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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5/08 15:25:35
Name 물맛이좋아요
출처 http://free2world.tistory.com/421
Subject [기타] [기타] [단편소설] 위대한 잠재력의 발견
위대한 잠재력의 발견

아이작 아시모프 작

김민식 번역


지구는 지금 드네브성(백조자리의 알파성)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제한 슈먼은 지구의 권력자들을 다루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그는 민간인에 불과하지만 최고급 전쟁수행 프로그램을 개발한 고급기술자이다. 그래서 그의 말이라면 군 장성이나 국회의원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지구방위본부 특별 라운지에 모여 앉은 와이더 장군과 브랜트 의원 역시 그의 의견이라면 일단 경청하는 정계의 실력자들이다. 와이더 장군은 우주에서 다년간 전투경험을 쌓은 인물로서 가뜩이나 작은 입을 잔뜩 빼어 물고 있다. 브랜트 의원은 부드러운 표정과 총기 있는 눈을 가진 전형적인 정치가이다. 그는 지구의 전쟁 상대인 데네브성에서 밀수한 담배를 물고 있지만, 애국심이 워낙 투철한 인물이라 그 정도 사치는 눈감아 줄 수 있었다.

  

슈만은 키가 훤칠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일급 프로그래머이다. 오늘 이런 쟁쟁한 권력가들 앞에서도 그는 아주 침착하다.

"여러분, 마이런 아웁을 소개하겠습니다."

브랜트 의원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당신이 우연한 기회에 발견했다는 그 초능력자말인가?"

그는 머리가 완전히 벗겨진 아웁이라는 사내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왜소한 체격의 사내는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한 채 손가락을 꼬며 서있었다. 군부와 정계의 실력자들을 직접 마주한 것은 아웁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웁은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하급 기술자일 뿐이었다. 그는 지구특권층이 되기 위해 온갖 능력검정시험을 다 쳐봤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제 그에게는 특권층에 대한 환상마저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런 그가 이런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위대한 프로그래머' 슈만 박사가 어쩌다 하찮은 자신의 취미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와이더 장군이 군인다운 성급함을 드러냈다.

"도대체 우릴 이렇게 불러모은 이유가 뭔가?"

"곧 말씀드릴 겁니다."

슈만이 말했다.

"보안유지를 위해 모임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전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웁!"

아웁의 이름을 부르는 슈만의 목소리에는 자못 위엄이 서려 있었다. 지금 슈만은 일급 프로그래머로서 하급 기술자인 아웁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아웁. 9 곱하기 7은 얼마인가?"

아웁은 잠깐동안 망설였다. 그러나 그의 창백한 얼굴엔 약간 안도하는 빛이 감돌았다.

"63입니다."

아웁이 대답했다.

브랜트 의원이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아니, 지금 저 친구가 한 말이 맞는가?"

"일단 의원 님께서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브랜트 의원은 자신의 휴대용 컴퓨터를 꺼내 자판을 두드렸다.

한동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더니 다시 주머니 속에 컴퓨터를 집어 넣었다.

"우리를 부른 것이 이런 사기극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나?"

  

"아닙니다. 의원님. 여기 있는 아웁은 몇 가지 계산과정을 암기하고 그것들을 어떤 법칙에 따라 종이 위에다 계산을 해낼 줄 압니다."

"종이 컴퓨터로 계산을 한다고?"

와이더 장군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종이 컴퓨터가 아니라 그냥 종이입니다."

  

슈만이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장군님,아무 숫자라도 좋으니 한번 불러주시겠습니까?"

"17로 하지."

"의원님은요?"

"난 23."

"감사합니다. 자, 아웁. 이 두 숫자를 곱하는 과정을 두 분께 보여드리게."

"예"

  

아웁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윗도리 주머니에서 작은 공책과 펜을 한 자루 꺼내들었다. 종이 위에 뭔가 끄적이는 동안 그의 얼굴에는 고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때 와이더 장관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 종이 좀 볼 수 있을까?"

뺏듯이 집어든 종이를 살펴본 뒤 장군이 투덜거렸다.

"이건 뭐 그냥 종이쟎아?"

브랜트의원도 나섰다.

"이것 봐,컴퓨터 화면의 숫자를 베껴 쓰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어. 나라도 연습만 한다면 종이 위에 숫자를 써낼 수 있을 거네."

  

슈만이 초조한 빛을 애써 지우며 말했다.

