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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4/28 02:45:35
Name OrBef
Subject [유머] 연재 - 중첩(4. 집행관)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려요~ 모든 종류의 코멘트와 질문은 다 환영입니다.

지난 글에 달렸던 질문은 동일 글의 댓글로 답하겠습니다.

그럼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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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실종된 수많은 배들의 기록은, 한 때 그곳을 세계제일의 미스테리 지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버뮤다의 해저지형을 스캐닝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기고, 특정 경계조건에서는 파동 방정식의 해가 비정상적인 산란특성을 보인다는 사실 – 그리고 그 결과, 버뮤다에서는 배가 동일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2배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 - 이 드러나게 되고나니, 버뮤다의 초자연적 실종사건은 그저 바닥이 특이하게 생긴 평범한 바다에서 열불나게 노만 젓다가 재수없이 굶어죽은 선원들의 이야기로 전락해버렸다.

Chapter 4. 집행관

화요일 아침, 첫 상담약속 15분전에 사무실에 도착한 상진은 의례적으로 커피를 마시며 이메일을 체크하고 있었다. 첫 메일은 지영으로부터였다. 금요일 오후발로 남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출발한다는 이야기였다.

시간과 돈만 충분했다면 아마 상진도 그녀의 여행 계획에 동참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여행에 필요한 왕복 비행기값만 계산해봐도 70만원이 훌쩍 넘는다는 현실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녀 역시 고등학교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같이 한가로이 여행 스케줄을 마출 처지도 아니었다.

‘나중에 그곳을 방문하시게 되면 꼭 연락 주십시오. 저도 지영씨의 꿈 얘기가 어떻게 될 지 매우 궁금하네요’

물론 의례적인 인사말이긴 했지만, 분명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도 상진의 머리속 한쪽 구석에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녀 자체가 보고 싶은 것인지, 그녀의 예지 경험담을 더 듣고 싶은 것인지는 그로서도 알 수 없었다. 아마 경험담 쪽이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혼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두번째 메일은 영어로 된 제목이었다.

Subject : Urgent! Please check this email and reply ASAP!
From : Brian McKenna

0.2초정도 생각한 뒤 삭제 버튼을 누른 그는 이내 3번째 메일을 클릭했다. 매일 스팸의 홍수에 시달리는 그로서는 두 메일이 동일 송신자로부터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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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A request for cooperation.
From : Boston police department, Captain Brian McKenna
미국시간으로 어제 새벽 2시, 종연 한씨는 보스턴 시내 90번 도로를 운전하던 중, 음주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피터 호건씨의 차량과 정면충돌, 그자리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은 단순 사고로 보고 있으나, 사건을 전후하여 상진 파크씨와 다량의 메일 및 전화 연락을 취한 것을 알게되어 참고 조사에 협조해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협조를 부탁드릴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상진 파크씨가 보낸 이메일에서 부탁하신 ‘방의 모양’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부탁인지
2. 추가 이메일에서 언급하신 ‘꿈과 실제 방의 모양이 일치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지
3. 전화연락 시 구체적으로 어떤 통화를 나누셨는지입니다.
저희는 귀하와 종연 한씨의 연락 내역 및 친분관계를 알고있고, 귀하에게 어떤 혐의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본 사건과 5일 전의 준숭 신씨의 사망사고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최대한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추가하여, 만약 종연 한씨의 사망사건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 살해사건이라면, 귀하에게도 위험이 있을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짚이는 데가 있으면 한국의 지역 경찰에게 보호 요청을 하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만, 상진 파크씨가 판단하실 일입니다.

- 브라이언

개인적인 추신 : 이후 종종 연락드릴 듯하니 이메일을 꼼꼼하게 체크하셔서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자칫 스팸으로 오인하여 저희 메일을 누락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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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과의 월요일 상담 결과를 상진 만큼이나 미국의 친구인 종연이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는 메일과 전화를 총 동원해서 소식을 전하려고 했지만, 월요일 하루종일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MIT 에 그 친구 말고는 아는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달리 연락할 곳도 없긴 했지만, 결국 그다지 급한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하루만에 친구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문제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망각해 버리는 능력이 발군이라는 점은 상진의 큰 특성 중 하나였고, 때때로 친구들로부터 원성도 사는 그였다.

