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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8/01 09:44:30
Name 희주
Subject [유머] [단편호러]진흙인간 written by cennyjang
진흙인간.

“이거 정말 이상한데.......” 진단 검사과 레지던트가 말한다. 나는 목에 가려움을 느낀다.
최대한 걱정스런 눈빛을 만들어 그를 바라본다.
“분명히 균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도 염색이 잘 안돼. 이런 건 처음 본다.
배지에서도 균이 자라지 않았지?”
내 목이 더 오그라드는 것 같다. 가끔 눈까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이 증상은 말하지 않
았는데, 만약에 눈에 이상이 생겼다면, 정말 심각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애써 별
것 아닌 것처럼 행동하려 했지만, 긴장이 가슴을 죄여 오는 것을 막을 순 없다.
“형준이형, 무슨 균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처음 보는 거예요?” 레지던트는 가늘게 고개를
젓는다. 자신의 말에 확신이라도 하듯 눈동자를 현미경에 고정시킨다. 잠시 침묵이 진단
검사실을 감싸고, 내 혈관 속에 두려움이 흐른다. 다시 뒷목이 간지럽다. 그 부분을 긁는
내 손톱에 항생제 연고와 보라색으로 변한 피부 껍질이 묻어 나온다.
레지던트는 눈을 고정한 채로 입술을 움직인다.
“증상까지 이상해. 침범 부위가 단지 목 뒷부분이지? 두통 같은 것도 없고. 피부과 선생님
들도 잘 모르겠다고 그러고. 알러쥐 반응이나 특이항체도 나타나지 않았잖아. 배양에서 균
사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 같더니, 이유 없이 사라지고. 경험적 항균제나 진균제에도 듣지
않고 말이야.”
레지던트는 현미경 나사를 이리저리 돌리던 손으로 스위치를 내린다. 슬라이드를 비추던
불빛이 사그라진다.
“피부과에서는.......”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skin graft(피부 이식)를 생각하는 것 같더라. 어차피 systemic(전신 적으로)하게 퍼진 것
이 아니니까, 그 부분의 피부만 때어내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지. 내 생각도 마찬 가
지고.”
불안감을 심장 박동이 대변하고 있다. 눈으로도 흉곽의 움직임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심장
은 거세게 뛰었다. 지금까지 애써 무시하려고 했던 눈에 대한 문제가 생각의 대부분을 차
지하기 시작했다.
눈이 흐려지는 증상, 피부병이 생기기 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증상이다. 그럼 이 감염과 관
련이 있을 것이고, 눈 점막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았다면, 피나 림프를 타고 목에서 눈으로
이동한 것이다. 목 증상이 이틀 정도 더 빨랐기 때문에 후자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는 것
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알았어요. 형, 고마워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무슨,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열도 없는데, 큰 문제가 있겠니? 그렇지? 윤수야.”
나는 처진 어깨를 하고, 검사실을 나온다. 가운 뒤카라 부분이 목에 닿아 액체가 번졌다.
제기랄.
친구들이 모여 있는 내분비 내과 회의실로 향한다. 아무래도 실습은 잠시 접고, 입원이나
다른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가끔 흐려 보이는 눈을 손으로 한번 비벼본다.
제기랄, 그곳에 가지 말아야 했다.

