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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5/02 07:05:18
Name OrBef
Subject [유머] 연재 - 중첩(7. 수신자)
ㅇ. 다른 제대로 된 소설들을 돌이켜보면, 어느정도까지 긴장을 유지하고 어느 시점에서 해소할지를 굉장히 매끄럽게 소화하곤 합니다. 제 소설에서 기본이 되는 '공진'과 '정신과 두뇌의 분리', '신전'이라는 개념들을 어느정도에서 주인공들이 깨닫게 할까 고민하다가 지난호와 이번호에서 처리를 해버렸는데, 너무 오바해서 빨리 끝내버린 것이 아닌가 약간 후회도 됩니다. 다음에는 좀 더 잘해봐야겠죠 ^^

ㅇ. 대화와 서술의 비율을 마춘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더군요! 이번호에는 너무 대화가 많은 것을 저도 잘 느끼고 있습니다만, 달리 어떻게 써야할지 잘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이것도 쓰면서 점점 나아지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닥치고 궈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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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하고싶은 일들과 해야할 일들이 더해져, 마음은 점점 자유로워진다"
"자유?"
"그렇다. 내 마음은 지금 아찔한 기세로 요동치고 있다"
- 창천항로, 여남에서 헤어지며 조조와 관우가 나눈 대화


Chapter 7. 수신자


양재를 지나 남부순환로로 접어들 무렵, 상진이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이 가죠”
“아뇨. 그동안 도와주신 것은 정말 감사하지만, 거기까지 바랄 수는 없어요.”
“지영씨를 위해서가 아니에요. 어차피 그들은 저도 노릴거에요. 한명 보다는 두명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거 아니에요?”

분명이 그건 맞는 말이었다. 상진도 이미 발을 빼기에는 너무 많이 알아버렸고, 그들이 그를 살려둘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영에게 이 일은 그냥 둘이 도망가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실수해서 제 동생을 죽게 하느니, 그냥 곱게 저만 죽는게 나아요. 무슨 작전이라도 있어요?”
“그 여자가 나머지 3명을 정화원으로 부리는 원리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녀 본인이야 그게 신이 강림하시는 것이라고 믿지만, 그건 그 여자 생각이고 사실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공진기가 행하는 일일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대상자의 혈액 샘플을 그 기계에 집어 넣어야 하는 것이고, 애초에 혈액 검사 결과상으로.. 일종의 ‘의지박약’한 사람들이 정화원 대상자로 선정이 돼죠.”

상진은 말을 이어갔다.

“그들의 교리랑도 말이 딱 맞아요. 그들은 신전이라는 공간으로 '승천'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려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분리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을 하네요. 말하자면.. 자신의 자아라는 개념을 버리고 신전의 일부가 되어야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 뭐 그런 식이라고 보여요. 하긴 제 입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씨아라는 여자의 기억 뿐이기 때문에, 이 여자가 형제회의 교리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히 아는 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집행관이라는 위치가 높은 것 같긴 하지만, 이 여자는 그다지 다른 신도들과 교류가 없었네요. 이 여자가 형제회에 충실한 이유는, 이 여자 본인이 굉장히 불행했을 때 자신을 받아준, 형제회의 스티븐 월트라는 사도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감사와 숭배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무슨 불행한 일이 있었는데요?”
“어디 봅시다.. 고등학생 때 집에 불이나서 가족들이 모두 죽었네요. 그리고는 채권자들이 찾아와서  가족의 빚을 몸으로라도 갚으라며 씨아를 사창가에 팔아버리려고 했는데, 스티븐 월트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고, 형제회에서 묵도록 주선해줬어요. 근데 그건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으음.. 알겠어요.”
“씨아가 외우고 있는 공진 수칙을 떠올려볼께요. 공진 대상자 반경 50미터까지 접근해야 하고, 공진 대상자의 혈액 샘플이 필요하고.. 공진이 끝난 이후에도 공진 대상자와 최대 거리를 400미터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군요. 대형 전자제품 근처에는 가지 말도록 명시한 규칙도 있어요.”
“앙? 거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요?”
“네. 적어도 그녀가 알고있기로는 그래요. 왜요?”
“그럼 상진씨 말마따나, 신기한 마술같은 것은 아닌거네요. 말하자면.. 그 공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그녀가 뭔가를 행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잖아요?”
“그 공진기??”
“그렇죠. 원리야 모르지만 뭐 상관없잖아요?”