"아웁에게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아웁은 작업을 계속했다. 잠시 후 그가 낮은 소리로 답을 불렀다.

"답은 391입니다."

  

브랜트 의원이 이번에도 컴퓨터를 꺼내 계산해 보았다.

"맙소사, 이 친구 말이 귀신같이 맞아 떨어졌군. 어떻게 짐작해낸 거지?"

"짐작한 게 아닙니다. 의원님. 그는 종이 위에다 계산을 해서 그 답을 얻은 겁니다."

"미친 소리!"

  

가만있던 와이더 장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넨 지금 우리에게 한낱 종이가 컴퓨터와 똑같은 작업을 해낼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건가?"

"아웁, 자네가 한 계산방식을 두 분께 설명해 드리게."

"예... 저는 먼저 17을 쓰고 그 아래 23을 씁니다. 그 다음 속으로 되뇌지요. 7 곱하기 3은..."

"잠깐! 원래 문제는 17 곱하기 23 아닌가?"

브랜트 의원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예,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단 7 곱하기 3부터 합니다. 그게 제가하는 순서입니다. 여기에 7 곱하기 3은 21이라고 적습니다."

"21이란 걸 어떻게 아나?"

다시 브랜트 의원이 물었다.

"그냥 외운 겁니다. 컴퓨터로 계산해보니 항상 21이 나오더군요. 제가 누차 확인한 결과입니다."

"어떻게 항상 똑같은 답이 나온다는 말인가?"

"글쎄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혹 수학자라면 알지도... 어쨌든 21이 맞다는 건 확신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보게."

"7 곱하기 3은 21이니까 이렇게 줄을 긋고 아래에다 21이라고 씁니다. 다시 1 곱하기 3은 3... 21의 십자리수인 2자 아래에다 3을 씁니다."

"아니 왜 십자리수 아래에다 쓰는 거지?"

브랜트 의원의 반문이 곧바로 날아들었다.

  

"왜냐하면..."

아웁은 슈만에게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건 일일이 설명하기가 곤란합니다."

슈만이 옆에서 아웁을 거들었다.

"일단 그가 하는 방식을 들어보시지요. 상세한 설명은 나중에 수학자들에게 맡기고 말입니다."

브랜트 의원의 끝없는 질문은 그제야 기세가 누그러졌다.

  

아웁이 설명을 이어갔다.

"3 더하기 2는 5입니다. 고로 21이 51로 올라갑니다. 이 51이라는 숫자는 잠시 제쳐두고 다음 계산으로 들어갑니다. 7 곱하기 2는 14, 그리고 1 곱하기 2는 2입니다. 2를 아까처럼 십자리수 1에다 더하면 14가 34로 됩니다. 이 34를 앞의 51아래에 두되 한 자리 앞에 두고 아래위로 더합니다. 그러면 391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답이 되는 겁니다."

  

좌중에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도저히 믿기지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와이더 장군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난 못 믿겠어. 이걸 더해라 저걸 곱해라. 온갖 시덥쟎은 숫자 장난을 다 치더니, 뭐. 종이로 계산을 했다구? 황당무계한 수작이군. 복잡하고 골치 아픈 속임수야!"

"오,그렇지 않습니다.장군님."

아웁이 흐르는 땀을 씻으며 변명했다.

"이런 계산법에 익숙하지 않으시니 복잡해 보이는 겁니다. 사실 원칙은 아주 간단하며 어떤 수라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계산이라도 가능하다고? 그럼 좋아."

와이더 장군은 자신의 조그만 군용 컴퓨터를 꺼내 책상에 올려 놓았다.

"먼저 5,7,3,8을 받아 적어봐. 5,738이지?"

"예."

아웁은 새 종이를 꺼내어 받아 적어 나갔다.

"다시 7,2,3,9를 적고... 그럼 7,239인가?"

"예."

"이 두 숫자를 서로 곱해보게."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그건 괜찮아."

  

슈만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해보게."

아웁은 계산에 들어갔다. 종이를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을 뜯어 계속 계산해갔다. 장군은 시계를 봤다.

  

"아직 끝나려면 멀었나, 마술사 양반?"

"거의 다 돼갑니다... 예,끝났습니다. 답은 41,537,382입니다."

