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한국 최고 프로게이머 朴正石
『10대와 20대에게는 인터넷 게임이 스포츠이자 문화입니다』
하루 12시간 컴퓨터 게임. 연봉 1억3000만원. 팬 카페 회원 17만 명. 10代와 20代의 우상
趙東眞 月刊朝鮮 기자 (zzang9@chosun.com)
네 시간의 激戰
전쟁영화의 전투 장면을 옮겨 놓은 듯한 激戰(격전)이 컴퓨터 모니터에서 펼쳐지고 있다. 테란軍을 이끌던 정예병사 「마린」의 몸은 프로스트軍의 「질럿」이 휘두르는 검에 피로 물들었다. 프로스트軍의 선봉장 질럿은 양손으로 검을 휘두르며 테란軍 탱크를 향해 돌격한다.
질럿을 향해 테란軍의 탱크가 불을 뿜는다. 질럿은 7~8분의 지루한 공방전 끝에 탱크를 모두 폭파시킨다. 무너진 탱크 방어선을 넘어 질럿을 선두로 한 프로스트軍이 물밀듯이 진격한다.
테란軍은 곳곳에 묻어 놓은 지뢰를 터뜨리며 저항하지만, 프로스트軍의 인해전술 앞에 역부족이다. 테란軍은 궤멸 일보 직전이다. 본진 여기저기에서 불기둥이 솟아 오른다.
30분이나 계속된 血戰(혈전)의 끝이 보인다. 마우스와 키보드로 테란軍을 지휘한 프로게이머 朴正石(박정석·23)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보인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끝내자. 그만. 항복해』
테란軍의 항복을 알리는 「GG」라는 메시지가 모니터 한쪽에 떠오른다. 朴正石은 네 시간 만에 처음으로 두 팔을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켠다.
팬 카페 회원 17만 명
朴正石을 응원하는 팬들.
5년 전 釜山(부산)에서 상경한 그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하나로, 연예인 못지않은 富와 인기를 얻었다. 10代와 20代 젊은이들의 우상인 그의 팬 카페 회원수는 17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韓流 열풍의 선두주자 배용준의 팬카페 회원이 17만 명 정도인 것을 보면 朴正石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그는 「KTF 매직엔스」 팀 소속이다. 이들이 타고 다니는 흰색 밴에는 팬들의 낙서로 가득했다. 「정석 짱」, 「결혼하자 박정석」, 「승현♡정석」…. KTF 매직엔스의 매니저 李吉萬(이길만·32)씨는 『우리 차는 세차를 해도 티가 나지 않아요. 요즘 아이들 못 말리죠』라고 했다.
지난 8월29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자곡동 KTF 매직엔스 팀 합숙소를 찾았다.
이곳에서 15명의 프로게이머들이 살고 있다. 3층 건물은 15명의 선수와 감독, 매니저가 생활하기에 넉넉한 공간이었다.
3층은 고참 선수들의 침실이다. 朴正石 선수는 3층에서 姜旼(강민·24) 선수와 같은 방을 사용한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는 15명이 함께 훈련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지난 7월30일 있었던 「전반기 프로 게임 리그」 결승에서 「SKT T1」 팀에 패배한 이후 훈련이 한층 강화됐다. 합숙소는 조용했다. 매니저 李吉萬씨의 얘기다.
『게이머들이 대부분 말이 별로 없어요. 좀 내성적이고 차분한 친구들이 대부분입니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지만 많이 순진해요. 정석이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번 시즌 프로리그 올스타 투표에서 1위를 했지만, 1위라는 말이 나오면 오히려 쑥스러워하죠』
오후 6시, 李씨의 안내를 받아 2층 연습장으로 올라갔다. 훈련시간이 끝났지만 선수들은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로 자신들의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움직이는 양손만 분주했다.
2층 연습장에는 열 대의 컴퓨터가 두 줄로 늘어서 있다. 잘 꾸며진 PC방을 연상시킨다. 최신 기종의 컴퓨터와 모니터, 선수들만을 위한 초고속 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별도로 마련된 네 평 남짓의 작은 방에서 朴正石 선수는 趙炳浩(조병호·24), 金正敏(김정민·24)과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의 모니터는 모두 스타크래프트의 전장을 보여 주고 있다. 현재 KTF 매직엔스 팀은 프로게임 종목 중 스타크래프트 선수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이머들은 모두 앳된 모습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누구랄 것도 없이 『안녕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루 9~12시간 훈련
연습 사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박정석.
