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전부 죽을거예요."
"뭐?"
나는 눈 앞의 소녀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전부 죽는다니.
전국적으로도 손에 꼽힐 수준의 시설과 인력을 자랑하는 이 과수원의 배나무들이 전부 죽는다니.
"..이것 봐, 네가 혼나서 30분동안 손을 들고 서 있었던 건 네가 멋대로 과수원에 들어갔기 때문이잖아.
애초에 네가 잘못한거라구. 그것때문에 그런 악담을 할 필요까지야.."
"악담이 아니에요."
와삭. 하고 깎은 배를 한입 더 베어먹으면서 소녀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
"이건 이 집안의 저주.. 라고 할까. 숙명이라고 할까. 아니, 이 땅에 살고있는 민족 전체에 대한 저주일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이 과수원의 주인이 이곳에 배를 심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예요. 자기 친척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뭐야. 우리 사장님이 물론 상당한 갑부이긴 하지만, 친척들과 관계가 나쁘다거나 하진 않다구?
오히려 저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 치고 저렇게 친척들과 사이가 좋은 사람도 드물지."
"차라리 자기 의지로 그런 일을 하는거라면 낫겠죠. 하지만, 이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에요."
"그냥 존재하는 것 만으로 과수원 전체를 없애버리기라도 한단 말야?"
"..나비효과 라는 말. 알아요?"
"그 뭐야. 북경에서 나비가 날면 그 지구 반대편에선 해일이 인다.. 뭐 그런거?"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비슷해요. 중요한 건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거니까.
이 과수원 주인의 사촌들은 아마 자신들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겠죠."
"사촌이라니, 그게 무슨.."
내 말을 끊듯이, 소녀는 과일을 찍어 먹던 이쑤시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이 이상 이야기 해 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테니까 그만 할께요. 과일 잘 먹었어요. 그럼."
"어이, 어디가는거야? 아니, 애초에 넌.."
순간, 몇발짝 걸어가던 소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대충 잘라낸 듯 한 숏 커트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는 처음 보았을 때 보다 약간은 부드러워진 눈초리로,
"저기.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요?"
"뭐?"
웬지 슬프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난 믿지 않아요. 결국 내 소원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우는 듯도 웃는 듯도 보이는 그 모습은 마치-
"그러니까, 오늘 일은 그냥 잊어버려요. 원래 없었던 일 처럼."
정신을 차리자,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다만 마지막 소녀의 말 만은 확실히 기억에 남아있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런 특이한 경험을.
내가 그녀와의 만남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은, 과수원에서의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두세달이 지난 다음이었다.
지역
신문에 작게 실린 기사.
지역에서 제법 큰 규모의 배 과수원이 한순간에 전부 폐사해 버렸다는.
내가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뛰어들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 소녀가 이야기한 저주란 무엇인가.
과수원의 폐사 사건과 그 저주는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
지금부터 내가 쓰는 이야기는 그 집안, 아니. 우리 민족 전체로 그 대상이 넓어질 수도 있는 저주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내가 밝혀낸 사실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지는 모른다.
또한 그 사실 역시 이 저주에 대한 내용 뿐, 어떻게 해서 이런 저주가 생겨나고
어떤 원리로 이 저주가 발동되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이 저주의 진실에 한발짝 더 다가서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랬다.
그 폐사 사건이 일어났을때, 과수원 사장의 사촌은 땅을 구입했다.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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