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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08 20:02
그래봤자 연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조조죠..
지금이야 조조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하지만 몇백년간을 욕먹은 사람이죠...삼국지 연의로..
05/11/08 20:04
장완과 비의를 선택한건 '자기혐오'의 반대(이걸 뭐라고 할까요;;)가 아닐까요? 자기랑 닮았으니까. 실제로 강유는 전투에 일가견이 있었죠(적은 병력으로 제갈량과 동등히 맞서 싸울 정도였으니까요). 그에 비해 장완과 비의는 내정에 일가견이 있었죠.
05/11/08 20:12
위의 분 말씀처럼 연의의 최대 피해자는 가후라는 인물이라는 것에 적극 동감입니다. 동탁같은 무능력한 폭군을 상전으로 두고도 내치를 안정시키고, 조조의 핵심 모사로서 삼국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후 조조의 후계자로 자기가 원한 인물을 앉힌 사람이 가후입니다. 장정일씨는 삼국지를 가후의 일대기라고 평가할 정도이니까요. 모든 통치자가 그를 원했고, 또한 통치자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비교하자면 지금 고건씨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05/11/08 20:19
음. 그런데 사실 방통이 이루어 놓은 군사적 업적이란것이 너무 빈약해서...과연 그가 제갈량을 능가하는 군략을 가졌는지는 솔직히 의심이 되네요. 낙봉파 얘기만해도 거기에 매복이 있을것을 제갈량이 몰랐다는게 말이 안된다면 방통 또한 그걸 몰라서는 안되는거 아닌지. 적어도 군략이 뛰어난 인물이라면 말이지요...
그리고 e-motion님//고건하고 비교하기에는 가후가 너무 많이 아깝다고 봅니다 -_- 고건씨가 한일이 뭐가 있는지.. 그는 그냥 그자리에서 무난하게 아무 일 없이 치세를 보내는데 능통한 인물이지요..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도 있고..
05/11/08 20:26
제갈량이 조조에게 가지 않은 이유가 인재가 많기도 하지만... 조조의 아비 조숭이 서주를 거쳐 조조가 있는 연주로 향하려 할때 서주자사 도겸의 대접을 받고 호위를 받게됩니다. 그때 그 호위가 조숭을 죽이고 그의 재화를 털어 달아나자 이에 분노한 조조가 서주를 친적이 있었죠. 제갈량의 부모는 그때 조조군에 의해 죽고 제갈량은 조조에 감정을 품은걸로 알고있습니다만;;
05/11/08 20:29
그리고 연의의 제일 큰 피해자는... 역시 조조겠죠... 그리고 유비 비판론자인 저의 입장에서 볼때... 유비가 과연 그렇게까지 큰 인물이었나... 라는데에선 의구심을... 물론 사람을 끌어들이는 재주는 있었지만 그 외에 어떤 자질이 있었는지는 좀;;
05/11/08 21:14
조진, 곽회 둘다 연의에서 황당무계한 최후를 맞죠.
조진은 공명이 보낸 편지에 분통 터져 죽어버리고, 곽회는 자신이 쏜 화살을 강유가 잡아다 되 쏘아보낸 것에 맞아 죽죠. 물론, 둘다 거짓말입니다. 집에서 편히 잘 죽은 사람을 공명, 강유 높여줄려고 이런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 하다니...
05/11/08 21:52
전 장합의 실제 죽음의 이유를 알고 황당했던적이.. -_-;;
연의에선 장합이 제갈량의 추격을 주장했고 사마의의 만류를 뿌리치고 추격하다 고슴도치가 됐다고 나오지만 사실은 장합은 추격을 반대했는데 사마의가 추격하라고 명령해서 고슴도치가 됐다죠;;;;; 아, 그리고 연의의 피해자에 조인, 위연 추가요 대사마까지 올랐고 중요한곳의 수비를 도맡아 했던 조인... 유비군과 가장 많이 싸웠던 인물답게 가장 많이 평가절하 되었고-_-;;;;;; 위연은 반골이 아닙니다 T_T 단지 충성의 대상이 촉, 유비였지 제갈량이 아니었을 뿐이라구요 T_T
05/11/08 22:02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 드리자면..