아웁은 갈겨쓴 답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와이더 장군은 쓴 웃음을 베어 물었다. 그리곤 자신의 컴퓨터에 [연산]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가 내놓은 답을 보는 그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아니, 이럴 수가! 귀신같이 맞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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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연방 대통령은 요즘 유난히 지쳐 보인다. 처음 드네브성과 행성간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국민들의 사기와 여론의 지지도는 무척 높았다. 그러나 막대한 물자와 에너지를 동원하고도 아직 전쟁의 승기를 잡지 못한 실정이었다. 아니 지금의 전황으로 보자면 오히려 교착상태에 빠져 소모전으로 갈 공산이 컸다. 그간 지구인과 드네브인 모두 지쳐버렸다. 특히 지구방위 사령부의 통합작 전통수권을 쥔 연방대통령으로서 그는 요즘 하루하루 업무보고를 받는 것조차 아주 피곤한 지경이었다. 그런 대통령 앞에서 지구의회 국방예산위원회 브랜트 위원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신이 나서 늘어놓고 있었다.

  

듣다 못한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다.

"자네 지금 컴퓨터 없이 숫자 계산을 한다는 얘기를 제정신으로 하는 건가?"

"대통령 각하. 컴퓨터가 하는 계산이란 결국 입력된 숫자를 특정 원칙에 따라 계산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똑같은 과정을 인간의 두뇌라고 못할게 뭐 있습니까? 역사책에 보면 천 년 전에는 사람이 일일이 모든 계산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제가 그 시범을 잠깐 보여 드리겠습니다."

  

브랜트 의원이 아웁에게서 배운 계산법을 가지고 곱하기 시범을 몇 가지 해 보였다. 피곤함에 시큰둥했던 대통령도 차츰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경우에 이 계산법을 적용시킬 수 있을까?"

"예, 대통령 각하. 어떤 수에 적용해도 전혀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배우기 어렵지 않을까?"

"저는 딱 1주일 걸려 배웠습니다. 그러나 각하라면 훨씬 더 짧은 시일 내에 숙달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래? 재미있고 배우기 쉬운 잔재주라... 근데 이걸 어디다 써먹지?"

"갓난아기에게 어떤 일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이 신기술이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계속 연구개발한다면 미래엔 컴퓨터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입니다."

  

자못 흥분한 브랜트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치가다운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자신의 논리를 펴 나갔다.

"현재 드네브성과의 행성전쟁은 컴퓨터 대 컴퓨터의 싸움입니다. 아군 컴퓨터가 자동목표추적 미사일을 발사하면 상대방 컴퓨터는 그 미사일의 도달시간과 탄착지점을 계산해내 전자방어막을 칩니다. 우리 컴퓨터가 방어막을 피해갈 항로를 새로 계산해서 입력하면 다시 상대 컴퓨터는 자동추적 프로그램을 개발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난 오 년간 우리는 소득 없는 전쟁을 치러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컴퓨터를 따돌릴 수 있는 새로운 계산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모든 전자계산을 인간의 두뇌계산으로 대체하게 될 획기적 발견입니다. 인간의 뇌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수십 배에 달하는 용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런 엄청난 잠재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낸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것이 될 겁니다. 만의 하나, 이 잠재력 개발에 있어 드네브성인에게 선수를 뺏긴다면 우리는 이 전쟁에서 패할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먼저 인간의 계산능력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국가차원의 프로젝트가 추진되어야 합니다. 이 계획은 비밀리에 추진되어야하며 동시에 필요인력과 물자를 무제한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프로젝트 명은 "아라비아 숫자 계획"이 좋겠습니다. 의회차원에서의 모든 지원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각하께선 행정부 측 지원을 맡아 주십시오."

  

"인간의 계산능력의 한계는?"

"이론상 한계는 없습니다. 이 능력에 처음 주목한 프로그래머 슈만에 따르면..."

"슈만이란 친구는 나도 아네."

"예... 슈만 박사는 인간의 두뇌가 할 수 없는 계산은 이론상 없다고 합니다. 컴퓨터나 두뇌나 똑같은 방식으로 계산을 행하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계산도 컴퓨터의 결과만큼 믿을 만하다고 합니다."

  

"슈만 박사의 말이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믿고 싶군. 그 친구는 아주 뛰어난 이론가이니까... 그런데 현실적으로 말이야. 어떻게 인간이 컴퓨터가 하는 일을 감히 흉내낼 수 있다는 건지 난 그게 이해가 안되는군."

