들입니다.
막강테란☆
06/11/01 17:26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에 80년대에 왔었잖아요.. 우리나라 어떻게 됐었죠?
라푼젤
06/11/01 17:26
수정 아이콘
아무튼 저주는 펠레가 최강입니다.무릴로닌자도 요새 고생하죠
sway with me
06/11/01 17:34
수정 아이콘
아르바는버럭님//로마의 기독교화는 콘스탄티누스 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최초의 황제였죠.
06/11/01 17:35
수정 아이콘
80년대라..80년에는 광주민주화운동 있었고, 하여튼 군부의 독재는 89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도 엄청났지요.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는 92년 김영삼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라고 하는 주장도 있구요.
솔로처
06/11/01 17:39
수정 아이콘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가 초대 교황입니다.
06/11/01 17:42
수정 아이콘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는 테오도시우스부터입니다.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칙령은 단순히 크리스트교를 인정하는 것이었구요.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교황으로써 힘을 발휘한건 크리스트교의 로마 국교화 이후일것 같습니다..(확실히는 잘;;)
볼텍스
06/11/01 17:42
수정 아이콘
그런데..; 저거 안좋은것만 뽑은게 아닐까요 -_-;;
Emerald Sword
06/11/01 17:43
수정 아이콘
sway with me //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니라 아우구스투스를 말씀하셨던 것이겠지요.
sungsik-
06/11/01 17:45
수정 아이콘
번역이 천주교는 개신교와 다릅니다. 아닐까 싶은데...

여하튼 교황이랑 직책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축복을 준 사람만도 전 세계에 수백만명은 될텐데
저정도의 저주밖에 없다는 건
반대로 해석하면 상당한 축복의 효과를 나타내는 게 아닐까요?
희망의마지막
06/11/01 17:52
수정 아이콘
흥미롭네요. 참 많은 일들이 있기는 있었군요.

왠지 저도 '중국 황제의 저주 역사' 라던가
'로마 황제의 저주 역사' 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LaVitaEvella
06/11/01 18:00
수정 아이콘
다음 교황은 펠레가 되겠군요.
parallelline
06/11/01 18:02
수정 아이콘
아우구스티누스는 황제가 아니라 대주교로 알고있어요... 황제라면 아우구스투스 인듯...
06/11/01 18:09
수정 아이콘
교황의 축복을 받은 축구팀이 월드컵 우승을 한다고 해도, 축복 받은 왕이 100세 까지 산다고 해도, 로또 당첨이 된다 해도.. 교황의 축복 덕분이라고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죠
담배피는씨
06/11/01 18:12
수정 아이콘
pgr에도 로마인 이야기 읽는 분이 많은듯 ^^
주인공
06/11/01 18:15
수정 아이콘
무시무시하네요.. 덜덜덜..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길이 좀 기네요 ㅡㅡ
06/11/01 18:17
수정 아이콘
PGR에서 글 길다는 말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스갤이라면 몰라두요.
김우진
06/11/01 18:22
수정 아이콘
칼리님///전 스크롤의 압박을 왜 많이 본건지;;;
06/11/01 18:24
수정 아이콘
스크롤의 압박이 드세다고 제목에 써놓을 걸 그랬네요. 허허;
풀업프로브@_@
06/11/01 18:58
수정 아이콘
내용은 재밌지만..
교황청과 전세계와의 연결이 워낙 많다보니..
교황의 축복을 받고 잘 된 경우는 훠얼씬 더 많을 것 같네요.
하지만..이걸 맨 처음 정리하신 분의 노력만큼은 S급~!
swordfish
06/11/01 19:31
수정 아이콘
이 예 중 몇명은 교황의 축복이고 뭐고 축복 당시 망조가 보이는 사람도 있군요. 뭐 재미로 읽는 거니까요.
강가딘
06/11/01 20:23
수정 아이콘
일반적으로 폐암환자들은 공기가 맑은 곳에서 많이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폐암환자들은 공기가 좋은 곳으로 요양을 많이 갔을 테고 거기서 죽은 것이니까요.. 이걸 가지고 맑은 공기가 폐암에 좋지 않다고 생각 할 사람은 없을테죠.. 통계(이 경우에는 저주가 되겠네요)는 사실 통계수치를 이용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얼마든지 이용이 가능하죠.. 뭐 재밌기는 하네요.. 제가 보기엔 여전히 '교황의 저주'보다 '김태형의 저주'가 더 강력해 보입니다..
우완투수
06/11/01 20:23
수정 아이콘
천명을 축복했는데 백명의 불운함을 뽑는거라면 딱히 저주라 하긴 힘들거 같아요. 그냥 재미로 읽는거겠죠?
군용건빵
06/11/01 20:48
수정 아이콘
고도의 교황까 -0-
삽마스터
06/11/01 21:37
수정 아이콘
교황의 위치가 수시로 축복을 내리고 그것이 이슈화 되는 자리라면 딱히 저주랄 것도 없겠는데요. 그냥 나쁜 사례는 잘 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잘 된 케이스도 정리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내일모레 사업이 망하거나 죽을 사람이었는데 축복을 받고 좋게 된 경우도 있을테지만...그런건 조사가 전혀 안되겠지요ㅡ.ㅡ
InsideKiss
06/11/01 22:02
수정 아이콘
어찌됐든, 정리하신 분의 노력이 참 대단하다 느껴지는… -_ -;;
Adrenalin
06/11/01 22:42
수정 아이콘
LavitaEvella//센스가!!!
bilstein
06/11/01 23:18
수정 아이콘
근데 1990년 월드컵 때 결승진출국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서독과 아르헨티나 아니었나요? 그 때 베켄바우어가 서독 감독으로 우승해서 선수와 감독 모두 월드컵 우승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걸로 알고 있는데...
06/11/01 23:59
수정 아이콘
기독교는 크리스트교의 한자식이죠.

