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 지르려는 글 절대 아니고;; 그저 그날의 느낌이 쉬이 지워지지가 않아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다 결국엔 끄적거리게 됐네요. 편한 마음으로 읽어 주시길)
-----------------------------------------------------------------------------
지난 일요일.
별로 생각에 담아두고 있지 않았던 터라 아내도 나도 멍하니 있다가 보너스와도 같은 휴일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게다가 말 그대로 '노동'하는 '노동자'들에게만 주어진 보너스이니 아이 둘 모두 유치원에 가겠다, 몇년 만에 찾아든 둘만의 시간에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기분으로 아내는 뭘 할까 두 눈을 굴린다.
남녀에게 가장 만만한 것이 영화보기가 아니던가. 인터넷으로 이 영화 저 영화 리뷰를 살피기에 잠시 신이 나 있던 아내가 이내 심드렁해진다. 지난번 친구 몇명과 영화 보고나서 탈이 났던게 마음에 걸렸던 게다. 몇년을 집과 아이 밖에 몰랐으니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의 탁한 공기, 꽉 막힌 공간에서 몇시간을 집중해야하는 걸 몸이 부담스러워했던 모양이다. 좋은 날 괜히 또 탈 나면 어떻게 하냐, 그냥 백화점 가서 대충 시간 보내고 점심이나 간단하게 먹고 들어오자 그렇게 결정을 하고 말았다.
하긴 뭘 하는게 뭐가 그리 중요하랴.
고집인지 주변머리가 없는 건지, 아이 둘과 죽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누구에게 맡기고 부부 둘만의 시간을 가졌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 터라 과연 뭘 하든 둘만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올까, 아득한 먼 미래의 일이겠지 라고만 생각했던 바로 그 시간인지라, 어디 가서 뭘 하든 뭘 먹든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다음 날 가까운 백화점에서 이것 저것 구경하고 점심도 간단히 먹고 아이스크림 하나씩도 뚝딱 해치우고 천천히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팔짱을 끼고 있던 아내가 주머니 속 깊숙히 찔러넣고 있는 내 손을 억지로 꺼낸다.
"왜?"
"손 좀 잡고 가자"
"...;;;"
"그렇게 불편해?"
"으응..."
누구 말대로 폼생폼사인 사람이라 그런지;; 적당히 고정돼 있는 팔뚝에 아내가 매달려 따라오는게 훨씬 편하다. 손을 잡고 가면 아무래도 팔이 앞뒤로 왔다갔다 하게되고, 그게 괜히 애들같아 쑥스럽고 그런 생각이 드니 스치는 사람들이 다 우리 손을 한번씩 쳐다보는 것 같다.
슬쩍 움찔하는 내 손을 아내가 더욱 꽉 쥔다.
"가만 있어 좀^-^"
늘 뭘 해도 편하게 해주려는 아내가 어쩐 일인지 오늘만큼은 물러서지를 않는다.
하긴, 얼마만에 둘이 잡은 손인가.
.
.
.
아이가 하나일땐 한 사람은 아이를 안고 다른 사람은 아이 짐을 들고 다니느라, 둘이 되었을땐 하나씩 손 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느라 서로의 손을 잊고 6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 6년 동안 단 한순간도 둘만일 때가 없었다.
라면 한그릇을 먹어도, 물 한잔을 마셔도, 손 한번 씻을 때도 늘 두 아이가 '나두~'를 번갈아 외치며 서로에게 달려드니,
만난지 얼마 안돼 서로에게 반할대로 반해 그렇게나 좋아했던 우리 둘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둘이 눈 마주치며 우리만의 얘기를 나눈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사람과 나, '우리 둘'을 까맣게 잊고 살수 밖에 없었다. 그저 나는 아내에게 두 아이의 아빠였고, 아내는 나에게 두 아이의 엄마일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가 저 사랑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아빠인 것만을 고마와하며 6년을 달려왔던 거다.
휴일인지도 모르고 있다 문뜩 찾아온 날이었지만,
그래서 이렇다할 계획도 없이 그저 마음 가는대로 발길 가는대로 그저 그렇게 보낸 시간이었지만,
뒤에서 떠들어대며 티격태격하는 아이들 신경쓸 일 없이 나는 옆에 있는 아내에게 아내는 운전하는 나에게만 집중하며,
서로 앞모습 뒷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옆에 두고 걸으며,
아이 하나씩 옆에 앉히고 먹는 것 보고 흘리는 것 닦아주기 대신 서로의 눈을 보며 서로의 얘기를 하며 식사를 하고,
아이들 즐겁게 해주기 위한게 아니라 서른넷, 서른 한살 먹은 두 사람이 정말 먹고 싶어서 하나씩 사들었던 아이스크림을 해치우며 낄낄대면서,
그렇게 6년간 잊고 지냈던 나의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내가 잠시 잠깐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잊고 지냈던 느낌을 일깨우며 마침내 아내는 주머니 속 깊숙히 찔러져 있던 내 손을 꺼내 잡았던 거고, 편하지 않은 내 마음을 다 알면서도 조금이나마 더 그 순간을 느끼고 싶어 잡은 손을 끝내 놓아주지 않았던 거다.
"오늘 재밌었니?"
"응 되게 좋았어"
"나도 되게 좋더라..."
하루가 다 갈 무렵 잠시 오갔던 둘의 대화.
더 이상의 표현도 어떤 미사여구도 없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단순한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생각될만큼 마음 벅찬 시간들이었다.
겸연쩍은게 많은 한 바보같은 남자가 손을 빼려 했을때 그 손을 다 빼내지 못하도록 힘껏 잡아준 아내에게,
더 이상의 표현 없이도 서로가 마음 뿌듯했던 시간들이었음을 더욱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어 정말 고마왔다고, 바보같은 남자가 자칫 아무 것도 못 느끼고 말아버렸을 수도 있었을 그 순간 그렇게 고집 부려준 것 정말 잘 했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
.
.
그 날의 에피소드 하나로 결혼하길 정말 잘 했다 입싼 소리 나는 못한다.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에서 살던 두 사람이 함께 살아나간다는 것의 힘겨움이 그 날의 에피소드 하나로 다 잊혀진다 할 정도의 로멘티스트도 아니다.
결혼이 뭔지, 부부가 아이 낳고 산다는게 도대체 뭔지 아직까지 딱 떨어지게 알지도 못하고, 지금 꼭 생각해내고 싶지도 않다.
그저 결코 짧지 않았던 그 6년을 그럭 저럭 잘 지내온 나와 그 사람이 기특하고 고마울 뿐이다.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구나, 더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구나 느낄 수 있다는게 고마울 뿐이다.
그렇게 고마운 지금의 나와 그 사람이 있을 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