  

브랜트 의원이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은 말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 점이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천년 전엔 컴퓨터도 인간이 만들었다고 되어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때는 아주 원시적인 컴퓨터뿐이었지만 말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그에 따라 컴퓨터가 자동진화를 거듭해온 겁니다. 요즘은 모든 컴퓨터의 제작이 인공지능 컴퓨터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고대의 원시 컴퓨터는 인간이 직접 만들었답니다. 기술자 아웁은 심심풀이 삼아 원시 설계도를 참고해 당시의 컴퓨터를 몇 대 다시 제작해 보았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컴퓨터의 작동원리와 연산방식을 알게 되었고, 재미로 그 방식을 흉내내 본 결과 자신도 컴퓨터가 하는 계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제가 방금 해 보인 계산들이 실은 원시 컴퓨터 의 연산과정을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하! 정말 놀랄 노자로구먼."

브랜트의원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혹 이런 얘기까지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새로운 계산법을 발달시켜감에 따라 인류의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로 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다면 컴퓨터 운용에 들어가는 동력을 대부분 평화적 용도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며, 전쟁수행으로 인한 에너지 고갈을 한층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떨어진 국민의 사기를 다시 진작시킬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브랜트 의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능력의 개발은 지구 특권층에도 득이 될 것 입니다."

  

대통령은 그제야 무릎을 탁하고 쳤다.

"그래! 이제야 무슨 소린지 알겠구먼... 자, 이리 앉게, 브랜트 의원. 이제 다시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 보자구. 그리고 말이야. 잠깐 머리도 식힐 겸 아까 해 보였던 곱하기 시범을 다시 한 번 해볼 수 있겠나? 혹 내가 직접 배워볼 수 있다면 더 좋겠구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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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은 일을 서두르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로쎄르 국장을 대하는 그의 마음은 약간 조급했다. 로쎄르는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이다. 그는 집안 대대로 컴퓨터 관리국의 임무를 맡아온 지구엘리트로서 감히 컴퓨터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쎄르는 서유럽 지국의 컴퓨터망을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비밀계획 '아라비아 숫자'에 큰 보탬이 될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로쎄르는 좀체 고집을 굽히려 들지 않았다.

  

"난 아직도 인류가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소. 인간의 사고활동이란 아주 변덕스런 것이요. 컴퓨터는 같은 질문에는 같은 결과만 내놓지요. 그 정확성에 어찌 인간의 두뇌를 비견할 수 있단 말이오?"

  

"로쎄르 국장님,인간의 두뇌 역시 주어진 사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두뇌냐 인공지능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둘다 계산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좋소,좋아. 나도 방금 당신이 보여준 컴퓨터 흉내는 상당히 인상깊게 보았소. 그러나 난 여전히 위대한 컴퓨터의 능력에 인간이 감히 도전한다는 생각은 무모한 환상이라 생각하오. 이론상으로는당신의 말에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현실에 그것을 적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겠소?"

  

"생각해보십시오. 결국 컴퓨터도 애초엔 인간의 발명품이었습니다. 옛날 지구인들이 범선이나 돌도끼,철도를 만들었을 때 분명 지금과 같은 컴퓨터는 없었습니다."

  

"글쎄, 그들에게 수학적 계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는지도 모르지."

  

"과연 그럴까요? 철도나 피라밋 건설이 수학적 적용없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컴퓨터가 없다고 계산마저 할 수 없었을 것이라 보는 것은 위험한 가설입니다."

  

"그럼 옛날 지구인들이 방금 당신이 해 보인 마술을 통해 계산을 했단 말이오?"

  

"그랬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 신기술은 컴퓨터에서 따온 학문입니다. 우리는 이 신기술을 필산법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필기구를 이용한 계산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컴퓨터 이전 시대에도 어떤 형식으로든 수학적 계산은 존재했으리라 봅니다."

  

"만약 역사 속에 묻힌 고대 마술에 관해 얘기하려는 거라면..."

  

"아, 아닙니다. 고대 마술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실 어찌 보면 고대 마술이란 게 완전한 허구는 아닐 겁니다. 당장 수경재배법이 개발되기 전에만 해도 지구인은 곡식을 땅에서 길러 이를 식량으로 삼았다 합니다."

  

"글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기 전에는 땅에서 식량을 길러냈다거나 돌멩이 두개를 부딪혀 불을 피웠다는 옛날 얘기 따위는 못 믿겠더군."