개신교나 장로교가 올바른 표현
사탕한봉지
06/11/02 00:04
수정 아이콘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에서부터 유머가 시작되는군요 =.='''
아우구스투스
06/11/02 01:25
수정 아이콘
bilstein 님//

맞습니다. 1986년 월드컵과 같은 매치업이었죠. 2회 연속으로 같은 나라가 결승에 올랐는데 1990년에는 서독이 이겼죠.

sway with me님//

로마 초대 황제는 제 닉넴인 아우구스투스고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잘 모르겠네요. 로마인 이야기에 나온 주교는 암브로시우스지만... 관련이 없군요. 어쩌면 그 이름은 중간에 잠깐 잠깐 나와서 기억 하지 못하는 로마 황제 이름이 아닐까요? 사실 12권부터 나오는 황제들은 그 전의 황제들이나 인물들에 비해서 비중이 떨어져서 나오기때문에 말이죠. 콘스탄티누스 황제 빼고 말이죠.
06/11/02 03:34
수정 아이콘
일단 베드로가 교황이라는게 유머군요.. 베드로는 교황이 된적 없죠.. 사도들로 구성된 통치체의 중심이었다면 모를까..
가브리엘
06/11/02 08:39
수정 아이콘
??
solo_mes님/ 베드로는 첫 교황님이 맞으시죠.
가톨릭 교회에서는 1대 교황을 베드로라고 하고있습니다. 지금의 교황의 모습과는 다르지만요...
그리고 성인 아우구스티누스(즉 아우구스티노)는 몇분되십니다.
주교님이 2분께시구요... 철학에서 엄청난 위치를 가지고도 계시죠
가브리엘
06/11/02 08:46
수정 아이콘
현 교황은 몇 대(代)인가?

로마주교, 즉 교황이 베드로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간의 모든 교황들의 이름. 순서. 재위기간 등에 있어서까지 다 확실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바티칸'시에서 매년 발행하는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는 베드로로부터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는 264명의 교황의 이름과 순서와 치세(治世) 기간이 명기되어 있다.

출처는 네이버 지식인입니다
06/11/02 09:39
수정 아이콘
유머 게시판이니 웃으면서 넘어가지만
좀 껄끄러운게 다른 종교의 수장을 이런식으로 깍아내린다는게 개신교의 한계를 보여주는거 같아 씁슬합니다.
06/11/02 10:50
수정 아이콘
영적인 행위(축복)를 세속적 결과에 대입해서 비교하니 그렇죠뭐.
블랙호빵
06/11/02 11:26
수정 아이콘
글이 좀 길긴 하네요 -_-
swordfish
06/11/02 11:32
수정 아이콘
가브리엘/ 베드로 부터라고 하지만 그레고리우스 1세까지는 위상은 단지 로마 대주교에 한정합니다. 5대성좌 중 로마가 가지는 이점은 베드로의 후계라자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요. 당시 신자수가 많았던 동방의 안티오케이아나 알렉산드리아에 로마가 교회의 수장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사라센 팽창 시기에 안티오케이아나 알렉산드리아가 이슬람의 손에 떨어지고 나머지 유력자인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역시 비잔티움 황제의 위세에 눌리면서 상대적으로 로마의 위세가 상대적으로 높아 졌으며, 이교(오딘이나 토르 믿는 전통 게르만 신앙)이나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믿었던 게르만을 성공적으로 가톨릭으로 개종시킴으로 정치적인 위상이 높아지면서 교황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swordfish
06/11/02 11:38
수정 아이콘
참고로 비오 9세가 언급되었기 때문에 이야기하는데 비오 9세의 경우 자유주의자였기 때문에 많은 가톨릭 국가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진보적 가톨릭 자유주의자라는 꿈을 꾸게 만들었지만 결국 진보적 가톨릭이란 적어도 유럽에서 낚시에 불가했다는 결론만 남긴 교황이기도 합니다.하지만 이런 경향은 2차 대전 전후에 다시 한번 이런 경향이 불기도 합니다만, 요한 바오로 2세와 연이은 베네딕토 16세 같은 보수주의로 귀환으로 결국 다시 GG였죠.
구경플토
06/11/03 15:52
수정 아이콘
"~하네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디씨에서도 완전히 글쓴이를 무시할때 쓰는 말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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