여름 방학이 오고 병원 실습에 찌들었던 나는 자전거 여행 계획을 세웠다. 태백산맥을 따
라 국도를 타고 일주일 동안 여행하는, 어쩌면, 무모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받았
던 스트레스가 이성을 막았고, 나는 무작정 도로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힘들 건 각오하고 온 거니까. 일주일을 버티기 위한 짐이
커다란 가방에 들어가 있고, 가방은 자전거 뒷좌석에 단단히 매달려 있었다. 가방의 무게
가 페달을 밟는 내 다리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자전거도 최근에 수
리를 해서 그런지 부드럽게 나아갔다.
그리고 비가 왔다. 우산이나, 우비는 없었고, 비를 피할 곳은 길가에 울창한 나무 숲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이 여행 3일째였고, 무모한 계획에 지칠 만큼 지친 상황이었다.
거기다 예상치 못한 비까지 내리니 피로는 전신을 파고들었다.
원래 크기보다 더 좁아 보이는 1차선 국도 위에 차하나 보이지 않았다. 빗물이 허벅지와
장딴지를 타고 오래된 나이키 운동화 속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이동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자전거를 길가에 대고 숲으로 들어갔다. 길가 쪽에 있는 나무들보다 안 쪽에 있는 나무들
이 더욱 크고, 비를 피하기 좋아 보였다. 커다란 나무들이 많아질수록 작은 나무들이 사라
졌고, 내 팔뚝을 긁는 나뭇가지들도 없어졌다. 젖은 티셔츠를 벗어 어깨에 걸치고, 숲 안쪽
으로 계속 걸었다. 바닥은 편평했으며, 나무들은 위로 밖에는 못 자란다는 듯이 곧게 뻗어
있다. 산림욕장이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너무 많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빗소리 사이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커다란 나무들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구름이 태양을 막고, 무성한 나뭇잎들
이 하늘을 가려서 숲 속은 어둡다.
이런 곳에 아이들이 있을 리가 없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빗소리는 많이 잦아든 것 같다. 곧 그
칠 것 같다.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가는 빗소리만 고막을 울린다.
빗소리, 빗소리, 빗소리, 웃음소리.
웃음소리다. 이번에는 확실히 웃음소리를 들었다. 남자 아이 목소리와 여자 아이 목소리.
그런데, 어디지?
주위의 모습은 변화가 없다. 축축하게 젖은 흙색 나무들이 산 냄새를 풍겼다.
어쩌면 여기에 별장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 지도가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할 순 없으
니까. 가까운 곳에 별장이 있으면, 잠시 쉬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웃음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그리고 점점 더 가까워진다. 커다란 나무 옆으로 아이
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처음엔 나무 그늘 때문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
두 진흙으로 온몸을 덮고 있었다. 하얀 눈과 빨간 혀가 진흙 사이에서 보이는 것이 짐승을
생각나게 했다.
아이들은 나를 보자 신난 듯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진흙이 얼굴에 범벅이 되어 있어 가늠
하기는 힘들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였다. 먼저 나타난 세 명과 뒤늦게 나타난
한명, 모두 같은 진흙 옷을 입고 있다.
“와! 사람이다!” 약간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리 이상하게 생각되진 않았다. 주위에 머드 공
원 같은 것이 있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웃옷을 벗은 내 몸이 신기한지, 아니면
진흙을 안 바른 것이 신기한지, 약간은 조심스럽게, 흙손으로 내 몸을 만진다.
“너희들, 여기 놀러온 거니?”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저희들끼리 바라보더니, 목청이 터져라 웃는다. 정신이 이상한 애
들이 아닐까?
그리고 아이들은 저들이 왔던 방향을 향해 달려간다. 복부에 묻은 진흙을 티셔츠로 닦아내
며, 아이들을 따라간다. 그들은 달리다 멈췄고, 다시 달렸다. 그것 자체가 재밌는 놀이처
럼 보였다. 오솔길이 나타나자 길을 따라 달렸다. 이런 숲 속에 길이 있는 것은 신기한 일
이었지만, 진흙을 잔뜩 바른 아이들보다 놀라운 것은 없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앞에 커다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 사람들 한 무리가 보인다. 아이
들은 어른들에게 가서 뭐라고 외친다.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온 몸이 진흙투성이다.