朴선수는 끼고 있던 이어폰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색한 듯 「꾸벅」 인사를 했다.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 연봉 1억3000만원, 인터넷 카페 회원 17만 명을 거느린 스타의 옷차림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마침 저녁 때라 선수들과 식당으로 향했다. 전기밥솥에서 각자 밥을 푸고, 찌개와 반찬을 하나둘씩 식탁 위에 차리고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했다. 김치, 김치찌개, 깻잎, 생선구이… 영양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식사를 마치고 선수들은 모두 1층의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앉았다. 현재 朴正石의 최대 라이벌이자 스타크래프트 게임 부분 랭킹 1위인 박성준 선수의 WCG(World Cyber Games) 한국대표 선발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朴正石은 방바닥에 앉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박성준 對 변은종」의 경기는 2대 1로 박성준의 승리로 끝났다.
『성준이가 역시 잘해. 정석이 형 당분간 신경 많이 쓰이겠다』
두 번째 경기인 「최연성 對 이재훈」의 경기가 중계됐다. 朴正石 선수가 기자를 위해 설명을 했다.
『연성이가 잘하지만 재훈이 형도 이번 게임을 위해서 엄청 연습했다고 들었어요. 첫 번째 경기와는 달리 호적수가 만난 거예요. 전술적으로도 볼 만한 경기고요』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은 순간순간 변하는 상황에 대해 자기만의 해설을 쏟아냈다.
『탱크를 더 배치해야지』
『재훈이가 독기를 품었네』
『지뢰를 더 깔아야지』
朴正石은 입을 열지 않았다.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경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재훈과 최연성이 어떻게 전략을 운영하는지 머릿속에 넣고 있는 듯했다.
경기는 예상과 달리 이재훈의 2대 0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朴선수는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루 종일 연습을 했는데 또 연습을 하나요.
『하루에 아홉 시간에서 열두 시간 훈련을 해요. 오전 10~11시 사이에 일어나 점심을 먹고, 오후 1시부터 팀 훈련을 하죠. 오후 6시 이후부터는 자유시간인데 각자 훈련을 계속합니다. 연습을 얼마나 했느냐가 경기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10~20代에게 강한 인상을 준 우주복
팬들의 낙서로 가득한「KTF 매직엔스」팀 차량.
李吉萬씨의 안내로 집안 구경을 했다. 옷방으로 사용되는 방이 인상적이었다. 유니폼과 개인 의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이들의 유니폼은 우주복을 닮았다. 10代와 20代 초반 젊은 층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朴선수의 룸메이트는 姜旼 선수다. 방 한구석에 朴正石과 姜旼 선수가 벗어놓은 빨랫감이 쌓여 있었다.
李吉萬씨가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우리 애들이 이렇게 살아요. 「프로게이머」라고 하면 신경질적으로 깔끔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느 10代, 20代 초반 친구들과 다르지 않아요』
지난 8월30일 오후 3시, 서울 삼성동 KTF 본사 앞에 「KTF 매직엔스」 팀의 밴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카메라폰을 들고 주변에 몰려 있었다.
매니저 李씨는 『빨리 타세요, 사람들이 모여들면 가기 힘들어집니다』라며 재촉했다.
밴 안에는 朴正石 선수와 趙容虎(조용호·22) 선수가 타고 있었다. 두 선수는 머리를 꾸벅 숙이며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했다. 밴은 급히 출발했다.
식당을 찾아 지하철 3호선 수서역 부근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차량이 지나가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선수들을 알아보고 카메라폰과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 상가 음식점 앞에 차를 세우고 朴선수와 일행이 들어갔다. 학생들이 식당 밖 밴을 둘러쌌다. 학생들이 계속 모여들더니, 식당 안을 향해 소리를 쳤다.
『朴正石이다!』
『사진 한 번 찍어 줘요』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매니저 李吉萬씨가 학생들을 돌려보내려고 애를 썼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자신의 아들·딸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들의 자녀로 보이는 학생들이 식당으로 들어와 식사를 하는 朴선수 일행을 지켜보았다.
―가는 곳마다 이렇게 청소년들이 모여드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아마 우리가 타고 온 밴 때문에 금방 알아본 걸 거예요. 그냥 평범하게 입고 다니면 잘 못 알아봐요』
식당을 나와 차량에 오르려는 순간 30代 중반의 한 남성이 다가왔다.
『朴正石 선수 맞죠, 우리 집사람이 정말 좋아해요. 20분 넘게 기다렸어요. 사인 좀 부탁해요』
밴에 탄 뒤 朴선수는 웃으며 말했다.
