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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5/17 12:4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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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사무라이는 할복을 하지 않는다. |
막말 신센구미가 쿄토를 활보할 때 사람들이 신센구미에 대해 놀랐던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들의 국중법도였다. 엄격한 것도 엄격하거니와 어기면 할복이라고 하는 그 잔인함이 사무라이들에게조차 경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할복이 잔인해서 사무라이들에게 경원되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엔 사정이 있다.
영화로, 드라마로, 소설로, 그리고 노나 가부키 등의 전통극으로 수도 없이 리메이크되어 일본인의 삶에 녹아있다고까지 할 수 있는 고전 "추신구라". 불의에 주인을 잃은 아이코번의 사무라이 40명이 원수의 집에까지 쳐들어가 통쾌하게 복수를 마치고 전원 막부의 명에 의해 할복했다고 하는 이야기로 우리에게도 은연중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하승남의 초기작 가운데 그것을 중국무협으로 개작한 것이 있어 "아!"하고 떠올릴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원래 신센구미 특유의 톱니문양이 들어간 하오리는 이 추신구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당시 이 추신구라의 이야기를 공연할 때는 톱니문양이 들어간 하오리를 걸치고 상연했었는데, 여기에 할복할 때 입는 아사기빛 복식을 더한 것이 바로 신센구미의 복장이다. 그만큼 신센구미에도 강한 영향을 끼쳤던 추신구라. 그런데 정작 그 추신구라의 무사들이 할복하는 법을 몰랐다면 믿겠는가?
실제 당시 막부에 의해 할복 명령을 받았던 추신구라의 무사들은 정작 할복을 하려 하니까 할복하는 방법을 몰라 막부에서 파견나온 막신들에게서 할복하는 예법을 배웠었다. 어떻게 배를 가르고, 어떻게 목을 쳐주는 지, 목을 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세세하게 배우고 나서야 겨우 할복을 했던 것이다. 이상하지? 하지만 사실이다.
에도시대 유행하던 말 가운데 "부채할복"이라는 것이 있었다. 할복은 크게 배를 가르는 하라기리와 목을 쳐주는 가이샤쿠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가장 고통이 심하고 그래서 공포스러운 것이 바로 하라기리였다. 그래서 이 하라기리의 고통과 공포를 덜기 위해 굳이 배를 가르지 않고도 부채를 배에 갖다대면 배를 가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로 "부채할복"이다.
그나마 칼을 쓰는 경우에도 기껏해야 칼을 배에 갖다대거나, 아니면 심지어 칼을 집어드는 것만으로도 하라기리, 즉 배를 가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에도시대 일반적인 할복의 예법이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예식만 갖추면 원래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행했어야 할 가이샤쿠가 실질적으로 할복하는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비장한 표정으로 단검을 뽑아들고 배를 가르는 무사라는 건 에도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그같은 할복이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은 쿠로부네가 내항하면서 무사들에 대한 필요가 증가하면서 무사들을 단속하는 하나의 예식으로서였다. 물론 그조차도 몇몇 꽤나 과격한 무사들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에도시대 이후 3백년 간 제대로 할복을 한 사람은 신센구미의 부장 야마나미 케이스케가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격식을 갖추고, 예법을 지켜서, 배를 가르고 목을 쳐주는 것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 당시 사람들에게조차 충격이었던 것이 바로 야마나미 케이스케의 할복이었다. 그 정도로 할복이란 일본 사무라이들에게는 먼 이야기였었다.
한 마디로 할복하는 사무라이라는 것은 사무라이가 사라진 시대, 사무라이를 동경하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공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무라이 문화를 칭송하던 이야기꾼이 만들내고, 그 이야기꾼들에 의해 다시 재생산되면서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마치 진실인 양 그렇게 여겨지게 된 그런 조작된 신화인 것이다.
1960년대 전공투의 막바지에 자위대 총감부 건물에서 배를 갈라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미지마 유키오도 이렇게 할복에 대한 신화를 반복적으로 주입받은 케이스였다고 한다. 그의 할머니가 그쪽 방면에 취미가 깊어 어린 미지마 유키오를 옆에 끼고 밤이면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었다고. 그래서 그는 평생을 그 화려하고 선명한 순간의 죽음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문학에도 그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고.
문제는 정작 할복을 하려니까 할복이라는 게 그렇게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않더라는 것. 너무 아파서 배도 끝까지 가르지 못했단다. 배도 끝까지 가르지 못하고 피거품을 문 채 바닥에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다 못해 가이샤쿠를 맡았던 내연의 애인 - 동성이다.- 이 목을 베어 고통을 덜어주었다고. 할복 오타쿠의 가련한 최후라고나 할까?
이처럼 실제 배를 가른 사람도 드물고, 배를 가르고서도 제대로 평가받은 사람도 드물다. 할복을 동경해서 배를 가르겠다던 인간조차 결국 그 고통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피거품을 물고 허우적거리다 겨우 옆에서 목을 베어주어 죽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할복이라는 것은 사무라이에 환상을 품은 세상물정 모르는 머저리들을 위한 세기의 낚시였던 것이다.
*출처:개소문 닷컴 잡다구리 김모군님 글-
나름대로 신선한 글이다 싶어 퍼날라 봤습니다.
이 글의 유머는 마지막 문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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