체험 이벤트겠거니 생각하며 그들에게 다가간다. 나를 보자 움찔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
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진흙인간 한명이 큰소리로 묻는다. 약간 화가 난 듯한 말투다.
“이 주위에서 비 피하다 어쩌다 보니 오게 됐어요. 다들 뭐하는 거죠?”
진흙 속에서 눈만 멀뚱멀뚱 거릴 뿐 대답이 없다. 그들 사이에 여자 한명이 누워 있다. 여
자는 진흙 옷을 입지 않았고, 그냥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었다. 진흙 인간들이 둘러싼 모습
에서 미개 문명의 사악한 풍습이 떠올랐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누워 있는 여자를 바라보자, 진흙인간 한명이 입을 연다.
“여자는 전염병에 걸렸습니다. 지독한 병인데, 한달이면 피부가 다 벗겨지고, 눈이 썩어
들어가는 병이에요.”
목소리로 봐서는 삼십대 남자로 생각된다.
“그 눈에다 진흙을 넣지 않으면 전염력이 높아져요.”
진흙인간들은 여자 주위를 둘러싼다. 유일하게 옷을 갖춰 입은 사람이 누워있는 여자와
나, 이렇게 둘 뿐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내게 말했던 남자가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누군가 칼을 들더니, 여자의 눈을 찌른다.
“아니, 무슨........”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던 남자가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한다.
칼을 든 진흙인간은 내용물을 갈아내려 하듯, 칼을 돌린다. 긴장감이 감도는 듯하지만, 어
찌 보면 평상시와 다름없는 행동 같기도 했다. 누워있는 여자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늙은 여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팬티와 늘어진 가슴을 받치는 브래지어 외의 부분은 모
두 진흙으로 칠해져 있다. 눈가와 입 주위 주름이 진흙에 선을 긋는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우리들은 모두 병자야. 전염되면, 이 진흙 속에서 평생 살아야 해.
육지로 나왔다가도 다시 흙으로 된 늪으로 금방 돌아가야 하지. 그게 우리 운명이야.”
주름이 슬퍼 보인다.
“저 여자는 그것을 어긴 거지. 병에 걸리고도 늪이 싫다고 떠난 거야. 그게 고쳐질 줄 알
아? 결국 병이 심해지니까 맘 고쳐먹고 여기로 돌아온 거지.” 누워 있는 여자의 눈에서 칼
이 뽑히고, 사람들은 숟가락 같은 것으로 눈곽속의 잔재물을 퍼내고 있다.
“그래도 늦었어. 그렇게 오래 나가 있으면 살 수가 없지. 이미 뼛속까지 병이 파고 들어가
버린 상태에서는.........”
나는 반발자국 정도 물러났다. 질퍽한 진흙이 운동화를 타고 올라왔다. 소름이 돋는다. 잔
재물을 다 퍼낸 사람이 옆 사람에게서 진흙 덩이를 넘겨받고, 조심스럽게 비어있는 눈곽에
다 집어넣었다.
“그냥 묻으면 되지 않나요?” 내 물음에,
“이 병이 튀어 나와 퍼지면, 막을 수가 없어. 땅 속에 묻어도 소용이 없다니까. 우리가 사
는 늪, 거기 흙으로 눈을 막아야만 돼. 아니면 방법이 없어. 늪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전에
의사였던 사람도 있어. 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야.”
늙은 여자는 자신의 눈을 주무르는 듯한 손짓을 한다. 손끝에서 마른 진흙이 떨어진다.
“아주 가끔이지만, 전염력이 아주 강한 경우도 있어.”
미리 파여 있던 구덩이에 여자 시체가 들어간다. 무덤이 깊지 않다. 그 위에 흙을 덮자 약
간 올라온 모양이 되었다. 비가 내리면 금방 씻겨 시체가 드러날 것 같다.
“젊은 사람은 이만 돌아가게. 이런 저주 받은 곳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정말 비
참하게 죽는 꼴을 많이 봐야 하는 곳이니까. 그리고 웃옷은 입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식구
가 되기 싫다면.”
늙은 여자는 돌아서 아이들의 손을 잡는다. 떠들던 아이들이 조용하다. 사람들은 얕은 무
덤을 만든 채 어디론가 이동한다. 그 늪이란 곳으로 가는 것 일까?
토인들 같은 우스꽝스러운 집단이 숲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 잠시 공터를 둘러본다. 방금
만들어진 얕은 무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쪽에도 같은 모양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그 옆
에도......... 그 순간 내가 무덤 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병에 걸려 많은 사람이 죽었구나.
공터 위로 드러난 하늘에는 아직도 먹구름이 짙게 끼어있다. 또 비가 쏟아질지도 모르겠
다. 나는 서둘러 오솔길로 뛰어간다. 뭔가 오싹한 기운이 전신을 감싼다. 이 숲에 1초도 있
기 싫다.
자전거 있는 곳까지 와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한달이 조금 더 지나, 뒷목에 보라색 반점이 생겼다.