일단 삼고초려는 허구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연의에서만큼 그렇게 극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정사 선주전이나 제갈량의 출사표에서도 유비가 3번 찾아왔다는 기록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천하삼분지계란.. 이름은 없지만 여하튼 제갈량이 제시한 그 부분은 당시 현자들이 모두 알았다고 하기엔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유비에게 제갈량을 천거한 사람은 서서이고 그 서서는 제갈량과 함께 공부를 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천하삼분지계가 당시 학자들 사이에서 통설적인 계책이라면 서서가 유비에게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을리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당시 조조의 세력이 막강했고 조조가 통일을 하는 것은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유비의 세력은 미약했고 손권의 오나라 역시 조조에게 항복하려는 상황에서 이런 계책이 모든 학자들의 입장이라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네요. 이 계책은 분명히 조조가 아닌 다른 누가가가 통일을 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보이거든요. 제갈량이 난세에 뛰어들고 싶었느냐 아니냐는 지금의 기준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보이고 제갈량이 유비를 원했는지도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방통의 경우 오를 택했다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의 인재들과 친분이 있었고 노숙, 우번이나 육전등이 그의 재능을 인정했는데도 오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스스로 손권과는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생각됩니다. 게다가 크기 어려웠다기에 오에 들어가지 않음은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유비수하보단 오히려 오나라 인재들이 방통을 더 인정하는 상황에서 유비의 신하로 들어가 현의 현령이 되었음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죠. 두번째에선.. 연환계라는 건 방통이 한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사실 연환계라 말하기도 힘들죠. 그저 조조가 자신의 배들을 사슬로 연결한 것이었으니.) 방통이 계책을 짜고 제갈량이 내정을 담당한 것은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박망파 전투. 이 부분에 대해 오해가 있으신 데 박망파에선 유비가 화공으로 하후돈 부대를 물리친 게 아닙니다. 복병을 배치한 뒤 자신의 진형을 태우고 거짓으로 도주하는 척 하면서 추격하는 하후돈 부대를 복병으로 해치운 것입니다. 화공으로 태워 죽인 게 아니죠-_-;; 그리고 삼국지에서 유비의 2인자 논쟁은 끊이질 않는데 제갈량은 야심가가 아니었습니다. 그에 관한 부분은 정사 많은 부분에서 아주 자주 나오고 있죠. 게다가 방통을 유비에게 추천한 사람이 제갈량입니다. 그를 제거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를 천거할리도 만무하죠. 결정적으로 낙봉파란 지형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방통이 죽은 건 그런 매복 지형이 아닌 성을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관우의 형주건이나 방통의 경우 연의적 해석으로 인해 제갈량이 상당한 야심가인 것 처럼 해석하는 건 이부분은 제갈량 역시 연의로 인한 피해자란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후사 부분. 유비 사후 군사적 정치적인 실권을 모두 잡은 사람은 제갈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갈량 사후 승상이란 지위가 없어지고 그 뒤를 대장군이었던 장완이 이었죠. 유비 사후 때 강유의 지위는 정서장군이었습니다. 낮은 지위는 아니었지만 대장군 장완에 비유할 바는 아니었죠. 비위 역시 장완이 대사마를 겸할 때 쯤 대장군이 됩니다. 역시 강유에 비할바가 아니었죠. 그리고 강유는 군사 지휘권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제갈량 사후엔 정권과 군권이 나누어짐을 볼 수 있죠. 연의에서 처럼 제갈량이 장완과 비위에게 후계를 이은 것이 아니라 작위와 능력에 따라 주어진 것 뿐입니다. 너무 길게 썼군요.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05/11/08 22:33
오나라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평가절하죠. 지역적인 요인이 컸고요. 손견만 해도 화웅의 목을 쳤음에도 관우에게 공을 돌렸으니까요. 그런데도 손책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게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을지 짐작케 하는데 아마 손책의 명이 길었다면 성격상 이기든 지든 조조와 화끈한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 나라 특성상 보수적인 대신들 연합 없이 군주가 독보적인 힘을 부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공격적인 성향의 손책이나 주유의 역할은 중대했지만 아깝게 됐죠.