『나이든 분들이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고 하실 때 더 고맙고 감사해요. 그만큼 우리를 인정해 주시는 분들이 생겨 가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朴선수는 대한적십자사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을 받게 됐다」는 연락이었다.
朴선수는 지난 2월부터 헌혈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후 매월 한 차례 정기적으로 헌혈을 해왔다. 朴선수는 『제가 큰일을 할 처지는 아니고, 헌혈이 별로 힘들지도 않고 좋은 일이라 했어요』라며 쑥스러워했다.
무미건조
팀 차량에서 동료 조용호(오른쪽)와 박정석(왼쪽).
숙소 1층에서 「KTF 매직엔스」 정수용(36) 감독을 만났다.
정수용 감독은 『朴正石 선수가 현재 활동 중인 260여 명의 프로게이머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뛰어난 선수』라며 『정석이가 전반기에 개인전·단체전 모두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우승을 못 했다고 팬들이 실망할 정도』라고 했다.
정감독은 「프로게이머」의 세계를 「무미건조」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다른 프로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들에 비하면 프로게이머들의 세계는 에피소드가 전혀 없는 셈이에요. 합숙소에서 하루 열두 시간 이상 게임에만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개인 생활을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가족들을 보기 위해 두세 달에 한 번 집에 갑니다.
스포츠 팀처럼 체육관이나 운동장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연예인처럼 많은 사람들과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대부분 내성적이고 차분하죠』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선수들은 나름의 재미를 찾는다.
朴선수는 「산세베리아」를 키우고 있다.
『이거 키우는 것도 생각 외로 재미있어요. 병호 형이 키우는 것을 보고 예뻐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키우기 쉬워요. 열흘에 한 번 물 주면 되는 정도죠. 보기도 좋고 공기청정 역할도 한대요. 어린 새싹일 때부터 키웠는데 많이 자랐어요』
朴선수는 『선수들이 나름대로 무미건조한 합숙소 생활에서 돌파구를 찾는다』고 했다.
『합숙소 근처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책을 많이 읽어요. 만화·소설·에세이… 多讀(다독)하는 편이죠. 저는 오전에 조깅을 하고 있어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방법을 하나 찾은 것 같아요』
합숙소 2층 연습실에서 연습 중인「KTF 매직엔스」팀 선수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언제 생각했나요.
『高2 때 아는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전부터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좋아했는데, 아르바이트하면서 게임을 많이 했어요. 高3 때 담임선생님께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시더라구요. 서울로 올라와 「한빛 소프트」 소속으로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어요. 제가 TV에 나오고 하니까 나중에 선생님이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왜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했나요.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공부에 재능이 있어 제 인생을 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그때 한창 게임이 TV로 중계됐고, 게임에 승부를 걸어 보자고 생각했죠』
―부모님이 게임을 主業(주업)으로 하는 프로게이머가 된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부모님은 「공부를 해야지」 하는 정도였어요. 그때만 해도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기성세대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했어요. 부모님이 알지 못하는 것을 한다는 것 때문에 반대하신 거지, 제 생각이 잘못됐다고 반대한 건 아니었어요』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과 달라진 것들이 있나요.
『저희 집안이 어려웠어요. 아버지가 막노동을 했고, 어머니가 밭에서 일했어요. 돈을 벌어서 부모님에게 부산에 집을 사드렸어요. 정말 기뻤어요. 이런 점이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과 달라진 점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올스타 1위
올스타전에서 1년 만에 함께하는 박정석(右)과 강도경(左).
―게이머로서 무명기간이 길지 않았는데 비결이 있나요.
『운이 참 좋았어요. 2001년 온게임-코카콜라배 스타리그 첫 대회에 처음 출전해서 16강에 올랐어요. 이 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게임대회인지도 몰랐어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결승을 했는데 그때 그곳에 가서 모여든 관중들을 보고 큰 대회라는 것을 알았죠.
바로 이어 열린 「SKY 2001 스타리그」 8강에 올라 갔어요. 이때만 해도 프로게이머들 사이에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임요환 선수였어요. 우리끼리 요환이 형을 「4차원의 벽」이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제가 4명이 한 조인 리그에서 다른 선수한테 다지고 요환이 형만 이겼어요. 사람들은 제가 임요환을 꺾었다는 데 강한 인상을 받았나 봐요』
―팬들의 투표로 「올스타 1위」로 선정됐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올스타 투표 1위라고 하니 그냥 기분 좋았어요.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여자친구가 있나요.