내분비 내과 회의실에서는 친구들이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내 시무룩한 표정을 본 친구들
이 몇 마디 질문을 던지더니, 짧은 위로와 함께 다시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나도 내 앞
에 환자의 차트를 뒤적였지만, 쉽게 집중이 되지 않는다.
눈..........
눈 속에 칼을 넣고 젓는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그 여자도 나처럼 피부에 증상이 나타났을
까? 그리고 눈이 흐려지는 증상?
만약 그렇다면, 처참한 죽음은 예고된 것이다. 병원이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직도 의
사들은 내 병을 모르고 있고, 어쩌면, 그냥 신기한 피부병에 걸린 의과대학생 정도로 여기
는 지도 모른다. 걱정 말라고는 하지만, 누구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넋 놓
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늦으면 그 여자처럼 죽는다.
불안이 가중될수록 죽음에 대한 확신과 공포가 밀려들어온다. 진물이 묻어있는 가운을 벗
어 차트 위에 놓는다. 눈 속에 살짝 안개가 낀 것 같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
“어디 가려고?” 회의실을 나가는 내게 친구 한명이 묻는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화장실.”
짧게 거짓말을 던지고 나온다.

방학이 시작되었을 때처럼, 짐을 꾸리고 학교를 출발한다. 그때처럼 날씨가 덥다. 교통수
단도 역시 자전거다. 지금 내게 선택권은 없다. 무작정 가보는 수밖에.........
다시 지도를 따라 달리고, 눈에 익은 풍경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예전에 그 풍경을 볼 때
의 기분과는 다르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한다.
살아야 해.
가려움은 더욱 심해졌고, 항생제 연고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게 긁자 살점이 뜯겨 나오
고 고름이 나온다. 그래도 가려운 것보다는 아픈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함이 다리
근육을 무겁게 조이지만, 속력을 늦추진 않는다. 그 여자처럼 죽을 수 없다.
커다란 나무가 있는 숲, 몸이 눈보다 먼저 그 장소를 알아본다. 여기에 자전거를 멈추지 않
았더라면........ 숲으로 들어가지만 않았더라면....... 후회가 밀려들지만, 그 후회의 길을
따라 달린다. 비가 오지 않았지만, 숲은 그날처럼 축축하다.
오솔길을 따라 달리자, 무덤 터가 나온다. 그리고 놀고 있는 아이들 둘이 보인다. 전에 봤
던 아이들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다가가자 아이들이 놀란 듯이, 나를 약간 입을 벌
린 채 나를 바라본다. 콧물이 진흙과 섞여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도 모르는 듯하
다.
그 중 한명의 손목을 잡자, 도망치려고 발버둥친다. 옆에 있던 아이는 놓으라고 소리친다.
나는 아이의 뒷목에 묻어있는 축축한 진흙을 털어낸다.
보라색 반점.
손을 놓자, 아이들은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예전에 사람들이 들어갔던 숲으로 뛰어
간다. 그들의 뒤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무덤으로 시선을 돌린다. 새로 만들었던 얕
은 무덤 위에는 잔디가 돋아나 있다.
내가 여기 사람들과 같은 병에 걸린 것이 확실해진다. 아마도 아이들이 내 몸을 만졌을 때
전염되었을 것이다.
눈이 흐리다. 깜짝 놀라 눈 상태가 악화되는 것인지 확인한다. 곧, 눈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 무덤이 만들어질 자리 위에 앉아 나머지 눈물을 다 쏟아낸다.

두 달이 지나자 조금 익숙해졌다. 흙으로 된 늪이란 곳이 그렇게 살기 비참한 곳은 아니었
다. 여기 사람들은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보이긴 하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로 변했다
고 생각해 버리면 별로 답답하지 않았다. 우선 가려운 증세가 사라진 것만 해도 감지덕지
인 것이다.
어차피 평생 여기 살 것이란 생각에, 전화기도 꺼놓고,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
고 사람들에게 이곳이 알려져 진흙인간들이 구경거리가 되거나, 실험체가 되는 것은 싫
다. 여기 사는 전직 의사라는 남자도 세상과의 줄을 완전히 끊으라고 했다. 이것은 늪 공동
체의 규칙이기도 하다.
하루는 늪에서 잠시 나와 버섯을 캐다가 휴대폰 문자가 온 것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어디
있냐는 뻔한 메시지들이겠지만, 형준이 형에게서 치료법을 찾아냈다는 메시지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리 기대는 되지 않았다.
휴대폰을 켜자, ‘삶, 소박한 비밀’이라는 글자가 액정 화면에 뜬다. 방학이 되기 전에 읽던
책의 제목을 입력해 놓았던 것이다. 그 때는 내 삶이 이렇게 망가져 버릴 줄 몰랐다. 긴 한
숨이 액정 화면을 때린다.
잠시 후, 부재중 메시지들이 도착한다. 편지함을 열어 차근차근 읽었다. 휴대폰 버튼에 진
흙이 묻어 지저분했다.
-윤수야, 어디에 있니?
-이 녀석아, 도대체 어디야?
-빨리 와, 안 그러면 출석 때문에 유급당해.
내가 병원을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내온 문자들이다. 어디냐고, 빨리 오라는 문자만
서른 개가 넘었다. 그 중에는 어머니가 보낸 것도 있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계속 문자를 넘겼다. 최근에 온 문자들을 보자 마음이 더욱 불편해
졌다.
-나 형준이다. 지금 너 같은 증상 가진 환자들이 넘쳐나고 있어. 나도 마찬가지고. 병원과
학교 사람들이 다 감염된 것 같다.
-윤수야. 어머니가 아프시단다. 빨리 와라.
-목에 구멍이 뚫리고, 눈알이 썩고 있어. 윤수야, 도와줘!
-형준이 형이랑, 병원 사람들이 거의 다 죽었다. 다 너 때문이야. 나도 격리되어 있는데,
곧 죽을 것 같아.
-윤수씨,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몇 개의 문자가 더 있었지만, 휴대폰을 껐다.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늪으로 던졌다. 포
물선을 그리며 늪 위로 떨어진 휴대폰은 천천히 잠식되었다. 늪산적거미가 놀라 사방으로
도망갔다.
다시 쪼그려 앉아 버섯을 캤다. 몸통이 두꺼운 것이 맛이 좋을 것 같았다. 캐낸 버섯의 냄
새를 맡다가, 예전에 늙은 여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주 가끔이지만, 전염력이 아주 강한 경우도 있어.
버섯 머리 위로 흙빛이 된 눈물이 떨어진다.


-the end




출처 : www.adultoby.com

재밌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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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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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재미있게보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나요;;; 어쨋든..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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