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2003년 온게임넷 올림푸스 스타리그 임요환 대 이재훈 경기중 게임캐스터 전용준의 중계
〈동원합니다프로브동원합니다 탱크일부는시즈가됐고 일부는통통통통통통 다음으로임요환선수이병력잃으면 이재훈선수막아야되고임요환선수뚫어야됩니다. 드라군세기드라군두기드라군한기 질럿질럿치고들어오고있습니다임요환선수 네그런데임요환선수계속병력본진쪽으로 상대편본진쪽동원하고있거든요! 바카닉으로바카닉으로! 그런데시즈모드됐고탱크시즈모드됐고, 탱크시즈! 오!임요환선수 상대편병력없어요이재훈병력없어요!! 지지!!지지지지!아~〉
#장면2: 스타크래프트 중계방송중 팬들이 ‘엄재경 꽃미남’이란 종이를 든 장면이 화면에 잡히자
전용준: 아~엄재경 꽃미남~뭐죠 저거?(--;;)
엄재경: 절 좋아하시는 팬분 같네요. 하지만 사실을 알리는 거니까 저로선 감사하네요. 허허
전용준: (--)그래도 저희는 신경쓰지 말고 해설을 해야합니다.
김도형: 꽃의 종류에도 여러가지가 있죠.
엄재경: (-.-;)허허허….
전용준: 그렇죠~.
김도형: 갑자기 해설하기 싫어집니다.
엄재경: 허허허허….(-.-;;)
전용준: 그래도 우린 해설을 해야죠! 자 경기에 집중하죠~.
엄재경: (ㅠ.ㅜ)네~ 경기에 집중하죠.
위 두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스타크래프트 마니아임이 틀림없다. 첫번째 장면은 임요환이 이재훈의 본진을 공격하는 긴박한 30초간 속사포처럼 쏟아진 전용준 캐스터의 실황중계다. 의미도 파악하기 힘든 이 빠른 중계는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엔 네티즌들이 이 중계멘트에 음악을 입혀 만든 랩송이 크게 유행했고 리믹스·그루브·테크노 버전 등 다양한 편곡버전이 인터넷을 들끓게 했다.
두번째 장면은 스타리그 팬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적인 장면. 전용준 게임캐스터와 엄재경 게임해설가, 그리고 또다른 해설가인 김도형씨는 중계중 재치있는 말장난으로 팬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인터넷에는 이들의 ‘엽기어록’이 떠돌 정도. 이들의 ‘오버중계’가 인기를 얻으면서 모든 게임중계에서 오버는 필수가 됐다.
게임방송 초창기부터 스타크래프트 중계와 해설을 맡아온 전용준·엄재경 콤비. 이들은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로 떠오른 e스포츠의 ‘장외 영웅’이다. ‘재기발랄’한 중계스타일이 젊은층의 가벼움과 엽기코드에 딱 들어맞은 것. 최근에는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Mr. 요리왕’이라는 코너에서 고정적으로 중계를 하고 있다. ‘비주류 문화’로 인식되던 e스포츠 진행자가 지상파 TV를 점령할 정도로 ‘주류’로 떠오른 것이다. 전·엄 콤비는 e스포츠의 현 위상이다. 이들의 행보에서 e스포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과거-시대의 흐름을 짚어내다
네티즌이 제작한 전용준 합성사진
엄재경씨는 원래 유명 만화스토리 작가였다. 1999년 온게임넷이 스타크래프트 첫 중계를 준비할 무렵 엄씨는 만화전문 채널인 투니버스에서 국산만화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진행중이었다. 투니버스와 온게임넷은 같은 온미디어 계열이어서 기획회의를 하다 자연스럽게 스타크래프트 얘기가 나왔다. 이때 엄씨는 일반인의 수준을 넘어서는 해박한 지식을 선보였고 우연찮게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맡게 됐다.
전용준씨 역시 iTV 공채 아나운서로 시작해 1999년 게임 중계를 맡게 됐고 2000년 젊은 나이에 과감히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당시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다. 누구도 e스포츠의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대흐름을 정확히 예측하고 뛰어든 이들의 판단은 적중했다. e스포츠의 시작은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그 흐름은 필연이었다.
#현재-중계의 새지평을 열다
송재익·신문선 콤비에 비교될 정도로 이들은 명콤비다. 전씨가 북을 치면 엄씨가 장구를 친다. 전혀 차분하지 않은 이들의 중계는 탈권위적이었고 젊은 세대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역할분담도 뚜렷하다. 전용준은 일단 ‘지르고’ 보는 분위기 메이커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종목의 특성상 급박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중계방식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 중계 멘트를 글로 적어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저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종목의 특성상 명확한 의미전달보다는 긴박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게 중요한 걸 깨달았어요.”(전용준)
엄재경은 정확한 데이터 베이스를 바탕으로 중계하지만 때론 선수들의 심리상태와 전략을 예측하곤 한다. 그게 맞든 틀리든 크게 상관은 없다. 팬들은 게임만큼 프로게이머의 얘기를 듣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좀 튄다 하더라도 팬들이 즐거워한다면 용납될 수 있죠. 중계에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게임중계 첫세대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찾는 중이라고 볼 수 있어요.”(엄재경)
이들의 판단은 옳았다. 이들의 팬카페 회원은 1만명이 넘고 연봉은(본인들은 비슷한 또래보다 조금 더 번다며 극구 밝히길 꺼리지만) 1억원 안팎일 정도로 성공했다. 이들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말고도 5~6개 프로그램 진행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미래-e스포츠는 계속 간다
e스포츠는 실제 스포츠와 유사하다. 이승엽의 성적이 어떻든 그를 응원하는 팬이 있듯이 임요환의 성적에 관계없이 임요환 개인을 좋아하는 팬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러나 e스포츠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스타크래프트 한종목에 편중됐고 선수생명이 짧고(26살인 임요환이 노장소리를 듣곤 한다) 대기업스폰서 유무에 따른 성적편차가 심한 것도 불안요소다. 하지만 정부에서 상무게임단을 고려할 만큼 각 분야의 관심이 높아졌고 결정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것은 긍정적인 요소다.
긍·부정의 요소들이 어떻게 결합해 어떤 화학적 변화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도 e스포츠는 확장중이란 것이다. e스포츠의 성장과 동시에 이들의 역할도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비주류’가 ‘주류’로 떠오르기도 하는 21세기 새로운 기류다.
〈글 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http://www.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510131601161&code=900310