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유가 생겼어요' 프로게이머 이윤열 인터뷰
▶ 프로게이머 이윤열
지난 13일 'KT.KTF프리미어리그 통합 챔피언십' 결정전에서 '테란의 황제' 임요환(24. 4U)을 꺾고 우승한 '토네이도 테란' 이윤열(21.투나SG)은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말한다. 출전하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싹쓸이 하는 그였지만 늘 한가지가 부족했다고 털어놓는다.
'우승도 많이했지만 늘 답답했어요. (임)요환이형을 뛰어 넘지 못한 1위는 의미가 없거든요.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사람들이 보는 인식도 조금 달라지겠죠'라며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사실 이윤열에게는 임요환이라는 거목(巨木)이 가장 어려운 상대다. IS팀 시절 한솥밥을 먹은 터라 상대의 기술을 뻔히 알고 있기에 더욱 부담스러운 경기였다. '요환이형이 어떤 플레이를 할 지 생각하고 또 고민했어요. 그런데 답이 안나오더라구요.' 그만큼 꾀가 많고 지능적인 기술이 많은 임요환이었기에 연습부터 힘들었다고 한다.
이번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점이 수확이라는 그는 임요환식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재밌고 감동적인 경기'가 정작 본인에겐 부족하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극적인 경기가 나오기 위해 (?) 연습에 더욱 몰두 할 것이라고 한다.
이윤열은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선 '머신(기계)' 혹은 '괴물'로 불리워진다. 물량.전략.타이밍.컨트롤에 빈틈이 없고 한번 승기를 잡으면 절대 놓치 않아 붙여진 별명이다.
'나를 머신이라고 부르는데 솔직히 듣기 싫어요. 매일 이기는 것도 아닌데...'라며 푸념했다.
여드름이 송송난 앳된 얼굴에 수줍어하는 듯한 말투에선 여성스러움 마저 느껴지는 그였지만 스타크를 할때면 정열적인 피아니스트처럼 무섭게 파고든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의 말처럼, 게임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프로게이머라는 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승리에 대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심하고 하루 10시간 이상 모니터와 씨름을 해야 하기때문. 또 강한 조명을 견디기 위해 체력관리도 필수다.
그는 무작정 '임요환.이윤열같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청소년들에겐 일침을 가한다. '게임은 오직 1등만 인정해요. 프로게이머는 고독함과 승부의 중압감을 견뎌야 하고 무엇보다 피나는 노력을 각오하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라고 단언한다.
이윤열이 게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중 2때부터다.경북 구미에서 자란 그는 우연히 친구집에서 스타크를 접한 후 푹 빠져들었다. 이 후 PC방에서 살다시피하며 스타크 기술 연마에 집중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00년 겨울이었다. iTV에서 무명의 게이머와 프로게이머가 겨루는 '고수를 잡아라' 코너에 전화로 참가신청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코너에서 당시 최강으로 손꼽히던 최인규를 상대로 승리를 따내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2001년 입단 테스트에서 홍진호 마저 꺾자 게임 i팀 송호창씨(現 투나 SG 감독)가 그의 가치를 예감하고 바로 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윤열에게도 시련이 없었던것은 아니었다. 가족몰래 구미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로 상경해서 1회전 탈락하고 내려갈 땐 그만 둘 생각도 여러번했다. 학교에선 잠자기 일쑤였고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집에선 게임을 한다고 하자 펄펄뛰며 반대했다. 하지만 너무 좋아서 시작한 일이였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모험정신이 발동했던 터라 '이거다'싶었단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자신부터가 성숙해졌다. 처음엔 '괴물온다'며 말씀하시던 어머니도 이젠 '골리앗 뽑아야지'하고 조언까지 해준다. 여자 친구의 도움도 컸다. 무명시절 팬카페를 만든 2살 연상의 운영자와 1년째 교제중이다.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힘들때 곁에서 도와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여자 친구가 생긴 후 혼자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짓(?)은 안한다고.
이윤열은 3월 인하대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한다. 학업과 게임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앞서지만 처음 게임을 시작했듯이 일단 부딪혀 볼 작정'이라 말한다. 또 올해에는 반드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싶다는 강한 집념도 내비친다. 국내 모든 게임리그에서는 우승을 해봤지만 정작 '월드사이버게임스(WCG)' 같은 세계무대와는 별 인연이 없었기 때문다.