귀염둥이 동탁도 사람보는 눈 하나는 있었으니까 이유를 사위로 들이고 여포, 조조까지 휘하에 두려 했고 부하의 말에 귀를 잘 귀울였기 때문에 시골에서 그정도까지 올라갔던 거죠. 물론 장점을 굳이 찾자면 그런거죠; 삼국지는 조조에서 시작해서 제갈량으로 끝나는 영웅전이지만 조조의 고향에는 의외로 조조를 기리는 것들이 없습니다. 이유는 화타때문인데요. 이 사람 의술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 조조를 밀어내다니.. 갖가지 분야를 섭렵! 한가지 예로 뇌수술까지 했다는 것만 말해도 대충 짐작하실듯.. 그곳에서는 지금까지도 대단한 위인으로 남아있습니다. 화타 생전에 관우의 독화살 맞은 팔을 치료하고 뭐 이런 이야기는 뻥이고요. 그 전에 조조 손에 죽으니까요. 제갈량이 유비를 섬기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제갈량이 평소에 흠모하던 인물들이 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전세에 놓인 자를 군주로 삼아서 역전승을 거둔 이들이라 본인도 그런 로망을 있었던 거고요. 뭐 유선을 촉나라를 망하게 한 원흉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던데 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유선 싸우길 싫어하고 천성이 순해서 그렇지 제갈량 사후에도 유지를 이어 대신들 말에 귀 귀울이며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막판에 환관에게 놀아나긴 하지만 그건 어느 나라나 망하기 직전에는 늘상 있는 일이니까요. 유선에게만 뒤집에 씌울 일은 아니죠. 초선이 허구의 인물인 건 다들 아시죠? 그래도 영원한 삼국지의 히로인은 초선입니다. ㅠ.ㅠ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성들 대부분은 간통, 이간질 등등 결국 집안을 말아먹는? 수작을 부리는 역으로 나오기에 여성들이 삼국지 읽을 맛이 안나긴 하겠습니다. 실존인물들 중에 미인은 누구냐.. 강동이교로 불리는 자매를 빼놓을 수 없겠죠. 제갈량이 주유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조조의 말을 빌리는데 그건 그냥 말장난이었죠. 그 이교를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_-; 좀 얍삽하긴 했네요. 또 하나 생각해 봅시다! 여포는 배은망덕하고 싸움밖에 할 줄 모르는 넘이다. 가족애에서는 유비보다 낫습니다. 유비는 평소에도 여자는 의복과도 같다고 한 반면, 여포는 가족을 무척 소중히 여겼습니다. 몇 첩씩 거느리는 그 당시의 풍토로는 참 바보같은 남자였죠. 그렇기에 더 그렇게 쓰였던 거고요. 지금의 잣대로 여포를 본다면 그정도는 칭찬할 수 있다고 봐요. "위연의 뒷통수가 어째서 저놈은 나중에 반역을 할것이다! 죽여라!" 공명이 그랬다지만 결과가 그랬기에 그런 에피소드를 넣었던 것이지 실재로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대판 깨진것이 아니라 적당히 피해입고 작정상 후퇴한 정도였고요. 적벽대전 자체도 오히려 관도대전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원소와 조조가 놓고 다툼을 벌인 곳이야말로 중원이고 아랫동네는 촌이고 변방 정도로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유비가 형주를 빼앗아서 차지했다고 하기보다도 임대한 것이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오가 조조를 상대하기가 까다로우니 대신 일선에 세운 것이죠. 순간 생각나는 건 이정도네요. 두서없이 그냥 늘어놔 봤습니다.
05/11/08 22:43
연의는 소설로 읽어야죠. 얼마전 친구가 "다빈치 코드 깨기" 라는 책을 읽던데. 다빈치코드에 나오는 내용을 기독교적입장에서 반대하는 책이더군요. 소설은 그저 소설로 읽혀져야 된다고 봅니다.