  

슈만은 점점더 초조해 졌다.

"필산법은 과학발달의 궁극적 결과입니다. 공간이동을 이용한 물질수송의 개발로 인해 운송수단이나 교통수단의 필요성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통신장비의 경우에도 효율과 용도는 증가하는 반면 크기는 극소화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텔레파시를 이용한 뇌파통신이 개발되면 통신장비 역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천년 전에는 방 하나를 가득 채웠던 컴퓨터가 지금은 국장님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걸 생각해보십시오. 이제 축소지향의 과학발달은 곧 한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두뇌입니다. '아라비아 숫자' 계획은 허구가 아니라 우리의 눈앞에 닥친 현실입니다. 우린 국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만약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면, 학자로서의 지적 모험을 위해서라도 동참해 주십시오."

  

"지적모험이라고요? 아니 곱셈이 무슨 대단한 지적모험이란 말이오.어디 그걸로 미분 적분은 할 수 있겠소?"

  

"할 수 있지요. 시간만 충분하다면 말입니다. 지난달에 우리는 나눗셈을 완성시켰습니다. 정확히 소수점 이하까지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소수점 이하라고? 몇째 자리까지 말이오?"

프로그래머 슈만은 침착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자리수는 무한대입니다."

로쎄르의 입이 딱 벌어졌다.

"컴퓨터없이?"

  

"문제를 한번 내보시지요."

"27 나누기 13! 소수점 이하 여섯 자리까지..."

5분후 슈만이 답했다.

"답은 2.079623입니다."

로쎄르가 자신의 컴퓨터로 답을 확인했다.

  

"하... 그것 참... 난 사실 곱셈 따윈 별 대단치 않게 봅니다. 어차피 자연수로 하는 계산이니까 무언가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했지. 그런데 나눗셈으로 소수점이하까지 계산해내다니..."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 진행중인 연구에 따르면... 실은 이 내용은 일급비밀이라 외부인사에게 발설해서는 안됩니다. 저희는 제곱근을 구하는 방법을 거의 다 개발했습니다."

  

"제곱근이라고요?"

"아, 물론 아직 해결하지 못한 에러가 몇 개 있어서 완성단계라고는 할 수 없지만,이 기술을 고안한 기술자 아웁은 자신이 이미 몇몇 경우에 있어 제곱근을 정확히 구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아웁이 하급 기술자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국장님처럼 고등교육을 받은 자질있는 수학자라면 제곱근 구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겁니다."

  

"제곱근이라..." 로쎄르는 분명 끌리는 표정이었다.

"세제곱근도 가능합니다. 어떻습니까?"

갑자기 로쎄르가 슈만의 팔을 부여잡았다.

"박사! 같이 일하게 되어 반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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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더 장군은 연단을 왔다갔다하며 과학자들 앞에서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고집센 반항아들을 모아놓고 훈계중인 지도교사같았다. 이들이 군인이 아니라 '아라비아숫자'계획의 주요 민간인 과학자들이라는 사실이 장군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장군에게는 자신이 이 비밀국방계획의 총책임자라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좋소. 이제 제곱근은 해결되었다 치고... 나 자신은 아직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그게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문제는 우리가 맡은 이 계획의 목표가 순수학문의 연구는 아니라는 것이오.이놈의 빌어먹을 전쟁만 아니라면 여러분이 필산법을 갖고 놀던, 장난을 치던 난 상관하지 않겠어. 그러나 지금 상태에서 문제는 전쟁수행이요."

  

회의실 한 구석에서 아웁이 어두운 표정으로 장군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물론 그는 더이상 하급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럴듯한 새로운 직함과 꽤 많은 급료를 보장받고 이 비밀계획에 동참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신분상의 차이로 인해 고위급 과학자들은 그를 동료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물론 아웁도 그런 대접은 바라지도 않았다. 아웁 역시 이들 과학자들이 껄끄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장군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간단하오. 컴퓨터의 역할을 인간이 대신하는 거요. 컴퓨터 자동항법장치가 없는 우주전함을 건조한다면 시간과 비용을 각각 1/5과 1/10로 줄일 수 있소. 컴퓨터만 적재하지 않아도 지구 함대는 드네브성보다 다섯 배 내지 열 배나 많은 전함을 보유하게 될 것이오. 내게는 또다른 야망이 있소. 바로 유인 미사일의 개발이오."

  

과학자들에게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나왔다.

