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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5/01 13:51:01
Name 이하늘
Subject [유머] 아홉 시간의 피아노 연주
에릭 사티에가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 중 하나는 총 연주시간이 무려 9시간이 넘었다. 그래서 이 곡은 한 번도 무대에 올려지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세 명의 피아니스트가 이곡을 연주하기 위해 연주회를 개최했다. 사상 처음 있는 대장정이었다. 피아니스트들은 각각 3시간씩 휴식 없이 나누어 연주하기로하고 개최 포스터를 붙였다. 그러나 연주시간이 무려 9시간이라고하면 제아무리 애호가라도 오기를 꺼려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었으므로 곡의 이름은 연주 직전에 알려주더라도 연주시간은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식으로 하면 관객모독식 연주회였다. 연주회가 열리던 날 저녁 7시 예상외로 관객은 만원이었다. 작곡가의 인지도가 작용했고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3명이 대거 출현한다는 사실이 무었보다도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사회자는 작곡가를 소개하고 곡의 이름과 간단한 해설을 곁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곡은 어디에도 소개된 적이 없는 곡이었으므로(사실 연주시간이 그정도 되는 곡이라면 작곡가의 괴이한 장난이거나 기네스에 오르기 위한 작위적인 작품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청중들은 신곡 발표회쯤으로 생각하고 더더욱 크게 박수를 쳤다.

이윽고 연주는 시작되었다. 처음 10분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그 후로 30분 동안 청중은 숨도 쉬지 않고 무대만 응시했다. 피아니스트는 또 피아니스트대로 신들린 사람처럼 연주에 몰압했다. 30분도 짧은 시간이 아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 곡 참 길다고 생각하는 듯 간간이 팔장을 꼈다 푸는 사람들도 있었다. 40분이 넘어서자 여기저기에서 약간의 미동, 박수를 치고싶어 손바닥을 비비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50분이 지나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저 피아니스트 남의 연주곡까지 다치고 있는거 아냐, 누가 가서 말려야 하는거 아냐 하며 무대 저편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1시간이 지나자 역시 군대갔다온 사람들이 더이상은 못참겠다 군대보다 더하다며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50분 교육 10분 휴식!).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수준이 있었다. 계속해서 제자리에서 약간씩 꼼지락거릴뿐 음악에 열중했다. 1시간 30분이 지나자 사정이 약간 변했다. 이제 노골적으로 작곡가가 바뀐거 아냐, 원래 저곡 연주하기로 한 거 맞아 하며 눈을 부라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도대체 관객을 뭐로 아는 거야 박수라도 한 번 치게 해줘야지 원 이거 답답해서.... 2시간이 넘어서자 관객의 3분의2가 참을성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3분의 1, 음악을 듣고 있는지 악으로 버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좌우간 별 동요 없이 음악을 듣고 있는(척?)사람들 때문에 3분의 2는 일어서려다 제자리에 앉고마는 것이었다. 아, 클래식이 뭐길래...... 2시간이 지난지도 30분이 넘었다. 예의 그 3분의 2는 이제 미치고 싶었다. 뒤에 놈은 화장실에라도 갔지 나는 이게 뭐야. 안되겠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화장실부터 갔다오자. 간김에 큰거보고 와야지. 이리 비비 저리 비비 꼬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2시간 50분. 이거 장난이 아니네. 이게 무슨 연주회야 클래식이고 뭐고 이건 사기다. 명백히. 그런데 그 순간 약간의 미동속에서 고고한 한 클래식 팬이 낮은 소리로 저기 저 피아니스트좀 봐요. 우리야 앉아있지만 저사람은 3시간 가까이 움직이고 있어요. 하는 목소리. 그건 그렇다. 지금보니까 저 피아니스트 말이 아니다. 빰에 흠뻑 젖은 건 물론이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어깨와 다리. 참아야지 암. 곧 끝날거야. 지금까지 기다린게 아깝잖아. 이윽고 3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새로운 피아니스트와 사회자가 무대옆 출구를 통해 나오고 있다. 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큰일을 치른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먹고 그동안 아무일 없었다는 듯 오직 박수.그래 박수. 세상에 박수가 이렇게 좋은줄 몰랐다.하며 눈을 크게 뜨고 찬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자가 처음부터 들고 있었던 커다란 팻말을 들어보이자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눈의 크기가 평소의 3배가 되었다. 팻말에는 이 연주는 계속되고 있읍니다. 피아니스트만 휴식없이 바뀌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뭐라고 이 망할놈아. 박수치지 말라고. 아직 끝이 아니라고. 저거 관계자 맞아? 새로운 피아니스트는 전의 피아니스트 옆에 앉아 악보를 넘겨주는 척
하다가 자리를 바꾸었다. 음악은 계속된 것이다.

