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Sinji)’가 ‘Magical 저그’ 다
프로게이머 임정호(23, POS)가 제2의 전성기를 노리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활약했던 ‘Magical 저그’ 임정호. 한때 배틀넷 래더 1위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1세대 프로게이머다.
지금은 프로게이머가 하나의 상품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스타’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온라인 상에서의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때문에 당시 ‘한 스타’ 한다는 게이머들은 이름 석자보다 배틀넷 아이디로 더 유명했다.
임정호가 본명보다 ‘신지(Sinji)’라는 아이디로 더 유명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단순히 재미로 시작, 인생을 바꿔버렸다
1998년 여름.
한창 수능준비로 바쁠 시기에 ‘스타’와 인연을 맺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재미로 시작했던 게임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오락실에서 시간을 때우던 그 시절,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오락실이냐?”는 친구를 따라 처음 PC방에 갔다. 오락실에서 하던 슈팅게임이나 축구게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워크래프트2’를 플레이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스타’를 배우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대충 기본기를 익힌 후 곧바로 친구들과 IPX(망간 패킷 교환, Internetwork Packet Exchange)를 시작했다.
1년 만에 래더 1위 등극
초창기 그가 선택했던 종족은 프로토스. 옵저버로 정찰 후 사이오닉스톰을 뿌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주변 친구들은 더 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후 세계 랭킹 점령을 위해 나섰다. 당시 세계 랭킹 래더 순위 10위권 내에서 7명 정도가 저그유저. 과감하게 주 종족을 저그로 전환했다.
그는 “전 세계의 초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신지’라는 아이디를 랭킹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고 말한다.
여름방학동안 내내 ‘스타’와 씨름했고 개학을 한 이후에도 틈틈이 실력을 쌓아갔다. 학업은 뒷전,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시작하면서도 ‘스타’에 대한 열정만은 식지 않았다.
‘스타’를 시작한 지 1년. 그는
[N.T]Sinji라는 아이디로 그토록 소망했던 금테두리가 달린 마크, 바로 래더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최고가 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전력 질주했지만 막상 래더 1위에 오르고 나니 ‘스타’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졌다.
국산게임으로의 외도 잦아
‘스타’를 시작한지 5년이나 된 노장 임정호. 그는 소속사였던 다크호스의 부도로 스폰서 없이 방황하며 매년 6개월 정도 휴식기를 가졌다.
그러나 반년씩을 쉬어도 매번 16강 안에는 무난히 진입하는 등 식지 않은 실력을 과시해 왔다.
휴식기 동안은 ‘아마겟돈’, ‘엠페러 배틀포 듄’, ‘코헨’, ‘엠파이어어스’ 등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틈틈이 용돈벌이를 했다.
아무래도 국산게임리그는 유저의 수가 적기 때문에 용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 그러나 다른 게임으로의 외도가 잦다보니 ‘스타’에서는 차츰차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중도에 방황하지 않고 꾸준히 ‘스타’에만 몰두했더라면 진작 ‘스타’의 1인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는 오랜 솔로활동을 접고 올해 3월에 POS에 합류했다. 이는 제2의 전성기를 노리기 위한 새로운 도전인 것이다.
“저, 성형수술 했어요.”
6개월 전에 안면윤곽수술을 했다는 임정호의 깜짝 고백이다. 유난히 도드라진 주걱턱을 커버하기 위해 수술을 했다. 게임을 하면서 틈틈이 모아둔 거금 천만 원을 고스란히 수술비용으로 투자한 것.
“수술 후 보름동안 미음만 먹었는데 자그마치 6킬로그램이 빠지더라구요. 의사선생님 말씀이 여자들이 턱 깎고 예뻐지는 게 다 못 먹어서 살이 빠지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웃음)”
퇴원 후 붓기가 가라앉지 않은 통통한 볼을 보신 부모님의 “예쁘다”는 한마디에 날아갈 듯 기뻤다. 안면윤곽수술 하나로 엄청난 변화를 기대한 건 아니다. 다만 날카로운 인상이 한결 부드러워 졌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수술을 하고 난 후 술과 담배로 인한 부작용으로 고생했던 그는 얼마 전부터 하루 3갑 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한 갑으로 줄였다. 외형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한 만큼 맨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스타 1인자를 노린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1세대 프로게이머는 ‘희생양’
그는 “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프로게임시장의 희생양”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게임이 좋아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을 뿐 이렇게까지 판(?)이 커질 줄을 몰랐다”는 것.
프로게임시장이 차츰 자리를 잡아나갔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반을 다져 온 1세대 프로게이머들은 하나 둘 사라져갔다. 4~5년 전에만 해도 PC방을 전전하며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어도 하고 싶은 게임을 실컷 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러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던 그 때완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임정호는 “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번번이 재기에 실패했지만 나는 꿋꿋이 살아남아 1세대 프로게이머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다”고 다짐한다. 아직 시들지 않은 ‘노장의 힘’을 아낌없이 발휘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는 게 그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