"지금 우리 병기의 약점은 컴퓨터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있소. 미사일에 탑재할 컴퓨터를 소형으로 하면 용량부족으로 정확히 목표를 맞히지 못하고, 그렇다고 컴퓨터의 기능과 중량을 증가시키면 미사일이 느리고 둔해져 상대편 방어망에 걸리고 말아 결국 목표를 맞히는 건 극소수에 지나지 않소. 다행히 적의 상황도 마찬가지라 현재 미사일전은 교착상태에 빠져있지만... 만약 이 상황에서 우리가 유인 미사일을 개발해 낸다고 생각해 보시오. 무겁고 부피 큰 컴퓨터 대신 인간이 직접 조종하는 가볍고 빠른 미사일을 말이오. 이는 전쟁의 승기를 잡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이 될 것이오. 게다가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전쟁용 컴퓨터의 부족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유휴인력을 유인미사일 탑승에 투입할 수 있다면 우린 물량공세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며, 또..."

  

장군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아웁은 그만 자리를 떴다.



아웁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가 필산법이라 명명된 기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이는 그냥 저의 가벼운 취미였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소일거리였지요. "아라비아숫자"계획이 시작했을 때 저는 다른 분들의 현명함에 무척 놀랐습니다. 이런 잔재주가 인류를 위해 쓰여질 수 있다는 생각을 저는 못했던 겁니다. 이 계획에 처음 참여했을 때에도 저는 그 용도가 기껏해야 공간이동의 거리계산 정도일거라 생각 했습니다. 필산법이 대량살상무기에 이용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필산법을 개발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파괴와 비극에 대해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아웁은 자신의 가슴에 부착된 단백질전리 분해장치의 눈금을 돌렸다. 위대한 필산법의 창시자 아웁, 그는 고통스러운 미래보다는 평화로운 죽음을 선택했다.

  

******************************************************************

  

한 기술자의 자그마한 무덤가에 둘러서서 사람들은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슈만 박사는 다른 조문객들과 함께 엄숙히 머리를 숙였다. 아웁이 자신의 몫을 다하고 죽었으므로, 슈만은 어차피 망자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은 없었다. 아웁이 창안한 필산법은 그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유인 미사일이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9곱하기 7은 63.'

슈만은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이제 그는 컴퓨터 없이도 셈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이젠 컴퓨터가 그의 머릿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가슴 벅찬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잠재력의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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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호랑이
13/05/08 15:35
수정 아이콘
구 곱하기 칠은 42 아닌가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숫자 42!!
Practice
13/05/08 15:40
수정 아이콘
그 안에 삶과 우주와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죠
Practice
13/05/08 15:41
수정 아이콘
정말 너무 재밌는 소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파운데이션은 읽었지만 다른 건 빛이 있으라, 말고는 읽어본 적이 없는데 단편도 참 재밌게 잘 쓰네요.
초식성육식동물
13/05/08 15:49
수정 아이콘
단숨에 읽어내려갔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앞뒤를 틀어버리는 재미가 있네요. 빛이 있으라 도 그렇고.
절름발이이리
13/05/08 16:04
수정 아이콘
아주 좋은 작품이죠.
밀로비
13/05/08 16:07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주제 자체는 다르지만 베르베르 단편집 나무에 실려있는 "수의 신비"가 생각나네요.

http://blog.naver.com/masaruchi/110157933653
마사토끼의 요 단편도 생각나고요.
Practice
13/05/08 16:15
수정 아이콘
마사토끼도 진짜 대단한 사람 같습니다 크크크크크 잘 읽었습니다
22/10/09 15:21
수정 아이콘
비공개 글이라는데 어찌 볼까요 ㅠㅠ
Practice
13/05/08 16:14
수정 아이콘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단한 점은 저 사람이 1920년생이시라는 것 같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기에 태어나신 분이...

지금에 와서는 저 소설의 주제의식이 현실에 닿아 있지만(스마트폰) 저 시대에서는, 저건 완전히 상상의 산물인 거잖아요.

물론 저런 유의 상상 자체가 독창적인 건 아니니까 결국은 아서 C 클라크를 비롯한 훌륭한 SF 작가들 전부 만세, 가 되는 거겠지만
13/05/08 16:14
수정 아이콘
이야 진짜 재밌네요. 이런 발상을 누구나 할텐데, 그 발상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로 구성해내는 능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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