『예전에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프로게이머로 일하다 보니 자연히 멀어지게 됐어요. 만날 시간이 별로 없고, 잘해 주기도 힘들고… 아는 사람들이 모두 게이머라 소개팅이나 미팅 주선할 사람도 없어요. 그리고 지금은 게임에만 신경을 쏟고 싶어요』
―스물세 살이면 군대 문제를 생각해야 할 때인데.
『군대 문제가 제일 걱정이에요. 프로게이머의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해요. 20代 중 후반이면 은퇴하는 게 현실이에요. 군대를 갔다 오면 대부분 은퇴할 나이예요. 제대하고 게이머로 복귀한 분들이 있기는 하죠. 지금 열정대로라면 군대에 갔다 와서 다시 게이머를 할 거예요』
―왜 그렇게 프로게이머의 수명이 짧은 거죠.
『게임이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아요. 하루만 쉬어도 경기에 영향을 미쳐요. 2년을 쉬면 게임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고, 손과 머리가 따라 주지 않죠. 저는 끝까지 「게이머 朴正石」으로 남고 싶어요. 도저히 손이 안 움직일 때가 되면 코치나 감독으로 가르치는 걸 생각해 봐야죠』
―프로게이머의 정년이 몇 살쯤 된다고 보나요.
『1990년대 말에 활동한 프로게이머를 1세대라고 하는데 지금 현역으로 있는 분이 없어요. 요환이 형이 스물여섯 살인데 그나마 대회에 입상하는 고연령층이에요. 우리 팀 막내가 열여덟 살인데 요환이 형 나이까지 활동한다면 8년이 남았네요』
―프로게이머 생활이 끝나면 그 후 보통 어떤 진로를 택하나요.
『주로 게임이나 공부를 더 해서 해설가나 게임 관련 일을 하죠. 김동수 선수가 은퇴 후 방송해설을 했고, 지금은 게임제작 관련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동준 형도 방송해설을 하죠. 코치나 감독 일을 하는 분도 있어요. 잘 아는 분은 아니지만 「삼성전자 칸」의 김가을씨가 선수 출신 감독이에요』
―프로게이머가 되는 경로는 어떤 게 있나요.
『길이 다양해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는 온라인 공간인 「베틀넷」에서 유명세를 타 스카우트되는 사람도 있고, 연습생으로 들어와 게이머가 되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팀에도 연습생이 있어요. 요즘은 보통 연습생을 거쳐 e-스포츠협회 교육을 거쳐 게이머 생활을 시작합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재미로 할 때와 시합을 할 때, 차이가 있습니까.
『PC방에서 친구들과 부담 없이 게임을 할 때는 스포츠카를 타고 시속 200km로 달리는 기분이죠. 시합을 할 때는 앞뒤 꽉 막힌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서 있는 느낌이죠. 시합에서 이긴 것이 확인될 때 200km 속도로 질주하는 느낌이 들어요』
『버전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게임으로 느껴진다』
KTF 매직엔스 팀의 식사시간.
朴선수의 룸메이트인 姜旼 선수가 팬들이 보내 준 포스터와 액자들을 보여 주었다. 유행하는 광고 카피나 유행어를 변형시켜 만든 文句들이 기발했다. 朴正石 선수를 그린 초상화, 직접 만든 벽시계, 모자이크들이 보였다. 姜선수는 멋쩍게 웃으며 『정석이한테 오는 선물이 더 많아요. 여자들은 아무래도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나 봐요』라고 했다.
2층 연습장에서 朴賢駿(박현준·27) 선수를 만났다. 그는 軍 복무를 마치고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저도 프로게임 초창기 때 우승도 많이 하고 꽤 유명한 선수였죠, 그런데 군대에 갔다 오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죠. 그나마 저는 공익근무를 해서 밤시간에 스타크래프트를 접할 수 있었죠. 현역으로 복무했더라면 게임 감각을 따라잡지 못했을 거예요. 스타크래프트 게임은 하나이지만 버전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게임으로 느껴져요. 그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어요. 軍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어린 선수들이 불안하게 느끼는 부분이죠』
프로게이머 1세대인 박현준 선수는 1990년대 말부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여건이 많이 좋아졌지만, 프로게임은 아직 프로 스포츠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창피한 수준』이라고 했다.
게임을 수익산업으로 성장시켜야
오후 11시. 1층에서 정수용 감독을 찾아온 대니얼 리(32)氏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을 「eNature TOP TEAM」의 감독이라고 소개한 그에게서 프로게임 업계의 사정을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프로게임 팀이 11개나 됩니다. 프로야구팀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주먹구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가끔 신문이나 TV에 「대기업이 프로게임 팀을 만들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웃죠. 제대로 기업의 지원을 받는 팀은 3개 정도입니다. SKT·KTF·삼성 정도죠.
