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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24 15:00
선조임금은 1567년∼1608년까지 왕위에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왕의 즉위연도 부터 재위 원년이라 부르니까(우리나라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1살이라 부르는 것처럼) 1591년은 선조 25년. 1592년은 선조 26년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근데 유머라고 올라온 글에 왜 이렇게 정색을 하고 사소한 것에다 딴지를 거는지 저 자신도 모르겠군요...ㅡ.ㅡa 정현준님... 죄송합니다. 꾸벅~~ ( _ _ )
03/06/24 15:37
오오 대단하시군요 저런 걸 어떻게 바로 보고 아시는지. 전 사실 연도는 보지도 않았었거든요. 읽으면서 너무 웃겨서 상무님 지나가는데 보지도 못하고 계속 웃었다는 -_-;;;
03/06/24 17:47
저 한자는 뜻까지 생각해서 지은건지 음만 갖다 붙인건지, 궁금하네요.^^; 모르는 한자가 대부분이라 해석 불가능..; 아는 한자도 어떻게 해석되는지 잘..;;
03/06/24 21:20
이순신 장군이 활맞아서 죽은게 아니였군요...디스당하셔서 돌아가신거였다니....그러길래, kt adsl 쓰지말고, vdsl쓰시라니깐 ;;;
03/06/24 21:25
글 적은신분 대단한 발상...... ^^ 재미있네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순신 장군,대학자이자 5천원의 주인공 율곡이이 선생, 때문에 왜곡된 부분이 많아서 안타깝네요..... 이순신장군이나 율곡선생님 같은 분은 끊은 없는 존경과 위인으로서 기억되어서 남고 그 이면에 희생된분도 적지않습니다... 임진왜란 10년 율곡선생의 10만 양병설 주장하셨죠.. 저희들은 이때까지 율곡선생의 말만 들었어도 이런 비참한 전쟁을 하지 않았을거라고 배웠죠. 지금도 그렇게 배우고 있죠. 하지만 이면에는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재정형편이나 또한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지요. 지금 우리 현실에 우리 군에 항공모함 3척을 보유하자는 말과 같은 이치지요.. 그래서 일본으로 갔던 사신중 한사람이 부사 김성일 선생은 지금까지 율곡 선생의 뒤에서 항상 비난 받았죠. 하지만 김성일 선생은 나름대로의 주관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율곡선생의 말은 좋은 생각이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정이나 민심동요등을 우려한것같습니다. 그의 행적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 이후 자청하여 경상도로 내려와서 군사를 정비하고 군사력을 길렸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도 김성일선생의 담당구역만 쉽게 뚫리지 않았지요. 그러다 결국 장열히 전사하였습니다. 역사의 재조명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순신 장군뒤에서 갑자가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우수사로 계신 분. -_-;;;; 이순신 장군 모함하는 아첨군으로 배웠지요.. 최근에 와서는 많은 부분에서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지요... 말이 세었는데 .. 스타에 비유해서 재미있게 적어셨네요..
03/06/24 21:43
조선태종님. 경상우수사는 원균입니다.
원균에 대한 평가는 김성일에 대한 평가보다 훨씬 더 깎여져 있습니다. 원균도 이순신만큼 최선을 다해 왜군에 싸웠고 또한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왜란 이후 원균과 이순신이 나란히 정난공신 1등에 오른 것만 봐도 당시 위정자들이나 민중들이 원균을 오늘날처럼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처럼 원균이 평가절하된 데에는 춘원 이광수와 박정희 전대통령의 공헌(?)이 지대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광수는 동아일보 사설에다가 이순신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키고 반대로 원균이나 선조를 혹평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는데요, 그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쟁중인 일본군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조선인들로 하여금 전쟁에 적극 동참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온 것이나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선조가 우유부단해서, 김성일이 무지해서 왜란이 일어났다고만 적었었죠...;;;)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박정희"라고 반말로 쓰고 싶지만 그를 추앙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참았습니다. =_=) 쿠데타로 집권한 후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바로 이순신이었지요.)을 부각시키고 국민들에게 강요하기 위해 현충원을 만들고, 이순신 전기를 수백 종류나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이순신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원균을 마치 <삼국지 연의> 저자 나관중이 조조를 깎아내리듯이 아주 형편없는 인간으로 깎여지고 말았죠.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포함된 이순신을 현재 우리는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역사에는 재조명되어야 할 위인들이 수도 없이 많은 것 같습니다.
03/07/13 08:23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글에 뒤늦게 리플 다는게 부질없는 짓이긴 합니다만, 바로잡을 건 바로잡아야 겠기에..;;;
원균이 이순신 장군과 같이 1등 공신에 책록될 수 있었던 데에는 선조의 우김(?)이 컸습니다. 신하들이 대부분 반대했지만, 이순신을 내리고 원균을 기용했던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끝까지 주장해서 관철시켰던 것입니다. 박정희가 이순신 장군을 띄우는 바람에, 역사적 재조명이니 해서 원균을 새로이 평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만, 엄연한 사실은 원균이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 전부를 말아먹었다는 것입니다. 부당한 명령을 받았던 말았던, 부산포로 진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던 이순신을 장계로 씹었던 것도 원균이었고, 적함대에 포위당할 때 까지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던 것도 원균이었습니다. 그도 용장 중의 한 명이었지만, '재조명되어야 할 위인'은 절대 아닙니다. 고원정의 소설이나, 이재범 씨의 '원균을 위한 변명' 같은 책들 때문에 그를 실제보다 높게 보는 시각이 많은데, 그는 그저그런 장수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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