그때 비로소 상진에게 ‘메일 체크를 잘 하고 계시라’는 브라이언의 추신이 생각났다.

“어쩌면 뭔가 단서가 될만한 이메일이 하나 와있을지도 몰라요. 5분만 어디에 들렀다 갑시다."

그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경찰에 신고하자는 지영의 말은, 경찰이고 뭐고 씨아의 근처에 가면 누구나 정화원이 될 수 있다는 상진의 의견에 묵살되었다. 사실 혈액샘플이 없이는 공진을 시킬 수 없으니 상진의 말은 진실이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20분뒤 그들은 대방역 근처의 PC 방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까지는 이제 15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기에 지영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 상진이 말한 메일이라도 도움이 안되면 그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Boston police department 발로 추가로 온 메일은 없네요. 뭔가 참고가 돼지 않을까 했는데..”

상진이 말을 마치며 습관적으로 수십개의 메일을 전체 지정해서 삭제하려는 모습을 보고, 지영은 문득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사람이 개인적으로 보냈을지도 모르잖아요?”
“뭐 그럴 리가..”

라면서도 상진은 만일을 대비해서 삭제 편지함에서 Brian 을 검색어로 목록을 뽑아보았다. 93개의 스팸 중, 한 개의 메일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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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Urgent! Please check this email and reply ASAP!
From : Brian McKenna < xxxqqq111@hotmail.com >
이 메일을 확인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보스턴 경찰서에도 귀하의 친구분을 살해한 사람들의 세력이 미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메일들은 퇴근길의 취미인 양 internet café 에 들러서 이 계정을 통하여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 메일을 잘 읽으신 후에는 ‘완전삭제’ 해버리십시오. 이후 메일은 xxxqqq222@hotmail.com 계정을 통하여 스팸메일을 위장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만, 위에 적은 사정때문에, 이 계정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는 것은 미국 동부시간 오후 7시, 월수금 3회 뿐이므로, 그쪽에서 제 답장을 받는 시간도 그렇게 정해집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귀하의 친구분은 ‘빛의 형제회’라는 유사종교 집단에 의해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공식 발송 메일에서는 모르는 척 하였지만, 실제로는 귀하의 꿈이 어떤 의미인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고, 제가 알기로는 전부 ‘형제회’에서 보내는 ‘정화원’이나 ‘집행관’이라는 살인 전문가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귀하도 절대 안전하지 않으습니다. 가장 좋은 대처법은 따로 있지만, 일단 제게 답장을 보내십시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귀하는 극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귀하를 알고있는 어떤 사람도 믿지 마십시오.

- 브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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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긴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군요”
“잠시만요, 아까 새로온 메일 중에서도 놓친 메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상진은 그녀의 말에 따라 새로온 메일을 다시 검색했다. 과연 xxxqqq222@hotmail.com으로부터의 메일이 하나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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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Make your love life better!!!!! YEAH!!
From : Supersexy < xxxqqq222@hotmail.com >
아직 메일을 수신하시지 못하셨군요. 귀하의 생사가 확인되기 전에는 추가 메일을 보내지 않을 예정이므로, 만에 하나 이 메일을 확인하신다면 바로 제게 답장을 보내주십시오.

만약 귀하가 ‘형제회’의 ‘정화원’이나 ‘집행관’을 이미 만나셨고, 아직 살아계신다면 이해가 빠르시겠지만, 아니라면 제 말을 미리 귀담아 들으십시오. 귀하가 이전부터 알고 지내왔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형제회의 ‘정화원’이 되어버릴 가능성은 항상 있습니다. 절대 아무도 믿지 마십시오.