나머지는 스폰서 없이 팀만 있어요. 스폰서가 있다고 해도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이죠, 우리 팀이 그런 경우죠. 이런 팀은 실제 지원이 없다고 봐도 됩니다. 스폰서가 없다면 선수들의 월급도 당연히 없죠. 상금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게임 팀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정보통신 업체, 이동통신사들이다. 최대 고객들인 10代와 20代 층을 겨냥한 마케팅의 일환이다. 선수들의 연봉을 제외하고 1년에 2억~3억원 정도의 프로게임 운영을 맡아 줄 중견기업들이 흔치 않다고 한다.
프로게임 팀을 운영하여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한다. 케이블 TV 중계권료를 지급받는 상황도 아니고, 대회 초창기부터 무료 관람이 관행처럼 되어 대회 입장료 수입을 기대할 수도 없다.
기업으로서 노릴 수 있는 것은 특정고객 층을 겨냥한 마케팅 효과와 기업 이미지 상승 효과밖에 없다. 이미지와 브랜드 홍보를 위해 수십, 수백억원을 투자하는 대기업을 제외하면 경제적 수익모델이 없는 상황에 투자만 이루어지고 있는 프로 팀을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운영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큰 게임대회에는 10만 명 이상의 관중이 모여든다. 이 인원을 단지 즐기기만 하는 관중으로 둘 것이 아니라 이들을 통해 게임을 하나의 수익산업으로 성장시켜 갈 수 있는 동력으로 키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게임이 프로 스포츠로서의 틀을 갖춘 지 불과 5년 만의 성과다. 각종 대회의 연간 상금 총액이 60억원을 넘어섰다. 여느 프로 스포츠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외형을 짧은 시간에 이루었다. 게임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게임도 文化다
연습 후 휴식 중인 박정석.
대니얼 리 감독은 프로게임 업계의 불균형 성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는 대기업이 스폰서를 하는 팀에서도 3~4명 정도입니다. 스폰서가 없는 팀의 선수들은 대회 상금이 수입의 전부입니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로게임 업계에 이런 악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습니다. 제대로 된 건전한 팀들이 너무 부족합니다』
음지의 문화로 취급되던 게임과 게임산업이 이제 어엿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10~20년 후를 이끌어 갈 세대들에게 게임은 문화이고 스포츠다. 게임은 과거 담배연기 자욱한 동네 오락실의 「겔러그」 수준을 뛰어넘었다. 마우스와 키보드로 복잡한 상황을 전개하고, 두뇌게임을 해나가는 문화산업이다.
게임산업을 이끌어 가는 새로운 문화 아이콘 프로게이머들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매니저 李吉萬씨는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기성세대들은 게임·프로게이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요. 학교도 안 다니고 게임만 하는, PC방에서 담배 피우고 집에 안 가는 그런 불량 청소년을 떠올리죠. 이제 게임은 하나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그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죠. 기성세대가 바둑에 심취하듯 10代와 20代는 게임을 스포츠로,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그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 한국 e-스포츠 현황
美國에서 만든 게임이 90% 이상 차지
한국 e-스포츠는 1998년 KPGL(Korea ProGame League)을 시점으로 8년 사이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2004년 인터넷 사용인구 3158만 명 중 절반이 넘는 53.6%인 1693만 명이 게임목적의 인터넷 사용자로 조사됐다(정보통신부 「정보화 실태조사」 1999~2004).
1998년 출시되어 현재까지 350만 장 이상 판매된 「스타크래프트」는 국민게임으로 불린다. 지금도 밤마다 수백만 명의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게임은 「e-스포츠 협회」와 「온게임넷」, 「MBC게임」 등 케이블 TV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총 11개 프로 팀이 있고, 260명이 專業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프로게임대회의 공식 종목으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피파」 등 21종목이 있으나,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매달리고 있다.
e-스포츠와 프로게임은 대회 상금, 참가 프로게이머 규모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게임분야 세계 최강국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산 게임 의존도가 매우 낮다.
미국 블리자드社가 개발한 스타크래프트가 프로게임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가 한국 게임系를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대회가 열리고 있는 「워크래프트」, 「피파」 역시 미국産 게임이다.
외국産 게임 편중은 국내 게임산업 발전을 막는 중요한 걸림돌로 지적된다. 밤새워 게임을 즐기는 게임인구는 폭발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이용하고 있는 국산 게임 소프트웨어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