그렇지만 이건 문제의 심각성이 차원을 달리한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보낸 메일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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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이걸로 지난번 술값은 탕감해주마.
From : 박상진
To : 한종연
……. 솔직히 나도 확신할 수는 없지. 그래도 내가 본 것이 일종의 ‘초자연적 현상’일 가능성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니가 경찰서로 찾아가서 내 꿈 얘기를 니 얘기인것 처럼 말을 하고, 현장을 한번 보고싶다고 얘기해봐. 들어가서는 그 원숭이 우리가 있다는 방으로 가서, 그 우리속에서 원숭이가 볼 수 있는 것들을 전부 최대한 자세히 그려서 보내다오. 내가 꿈에서 본 이미지들을 니 그림과 마춰보려고 한다.

땡큐. 하지만 이런 일로 20만원 술값 갚는 셈 치면 그다지 비싼 건 아니지?

- 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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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술값이 비싸게 먹혔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는 최소한 지영씨의 신변에는 위험이 없겠다는 생각에 약간 안도가 되었다. 특이한 환자의 꿈얘기를 확인한다고 말하면 친구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리라 보고 자신의 꿈 얘기라고 거짓말을 했었는데, 사람의 행위는 때때로 뜻하지 않은 부산물을 낳기 마련이다.

.        .        .        .        .        .        .        .


같은 날 오후 4시, 씨아는 신촌에 도착했다. 그녀의 뒤를 2명의 남녀가 따르고 있었다. 신촌의 작은 고시원 뒤 주차장에서 그녀는 두시간 전 셀폰으로 수신했던 프로필을 다시 체크했다.

정화원 선정 우선 대상자의 상세 프로필 :

임진호 (남, 37세)
거주지 : 서대문구 10-2, 일심고시원 203호
가족사항 : 강원도 동해시에 어머니, 동생 거주
예상 지배시간 : 100 ~ 120시간
검사 결과, 약한 수준의 건망증을 지니고있을 것으로 예상됨. 중심 의식과 기억 중추간의 연결 강도가 극히 낮은 것으로 추정되니, 후두부의 기억 중추로부터 연결을 끊어들어가면 어렵지 않게 장악 가능할 것으로 보임.

뒤를 따르던 영민과 정진이 말했다.

‘영민이같은 경우야 나이도 16살로 어리고 대뇌의 지능도 낮은 편이어서 큰 부담없었지만, 임진호라는 사람은 고시원에서 10년은 산 것 같은데..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좀 힘들겠는데?’
‘뭐 공부를 많이 했다고 지능이 높은 것은 아니니까. 정진이 누나도 26살때 공무원 시험 떨어졌잖아.’
‘아.. 정말.. 그건 부모님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인데.. 미치겠네’

가방으로부터 투박한 모양의 송신기를 꺼내며 씨아가 말했다.

‘뭐… 어치피 공진 현상이 끈나면 너희들의 원래 주인은 다 미칠거니까, 영민이가 니 비밀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그건 그래. 하지만 그 전에 자살할 거니까, 미친 박정진을 원래 주인이 볼 일은 없잖아.’

분명 한시간 전 정진과 씨아가 공진했을 때, 서로의 지식을 전부 공유했었고, 그 말은 정진도 씨아가 아는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인데도 이렇게 의견이 다르다는 것에 새삼 놀라며 씨아가 다시 말했다.