05/11/08 22:48
우리가 유비를 낮추고 조조를 칭찬하면 왠지 지식인인 되는 추세 속에 담화를 나누는데 유비를 사랑합시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유비가 이기기를 바라며 삼국지를 읽었고 동심이 꿈과 희망을 불어놓어줬던 존재 아닙니까. 본문에 강유가 아닌 장완과 비위를 선택했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다~ 중히 했습니다. 장완과 비위도 정치를 잘 했고요. 나중에 그들마저 죽고나서 강유 혼자 애쓰다 망하지만요. 공명이 2인자 자리 때문에 관우를 죽게하는 것은 일부 설일 뿐입니다. 진실로만 믿어서는 곤란해요. 나중에 형주가 없어서 그 고생을 하는데 관우 잡으려도 그것을 내줄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05/11/08 23:19
연의 최대의 피해자는 일단 조조고... 굳이 더 덧붙이자면 여포, 하후연, 하후돈, 가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갈량의 2인자 자리를 위한 방통과 관우 모략설은 근거가 빈약합니다. 우선 방통이 있던 당시 이문열 평역에서도 지적하듯 유비는 신참들(방통, 황충, 위연으로 대표되는)을 데리고 원정을 갔고 아마도 특유의 인화술을 통해 기존 장수들에게 꿀리지 않을 공적을 세워주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제갈량이 굳이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충분했지요. 또한 화용도 사건 자체가 허구인데 제갈량-관우의 위치가 그 이후로 정해졌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뭐 관우와 제갈량은 원로 공신과 신예 엘리트간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훈구세력-사림세력의 대립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관우가 형주에 남은 이유는 유비의 신뢰뿐 아니라 제갈량의 의도적인 배제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05/11/08 23:26
그리고 제갈량의 군략 능력에 대한 의심이 현대에 와서 많이 제기되긴 합니다만, 군략능력만 놓고봐도 모사 출신 중 제갈량만한 인물을 찾기도 힘듭니다. 사마의, 곽가는 전형적인 보좌역할이었고, 순욱은 내치 능력이 더욱 뛰어났죠. 가후 역시 계략에 능했지만 전투에 있어서 앞장서서 무언가를 할 능력은 없었다고 봅니다. 육출기산에서의 공적이 기껏해야 한중 북부를 좀 먹은 수준이 아니냐는 점에서 제갈량이 군략이 뛰어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위와 촉의 전력차를 보았을때 가정 싸움 이외에 다른 어떤 싸움에서도 이른바 회전형식의 전투에서 제갈량은 위에게 대패한 적이 없습니다. 지구전으로 끌고 가서 촉이 물러갔을뿐이죠. 만일 제갈량이 남만족이나 강족의 족장으로 태어나서 약탈을 목적으로 했다면 상당히 평가받았을 겁니다. 정복전을 주로 했기에 제갈량이 무시당하는 것이지 전투와 전쟁을 이끌어가는 능력에서 제갈량이 당대에서 손꼽힐만한 인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내치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법가 사상에 기반을 둔 확고한 정치철학(의외로 꽤나 도덕적이었다고 봅니다)의 화신이라는 점에서, 제갈량만한 거물은 중국 삼국시대를 통틀어서 조조 이외에는 찾기 힘듭니다.
05/11/08 23:53
참 여러분들 유식하십니다 ㅠㅠ 저는 제갈량이 지구전을 하면 불리한데도 불구하고 자오곡을 통해서 장안성을 바로 치지 않았다는 데서 후세 사람들이 비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맞나요?;;;;
05/11/09 00:08
자오곡계책...많은 논란이 있죠. 그 계책을 실행하지 않은데 대해 비판도 있고, 그 비판의 비판도 있습니다. 그 비판의 비판은 자오곡계책이 그 뭐랄까....실패할 경우 위험부담이 너무 큰 전략이라서, 잃어도 곧 충원이 가능한 위의 국력과는 달리, 너무 많은 걸 한번에 잃어버리면 그것을 충당하지 못하는 촉의 국력을 생각해서 제갈량이 일부러 피했다는 주장입니다. 뭐..어느정도는 동감입니다. 제갈량,,,북벌을 여러차례 하기는 했지만, 그도 어쨌든 촉나라의 '승상' 이지 않았습니까. 승상이....올인성 러시를 그렇게 쉽게 할수는 없는 일..........