'게임팬들이 인정하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그는 '은퇴 후엔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2004년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승부근성이 느껴졌다.
이병구 기자 <3D3Dluckyboy@joongang.co.kr">3Dluckyboy@joongang.co.kr">3Dluckyboy@joongang.co.kr">luckyboy@joongang.co.kr>
■ 이윤열 프로필
▲태어난 곳=84년 11월 20일 경북 구미
▲가족=1남 1녀 중 막내
▲ID= [ReD]NaDa(주종족-테란)
▲주량=소주 반 병 (반 병이란 말에 엄 감독이 3병은 너끈다하고...)
▲혈액형=B형
▲취미=음악감상. 천식으로 테니스는 포기
▲목표=세계대회 우승. 1인자
▲단체생활 힘든점= 식사문제 (운동선수처럼 규칙적인 식사 하고파)
▲여자친구=있음(23. 경기대 재학중. 이윤열군이 이름 공개를 꺼림)
▲수상경력= 2003년 상금왕, 2003 올해의 게이머상, 게임방송 3사 주최 스타리그전 우승, 2002 KPGA투어 2.3.4차우승, 파나소닉배 2002 온게임넷 우승, 핫브레이크 온게임넷 마스터즈 우승, 2004 KT.KTF프리미어 통합챔피언십 우승 등
[취재후기]
이윤열군과 인터뷰를 약속한 지난 16일. 오후 2시에 약속을 잡은 기자는 경기도 부천시 송내역에 위치한 투나SG게임단을 찾았다. PC방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투나SG게임단에 들어섰을때 李군은 눈에 띄지 않았다.
“윤열이 어디갔니?” 엄감독의 말에 다른 게이머들도 모른단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기다린지 약 5분 후. 李군이 들어섰다.키가 더 자란 느낌에 사춘기 티가 팍 묻어 나왔다. 거기에 번개 머리(온 머리를 전부 세워 벼락을 맞은 듯한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엄감독은 “요즘 한창 멋을 부린다. 특히 머리에 아주 신경을 쓴다”고 귀띔했다.
원래는 동영상과 함께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는데 PC방은 시끄러워 장소로선 불가했고 PC방 옆 레스토랑은 손님도 없고 비교적 한산했으나 李군이 ‘청춘의 상징’ 여드름때문에 곤란하다고 해 포기해야 했다. 10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전경을 보며 인터뷰는 시작됐다. 시력이야기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좌우 2.0, 1.5라 함) 이어 군문제(올해 입학으로 당분간 연기를 고려 중)로 이어진 후 자연스레 지난 13일 벌어진 ‘KT·KTF프리미어리그 통합 챔피언전’이야기로 넘어갔다.
당시 찾아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는 李군은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경기 전날 (임)요환이형과 같은 꿈을 꿨어요. 형은 나에게 지는 ‘꿈’을, 나도 형에게 지는 ‘꿈’을요.’
“꿈은 반대라고 너의 꿈이 틀린거네?”라고 묻자 피씩 웃어 보였다.
이어 여자친구로 화제가 넘겼다. “안산에 살고요 조XX(방송불가시 ‘삐’음)양이예요. 2살 연상이죠. 화장도 안하고, 착하고 이뻐요. 그래서 제가 먼저 프로포즈했죠”. 한가지 특이한 사항. 여자친구이야기를 할 땐 얼굴이 방긋방긋 해졌다. 다음 날 임요환선수를 우연히 만날 수 가 있었는데 임선수 왈 “여자친구 있으면서 그런 성적 내는 걸 보면...”라며 신기해했다. (참고로 임요환 선수는 아직 솔로다)
이윤열군과 1시간 30여분의 시간동안 스타크의 장단점, 자신이 부족한 점, e스포츠의 현실과 미래, 발전방향 등을 가지고 열띤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내용은 임요환, 홍진호, 서지수선수등 여러 게이머들을 만나본 후 기사로 쓸 예정이다.
끝으로 李군은 식사 문제가 가장 어려운 점이라 밝혔다. 운동선수처럼 식판에 먹는 그런 날을 기대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