Show Must Go On!

사람들은 이제 크래식이고 자존심이고 없었다. 벌써 절반은 자리를 떠났으며 그나마 자식들을 데리고 온 부보들도 얘들아 10시다. 가서 자야지. 하며 핑계거리를 동반하여 퇴장한지 오래되었다. 이 연주회는 별다른 사고 없이(?) 계속되었으며 다만 밤 1시에 마지막 연주자에게 바톤이 넘겨질 무렵 관객의 수가 10명으로 줄었다는 것 밖에는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 편 무대밖에서는 이번 연주회소식이 전해지자 언론사들이 이건 대단한 특종이야. 6시간 이상 계속되는 연주회라니. 그런 연주회를 끝까지 여는 사람이나 연주회를 끝까지 경청하는 관객의 이야기는 정말 특종이야. 누구 우리회사 기자 거기 가 있는 사람 없나 하며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최측에서는 새로운 관객의 유입은 물론 일체의 사람의 입장을 금했으며 공연장 밖으로 한 번 나간 사람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10명의 관객은 어떻게 되었는가. 사실 이제부터 소개할 1명을 제외하고난 나머지 9명은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저녁 7시부터 여지껏 -배도 고프고 잠도 오고 애라 모르겠다. 자고 나서 바로 출근하지뭐 하면서 그자리와 그 옆자리 또 그 옆자리를 침대삼아 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대뒤의 사회자는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추호의 흔들림 없이 앉아 있는 사나이 약간 뚱뚱해서 땀을 많이 흘리고는 있지만 마음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사나이. 오 하느님 저 사람에게 힘을 주소서. 오늘의 연주회가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저사람에게 달려 있읍니다. 그가 끝까지 들어준다면 성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입니다. 연주는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최후의 관객은 점점 더 많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리를 걷어붙이고 윗옷을 벗은지는 오래되었고. 이윽고 도저히 안되겠는지 주위에 여성관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바지도 벗어버렸다. 팬티만 걸친 사나이. 그러나 추하지 않다. 4시 정각에 연주는 끝났다. 3시간동안 연주에 몰입하던 연주자가 힘겹게 일어섰고 그는 관객을 향해 인사했다. 말이 3시간이지 이건 죽을 지경이다. 손가락 팔목 허리 다리... 인사도 제대로된 인사는 꿈도 못꿀정도로 피로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머리를 조아렸다. 물론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설사 있더라도 자고 있거나 기절했거나겠지 하면서. 막 돌아서려는데 한켠에 선 사회자의 얼굴이 기쁨에 차 어쩔줄 몰라하며 객석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예의 그 사나이가 팬티바람으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박수야말로 환희였다. 연주자는 저 박수에 대한 대가야 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잠들어 있던 사람들도 그제야 깨어 이 감격적인 장면의 한가운데에서 무대위의 연주자와 사나이를 번갈아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사나이는 격정과 인내와 열정으로 뒤엉킨 박수를 치며, 옆에 있던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듯 차례차례 쳐다보며 소리쳤다.



( "앵콜! 앵콜! 앵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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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경
02/05/01 18:17
수정 아이콘
^^; 상당히 감동적이면서도 재밌네요.
항즐이
02/05/01 23:40
수정 아이콘
앵콜이라는 말.. 이제서야 봤다는...-_-; 3번이나 찬찬히 읽었는데도.. 으으으 집중력 부족이다 ㅠ_ㅠ
02/05/01 23:42
수정 아이콘
저도 처음에 볼려다 넘 글이 긴 것 같아서 나중에 볼려고 나
뒀죠. 읽기 어렵다는... --;;
그래도 앵콜 불러줄 만 하지 않습니까? 9시간의 연주라면... ^^;
오병중
02/05/02 00:31
수정 아이콘
저도 언젠가 2시간 30분짜리 무용회(?)인가를 한번도 안 일어나고 보았던 추억이 있지만....
그때도 죽으려고 했었는데 저 정도라면..ㅡㅡ;;
생각만해도 끔찍하군요.
아메바
02/05/02 00:39
수정 아이콘
예전에 정말 재미있게 봤던 얘기, 찾으려고 했을때는 없더니... 찾아주신 하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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