‘분밍히 말하지만, 원래 박정진은 지금도 니 안에 있어. 두뇌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을 뿐이지, 다 기억 한다고. 나중에 통제력을 대찾았을 때 미치는 것은 내가 니 두뇌에 남긴 내 기억과 자기 원래 기억의 충돌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인거야.’
‘하지만 넌 자기 의지도 잃지 않고 미치지도 않잖아. 지금까지.. 음.. 60명쯤 정화원으로 부렸나?’
‘너까지 해서 62명이야.  넌 어떻게 한시간 전에 복사해준 내 기억을 벌써 까먹을 수가 있니? 그건 나한테 굉장히 증요한 기억이라고!’
‘너도 한시간 전에 복사해간 한국어를 그렇게 잘 구사하는 거 같진 않은데 뭐. 서로 마찬가지구만. 아.. 이제 기억난다. 너도 너의 최대 공진 가능치를 넘어서면 미치는거지? 그래도 뭐.. 넌 미치기 전에 신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은 몸이니까 상관없잖아?’
‘14개 국어를 동시에 기억하는건 아무리 나라도 좀 힘들어. 그래도 몇시간만 더 사용하면 그럭저럭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신전으로 들어가는 의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집행관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나라고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 쉿! 시작한다. 영민이와 정진이는 망을 보고 있도록 해.’

자신의 혈액 샘플과 임진호의 혈액 샘플을 송신기에 집어넣은 후, 파동 송신 출력을 올리며 씨아는 본격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 도대체 그여자는 뭐하는 사람이야? 지나가는 사람 팔이나 다치게 하고. 이쁜 여자가 아니었으면 함 떴을 텐데…. 아.. 오늘도 공부하긴 글렀네.’

고시원 앞에서 어떤 급히 달려가던 여자 – 씨아 - 의 핸드백 장식에 긁혀 다친 상처에 밴드를 붙이며 진호는 실제로는 씨아의 다리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청춘시절 중 15년을 고시원에서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일종의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어, 이기적인 마음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자신이 매번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는 이유라고 항상 열변을 토하는 그였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일에는 여전히 발끈하고 흥분하는 것을 보면, 그 이론이 그다지 맞는 것 같진 않다고 본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아.. 진짜.. 핸드백 장식이 거의 면도칼이구만. 피가 멈추지를 않네. 다행히 점점 덜 아프다.’

하지만 그 상처의 고통이 거의 사라졌을 무렵, 그는 다른 종류의 강렬한 고통을 머리에 느끼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갑자기 막대한 양의 기억이 진호의 머리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건장한 흑인이 웬디스에서 햄버거를 먹던 기억, 40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퇴직 파티를 하는 백인 할아버지, 집이 불타 모든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었을 때 형제회에서 베풀어준 은혜에 감동하는 씨아, 공부원 시험에 떨어지고 혼자 베개에 머리를 묻고 울고있는 정진… 63명의 인생이 진호의 머리를 엄청난 속도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엄청난 기억의 홍수에 압도당하느라 진호가 자신의 몸에서 일체의 감각이 사라져간다는 사실 – 사실은 감각기관으로 부터 오는 신호를 진호가 아닌 씨아가 빼앗아가기 시작한 것이지만 - 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였다.

분명히 눈을 뜨고 있음에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틈에 찾아온 완전한 정적과 함께 이 어둠은 진호에게 그가 지금까지 꾸어왔던 어떤 악몽보다도 더한 공포를 안겨주었다.

‘이런 젠장’

그것이 몸에서 모든 감각이 사라진 뒤, 의식 자체가 두뇌의 한쪽 구석으로 갇히기 전에 진호가 마지막으로 ‘머리속에 구현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다.

.        .        .        .        .        .        .        .        .

저녁 7시, 씨아를 비롯한 4명은 상진의 병원 입구에 있었다.

‘그럼 이만 이단자를 정화하러 갈까?’

라고 진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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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aeTo[HammeR]
06/04/28 03:10
수정 아이콘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한가지 건의사항이 있다면, 약간 어려운 용어들은 (설령 그것이 나중에 설명될지라도) 간단한 주석을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냥 건의사항일 뿐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시구요 ^^ 앞으로도 계속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06/04/28 12:24
수정 아이콘
아.. 좋은 말씀입니다. 다음 회에 추가적인 용어가 하나 나올텐데, 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구.. 다음 회에는 일종의 '여론조사'도 하나 있을 예정입니다요~ 미리 만들어둔 연재분이 끝나가거든요 ^^
06/04/28 13:06
수정 아이콘
아직은 발단부분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미스테리하네요.ㅡㅡ)a(뭐 점점 밝혀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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