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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09 18:11
이거 볼 때마다 느끼는 게 정말인지 좀 궁금합니다.
그냥 아무 편지 올려놓고 내용 조작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자꾸 들어서..
17/08/09 18:22
17/08/09 18:22
http://m.blog.daum.net/gangseo/17967326
이 기사에서는 쓰인 시점을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초 정도로 보고 있군요. 훈민정음의 반포가 1446년인데.. 민간에 그렇게 빨리 전파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쨌든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17/08/09 18:28
나신걸의 편지 전문 -서원대학교 배영환 교수 번역
안부를 그지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 고자 하다가 장수(將帥)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가서 (못) 다녀가 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군관2)(자리)에 자망(自望,자기를 추천)한 후면 내(=자신) 마음대로 말지 못하는 것일세.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을 구태여 가면 병조(兵曹)에서 회덕골로 문서를 발송하여 조회하여(照會--) 잡아다 가 귀향 보내게 될까 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아니 가려 하다가 못하여 영안도3)(永安道, 咸鏡道)로 경성(鏡城) 군관이 되어 가네. 내 고도(古刀. =낡은 칼)와 겹철릭을 보내소. 거기는 가면 가는 흰 베와 명주가 흔하고 무명이 아주 귀하니 관원이 다 무명옷을 입는다고 하네. 무명 겹철릭과 무명 단철릭(= 홑철릭)을 입을까 하네. 모름지기(반드시) 많이 하여 설을 쇠지 말고(=설을 쇠기 전에) 경성으로 굳게(=단단히) 하여 들여보내소. 옷을 (설) 못 미처 지을 것 같거 든 가는 무명을 많이 보내소. 두 녘 끝에 토시를 쳐(=둘러) 보내소. 무명옷이 있 으면 거기인들 옷이야 못하여 입을까? 민망하여 하네. 모름지기(반드시) 하여 보 내소. 길이 한 달 길이라 하네. 양식을 브경이4)(인명?, 넉넉히) 하여 주소. 모자 라지 아니하게 주소. 전지(田地, =논밭)의 (온갖) 세납이란 형님께 내어 주소 (말 씀)하여 세납에 (대해) 대답하소. 공세(貢稅, =공물(貢物)는 박충의댁에 가서 미 리 말하여 두었다가 공세를 바꾸어 두소. 쌀 찧어다가 두소. 또 골에서 오는 제 역(除役, =면역(免役)) 걷어 모아 [뎝여] 주거늘 완완히(緩緩-) 가을에 덩시리 (인명)에게 자세히 차려서 받아 제역을 치라 하소. 또 녹송이야 슬기로우니 녹송 이에게 물어보아 제(저라고)가 대답하려 하거든 제역을 녹송이에게 맡아서 치라 하소. 녹송이가 저(이다)라고 대답하거든 골에 가서 뛰어다녀 보라 하소. 쉬이 길을 떠나게(?) [소□것] 많이 달라 하여 하소연하여 청하라 하소. 회덕 온양댁 가인(家人)께 상백(?) 편지 벌써(?) 자 세히 즉시 다 받았소. 빨리 보내소. 입사(?)5) 수결6) 물음표가 붙은 것은 잘 해석되지 않는 부분인 듯 합니다. 2)군관 : 장수 휘하에서 여러 군사적 직임을 수행하던 장교급의 무관.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장수 휘하에서 여러 군사적 직 무를 수행하던 무관을 칭하였다. 신분상 일반 군사와 다를 바 없었다. 3)영안도는 성종 3권, 1년(1470)에 영안도로 개칭하였으므로 이 편지는 1470년 이후에 쓰여진 것은 분명함. 4)‘브경이’는 뒷 편지의 복경이를 감안하면 이름일 가능성도 있다. 5) '立四’는 발신인의 호를 나타내는데, 나신걸의 호일 가능성이 있다. 6) 수결은 양쪽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마도 편지를 말아서 두 부분이 접합되는 부분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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