05/11/09 00:22
연의때문에 폄하된인물중 또하나는 법정...
사실 한중공방전때 황충으로 하여금 하후연을 베게 하고 한중공방전을 승리로 이끈 건 법정의 계략이건만....
05/11/09 00:42
자오곡루트는 한마디로 올인러쉬죠
촉 국력이 위랑은 상대도안되는데 설령 자오곡갔다가 말아먹으면 그걸로 촉의운명도 끝 안정성과 완벽한 장안공격을 추구하기위해 자오곡루트는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05/11/09 00:48
북벌할때의 제갈량은 정말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항상 전투에선 이기고도 전쟁에서 패하는 그런식.. 매 북벌마다 문제가됬던건 항상 후미에서의 군량지원 이었죠 제대로 된 인재하나 없어서 군량조달하나 제대로 못해주고 사마의도 그걸알고 무한방어모드
05/11/09 00:50
자오곡계책은 실패하면 그대로 촉은 멸망입니다 -_-;;;;
게다가 제갈량또한 엄청나게 신중한 성격이라서 위험부담이 큰 자오곡계책을 받아들일리 없었죠 사마의또한 말하죠 장안성 근방은 협소하고 알려지지 않은 길이 많아서 샛길을 통한 기습을 당한다면 크게 위험할테지만 신중한 제갈량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것이라고 -_-;
05/11/09 00:59
제갈량은 천재입니다. 호수로 따지면 1/6이었고 전체적인 군사력으로 따져도 1/3이 채 못되는 상황에서 "대국" 위나라와 6차례이상 전쟁을 했습니다. 당시 인구집계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중앙쪽 인구가 훨씬더 많았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겠구요. 진식같은 정통 역사가들도 제갈량을 소하와 관중(아시죠? 한나라 건국에 공을 쏟은 사람과 제나라의 유명한 제상 관포지교) 에 비교할만하다고 극찬한 것을 보면 범상한 인물은 아닙니다. 다만, 그도 "명문가"는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중앙에 있지 못한 것이 그를 엉뚱한 노력만 했던 결과를 낳았습니다. 중국 민중에게 별 대책없이 구체제인 한나라만 추종하는 촉보다는 둔전법 등등으로 민생안정을 추구하는 위가 통일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말이죠
05/11/09 04:57
촉의 호수가 1/6이었다는거나, 군사력이 1/3이라는건 허구입니다.
실제로는 위의 1/10이나 겨우 될까한 변방의 작은 소국에 불과하죠. 오나라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당시로서는 '남만'의 땅에 지나지 않았고, 인구또한 극히 적었지요. 조조가 원소의 땅을 모두 차지하면서 중원은 완전히 통일되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05/11/09 13:53
비의가 아니라 비위입니다...;
그리고 천하 삼분 지계의 핵심인 "서촉 장악"은 그 당시 식자들간의 공통된 학설임이 맞습니다 오의 여몽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방통은 처음엔 오에 가고 싶어했으나 워낙에 추남인지라 손권과의 대면에서 손권의 언짢음을 보고 실망해서 유비에게 가게 되지요 (유비 또한 방통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촌구석에 박아놓긴 합니다만^^) 위연도 엄청나게 평가 절하된 인물입니다 제갈량 사후 후계자 자리 다툼이 일어나고 그 싸움에서 이긴 양의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위연을 역적으로 몬게 아닐까...생각합니다
05/11/09 17:33
최고 피해자는 동탁... 서량태수로써 주민들에게 칭송받으며(마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는...) 무예에도 뛰어났으며 장수로써의 능력도 있었던 동탁. 연의에서는 바보 + 역적 + 무능 삼박자를 같춘 인물로 둔갑 -0-
05/11/09 17:37
추가로 여포도 사실 늘씬한 미남자에다 시나 풍류를 즐길 줄도 알았던 장수였는데... 연의에서는 그냥 싸움바보 -0-
촉에서 최대피해자는 미축... 사실상 제갈량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고 방통 사후에는 제갈량을 대신하여 내정업무를 맡기도 했던 미축. 그러나 아예 등장 자체가 없는 -0- 나중에 미방 배반 이후로 떠나는 것 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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