만약 귀하에게 적대적인 – 위의 살인 전문가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 사람을 만날 경우, 최대한 전자기파의 발산이 심한 지역으로 도피하십시오. 오락실, 백화점의 전자제품 코너 등은 모두 그들의 행동을 방해할 것입니다. 만약 도주가 불가능한 상태라면, 근처의 모든 전자제품의 스위치를 올리고 적당한 곳에 은신하십시오. 그들이 재빨리 전자제품들을 해제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그들의 행동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말이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 브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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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우리 생각이 대충 맞는 것 같네요. 지영씨 대단한데요?”
“무슨 얘기에요?”
“아까 공진기 얘기를 했잖아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씨아와 동행하는 3명은 얼핏보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정신’이 없는.. 말하자면 좀비같은 존재잖아요? 대신 씨아가 자신의 정신을 이용해서 그들의 두뇌를 조절하고 있는 거죠. 근데 그게 무슨 초능력 같은 것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공진기를 일종의 무선 리모트 컨트롤로 이용하는 셈인듯 해요”
“아는 얘기잖아요? 그게 뭐가 어쨌는데요?”
“아.. 모든 전자제품은 서로 간섭하는 성질이 있어요. 전자렌지 바로 옆에서는 라디오가 잡음을 타는 것처럼, 파워가 강한 전자제품은 약한 전자제품의 시그널을 덮어쓸 수 있어요. 그 공진기가 뭔지는 몰라도, 브라이언의 메일을 보면, 전자제품인 것은 확실해요. 일종의 셀폰같은 것이겠죠.”
“그럼 그 여자나 정화원들 사이의 교신을 끊을 수 있다면,”
“3명의 제어가 풀리겠죠”

씨아의 기억은 명백히 '정화원의 제어가 풀릴 경우 제정신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높은 확률로 발광상태가 된다'고 상진의 두뇌속에서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상진은 무시해버렸다.
.        .        .                .        .        .        .        
“저에요 씨아씨”
“그래요. 여의도에 도착했나요?”
“대방쪽에서 여의도로 들어가는 중이에요. 어디로 가면 돼죠?”
“여의도 공원 북쪽 끝 근처에서 차를 세운 뒤에, 길을 따라서 여의나루 지하철 역으로 오세요. 누가 같이 걸어오면 – 설령 박상진씨더라도 – 동생분은 죽어요.”
“알았어요”

밤 11시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의 시민 공원에는 사람이 여기저기 보였다. 한가로이 맥주를 마시는 남녀를 지나쳐 여의나루 역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역 출구에서 낯익은 한명의 어린 남자가 걸어나왔다.

“이지영 누나에요?”
“당신이 영민이라는 사람인가요?”
“네. 누나가 이지영 본인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하니까 따라 들어오세요”
“그 전에 동생부터 풀어줘요.”
“허세부리지 마시죠. 지금 그런 걸 요구할 처지가 아니실텐데요.”
"웃기지 마세요. 동생이 제 눈에 보일때까진 이 위에서 기다리겠어요. 그렇게 전하던지 말던지 맘대로 하세요"

영민의 표정을 살피며 지영이 대답했다. 애초에 누구의 기억을 흡수했던지간에, 기본은 어린애다. 16살의 남자를 26살의 여자가 다루는 것은, 유사이래 언제나 가장 쉬운 일 중 하나다. 셀폰을 들어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영민을 보며 지영은 상진과의 대화를 다시 떠올린 후, 결국 그를 믿을 수밖에 없다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10분만 시간을 지연한 후에, 어떻게든 두명 이상을 끌어들여서 지하철 플랫폼으로 내려 오세요”
“그쪽으로 가면 뭘 어떻게 할 수있는데요? 제 동생의 목숨이 걸린 일이에요”
“그냥 믿어요. 잊었어요? 전 좀 전에 형제회의 집행관 나으리로부터 꽤 많은 잡다한 지식을 알게되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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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aeTo[HammeR]
06/05/02 07:21
수정 아이콘
오오 정말 재미있습니다! 대화와 서술의 문제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누구나 글을쓰는 사람에게는 그사람의 스타일이 있는 것이니까요. 플랫을 엄청나게 많이 만드는 작가도 있고, 서술만 무지무지하게 쓰는 작가도 있구요.. 또 전혀 다른것 같은 몇가지의 이야기를 쓰다가 나중에 그것들이 연관을 맺고 있는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뭐 가지각색 아닙니까 ^^ 잘 보고있다는것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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