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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07/27 11:27:22 |
Name |
사파이어 |
Subject |
[유머] 어제 있었던 실화.. |
어제 있었던 일인데.. 아침에 눈을 뜨니까 생각나서 바로 써봅니다. 반말인건 양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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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자가게의 배달 아르바이트다.
뭔가 비올 것 같은 꾸리꾸리한 날씨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4시경 부터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배달은 겁나게 많아서 더럽게 힘들었다.
피크타임이 지나고 저녁 8시쯤이 되었다.
내 배달이 하나 떴는데 우리 배달구역 중에서도 가장 먼 곳.. 이른바 '세상의 끝'.. 배달좌표 L2가 떴다. 보자마자 WTF을 외쳤다.
6분 후 배달이 하나 더 떴다. 배달좌표 K2. 그 전에 뜬 배달좌표 L2의 바로 옆 구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L2가 '세상의 끝 L2라도(엘투라도)'라면,
K2는 L2만큼 지도 상 거리는 멀지는 않되, 엄청난 고지대라서(바이크가 걸어가는 속도로 올라갈 정도)'히말라야 K2'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어쨌든, L2와 K2는 이른바 '코스'였고, 난 친구들을 위해 혼자 두개를 묶어서 배달가기로 했다.
하지만 주방에서는 새로 들어온 신입들을 가르치면서 피자를 제조하느라 피자가 꽤나 늦게나왔다.
(보통 이렇게 한가할 때는 피자가 주문이 뜨고나서 7분이내면 나오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각각 15분정도 걸렸다.)
그래서 내가 두 건의 배달을 묶어서 출발하게 될 때는 이미 시간이 각각 7분, 13분 남은 상태였다.(보통 17~21분 남은 정도일 때 출발함)
거리상으로 따지면 첫번째 배달인 L2는 신호를 제대로 받기만 하면 8분정도 걸린다.
하지만 현재는 비가 온 상태의 밤이기 때문에 코너링을 주의해야 하므로 넉넉잡아 10분은 걸린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배달이 지연도착하게 될 것 같은 경우는 손님이 전화를 하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쳐야한다.
같이 일하는 동생녀석이 L2의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배달지연사정을 설명한 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 아줌마 존* 착해. 주문 폭주상태고 비와서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다니까 제~~~발. 제~~~~발 천천히 오라고 그러네? 천천히 가'
보통 손님을 평할 때, '존* 착해'를 붙이는 경우가 없으므로, 나는 깨달았다. '아 진짜 존* 착한 아줌마인가 보다'라고.
'그럼 나 진짜 존* 천천히 가야지. 여행하고 한시간 후에 돌아올께.'
이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세상의 끝과 히말라야를 향해 출발했다.
L2에 도착하고 13층까지 올라가서 손님 집인 1301호 앞에 도착한 후 벨을 눌렀다.
안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네에~ 잠시만요~'
잠시 후 문이 열리고,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엄청 이쁜 아줌마가 나왔다.(매우 젊었지만 앞치마를 하고 있었기에 아줌마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잠깐, 아파트에서 피자를 받는 손님들은 여러 유형이 있는데, 크게 두 가지만 대충 이야기 해보자면,
우선 현관문을 열어 주고 나서 신발 벗는 곳 앞에서 설명을 들어가며 받는 경우가 있고,
현관문을 열어 주고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현관문 쪽에서 설명을 들어가며 받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내 정면에 손님이 위치하게 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반대로 피자를 신발 놓는 곳 앞쪽에 놓으며, 피자에 대해 설명하는 나의 등 뒤에 손님이 있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이 아줌마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했다.
현관 앞에서 쭈그려서 '주문하신 ~ 피자랑 콜라 1.5리터 왔구요. 결제 끝나셨구요' 등등 말하며 피자와 곁들이 등을 놓고있는데
뒤에서 아줌마가 말을 걸어왔다.
'오는데 괜찮으셨어요~?'
나는 대답했다.
'네. 비도 거의 그쳐서 괜찮았어요.'
아줌마가 말했다.
'아 피클은... 하나만 주시고 나머진 가져가셔두 되요~'
아줌마의 말투가.. 되게 특이했다.
매우 부드럽게 말하면서.. 나긋나긋? 매우 천천히 말하면서 엄청 순진함이 묻어 나오는 말투였다.
말로 형용하기는 좀 어려운데, 약간 소심한 중3소녀가 붕어빵 2천원에 7개 파는 곳에서 천원어치 혹시 안되냐고 물어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아줌마의 말투에 매우 신경이 쓰였다. 이런 말투를 쓰는 손님이 최근 6개월 이내에 없었던것 같다.. 라는 생각따위를 하며.
어쨌든, '피클은 하나만'이라는 요구를 들어주었고, 그 뒤에도 아줌마는 말을 계속 걸었다.
'아.. 혹시 디핑소스 있나요..?'
'네. 몇개 드릴까요?'
'하나만 주세요~'
디핑소스를 달라는 아줌마의 말에 나는 여분소스쌕을 뒤적거리며 디핑을 찾아헤맸고, 그 와중에 아줌마가 또 나에게 말을 걸었다.
'같이 피자 드시고 가세요'
아니 의사양반 이게 무슨소리야
정말 황당했다. 물론, 손님이 같이 피자 먹고 가라고 하는 경우는 한달에 한 두번 정도는 있다.
골프치는 아저씨들이나, 통신사나 바이크가게 같이 회사사람들끼리 시켜먹는 경우 등등은 같이 먹고가라고 말해주는 경우가 있다.
특히 비오는 경우는 안쓰러워서 그런지 권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가정집에서 먹고 가라고 권하는 경우는 맹세코 없다.
나는 당황했지만 프로답게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으며 약간 중저음으로 시크하게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에겐 또다른 배달이 있어서요.'
아줌마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물론 그냥 너무 착하다보니 인사치레로 건넨 말이었겠지만, 정말로 피자를 하나 줄 생각이었지 않을까?
라는 등의 생각을 하며 디핑소스를 하나 꺼내서 피자위에 올리고 쭈그려 앉아있는 상태에서 드디어 다리를 펴고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내 눈앞에 핸드백을 메고, 나갈 듯한 채비를 하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나를 쳐다보며 서 계셨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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