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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3/05/31 00:43:10 |
Name |
erinome |
Subject |
[유머] [유머] 손제리의 신하사랑 |
1.장소
손제리 친형인 손책이 등용한 오나라 최고 중신
손책이 죽을때 제리가 시원찮으면 님이 나라 가지셈이라고 말을 했으나 묵묵히 손제리를 평생 보좌한
충성파
말년에 요동의 공손연과 손권이 동맹을 맺고자 하니깐 장소가 믿을수 없는 자라고 반대
손제리 이성을 잃고 칼들고 장소 살해 위협
실망한 장소 집으로 돌아가 입관하지 않자 손제리 장소집 대문을 흙으로 공구질
때마침 공손연에게 보낸 오나라 사신들 장소말대로 전부 참수당함
손제리 뜬금 이번에는 흙으로 막은 대문에 불지름
늙은 장소 본인 집이 찜질방이 되버리자 콜록콜록 그러면서 어쩔수 없이 나옴
그리고 얼마후에 사망
2.육손
이릉대전에서 오나라를 구한 전쟁영웅
손책의 사위로 강남지방 최고의 호족인 육씨 엄친아
손제리 말년 태자 손화가 아닌 4남인 손패에게 붙는 조정 무리들 형성
멀리 형주에서 위나라와 대치중이던 중신 육손은 당연히 태자를 옹호하고 손패에게 아부하는
무리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중하라고 경고
그런데 느닷없이 손제리 손화편을 들면서 육손을 싫어하기 시작
육손과 편지를 왕래했다는 이유 하나로 또 다른 중신 오찬을 감옥에 처넣고 주살시킴
육손의 외가 사람들 전부 유배보냄
육손에게는 반성하라고 질책의 의미를 담은 죽음의 편지 끊이없이 배달
육손 서럽고 분해서 홧병으로 분사
3.우번
손책이 등용한 오나라 중신
손책이 친구의 예로 대접한 회계지방 대학자로 언제나 문하생이 수백명을 넘었다고 함
손제리 말년 술자리에서 술잔 안받는다고 손제리가 느닷없이 그자리에서 죽일려고 함
중신들의 만류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지만 결국 외지인 교주로 쫓아내버림
결국 쓸쓸이 사망
4.장온
아버지때부터 유명한 지방 명문가 출신의 오나라 중신
촉나라에 우호를 증진시켜주는 사자로 파견되었는데 특유의 말빨로 촉나라 흡족해함
손제리 지가 보내놓고 이놈 촉빠 아니냐며 의심 시작
장온의 명성이 갈수록 높아져가고 백성들의 신망이 쌓이자 손제리 결국 아랫사람 관리 책임
구실로 장온 관직 박탈
6년후 쓸쓸이 죽음
..
손제리가 주민모자란다고 떼를 쓰니 방법을 찾다찾다 결국 이주(夷州:오늘날의 대만)에 위온, 제갈직을 대장으로 한 정병 1만을 보내서 주민들 좀 긁어모아오라 했다.
근데 위온과 제갈직은 풍랑을 만나 이주에 도착해서 긁어모은 주민이 고작 1천명, 그것도 오늘날의 남아프리카 부시맨들과 전혀 차이가 없는 원주민들로만 1천명을 긁어모았다.
빡친 손권은 위온과 제갈직을 교수했다.
==[덤] 세종대왕
- 황희
세종 13년 9월 10일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세종 14년 4월 20일 황희가 고령을 이유로 사직하자 허락하지 않다
세종 14년 12월 7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니,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17년 3월 29일 영의정부사 황희가 전을 올려 노쇠함으로 사직하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치 않다
세종 18년 6월 2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20년 11월 19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을 청하니 허락치 않다
세종 21년 6월 11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세종 21년 6월 12일 황희의 사직을 반대하다
세종 22년 12월 21일 영의정부사 황희가 자신의 파면을 아뢰다
세종 25년 12월 4일 영의정 황희가 연로함을 이유로 해면을 청하나 듣지 않다
세종 31년 10월 5일 황희를 영의정 부사로 그대로 치사(致仕)하게 하다
문종 2년 2월 8일 영의정부사 황희의 졸기(卒記) = 사망
-조말생
세종 6년 1월 4일 병조 판서 조말생이 칭병 사직의 상서문을 올리다
세종 6년 4월 25일 병조 판서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는 전문을 올렸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7년 10월 5일 병조 판서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15년 11월 17일 함길도 관찰사 조말생이 병으로 사직하기를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다
세종 19년 9월 4일 지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20년 10월 27일 예문 대제학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다
세종 22년 8월 10일 판중추원사 조말생이 하직하다
세종 23년 10월 27일 예문관 대제학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다
세종 24년 6월 23일 예문관 대제학 조말생이 파직을 청하다
세종 26년 12월 14일 판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다
세종 28년 5월 11일 영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코자 상서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28년 11월 28일 영중추원사 조말생이 벼슬을 그만두겠다고 상서하였다
세종 116권 29년 4월 27일 영중추원사 조말생의 졸기(卒記)
-노한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러 사직을 청함.
세종 曰 " 너 아니면 누가 중국인 사신을 접대함? 파트타임 해."
결국 낮에는 사신들을 접대하고 저녁엔 어머니 간호하게 됨.
-김돈
산골에 어머니 뵈러 외근 간청함.
세종 曰 " 너 아니면 누가 간의대 만들겠냐... 잠깐 기다려."
바로 어머니를 서울로 데려오게 시킴.
-김하
종실 : "임금님, 김하란 녀석이 제가 사귀는 기생이랑 논대요! 혼내주세요!ㅜㅜㅜ"
세종 曰 "넌 있건 없건 나라에 별 상관없지만 걔는 중국어 잘 하니까 나라에 꼭 필요해."
임금의 명으로 김하에게 기생을 첩으로 내림.
김하는 난데없는 기생 선물에 어벙벙 해졌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무안해 했다고.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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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등골 빠져라 일함? 임금 너도 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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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을 엿먹이는 신하들
1437년 세종 19년
- 세종이 세자에게 업무를 이관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다.
그 후 3월에도 세자에게 업무를 이관할 뜻을 비추었으나 대신들의 만류와 상소로 그만둠.
1439년 세종 21년
- 병을 말하며 세자로 하여금 강무를 대행하게 하겠다고 말하지만 신하들이 완강히 반대.
1442년 세종 24년
- 첨사원을 두어 세자가 직접 국가의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다.
최만리는 이의 부당함을 아뢰는 상소를 올리다.
1443년 세종 25년
- 세자에게 서무를 섭행시키다. (결국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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